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공범자

[O.C.] 우시다 유우토.19 > 와쿠카와 무이미.19

TW : 교정 치료 과정에 대한 묘사, 젠더 디스포리아


선짓국이라는 거, 먹어본 적 있어요? 내 고향의 언어로는 ‘남니우(น้ำเงี๊ยว)’라고 말해요.

여자 귀신 쫓는 데 돼지 피만 한 게 없다 하대요. 그 말을 우리 엄마는 철썩같이 믿었어요. 시장에 가면, 아아, 엄마의 두툼한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검고 말랑말랑한 선지 덩어리와 붉게 말린 니우 꽃잎을 살 수 있었죠. 갓 도축한 돼지로부터 짜낸 뜨끈뜨끈한 피 한 통을 양동이에 가득 채우고, 양 손잡이를 한 쪽씩 나눠 들고 사이좋게 랑종의 집에 돌아가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굿판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앙감질하며 콩콩 뛰고 콧노래를 불렀지요.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영혼의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우리 언니의 거죽 안에 말라붙어있는 그것을 새까맣게 태워 죽일 작정으로.

그날, 나의 그림자는 거꾸로 선 채로 영혼 말살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생존한 언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운 피를 뒤집어쓴 채 입술의 움직임으로만 말을 건넸습니다.

― 눈 감지 마.

― 끝까지 지켜봐.

― 나의 목격자가 되어줘.

욕조에 받아둔 물의 온도는 몸을 덥히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체온이 닿아있어서 제법 버틸 만했어요. 샤워기로도 미처 떼어내지 못한 선지 파편들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는 걸 보면서, 언니와 나는 차라리 저것들을 하혈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와, 진짜 바보 같아, 왜 하필 이런 걸 뿌린담? 선지에 철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데, 그치? 따위의 농담을 건네면서.

지은 죄가 많으면 그릇되고 천한 존재로 윤회한다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선악과를 베어 물어 염원하는 형태의 육신을 쟁취하자고, 우리는 언약의 증거로 서로의 몸에 붙은 핏덩이를 집어서 깨물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와쿠카와 무이미가 세게 틀어쥔 옷깃 끝으로 목에 걸려 미처 넘어가지 못한 선악과의 파편이 닿는다. 나는 그것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눈앞의 사람이 지금, 죄를 삼킬 거면 삼키고 뱉을 거면 제대로 뱉으라 명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삼킨 쪽인가, 뱉은 쪽인가. 흔들리는 전짓불 앞에서 관등성명을 요구받는 병사처럼 어느 하나 울렁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 와쿠카와, 이 말들을 이제서야 고백하는 저의가 뭐예요?

― 나는 외로웠어, 진짜 외로웠어……. 이 우주의 단독자처럼. 탓할 사람도, 지를 비명도 없이.

차라리 기계가 되겠다면서 거울에 비친 고깃덩어리 따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와, 인간임을 잊지 않고 싶어서 금속질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당신. 나의 그림자는 망막이라는 이름의 카메라 렌즈를 뚫고 뒤집혀 와쿠카와 무이미라는 상으로 길게 맺힌다.

― 그런데 애초에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네? 전부 다, 헛고생이었던 거야.

― 말하려 했었다? 늦었어. 그 ‘언젠가’라는 망설임이 우리가 사랑하는 유카코를 말려 죽인 거라고.

뒤집혀 맺힌 한 쌍의 상像을 ‘우시다’들이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림자를 땅에 묻을 수 있어? 아니, 못하지. 아무리 깊게 매장해도 결국엔 살아서 날 따라 구덩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그건 그림자의 본능이야.

그렇다면 결국엔, 끝끝내 생존해서 기어 나온 그림자를 목도할 수밖에 없겠네…….

― 다시 파내요.

― 날 외롭게 둔 책임을 지세요.

― 죽여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 이제 우리는 서로의 유일한 목격자야.

죽음의 산도産道를 비집고 기어 나온 괴물이 드디어 탄생의 비명을 지른다. ‘유카코’라는 이름으로.

이마를 맞댄 채 낮은 소리로 그르렁대며 나는 경고했다. 우리는 비록 뒤집혔으나 하나의 망막으로 연결되어 있어. 네가 그렇게 선언했으니, 이제 한 상像의 죽음은 다른 상像의 죽음과 진배없다고. 그러니 투쟁하라고, 어디서든 눈 똑바로 뜨고 살아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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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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