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어나더월드 AU

-제삼자(모브) 시점


"어서 오세요~"

그는 오늘도 활기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여기서 "그" 란, 코토부키 레이지를 뜻한다. 사오토메 대학의 졸업생. 재학 중엔 연극부의 부장으로서 두각을 드러낸, 학교의 인기인이었던 남자. 졸업 후의 진로를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가업을 물려받아 학교 앞에 도시락집을 차린다는 상상조차 못 했던 선택지를 택한 사람.

뭐, 덕분에 나야 기쁜 마음으로 가게에 드나들고 있지만.

"안녕하세요, 선배."

"아아, 요즘 자주 오네?"

그는 여전히 명랑한 목소리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앳된 얼굴에 가득 띤 미소로 나를 맞았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이 관계에 '짝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그리 적절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이 감정은 짝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절실하지 못하다.

그는 재학 중에나 졸업 후에나 한결같이 후배들에게 다정히 대했고, 일반인으로 살기에는 아까울 만큼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인기도 매우 많았지만, 그는 다른 이와 깊이 관계를 맺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팔을 벌리지만 정작 그어 둔 선을 넘어 그 품에 안기게 해주진 않는다. 같은 과 후배로서 꾸준히 그를 지켜봐 온 내가 알아낸 코토부키 레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어렴풋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괜히 한두 마디 말을 붙여보고, 그의 미소를 보면 따라 웃고, 가끔 연락해서 술자리에 부르기도 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후배나 동기가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들 그를 좋아하지만, 그 감정에 연심을 섞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딘가로 훅 떠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으니,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대로 사라져 버릴까 봐. 그런데 그가 학교 앞에서 도시락집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심코 안도했다. 그리고 가게는 얼마 있지 않아 싸고 맛있는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는 김에 겸사겸사 젊고 잘생긴 사장의 얼굴을 감상하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도 그 사람들의 틈에 섞여서 이 가게를 드나들었다.

딱 그 정도의 목적이 좋았다. 그가 원하는 만큼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가 오늘도 잘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면 족하다.

"오늘도 내기에서 졌어요."

"아하하, 그건 유감이야…"

"그런 의미로, 가라아게 도시락 다섯 개만 포장해주세요."

"옛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앞치마에 달린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포스기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그답다고 생각하며, 나는 의자에 앉았다. 지난번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더니 '어머니께 배운 버릇'이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수첩에 주문 내용을 적은 뒤 그는 그것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별 건 아니지만 단골손님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이라며 가게 이름이 적힌 진녹색 볼펜을 도시락과 같이 받았다. 음식점 이름이 박힌 여느 사은품처럼 싸구려겠지 싶었더니 의외로 튼튼하고 멀쩡한 볼펜이라 놀랐고, 그 뒤로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었다. 그럼 저것도 그 볼펜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몸을 뻗어 카운터 위를 살짝 보았다.

그렇지만 그가 두고 간 볼펜은 그것이 아니었다. 모양은 거의 비슷했지만 적갈색에 "코토부키 도시락 2호점" 이 아니라 다른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주방 쪽을 흘끗 보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뒤, 볼펜을 집어 들었다.

"'Grand Track'…"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 있는 라이브 하우스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가 왜 이걸?

동기 중에서도 그곳에 공연자로서, 혹은 관객으로서 드나드는 사람은 꽤 많았다. 그 또한 밴드를 좋아하나 보다, 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의심했다. 가끔 여럿이 모여 노래방에 가면 그는 아이돌송이나 발라드 등을 불렀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밴드 음악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 같은 기억은 없었다.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와중에 가게의 문이 벌컥 열렸다. 세차게 울리는 종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볼펜을 떨어뜨릴 뻔했다. 간신히 그것을 주워들고 일어서는 내 위로 방금 가게에 들어선 남자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어이, 레이지─"

남자는 끝을 길게 늘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반사적으로 남자 쪽을 쳐다보자 남자도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이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고, 양쪽의 색이 다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드아이?

놀라서 눈을 끔벅이는 나를 무시하고 그는 주방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내 주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오늘은 일찍 왔네? 잠깐만 거기 앉아서 기다려, 란란~"

대답을 들은 남자는 빈 의자 하나를 빼 휙 걸터앉았다. 그리고 방금보다 느리고 섬세한 동작으로 어깨에 멘 기다랗고 큰 까만 가방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악기에는 무지한 나지만, 그게 기타나 베이스가 담긴 가방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오른팔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파일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를 꺼냈다. 남자가 파일을 뒤적이다가 한 페이지를 펼쳐 테이블 위에 놓고 악보 위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어느새 그가 주방에서 나와 내게 포장한 도시락을 봉투에 담아 건네주었다.

"주문하신 카라아게 도시락 다섯 개 나왔습니다~"

"앗, 네…!"

나는 누가 봐도 수상하게 놀라며 그것을 받아 들었지만, 다행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그리고 그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서고 난 뒤에야 내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기타 가방을 멘 회색 머리의 남자가 쓰고 있던 볼펜은 진녹색이었다. 분명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코토부키 도시락 2호점" 이 적힌 볼펜.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남자는 라이브 하우스 'Grand Track'에서 공연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다. 밴드에는 관심이 없지만,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좋아했었기 때문에 몇 번 흥미도 없는 라이브에 따라갔던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출되는 결과는 저 두 사람이 서로의 볼펜을 바꿔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왜?

무심코 돌아본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이제껏 본 적 없이 활짝 웃고 있는 레이지 선배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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