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오브 듀티 드림
유료

뒤늦은 발렌타인

콜 오브 듀티 KorTac 드림

고급스러운 포장지, 색색의 리본, 그 안의 달콤함…

아무튼 주인은 당신이 아닙니다.

1. 호랑이

“야, 넌 뭐 이런 걸 다 준비했냐~”

호랑이가 발라클라바 아래로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거기엔 예쁘게 잘 포장된 초콜릿 상자가 들려있었다. 이런 유치한 기념일 같은 건 챙기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건 호랑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나 막상 이런 애정을 받으니 기분은 최고조를 향했다. 그런 그와는 반대로 상대의 낯빛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전해주기도 전에 들켜버려서 부끄러워하는 걸까? 호랑이는 자신을 탓했다. 하, 나란 남자.

문제는 달아오른 뺨의 컬러가 01호. 수줍은 핑크에서 04호. 야차 레드로 변하는 것이었다. 어라? 호랑이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곧이어 상대가 우렁찬 사자후를 내질렀다.

“야! 그걸 니가 왜 가지고 있어!!”

이어진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거 ▢▢한테 주려고 사 온 거란 말이야!’

그때부터 호랑이의 기분은 롤러코스터처럼 최저점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를 태운 것일까?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김칫국이라고 한다. 그가 붙잡은 것은 초콜릿이 아니라 형체도 없는 모래고 먼지였던 것이다.

호랑이는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이윽고 떨림은 분노로 변했다. 제 속도 모르고 앞에서 따박따박 대드는 상대가 원망스러웠다. 뭐? 누구한테 뭘 준다고?

괘씸한 마음에 호랑이는 그 자리에서 냅다 포장지를 뜯어버렸다. 맞은편에서 그걸 바라보던 상대가 경악에 차 비명을 내지르든 말든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남은 포장지를 갈가리 찢고, 상자를 열어서, 그대로 내용물을 입에 집어넣었다- 쏘옥.

상대는 무슨 아끼는 반려견이 초콜릿을 목구멍으로 넘긴 걸 목격한 보호자라도 된 양 호랑이의 등을 세차게 두들겼다. 그럴수록 호랑이는 더욱 목에 빳빳하게 힘을 줬다.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걸 삼키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 결국 상대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위장에 들어간 것이 다시 나올 리가 없다. 짧은 실랑이 끝에 남은 것은 엉망이 된 선물뿐, 힘만 빼는 행위였다.

축 처진 그의 옆으로 호랑이가 슬금슬금 붙으며 주절주절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야, 이런 거 다 의미 없다, 응? 이거 다 대기업의 상술이라니까? 걔는 이런 거 먹을 줄도 모를걸? 되도 않는 소리였다.

“그래도 누구 마음이 들어가서 더 맛있네….”

마지막 문장이 화룡점정이었다. 문장이 끝나자마자 상대는 정확히 호랑이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2. 쾨니히

쾨니히는 그의 앞에서 과하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유는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의 존재를 멀리서 인식하기만 해도 심박이 과하게 오르는 통에 진정시키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만 했다. 식은땀으로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너무나 불쾌했으나 어째서인지 자꾸 그의 주위를 맴돌게 되었다.

그는 친절했다. 별다른 용건 없이 얼굴을 마주해도 먼저 안녕, 하고 인사해 왔다. 말주변이 없는 그의 몫까지 지고 대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만족스럽다가도 동시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정한 것에 속이 들끓기도 했다.

그런 상반되는 감정에 계속해서 시달리던 어느날 그가 쾨니히에게 조그마한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얼떨결에 받은 쾨니히의 큰손 안에서 그것이 더욱 작아 보였으나 쾨니히는 덜컥 억만금이라도 들게 된 양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초콜릿?”

의문형으로 끝난 문장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발렌타인 데이니까.’

순간 쾨니히는 심장이 옥죄여오는 감각을 느꼈다. 평소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워 아무 말 없이 가만 서 있자 상대가 입을 열었다. 엄…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그 말에 쾨니히는 혹여나 뺏길세라 급하게 아니라고 답하며 손을 꼬옥 쥐었다. 쾨니히의 손안에서 안 그래도 작은 초콜릿이 콩알만 한 크기로 우그러지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는 다른 초콜릿을 꺼냈다. 정확히는 초콜릿‘들’을.

쾨니히는 다시 심장이 오그라드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이건 앞선 것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정반대에 위치했다. 그건 다 뭐냐고 힘겹게 묻자 다른 동료들에게도 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누구 거, 이건 누구 거….

이어지는 설명은 쾨니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먹먹한 감각과 가느다란 이명이 계속되었다. 그는 생각한 것을 입속에서 바로 중얼거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일을 준비한 거야…. 하지만 막상 웅얼거리는 소리에 상대가 되묻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버렸다. 손에는 열기로 반쯤 형태를 잃어버린 초콜릿을 꼬옥 쥐고서.

3. 오니

오니는 '부탁할게'라는 말과 함께 제 손에 들려진 상자를 바라보았다. 한 손에 잘 잡힐 정도의 크기였다. 직사각에 리본이 붙은 상자의 내용물이 무엇일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럼에도 상대는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오니는 그 내용을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둔 상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표하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아, 중간에 한 자신만큼이나 신뢰가 가는 사람이 없다는 말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는 뭐, 남들이 보면 어쩌냐느니(자신이 건네주는 것은 보여도 괜찮은가?), 혹시나 오해하면 어떡하냐느니(오해가 아니라 사실인 것 같은데 이런 거짓말은 왜 하는 거지?) 하는 되지도 않는 변명들이었다.

“미안, 나중에 나도 네 부탁 하나 들어줄 테니까.”

사실 상대의 말보다도 속으로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더 짜증이 났다. 그런 오니가 아무런 반응 없이 서있자, 상대는 그가 이 일을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조건을 하나 달았다. 그것이 오니의 마음을 조금 풀어주었다.

오니는 그 조건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어떤 부탁이든?”

“오, 음, 글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分かった。覚えておく。”

승낙의 뜻을 내보이자 상대가 얼굴을 환하게 폈다. 오니도 따라 살짝 웃었다. 휘어지는 눈꼬리를 따라 그의 눈가의 점이 조금 움직였다. 안심한 상대가 등을 돌려 떠나가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니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서늘한 눈빛이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약속을 지킬 것인가, 욕심을 채울 것인가.

고민은 짧았다. 오니는 달콤한 속삭임을 받아들였다. 그는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포장을 열고, 초콜릿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상자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뒤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풀썩, 상자가 쓰레기 더미들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더 깊숙한 곳에 숨겨야 할까? 아니, 들켜도 좋겠지. 자신 또한 거짓으로 변명하면 그만이다. 그 자식이 포장도 뜯지도 않고 버렸다는 식으로 흘러가도 재밌을 것이다. 오니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입 안에 불쾌한 끈적임과 씁쓸한 맛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4. 크루거

거친 손길로 서랍을 뒤적거리는 상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밑도 보고, 관물대도 다시 보고, 옷 주머니에 가방 안도 다시 확인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대에게로 크루거가 커다란 구렁이처럼 느긋하게, 소리 없이 다가갔다.

“뭐라도 찾아?”

상대는 말을 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답했다. ‘어.’

무심하게 툭 던져진 답에 크루거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어떤 건데?”

있어, 그런 거…. 짐을 뒤적이는 상대를 가만 내려보던 크루거가 손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보였다.

“혹시 이만한 크기의 상자야? 짙은 밤색 포장지로 둘러싸여 있고, 금빛 끈이 둘러진….”

크루거가 거기까지 말하자 상대가 휙 돌아보았다. 얄미운 베일의 사내가 거기 서있었다.

“너- 너, 네가 그걸 어떻게-”

거기까지 말한 상대가 무언갈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떻게 했어!

예상한 질문이 나오자 크루거가 만족스러운 듯 손으로 제 턱을 쓸면서 답했다. 베일 너머로 히죽거리는 입꼬리가 그려졌다.

“이런 깜찍한 이벤트를 다 준비하고 말이야… 아주 맛있었어.”

그 한 문장으로 초콜릿의 행방이 결정 났다. KIA. 상대는 아주 발칵 뒤집어졌다. 그걸 네가 왜 먹어!! 크루거는 어깨를 으쓱였다.

Mein schatz, 당연히 나를 위해 준비한 물건 아니었어?”

그리곤 덤벼드는 상대를 요령 좋게 피해 도망쳐 나왔다. 뒤에서 그가 자국어로 무어라 소리 지르는 게 들렸지만-제 혓바닥을 걸고 장담하건대 욕설이다- 크루거는 개의치 않고 입에 진득하게 남은 단맛의 여운을 즐겼다.

5. 닉토

“이런 걸 찾았는데.”

닉토의 손에 들린 상자가 흔들리며 내용물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누군가 찾아준다는 건 정말 행운인 일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닉토인 건 정말 최악이다. 이 모순됨이 바로 나쁜 기적일까?

이봐, 하는 낮은 목소리가 상대의 주의를 끌었다. 손에 든 물건도, 오늘의 날짜도, 자신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는 상대까지 닉토는 이 상황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딴 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닉토를 흔들어 자신을 그의 앞까지 끌고 왔다.

내키지 않는단 목소리로 고맙다고 답한 상대가 물건을 받아 가기 위해 닉토에게로 손을 뻗었다. 닉토는 손을 뒤로 물려 그것을 피했다. 그럼 그렇지. 수취인이 자신이었다면 이렇게 뺏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혹시나 같은 좆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긴! 닉토는 자신을 비웃었다. 그 웃음이 밖으로 새어 나간 모양인지 상대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돌려주려고 찾아온 거 아니었어?”

“오, 그런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닉토가 이죽거리자 상대의 미간이 좁아 들며 얼굴에 불쾌감이 어렸다. 그래, 그래야지. 닉토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동시에 만족감도. 그가 따지는 것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거군. 그리고 도.”

“무슨 상관이야?”

“되찾고 싶었다면 그런 답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게 무슨, 아니, 애초에 그거 어디서 찾았어? 내 거라고 한 적 없는- 야!”

“이건 우리가 맡아두지.”

상대가 내지르는 소리가 머리를 울려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졌다. 닉토는 그 말을 뒤로 용건이 끝난 사람처럼 멋대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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