리퀘스트

소독약과 유령

콜 오브 듀티 드림

· 데스마우스 건담 2호기님 리퀘스트

· 고스트 X 빅스비


에틸알코올에 과산화수소. 포비돈 요오드와 클로르헥시딘. 분홍색과 파란색, 부글거리며 일어나는 투명한 거품, 둘둘 감긴 멸균 처리된 천. 당신은 익숙한 포름알데히드의 냄새를 맡는다. 그 주인은…

A. 고스트

빅스비는 속상한 표정으로 고스트의 왼쪽 팔을 차지한 붕대를 바라보았다. 헬멧에 가려져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서류 작업을 하던 고스트가 책상 근처를 얼쩡거리는 빅스비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중위님 왼팔에 끝-내주는 문신이 추가되는 거요?”

“아니.”

“다음 문신은 고슴도치로 해주세요.”

“안, 할, 거라고.”

고스트가 단어에 힘을 주어 문장을 끊어 말했다. 빅스비가 히죽 웃었다. 실체 없는 유령. 심장도 피도 없는 차가운 존재의 따스함을 그는 알았다. 말랑하고 폭신한 털로 뒤덮인 감정. 그리고 빅스비- 그 특권의 주인은 아예 책상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서 본격적으로 촐랑거리기 시작했다.

“아프진 않으세요? 붕대를 갈아드릴까요? 소독도요.”

“필요 없어.”

“이런 특별 서비스 잘 없다구요?!”

“왜 없는지 알 것도 같군.”

고스트의 차가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빅스비는 손을 뻗어 붕대 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환부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 위를 쓰다듬은 빅스비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서 고스트는, 어째선지 꼬리를 축 내린 강아지를 떠올렸다.

다시 기운을 차린 빅스비가 이번엔 고스트의 손을 잡았다. 고스트의 것에 비해 작고 가는 손이 찰흙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득 고스트는 그와 자신이 같은 갯수의 손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졌다. 연분홍빛을 띠는 작은 조개껍데기 같은 것이 꼴에 손톱이라고 마디 끝마다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어떻게 이런 손으로 총을 쏘고, 탄창을 갈아 끼우는 걸까. 고스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빅스비는 열심히 조잘거렸다.

“중위님, 제가 손금 봐 드릴까요?”

“손금?”

뜬금없이 튀어나온 단어에 고스트가 되물었다. 네, 손금이요! 빅스비가 경쾌하게 답하며 고스트의 손바닥을 책상에 대고 구겨진 종이 펴듯 문질러댔다.

“전에 휴게실에서 배웠거든요. ■■한테. 이걸로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대요.”

고스트도 아는 이름이었다. 인도 출신이었던가. 분명 과학적인 근거라곤 없는 미신일 터이지만, 양키들의 90%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 세상에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고스트는 군말 없이 제 손바닥을 빅스비에게 맡겼다. 검지 끝이 손바닥에 난 길을 따라 움직이며 간지러운 감각을 주었다.

“여기 이게 생명선이래요.”

“생명선.”

“길고 선명하시네요! 분명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거예요.”

“흐음.”

모범생처럼 빅스비가 내뱉는 단어를 따라 말한 고스트는 이어지는 설명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생명선이라고 알려준 손금을 억지로 연장이라도 하듯 꾹꾹 누르는 손길의 의도는 너무나도 알기 쉬웠다. 긴 변명에 비해 속마음은 단순했다. 걱정이었다. 별다른 용건도 없으면서 굳이 사무실 근처를 알짱거리는 것도, 같잖은 핑계로 고스트와 대면하는 것도 그것으로 전부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 이건 결혼선이래요. 보자 보자… 중위님, 혹시 마음에 두신 분 있으세요?”

빅스비가 새끼손가락 밑에 난 짧은 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무 짧고 희미한 선이라서 그런 곳에 있는 손금을 잘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고스트는 나직이 답하며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집중한 이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바라보았다. 고스트는 자신이 처음 치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마주했던 빅스비의 모습을 떠올렸다. 기운없이 축 처져있느니 차라리 조잘거리는 게 낫지. 어쩌면 이 정도 어리광은 받아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헉, 선이 하나, 둘, 셋… 중위님 세 번 결혼하실 건가 봐요!”

“….”

“아, 아니다. 여기 이것까지 세야 하나…? 그럼 다섯 번?!”

“….”

그리고 곧장 그 생각을 철회했다. 기운이 넘쳐도 너무 넘치는군. 사람 속도 모르고, 갑자기 괘씸하단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고스트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여기서 노닥거리는 걸 보니 시간이 남아도나 보군, 빅스비.”

“중위님과 함께할 시간은 항상 넘치죠!”

“그래?”

어쩐지 의미심장한 그 말에 빅스비의 뒷골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틀리질 않았다. 고스트가 보고있던 서류의 일부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소프가 할 얘기가 있다고 했는데! 오 이런, 약속했던 시간에 늦겠네요! 나가보겠습니다!”

꽤나 작위적인 움직임으로 시간을 확인한 빅스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원래 자리에 정리한 그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방을 떠났다. 문을 완전히 닫기 전에 히, 웃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달칵.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보던 고스트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어쩐지 밀려오는 두통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B. 빅스비

빅스비가 꽁한 표정으로 고스트의 앞에 서 있었다. 입술은 비죽, 튀어나와 있었고 턱에는 호두 모양 주름이 잔뜩 잡혀있었다. 고스트는 저 요망한 입을 콱 잡아채는 대신 제 미간을 짚었다.

“안돼.”

“하지만-”

“빅스비.”

“… Yes, sir.”

“지금 그 다리로 축구를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빅스비의 왼쪽 종아리부터 발목까지는 깁스가 둘둘 감겨있었다. 심지어 신발은 슬리퍼였다. 목발이 너무 불편하다, 겨드랑이에 쥐 날 것 같다, 깁스한 다리로 잘만 걸을 수 있다- 고스트를 쫓아다니며 불만을 토로하기에 목발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해 줬더니, 그새를 못 참고 이런 사고를 쳤다.

“슛은 무조건 오른발로만 찰게요! 게다가 왼 다리에 공이 좀 부딪힌다고 해도, 석고가 단단해서 괜찮다구요! 보세요-”

“그만, 좀.”

빅스비가 주먹으로 과장되게 제 깁스 위를 두들기는 것을 급하게 막은 고스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붙잡히자 빅스비의 턱의 호두가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어느 쪽도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자, 둘의 언쟁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소프(원인 제공자)가 한 손으로 축구공을 던졌다 받으며 다가왔다.

“그러지 말고, 고스트. 한 판 정도는 괜찮잖아. 내내 뛰지도 못하고 있으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데.”

“맞아!”

고스트가 냉큼 소프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빅스비를 노려보았다. 빅스비는 곧장 입을 헙, 다물고 소프의 뒤로 슬며시 숨었다. 소프가 슬쩍 웃어 보였다.

“게다가 빅스비만 오면 숫자가 딱 맞는다고.”

“정말?”

“강아지들처럼 공이나 쫓아다니는 데에 얘 끼울 생각하지 마. 그리고,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 엄한 짓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순서대로 소프, 그리고 빅스비에게 하는 경고였다. 하여튼 우리 중위님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중얼거린 소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찡긋거렸다.

“Well, 그럼 Lt가 여기 끼는 건 어때. 말했잖아, 한 명 모자란다고.”

그 말에 빅스비가 숨을 헙, 들이켰다. 그리고 고스트에게로 반짝거리는 시선을 보냈다. 빅스비는 고스트가 남들과 축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걸 구경하면 직접 뛰지 않더라도 지루함이 조금은 달래질 것 같았다. 하아- 고스트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지랄 마.”

“에이, 왜 그래? 빼지 말라고.”

“맞아요! 중위님이 저 대신 슛 멋지게 넣어주시면 제가 안 뛰어도 될 것 같아요!”

“빅스비.”

“….”

“어허, 왜 애먼 애를 괴롭히시나.”

키들거린 소프가 들고 있던 공을 땅바닥에 떨어트린 뒤 발재간을 부렸다. 퉁, 퉁, 바람으로 투실하게 채워진 공이 신발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우와- 작게 탄성을 내뱉은 빅스비가 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스트의 심기가 점점 좋아지지 않는 것을 눈치챈 소프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헤딩은 자신 없으신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고스트의 머리에 난 상처를 말한 것이었다. 피부가 찢어져 몇 바늘 꿰매야 했다. 당연히 그 부분의 머리는 밀어야 했고.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주변 머리카락으로 잘 덮으면 티가 나진 않았지만, 사실을 아는 소프에게 잔뜩 놀림을 받았다. 상처(중의적)를 건드리는 말에 고스트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둘 사이의 신경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빅스비는 속상한 얼굴로 손을 위로 뻗어 고스트의 머리를 쓰담는 시늉을 했다.

“중위님, 정말 그거 때문에 그래요? 아직도 많이 아파요?”

“… 아니야.”

한쪽 다리에 깁스를 찬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고스트가 답했지만 빅스비의 시선은 변할 생각이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고스트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을 까딱여 빅스비를 불렀다. 촐랑촐랑 빅스비가 옆으로 다가가자 고스트가 허리를 숙여 빅스비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들은 빅스비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꼬리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변화였다. 그리곤 곧장 고스트를 따라 쫄래쫄래 영내로 향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소프가 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뭐야! 둘 다 어디가! 축구는?”

“미안! 나 고스트랑 놀게!”

“진짜로? 둘이 뭐하고 놀 건데?”

“그건 비밀!”

베- 혀를 내민 빅스비가 고스트와 함께 건물 안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소프 혼자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소프, 안 할 거야? 운동장 쪽에서 그를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잠깐 바라보던 소프도 어깨를 으쓱이곤 경기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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