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e Mo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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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드림주

드림주에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연애 고민을 들어주는 든든한 친구이다. 사실 그는 속으로 드림주를 짝사랑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오늘도 드림주는 평소와 같이 개쓰레기 애인으로 인한 고민을 상담하고, 그걸 듣고 있는 그의 속은 타들어만 가는데….

1. 고스트

중위라는 직함을 뗀, 사적인 관계에서의 고스트는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드림주의 한탄을 묵묵히 들어주는 좋은 청자이자 조언자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서 드림주는 그가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행동들은 전부 드림주 한정이었지만.

실제로 고스트와 사적인 대화를 이렇게나 길게 나누는 건 부대 내에서 드림주가 유일했다. 거의 부대원 모두가 고스트의 편애를 알았다. 드림주만 빼고.

오늘도 휴대폰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드림주에게 고스트가 머그컵을 두 잔 들고 다가갔다. 하나는 자신이 마실 티, 하나는 드림주 몫의 커피. 커피는 드림주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드림주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고, 제 옆에 자리 잡은 고스트에게 한탄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뻔했다. 애인이랑 또 싸웠다는 거.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의 얘기였지만 고스트는 인내심 있게 그것을 경청했다.

고스트가 느끼기에 드림주의 애인은 쓰레기였다. 아니, 누가 얘길 들어도 개쓰레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드림주는 항상 싸움의 원인을 자신으로 돌렸다. 그 모습이 고스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만들었다. 임무 중에 누구보다 냉철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가, 왜 그 자식과 관련되기만 하면 이런 모습이 되는지.

사실 고스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지, 지금 자신과 마찬가지니까. 드림주가 그 쓰레기를 놓지 못하는 것도, 자신이 그런 드림주의 곁을 계속 맴도는 것도 전부 같은 이유였다. 좋아하니까. 그래서일까, 당장이라도 드림주와 그 자식의 사이를 찢어발기고 싶다가도, 드림주의 마음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 채 멍청하게 조언자의 위치에 남아있게 되었다.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던 드림주가 쓰게 미소 지었다.

“미안해요, 고스트. 또 너무 제 말만 했죠? 왠지 중위님 앞에서는 뭐든 숨김없이 말하게 되더라고요. 얘기를 잘 들어줘서 그런가….”

고스트는 사과할 필요 없다며 차를 홀짝였다. 그런 고스트의 태도에 드림주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역시 우리 중위님밖에 없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귀엽게 웃는 모습에 고스트의 심장이 덜컥였다. 고스트는 떨림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애초에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고백도 못 할 거면서 고작 이런 말 한마디에 들뜨는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다는 생각과 계속해서 이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상충해 마음이 복잡해졌다.

*

대원들이 개인 시간을 보내며 쉬고 있을 때였다. 그중 드림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틈만 나면 갓 태어난 병아리인 양 고스트를 졸졸 따라다니던 드림주였기에, 의문이 든 고스트가 부대 시설 곳곳을 뒤지며 드림주를 찾아다녔다. 덕분에 갑자기 들이닥친 해골 가면의 사내로 애꿎은 대원들의 심장만 벌렁거리게 되었다.

고스트가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이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드림주의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넌 꼭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 그러면 좋아? …… 아니, 아니, 자기야, 따지고 드는 게 아니라… 하아, 소리 높여서 미안해….”

고스트는 수화기 너머 상대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발라클라바 아래 고스트의 얼굴도 순식간에 썩어들어갔다. 조용히 자리를 비켜줄까, 생각하던 그는 드림주의 태도가 비굴해지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몸을 먼저 움직였다. 부러 발걸음 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가자 놀란 드림주가 뒤를 돌아봤다.

“고스트.”

드림주는 잠시간 통화를 하고 있단 사실도 잊고 고스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휴대폰에서 고스트에게도 들릴 정도로 큰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드림주가 고스트의 눈치를 보며 손으로 휴대폰을 가린 채 작게 속삭였다.

“자기야, 미안한데 나… 아니, 무슨 소리야 진짜? 내 상사야 상사…! 아무튼,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내가 전화할게.”

드림주의 답변만으로 대충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눈치챈 고스트의 눈이 가늘게 좁아들었다. 드림주가 허둥지둥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주, 중위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네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아, 그렇구나.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세요?”

여기서 고스트는 멈칫했다. ‘별다른 용건 없이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찾았다’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첫째로, 그 쓰레기의 말에 힘을 실어줄까 걱정이었고, 둘째로, 애초에 그에게는 이런 말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고스트는 화제를 드림주 쪽으로 돌렸다.

“그 녀석이야?”

“아, 음, 네….”

“이번엔 뭐야.”

드림주는 잠시 망설였다. 연인 사이의 좋지 못한 일을 제삼자에게 너무 상세하게 털어놓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쓰레기 애인의 정신 공격으로 이성을 단단히 유지하기엔 힘든 상태였기에, 고스트의 질문에 흔들리던 드림주는 결국 모든 걸 사실대로 불었다.

드림주는 최근 애인이 집요하게 바람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부대에 남자가 천지인데 어떻게 확신을 할 수 있냐면서.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하는 건 물론, 직업 특성상 무리한 증거를 요구하면서 드림주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을 아예 안 만나게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사진을 찍어 정보를 누출할 수도 없는 드림주의 입장은 당연히 불리해지기만 했다.

얘기를 들은 고스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드림주를 몰아넣기 위함이 뻔한,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이고 쩔쩔매는 모습에 고스트의 속은 이미 타다 못해 새까만 숯이 되었다. 드림주는 눈치가 보여 애꿎은 바닥만 노려보았다. 고스트가 제 애인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제 속 좀 풀어달라고 나쁜 말을 잔뜩 한 건 자신이었는걸. 하지만 이번엔 뭔가… 가문의 원수를 신랑감으로 데려와 부모님께 보여주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고스트가 입을 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주제넘은 참견이라며 드림주에게 선을 그일까 참고 참았던, ‘그 자식이랑 헤어져’의 순화.ver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드림주도 그 속뜻을 알았다. 괜찮다는 단호한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진심이 아니라,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태도에 고스트의 속에서 무언가 울컥했으나, 여기서 더 선을 넘어 드림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고스트가 나지막이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해. 난 항상 네 편이니까.”

그리곤 먼저 자리를 떠났다. 왠지 그의 뒷모습이 상처받은 강아지처럼 보여 드림주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2. 소프

드림주가 그를 찾자마자 소프의 표정이 햇살이라도 비친 것처럼 눈에 띄게 밝아졌다. 꼬리가 달려있었다면 분명 프로펠러처럼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드림주는 소프의 옆자리에 턱하고 앉아 평소처럼 애인과의 일을 털어놓았다. 소프는 진지하게 그것을 경청했다. 중간중간 리액션도 잊지 않으면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소프는 드림주의 편을 들었다. 과장되기까지 한 그 표현에 드림주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너 너무 내 편만 드는 거 아냐?”

“그럼 어떡해. 네 잘못은 하나도 없는걸. 그리고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소프는 나름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드림주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눈치를 챘더라도 동료 사이의 끈끈함이라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그래 고마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애인분…도 네 진심을 알아줄 거야. 언젠가는.”

그렇게 말하는 소프의 입안이 썼다. 그 자식이 영원히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는 화제를 돌렸다.

“달달한 거라도 마실까? 내가 살게.”

“거절하진 않겠는데, 너 너무 자주 사는 거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아니, 괜찮아. 내가 좋아서 사는 거니까.”

그 말에 드림주가 웃으며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소프를 쿡 찔렀다.

“이뻐 죽겠어, 아주! 어휴, 내 애인이 네 절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빙 돌린 화제가 화살이 되어 소프의 가슴에 쿡, 꽂혔다. 소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절반은 무슨, 그냥 온전한 나를 애인으로 삼는 건 어때? 그런 소프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드림주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멋지고 다정한데, 왜 연애를 안 해?”

채 방어 태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두 번째 공격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소프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왜겠냐고, 왜, 왜!! 잠시간의 고민 끝에 소프가 답했다.

“나 사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말에 드림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소프의 등짝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아, 뭐야, 그런 거였어?! 세상에. 누군데, 누구야? 나도 아는 사람이야??”

질문이 우다다 쏟아졌다. 그럼, 네가 너무 잘 아는 사람이지… 차마 내뱉지 못한 대답이 소프의 입안을 맴돌았다. 소프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천천히 말해주겠다고 하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드림주는 오만 호들갑을 떨며 소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런 눈치 없는 모습까지 귀여워 보이다니,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었다….

*

소프와 드림주는 벤치에 앉아 손에 음료를 하나씩 들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프의 상체는 조잘대는 드림주를 향해 완전히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고백은 안 할 거야?”

“Well…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것 같아.”

“헉, 짝사랑이라니!”

드림주가 눈을 빛내며 소프를 바라봤다. 그런 드림주가 귀여워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기 얘기인 줄도 모르고 그저 남의 연애 얘기가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소프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이미 좋아하는 상대… 가 있는 것 같더라고.”

드림주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차마 애인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는 헉, 하고 숨을 들이키곤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림주가 뭐라 위로하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드림주의 것이었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드림주가 잠시만, 하고 소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드림주의 목소리가 한층 애교스럽게 올라갔다. 그만큼 소프의 입술은 절로 댓 발 튀어나왔다.

그가 뚱한 표정으로 제 음료의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전화를 하는 상대도 짜증 났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지 않는 드림주도 미웠다(아주 조금, 병아리 눈물만큼).

애꿎은 빨대에 소프의 이빨자국이 잔뜩 남고 있던 그때, 드림주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소프는 아닌 척 귀를 쫑긋 세우고 전화 내용에 집중했다.

“응, 자기야. 응…….”

‘급한 일… 여행… 못 갈 것….’

“아주 급한 일이야? 이미 호텔도 예약해뒀는데, 그건 어떡하고.”

‘그냥 취소… 환불하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사실 아는 애들이랑… 3박 4일로….’

드림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또 걔들이야? 너 그날이 우리 기념일인 건 알고 있어? 게다가 거기 전에 그 여자도 끼어 있지 않았어? … 야, 의심이라니, 내가- 뭐? 정신병? 야!!!”

드림주가 흥분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큰 소리에 놀란 소프가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이자, 그제야 옆에 있던 그가 떠올랐는지 드림주가 한숨을 쉬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며 적당히 전화를 끊었다.

드림주가 사과했다.

“미안. 내가 너무 예의가 없었네.”

“아니야. 엄, 무슨 일 있어?”

소프가 대화 내용을 엿듣지 않은 척 물었다. 드림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랬다. 전부터 애인과 사이가 너무 가까운 여사친이 있는데, 자꾸 둘이 약속을 잡는 게 느낌이 몹시 안 좋아서 몇 번 주의를 줬는데도 이번엔 걔랑 여행을 간다고. 심지어 드림주랑 먼저 한 기념일 일정까지 깨면서도.

일로 바쁜 드림주에겐 심증밖에 없는 상태고, 단둘이 아니니 상관없지 않냐며 우기던 그는 따지고 든 드림주를 되려 의심병이니 뭐니,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며 몰아갔다는 거다.

얘기를 전부 들은 소프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쳤다. 하,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네. 소프가 험상궂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내 생각엔 그 자식 좀 위험한 것 같은데. 혹시 보복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면 내가-”

“잠깐, 아니, 아니야. 진정해 소프.”

“뭐가 아니라는 건데?”

소프가 팔짱을 끼며 삐딱하게 물었다. 안 그래도 애인의 정신 공격으로 기분이 상해있던 드림주의 말투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뭐든 네가 생각하는 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존 맥태비시.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드림주에게 풀네임이 불리자, 소프는 먼저 꼬리를 내렸다. 짧게 사과한 그의 눈썹 끝이 추욱 처졌다. 그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에 드림주의 기세 또한 누그러졌다. 소프가 진지하게 말했다.

“있잖아, 내 생각에 걘 정말 아니야. 그 자식 태도가 널 전혀 존중하고 있지 않잖아.”

결국 우려하던 말이 나오고 말았다. 드림주가 한숨을 쉬었다.

“소프. 항상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지 않아도 돼. 우리 그냥- 그냥, 이 얘기는 그만하자.”

드림주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며 선을 긋자 소프는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드림주의 얼굴이 너무 지쳐 보인 탓이다.

소프는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3. 호랑이

호랑이는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은 채 한쪽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상당히 거만하고 불량해 보이는 태도였다.

드림주의 얘기를 듣는 내내 호랑이의 기분은 최저점을 달리고 있었다. 애초에 개자식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쩜 이 자식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최악의 개자식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호랑이가 생각하기에, 아니, 드림주에게 일절 관심이 없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이 개자식-개에게 미안할 수준-은 가스라이팅의 귀재였다. 드림주의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려 들고 숨 막히게 만들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어찌나 잘하는지.

마음 같아선 이 찌질한 새끼의 뒤를 당장이라도 캐내, 찾아가서, 흠씬 두들겨 패놓고, 드림주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드림주가 그 자식을 좋아하니까. 그 탓에 드림주가 그 자식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랑이의 가슴은 답답함에 꽉 막혀만 갔다.

솔직히 뭐,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막말로, 그 자식이랑 헤어지기만 한다면 앞으로 드림주가 자기를 봐주지 않아도 괜찮았다(당연히 구라다. 그런 일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꼬리를 칠 준비가 되어있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드림주의 자존감이 깎여나가는 것이었다.

그 씹새끼는 드림주의 오만 것을 지적했다. 얼굴, 몸매, 성격, 학력, 등등등…. 그러면서 뭐?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더 나아질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다’? 목구멍에 글록을 쑤셔 넣고 싶게 만드는 개소리였다.

처음 한두 번 드림주가 받아주기 시작하자, 이런 게 먹히는 애다 싶었는지 그 수위는 점점 심해졌다. 그 도를 넘은 개짓거리에도 가스라이팅에 완전히 잠식된 드림주는 차마 애인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위아래로 나뉜 권력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주절거리던 드림주가 한 문장을 던졌다.

“있잖아, 네가 보기에도 나 같은 사람은 애인으로 두기 싫어?”

“뭐?”

“미안, 질문이 이상하지… 그냥, 동료로서 말고 객관적으로 얘기해줘. 솔직히 그렇잖아. 이런 위험천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뭐, 일을 그만두기라도 하시겠다? 고작 그런 새끼가 한 말 때문에?”

호랑이가 험악한 말투로 말했다. 드림주가 호랑이, 그런 말이 아니잖아-라고 정정하는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 위험천만한 직업 맞다. 정규군에 비해 명예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서 뭐? 경력과 실력, 모든 면에서 드림주는 존경받을 만한 군인이었고, 실전에서 등을 맞대고 있으면 어떤 작전이든 성공해 낼 것 같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여러 군데서 러브콜이 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드림주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와, 그걸 후회하지 않는 굳은 심지가 그를 동료로 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이게 호랑이가 드림주에게 푹 빠지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흔들리는 게 보이자 호랑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가 받은 큰 충격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더는 그 자식이 드림주를 멋대로 휘두르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아니, 진작에 이랬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호랑이를 지배했다.

“선택해. 나야, 그놈이야.”

“뭐?”

갑자기 주어진 황당한 선택지에 드림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 분위기를 잘 무마하고 싶었는지 드림주는 농담을 던졌다. 호랑이, 설마 질투해? 하지만 호랑이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 질투해, 씨발.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야.”

“그럴 일이 뭐가 있어. 호랑이, 넌 내가 제일 아끼는 친구고-”

“그놈의 친구니, 동료니 하는 소리 좀 집어치워! 너도 알잖아, 내가-!”

“그만해!!”

드림주의 비명과 같은 한마디로 언성을 높이던 두 사람이 멈췄다. 끔찍한 정적이 찾아왔다.

드림주가 먼저 그것을 깼다.

“못 들은 걸로 할게, 호랑이. 너와의 관계를 부수고 싶지 않아. … 나중에 다시 대화하자. 지금 너나 나나 너무 흥분한 것 같다.”

그렇게 말한 드림주가 자리를 떴다.

아, 젠장. 드림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굳어있던 호랑이는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멍청한 새끼, 한심한 새끼, 김홍진 이 똘추 새끼야…. 그간 호랑이가 열심히 세웠던 근사한 고백을 위한 서른 가지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호랑이는 얼굴을 덮은 손으로 제 눈 위를 꾸욱 눌렀다.

잠시 그대로 있던 그는 비참함을 털어내고, 드림주에게 사과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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