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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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ARK by 척추

bgm : Contemplation

「 Line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치지 않았는데 입안이 쓰라리고 썼다. 잘근잘근 씹어대던 볼이 결국 찢겼는지 익숙한 피 맛이 났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했던 교실을 빠져나와 복도에 홀로서니 주변이 조용했다. 부상의 심각함을 논하는 친구, 스스로 붕대를 감고 교실을 정리하는 친구 그리고 교수의 말에 혹해 아프다고 말하는 친구. 아크는 다친 친구를 병동으로 옮긴 이후 홀로 빠져나온 상태였다.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사실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 인정하기 싫어서 크게 내색하지 않았던 ‘흐름’을 상기했다. 자신의 기숙사 사감이 개개인의 학생을 둘러볼 때 무엇을 가장 중시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다친 친구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긴커녕 특정 혈통의 아이를 부축하라고 지시했던 말은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는 또 무어라 말했던가.

“ 쉘던, 당신도 부축이나 도와주세요! 다른 분들도 어, 얼른 병동으로 가세요. 휴, 흉이 남지 않게 조심하고요….

수업을 진행한 건 우드 교수였다. 실전으로 인한 부상과 상황에 응당 약간의 불만이 생기겠거니 짐작은 했었는데 막상 모든 수업이 끝난 지금. 아크는 자기 교수로 인해 생긴 울렁거림에 벽을 짚었다. 도로시 빈, 후플푸프 기숙사의 사감이자 변신술 담당의 교수였다. 갈색 머리카락은 언뜻 기분 좋게 흔들리는 갈대밭을 떠올리게 했다. 금색의 따뜻한 눈과 작은 덩치로 위축된 듯싶었으나 언제나 상황을 중재하려고 나서는 모습은 이전까지 아크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소심할 때도 상황에 맞서 나아가고, 학생을 보호하려 하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명했고 기억에 잘 새겨져 있었으니까. 심지어 처음 호그와트로 향할 때, 나룻배에서부터 연회장의 문까지 인도해 주었던 교수가 도로시 빈이었다. 후플푸프에 배정되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하지만 지키고자 했던 선 안의 학생이 명확히 보이는 지금은 어떠한가.

“ ... 아 젠장. 기분 한 번. ”

저벅저벅. 조용한 복도로 사람이 한둘 들어오는 게 보였다. 지금 자신의 표정은 좋게 말하면 무표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딱 사람 하나 치기 좋아 보이는 표정일 텐데. 혹시나 신입생을 마주하면 겁이라도 줄까 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홀을 지나쳐 빈 교실로 들어섰다. 먼지가 다소 날렸지만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기엔 최적이었다. 담당 기숙사의 사감 교수를 믿을 수 없으면, 신뢰할 수 없다면 … 존경할 수 없다면 그러면 대체 누굴 믿고 의지하지.

“ 하… ”

자기 일엔 제법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망설임으로 쥐었던 지팡이가 생각나 소맷자락에서 꺼냈다. 도로시 빈 교수로 인한 울렁거림과 함께 직전의 결투로 겪었던 울렁거림 또한 스멀스멀 손을 타고 흘렀다. 사람을 향해 마법을 쓴 건 처음이었다. 평소 물체나 동물을 향한 마법을 종종 수업을 통해 사용했기에 ‘마법’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수업 진행에 대한 따분함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같은 기숙사의 친구를 향해 ‘공격’ 마법을 사용했을 때, 그리고 마법을 맞은 친구가 쓰러질 때 내가 어떻게 대처했었지. 결투에서 이겨서 내가 기뻐했던가, 혐오하던 어떤 이와 똑같이 웃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크는 지팡이를 노려보았다. 파트너라고 생각했고 언제나 지팡이를 쥐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서 종종 주문을 외우지 않고 휘둘렀던, 손때 묻은 지팡이였다.

탁—

교실 벽을 향해 지팡이를 던졌다. 빈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보냈다. 삶은 즐거운 것 같아도 뒤를 돌아보면 그 기억마저 흐릿하다고 했다. 울렁거림은 곧 파도가 되어 발목을 적셨다. 즐거움은 순간이고 책임과 후회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발목을 철썩이는 파도가 후회의 무게를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아, 즐거웠던 기억도 곧 ‘순간’이 되어 과거에 묻혔다. 이전처럼 교수를 보고 좋아할 수 있을까. ‘다음’이 있다면 또 특정 친구만을 아낄 테지.

아크는 자신이 없었다. 이전처럼 웃을 자신이 없었다. 예전처럼 굳건할 자신이 없었다. 지팡이가 바닥을 굴러다녔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용한 교실에 혼자 잠겨버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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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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