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남복을 입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문답

[O.C.] 우시다 유우토.19


모든 인간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매끄러운 면에 비쳐 보인 반사체만이 외양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면, 어째서 다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그렇게나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자궁에서 나옴과 동시에 '어머니'로부터 하나의 세상을 부여받습니다. 아이는 거울을 볼 줄 모릅니다.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만이 아이에게 유일한 진실이자 지침이 됩니다.

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 나의 창조주이자 단짝이었던 그이의 최초의 명칭은 '언니'였습니다. 태내에 머물러 있었을 적, 언니가 어머니의 배에 대고 내게 속삭인 목소리의 음역과, 사용한 단어의 빈도수, 억양, 말버릇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믿어지실까요?

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어디든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독한 감기로 앓아눕는 날이면 푹 고아 놓은 닭 뼈가 담긴 항아리를 들고 마을의 랑종 앞으로, 귀한 손님에게 잘 보여야 하는 날이면 낡은 사원의 불상 앞으로, 포장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리는 지프차 버스에 주머니쥐 새끼들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채, 주에 한 번은 파리 떼 날리는 시장 바닥 속 구역질 나는 돼지머리를 진열해 놓은 돗자리상 앞으로.

무엇보다도 나의 의식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스팽글이 현란하게 조명을 반사하는 딱 달라붙는 무대 의상을 입고, 천장이 훤히 비쳐 보이는 미끄러운 런웨이에 덩그러니 놓인 녹슨 봉을 잡고 미친 듯이 돌고 있는, 머리 벗겨진 남자들로부터 지폐라는 형태를 가진 찬사란 찬사는 모조리 젖가슴 안으로 잔뜩 쓸어 담고 있는, 언니, 나의 언니, 아름답고, 찬란하고, 불법이고, 자비가 없고, 충치가 녹아내려서 발음은 뭉개지는데, 목소리는 추하게 꽥꽥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엉망으로 춤추는, 나의 '어머니', 나의 언니였습니다.

언니는 나에게 세상을 주었고, 그것들은 전부 진짜였습니다. 여기서 '진짜'란 목을 내려치기 직전의 청어처럼 펄떡펄떡 뛰는 것, 아슬아슬한 것, 난폭하게 구는 것, 그래서 생경함을 주는, 생명력을 가진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나의 고향에 머물렀을 적에 나는 거울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언니를 보고 있자면 거울 같은 건 필요 없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서 출아법으로 떨어져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내가 자라면 분명 저 사람처럼 될 테니까요. 유전학에 따르면 형제가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는 일부에 불과하다지만, 나는 과학을 믿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는 쌍둥이가 아닐까요? 일란성 쌍둥이도 몇 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나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필시 십오 년이라는 긴 간격을 두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장한다는 것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세상을 재구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거울 속에 있는 아이를 너무 오랫동안 외롭게 방치했고, 그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거울 속의 남자아이가 말했습니다. 이건, 너야. 네가 평생 끌어안고 함께 살아야 할 '너'야. 나는 저주와도 같은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거울의 반사면 위로 떠오른 낯선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을 거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어디서 왔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목울대가 굵어지고, 겨드랑이가 가렵고, 인중이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해서, 이 아이에게 더 이상 말을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날에,

저는 남복(男服)을 입기로 다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학우 여러분. 새롭게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우시다 유우토입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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