𝑆ℎ𝑜𝑜𝑡𝑖𝑛𝑔!

· 젠님 리퀘스트

· 고스트페이스 X 레인 번디

촬영은 사냥과 같았다.

그리고 사냥은 포식자의 특권이다.

날개가 움직이며 고양잇과 맹수의 눈처럼 조리개가 넓어졌다. 노출값을 조절하는 손길은 아주 섬세했다. 심도 조절에 따라 흐릿하던 피사체가 올바른 형태를 갖추었다. 카메라 렌즈에, 그의 조준경에, 피사체는 정확히 한가운데 자리했다. 레인, 레인 번디.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입천장에 혀끝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자, 준비가 되었다면, 여길 보고 웃어.

3,

2,

1,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한차례 열렸다 닫혔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재즈가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체스판처럼 하얗고 까만 타일 위를 칼날을 숨긴 나이트가 거침없이 이동했다. 직선으로 한 칸, 두 칸, 옆으로 한 칸. 붉은 가죽 소파에 자리 잡자 맞은 편의 킹이 읽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 보았다. 본디 뛰어난 포식자란 탐색전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아직은 서로를 잡을 수 없다. 그래, 아직은.

로즈빌 연쇄살인 사건! 원한 범죄인가, 계획범죄인가?

번디가 읽고 있던 신문 기사의 1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가 ‘제드 올슨’이란 이름의 번듯한 가면을 뒤집어썼다. 정직하고 예의 바른 사내였다.

“내 기사 어때?”

“무슨 기사?”

“거기 대문짝만하게 쓰여있잖아.”

올슨이 턱 끝으로 대문짝만한 기사를 가리켰다. 그래, 자극적이긴 하지만 신문 기자로서 이러한 큰 사건의 기고는 대단한 일이었다. 번디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그래서 원한 살인이라는 거야, 계획 살인이라는 거야.”

“현재로선 묻지 마 살인일 가능성이 커 보여. 피해자들 사이의 연관성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든.”

“전문가 납셨네.”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중의적인 문장이었다. 번디는 그것을 신문 기자로서의 경력으로 해석했다. 무심한 눈길이 기사의 세부 내용을 훑었다. 어떤 방면에선, 그녀 또한 이런 일의 전문가였다. 난도질당한 시신, 찾아내지 못한 흔적. 지문이나 흉기는 물론, 그 흔한 발자국 하나까지. 묻지 마 살인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경찰의 공식 성명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가급적 혼자 다니지 말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주 웃기는군. 번디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아래로는 올슨이 주도한 유족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이어졌다. 어째서 이런 비극이 우리 가족에게 어쩌고저쩌고- 뻔한 감성팔이는 지루했다. 더는 읽어볼 가치도 없었다. 번디는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곤 살짝 내려간 제 안경을 올렸다. 연기와 함께 담배 냄새가 퍼졌다. 올슨이 눈을 감고도 느낄 수 있는 번디의 일부였다.

“내용에 비해 헤드라인이 터무니없이 자극적이네.”

“신문사에서 일한다는 게 그런 거지, 뭐. 편집장님 입맛이 꽤 가미됐어.”

올슨이 쓰게 웃었다. 유족의 비참함을 전하고 싶었던 열정적인 기자로서 올바른 반응이었다. 번디가 미간을 좁혔다.

“내 말은, ‘이딴 놈’에게 1면을 내어줄 가치가 있냐는 거야.”

“뭐?”

순간 올슨이 되물었다. 번디는 평소와 같은, 이 조용한 일상에 일어난 파문이 당연하단 표정이었다. 그녀는 가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괴상한 쪽인 것처럼 행동하곤 했다. 아마 올슨이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번디와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를 주고받진 못했을 거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이 자식은 그냥 자신이 너무 우월하고 멋져서, 이걸 티 내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틴에이저 같은 놈이야. 병에 제대로 걸린 거지. 쿨병.”

“….”

“고작 사람 몇 죽였다고 세기의 살인마라도 되듯 떠받들어주니… 지금쯤 기분 째지겠어.”

문장의 끝에서, 번디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맞은편의 상대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태도였다. 잔혹한 살해 방법, 연관 없는 피해자들, 주도면밀한 계획. 칼질 몇 번 해본 놈들은 뻔했다. 문득 자신이 아직 전역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그녀가 전장에서 활동할 때도 꽤 중요하게 여기던 부분이었다. 그땐 마음대로 담배도 못 피웠는데. 회색 담뱃재 사이로 꺼져가는 작은 불씨를 바라보며 그녀가 속으로 말했다. 아무튼 재떨이라는 건 꽤 근사한 발명품이군. 급할 때 누굴 후려칠 수도 있고 말이야.

마찬가지로 올슨 또한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눈앞에 있는 킹은 평균적인 키의, 덩치는 조금 왜소한 여성이다. 루틴 또한 단조로웠다. 염세적인 태도를 제외하면 여느 사냥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저 작은 몸뚱아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지금까지의 관찰 방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잡아 산 채로 갈라놓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피사체가 초점에서 벗어나고, 피식자가 더 이상 피식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를 향한 통제욕과 동시에 기이한 즐거움이 뇌의 신경세포 하나하나를 타고 흘러갔다.

“주문하신 샌드위치랑 커피 나왔습니다. 커피는 늘 드시던 대로 블랙이에요.”

그 기묘하고도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발랄한 차림새의 웨이트리스였다. 유리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올슨의 앞에 놓였다. 담배의 냄새는 머그잔에서 피어오른 커피의 향기로 뒤덮였다. 웨이트리스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한 올슨이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그래서, 로즈빌을 발칵 뒤집은 살인마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었던 거야?”

번디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로 신문을 펼친 다음, 검지 끝으로 그 위 어딘가를 가리켰다.

낱말 퍼즐

■▢▢▢▢T

▢▢▢▢■O

■▢■▢■E

■▢■▢■■

■▢■▢■■

■▢■▢■■

■▢■▢■■

■▢■■■■

올슨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잔혹한 기사보다 낱말 퍼즐에 집중하고 있던 것도 어이가 없거니와, 저 많은 빈칸 중에 채워 넣은 것이 고작 ‘발가락’이란 사실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중 최고는 번디가 꽤 이것에 집중하고 있단 점이었다. 머그잔을 다시 내려놓은 올슨이 테이블 위으로 몸을 약간 기울였다.

“세로 열쇠 1번. 석유의 휘발 성분을 이루는 무색의 투명한 액체. 원유를 증류하거나, 증류한 후 화학 처리를 하여 얻는다. 자동차, 비행기 따위의 연료나 도료, 고무 가공 따위에 쓴다.”

“기름.”

“글자 수가 이렇게 긴데도?”

“그럼 뭐, 올리브 오일?”

“휘발유겠지.”

“나도 알아.”

번디가 칸 하나에 알파벳 하나씩을 휘갈겨 넣었다. 올슨은 다음 글을 읽었다.

“세로 열쇠 2번.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CGS 단위. 단위 자기극에 1dyne의 힘이 작용하였을 때의 세기이다. 기호는 Oe.”

“오-이스터.”

“… 농담이지? 굴은 O 다음 Y-”

“나도. 안다고.”

“일단 O랑 E를 먼저 채워 넣어봐. 그럼 뭐라도 나오겠지.”

두 번째 세로줄에 순서대로 O와 E를 채우고, 아래 5칸은 비웠다. 나머지 문제들은 아주 쉬웠다. 가로 열쇠 1번,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 가로 열쇠 2번, 머리 앞면의 전체적 윤곽이나 생김새, 주위에 잘 알려져서 얻은 평판이나 명예 또는 체면.

올슨이 입을 열었다.

“살인이 또 일어날까?”

“어.”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올슨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째서? 묻지 마 살인도 아니고, 원한 범죄라면 이미-”

“내가 말했지.”

번디가 말의 허리를 잘랐다. 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원한도, 웬 미치광이의 짓도 아니야. 굳이 비교하자면 게임 같은 거야. 게임 오버 당하지 않았는데 그만둘 이유가 뭐가 있어?”

올슨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번디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녀를 제외한 주위의 것들은 모두 초점을 벗어나 흐릿해져갔다. 어느샌가 음악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킹이 움직였으므로 이번엔 나이트의 차례였다. 그날 밤, 올슨은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