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오브 듀티 드림
유료

깨진 유리

콜 오브 듀티 드림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충격과 압력. 외부의 힘이 철 내부의 결정 구조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교차되고, 왜곡되고. 구조적 재배열은 결정들을 정렬하고 결합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단단한 상태로 만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단단해져간다. 적어도 약 3.5g 정도는. 원하지 않는 충격과 압력. 관계의 재배열도 그러한 과정 중에 하나라 믿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교차되고, 왜곡되고. 다만 바라기는 유리처럼 깨지지 않는 것이다. 신이라는 게 있다면, 부디 이 시련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그리고 기도가 울려 퍼진 곳은…

1. 고스트

“금방 지원이 도착할 거다. 그때까지만 버텨.”

폭발로 엉망이 된 폐건물의 안, 고스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우박처럼 쏟아 퍼부어지는 탄환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간간이 불쾌한 노이즈를 뱉는 무전기에선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런 와중에도 특유의 영국식 발음이 잔뜩 묻어나는 문장이 당신의 뇌리에 또렷하게 박혔다. 신기한 일이었다. 바깥의 다급한 상황 따위는 꼭 영화 스크린 너머의 일 같았고, 옆 좌석에 앉아 있는 그만이 실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위가 어두워지면 그의 얼굴이 더 또렷이 빛나겠지. 지루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그에게 장난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중위님 지금 되게… 섹시한 거 아시죠.”

“닥치라고 하고 싶지만 당장은 계속 떠드는 게 낫겠군.”

“저-”

“안돼.”

딱딱하고 잔해가 가득해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장비들이 눌리면서 등이 배겼다. 당신이 자세를 바꾸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고스트에 의해 제지당했다. 절로 투덜거림이 튀어나왔다. 목이 너무 불편해요. 한숨을 쉰 고스트가 당신을 끌고 근처 벽에 기댈 수 있게 옮겨주었다. 그제야 둘의 시야가 맞았다.

당신이 바라본 방향에서 고스트의 왼쪽 이마가 찢어져 있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발라클라바를 적셨다.

“중위님 왼쪽 이마에… 아니, 오른쪽이요.”

“….”

당신의 말에 따라 헛손질하는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세어 나왔다. 당신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자 고스트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해골 가면에 난 구멍으로 눈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느꼈다).

“고스트.”

“왜.”

“재밌는 농담 뭐 아는 거 없어요?”

“… 다리가 두 개에 피를 흘리는 건?”

“그만하죠.”

“넌 줄 알았어?”

“… 완전 아저씨 같아.”

내가 아저씨지 그럼. 무심하게 답한 고스트가 익숙한 손길로 당신의 상처를 살폈다. 응급처치 실력이 제법이었다. 강하게 지혈을 하는 통에 당신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때마다 고스트는 당신을 흘끗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당신이 밭은 숨을 내뱉을 때마다 고스트의 손을 통해 그 움직임이 전해졌다. 피 맛이 느껴지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축인 당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스트.”

“이번엔 또 뭐야.”

“저 졸려요.”

그 말에 당신의 상처를 압박하던 손길이 분주해졌다. 당신의 이름을 몇 번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귀가 점점 먹먹해져 오는 탓에 당신은 확신할 수 없었다. 멀어지는 시야를 붙잡고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갈색빛이 도는 어두운 눈동자가 당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당신은 궁금했지만 얼굴을 꽁꽁 가린 발라클라바 탓에 입 모양을 읽을 수도 없었다. 젠장, 저놈의 못생긴 가면이 문제라니까…. 그 문장을 끝으로 당신은 사고를 멈추었다.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2. 소프

“… 무전 확인, 들리나?”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만들어낸 좁은 골목. 응답 없는 무전을 두어 번 확인한 소프가 나직이 욕을 지껄였다. 뇌를 쥐어짜듯 자극하는 통증에 그가 허벅지를 붙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변에서 수색에 전념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히 아군은 아닐 것이다. 소프는 어둠을 틈타 조용히 건물로 숨어들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총성. 소프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건물 안은 쥐새끼들도 전부 죽은 건지 고요하기만 했다. 자신의 숨소리가 무서우리만치 요란했다. 유일하게 빛을 만들어내는 천장등이 불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순간 소프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모든 감각이 등 뒤를 향해 집중하고, 육감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선제공격을 하려던 소프의 시도는 반쯤 막혔다. 뒤에서 제 목을 휘감고 졸라오는 적을 공격할수록 팔은 더욱 강하게 조여왔다. 상대에게 우위를 내어주지 않기 위한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이루어졌다. 두 군인이 뒤얽혀 끙끙거리고 있던 때, 경기의 끝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그 한 번의 파열음과 동시에 소프의 행동이 멈췄다. 소프는 자신을 제압하던 팔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바로 뒤에서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프가 천천히 뒤돌아 당신을 바라보았다.

“날 같이 보내려고 작정한 거야?”

“안 맞았잖아.”

“지난 사격 훈련 결과 기억하지?”

“너보단 나아.”

“‘너붜돤 놔아.’”

소프가 당신의 말을 따라 하며 비식거렸다. 그리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은 그가 긴장이 풀려 그렇다고 생각해 잡고 일어나라는 의미로 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소프는 당신의 손을 마주 잡기만 할 뿐 영 힘을 주지 못했다. 그제야 당신은 소프의 허벅지에서 흘러나온 피가 청바지를 적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딴 몸으로 혼자 돌아다닌 거야?”

“그냥 좀 스친 거야.”

“두 번 스쳤다간 다리가 날아가겠네.”

신랄하게 비꼬는 걸 잊지 않은 당신은 한숨을 내쉬곤 소프를 부축했다. 그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른 당신은 하나, 둘! 하는 신호와 동시에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은 충분히 훈련받은 군인이었지만 순간 몸이 휘청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돼지.”

“네가 너무 마른 거야.”

“그냥 감자인 줄 알았더니 돼지감자였네, 돼지감자.”

“….”

소프가 뭐라 대꾸하려던 찰나 타이밍 좋게 무전이 울렸다. 그가 무전을 통해 간결하게 상황 설명을 마치자 당신은 그에게 고갯짓했다. 잡담은 그만두고 이동해야 했다.

합을 맞춘 두 사람의 발소리가 건물 안을 울렸다.

3. 크루거

“자, 비행기 날아간다, 슝~”

“….”

“아- 해야지, 자기야.”

“지랄 말고 꺼져어억,”

당신의 말은 입안을 침범한 숟가락으로 인해 마무리되지 못했다. 당신이 어떤 괴상한 표정을 짓든 말든, 크루거는 손을 뻗어 당신 입가에 묻은 소스를 훔쳤다. 착하네. 그렇게 말한 그가 소스가 묻은 제 엄지를 핥으며 웃었다.

크루거가 처음 당신의 병실로 들어왔을 때, 당신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세상 어떤 미친놈이 병문안을 한밤중에 창문으로 오냐고. 그런 당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루거는 태연하게 간이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고작 그딴 미션에서 이 꼬라지가 나서 오냐고 당신 속을 긁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신은 침착하게 스위치를 잡고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너스콜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깥도 고요하기만 했다. 점점 절박해지는 그 행위를 느긋하게 감상하던 크루거가 당신의 손을 겹쳐 잡고 당겼다. 당신은 그제야 스위치와 벨을 연결하는 선이 잘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절단된 전선의 끝이 당신을 놀리듯 대롱대롱 흔들렸다. 이거 완전 제대로 미친놈이네. 당신의 감상에 크루거는 기껍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이후 크루거는 매일 당신의 병실을 찾았다. 꼼짝도 못 한 채 침대에 누워만 있는 당신을 두고 밖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며 다니는 건지, 수액을 갈기 위해 방문한 간호사가 ‘잘생긴 애인이 매일 병간호를 해주니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모니터의 맥박 그래프가 갑자기 치솟는 바람에 담당의가 달려올 정도였다. 솔직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괜히 정신병동에까지 끌려가고 싶진 않았다. 당신은 병원 한가운데서 저 미친놈은 내 피앙세가 아니라 스토커라고 소리 지르는 대신 모든 소문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크루거는 아주 대놓고 당신의 애인 행세를 했다. 남들 앞에서 멀끔한 얼굴로 번지르르한 미소를 지어 보일 때면 속이 메스꺼워졌으나 당신은 티 낼 수 없었다. 이전에 토하는 시늉을 했다가 크루거의 부축을 받은 채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 전적이 이미 있기 때문이었다. 맛대가리 없는 환자식을 우물거리던 당신은 그것을 꿀꺽 삼키곤 입을 비웠다.

“이렇게 찾아올 거면 맛있는 거라도 사 오지 그래.”

“날이 갈수록 요구가 느는 것 같다?”

“내 애인이라며, 개새끼야.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 정도도 못 해줘?”

스튜인지 리조토인지 알 수 없는 희멀건 것을 한 숟가락 퍼 올려 후후 불던(이 정도면 다 식다 못해 차가워졌을 것이다) 그가 당신의 말에 행동을 멈추었다.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당신을 향하자 직감적으로 좆됐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말이지….”

“하, 하지 마!”

“이딴 허접한 꼴을 하고 빌빌거리면 안 된다고.”

문장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손으로 당신의 환부를 잡고 쥐어짰다. 아악! 반사적으로 짧게 비명을 지른 당신의 입으로 다시 숟가락이 쑤욱 들어왔다. 알아들었으면 얌전히 주는 대로 처먹어, 자기야.

4. 호랑이

“아니 시발, 거기서 왜 그렇게 차냐고! 그래! 걷어내! 그렇지, 아아악!!!”

텔레비전에 들어갈 듯이 축구 경기에 몰입해 있던 호랑이는 갑자기 채널이 바뀌자 비명을 질렀다. 입을 쩍 벌린 그대로 돌아보자 거기엔 리모컨을 든 당신이 서 있었다. 곧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당신은 화면 오른쪽 위에 조그맣게 표시된 다음 프로그램의 이름을 확인한 뒤 병실 침대에 걸터앉았다. 호랑이의 황당하단 시선은 그냥 무시했다.

“드림주야… 이 오빠가 먼저 축구 보고 있었잖니?”

“어쩌라고. 병실 혼자 쓰냐? 개 시끄러워.”

호랑이의 한마디를 세 배로 돌려준 당신은 고집스럽게 입을 앙다물었다. 시선은 꿋꿋이 티비에 고정한 상태였다. 절대로 리모컨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숨은 의미를 파악한 호랑이가 한숨을 폭 쉬더니 당신 곁에 털썩, 자리를 잡았다.

“뭐야? 내 침대잖아.”

“병실 혼자 쓰냐?”

“개짜증나 진짜.”

“씁, 오빠한테 말 예쁘게 해야지요.”

그놈의 오빠 소리 좀 작작 하면 어디 덧나냐? 당신의 앙칼진 말에 모르쇠로 답한 호랑이가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온 병문안 선물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먹을 건 없냐? 오, 쌀과자. 포장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번엔 당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2인실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같이 병실을 쓸 사람이 호랑이라는 것도 알게 된 때가 떠올랐다. 둘을 찾아온 허치에게 아득바득 따지자(옆에서 호랑이가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으냐고 묻는 말엔 답하지 않았다), 허치는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답했다. ‘너희 둘을 격리해 두는데 각자 1인실을 주는 것만큼 돈 아까운 일이 없다.’

호랑이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당한 일이 생각나자 당신의 기분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호랑이가 드라마 내용에 대해 경박하게 떠드는 것에 침묵으로 답하자 슬쩍 눈치를 보던 그가 당신의 입가로 쌀과자 하나를 들이밀었다.

“갑자기 또 왜 이러실까. 자, 이거나 하나 먹어봐.”

“아 됐어, 나 쌀과자 안 먹어.”

“에이, 일단 먹어보라니까.”

입안으로 들어온 과자를 당신은 반사적으로 씹었다. 진지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호랑이의 행동에 당신의 미간이 좁아 들며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당신의 표정이 보이지도 않는지 호랑이가 물었다.

“맛있지?”

“맛있긴 개뿔, 빨리 한 개 더 줘봐.”

당신의 대답에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쌀과자 봉지를 마저 뜯기 시작했다. 어휴, 나 아니면 누가 얘 데려가냐,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아래로 쾨니히 이어집니다. 다음의 소재에 주의해 주세요.

· 신체 부상, 납치, 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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