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bgm : Terror
“ 꼬맹이 쉘던은 남을 돕는 걸 참 좋아했는데, 네 멋대로 행동하면 아무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겠지? ”
“ 너랑 같은 ‘혈통’인 애들이 안타깝네, 쉘던. ”
“ 그렇게 나댈수록 너희에 대한 내 편견은 더 세질 뿐이야! ”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알긴 아는 걸까. 저 조막만 한 머리에 어떤 ‘차별’이 들어있길래 여과 없는 생각이 이렇게 흘러나오는 걸까. 아크가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만졌다. 무심코 비웃음이 터져 나올까 싶어 더듬었는데, 웬걸. 이미 삐뚜름한 미소를 걸고 있었다. 시선만 내려 다니엘을 보니 얼굴 가득 ‘무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미 숱하게 봐온 표정. 그 주인공은 자주 바뀌곤 했다.
처음 저런 얼굴을 마주했던 것은 2학년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이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던 선배를 보았다. 혼혈 주제에 길을 막고 있다며 1학년 후플푸프 후배를 툭툭 건드는 손길을 보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퍽, 쓰러지는 선배가 자신을 ‘저런’ 표정으로 보았었다. 마치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 더 이상 수를 세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봐왔다. 그리고 저런 표정을 짓는 녀석은 언제나 아크의 주먹에 얼굴이 날아가곤 했다. 이번엔 어떻게 할까. 살살 긁어오는 모습을 보니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이미 세게 쥔 주먹은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겠지.
“ 야, 네가 순수혈통이고 그게 자랑이라면 말이야. ”
그게 너의 유일한 ‘패’라면 어디 한 번
“ 내가 궁금한 게 있거든? ”
제대로 자랑해 보는 게 어떻겠어?
“ 우리 영국 사회엔 ‘귀족’이라는 게 있잖아? 그들은 그 혈통이 ‘푸른 피’라며 숭배받길 원하더라고. 근데 지금 네 꼴이 그거랑 진배없어 보이거든? ”
왼손으로 다니엘의 가슴팍을 움켜쥐어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디 겁이나 제대로 먹어보라지.
“ 그렇다면 말이야, 네가 그렇게 자랑하는 순수혈통도 ‘푸른 피’를 가졌는지 궁금하지 않겠어?”
주먹 쥔 손을 다니엘의 머리 바로 옆에 꽂았다. 귓가를 스칠 정도의 거리에 주먹을 꽂아 넣으니 자주 맡았던 향이 났다. 비위에 거슬리는 냄새였지만 콧잔등을 찡그린 것이 전부였다. 지금 자신이 한 행동은 ‘자해’와 다를 것 없었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다음엔 이 주먹이 벽 따위가 아닌 네 면상에 내리꽂힐 테니 생각이란 걸 하고 ‘발언’하라고.
“ ‘나’ 같은 혈통은 아쉽게도 붉은 피라서 말이지. 응? 내가 이렇게 저열하고, 우매해도 순수혈통인 넌 이해해 줄 거지? ”
다니엘을 바라보는 아크의 얼굴엔 서슬 퍼런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가진 패가 가장 최고의 패라 자부하는 모습을 보니 비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 저 패가 지리멸렬하단 사실을 네가 늦게 깨닫길. 그래야 ‘다음’ 기회 따위 주지 않을 테니까.
“ 그럼 오늘은 ‘경고’니까 다음엔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와라. 주먹이 얼굴에 꽂히면, 생각외로 말 못하고 그냥 쓰러지더라고. ”
잡았던 멱살을 놓고 벽을 때렸던 손도 내렸다. 아크가 마지막으로 힐끔, 다니엘을 흘겨본 뒤 자리를 떠났다. 아, 퀴디치 경기 전엔 얌전히 지내려고 했는데. 벽을 쳤던 오른쪽 손이 욱신거렸지만, 그것보다 더.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행태를 부끄럼 없이 여기는 한때 친구였던 이가 더 욱신거렸다.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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