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곡절

나의 방식으로 네게 잘 대해주려고 해.

ARK by 척추

bgm : improvisation - 1215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호그스미드를 보고 두근거렸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즐거웠던 기억은 일련의 소동으로 연기가 자욱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이젠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고 있었다. 캐롤이 가득했던 광장엔 귀를 찌르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바닥을 점점 채워가던 검붉은 액체가 구두 코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일찍이 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토해내던 자가 어떻게 되었던가. 이 피의 주인이 앞서 어떤 편견에 시달려서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 걸까.

“메리트가 돼, 지금 분위기에선. 콜린스가 그 소란을 일으켰으니, 아마 분위기는 심해질 거고 너희는 더 편견에 시달리게 되겠지.”

우리가 어쩌다 사람의 무게를 재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와 해를, 득과 실을 따지게 되었을까. 너는 소란을 ‘그’가 일으켰다 했지만 아님을 알았다. 이번에 발화한 ‘사고’이자 ‘불씨’는 한명의 손을 거쳐 터진 것이 아니었다. 네가 지금 자신에게 뱉은 말.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후벼파던 말. 방관하며 자조하듯 읊조리던 말이 모여 불씨를 틔웠다. 너의 높낮이 없는 말이 이미 자신에게 쌓였다. 얼마나 더 쌓여, 그처럼 불씨를 틔울진 몰랐으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마치 호그스미드에 쌓였던 눈처럼 녹지 않고 단단히 얼어붙겠지.

“설마, 내가 우월감을 느끼려고 네게 다가갔을까.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받아준 거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는 게 많아지고, 사회를 경험할수록 알게 된 거야. '아, 네 혈통은 내게 도움이 될 수 없겠구나.'하고... 그래도 그간 함께 지내온 정이 있어서 내치지 않은 거였고.”

사람의 삶은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갔다. 귀함과 천함이 시대를 아우르던 때도 있었으나 근대를 넘어 현대에선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회에선 노동하고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평등하게 ‘시민’이란 단어로 칭했다. 아크, 자신이 지내던 마을은 그런 동네였다. 구두의 수요가 폭발적인 노샘프턴에서 ‘일’에 귀천은 없었다. 줄곧 그 모습에 익숙해서 그것이 당연한 사회의 통념이라 믿었다. 각 가정의 부유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귀함과 천함을 나누진 못했다. 그런데 너는 대체 무엇이 사람을 구분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걸까. 혈통이라는 것이 당대 사회에서, 하물며 마법사의 인구보다 많은 머글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너는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설파하고, 전달하여 인정받으려 하는 걸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널 보았다.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 될수록, 분명 나는 네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이전에 읽었던 알렉산더 워커의 전기에 나왔던 것처럼 다시 평등을 논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귀함은 부여되지 않는다. 피로 이어지지 못하며, 설사 이어진다 하더라도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너는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그런데 내게 이렇게 대하지, 너는. 조용히 타일러 봐도, 결국 네 뜻을 굽힐 생각을 안 하지. 충고하는데, 앞으로도 쭉 그렇게 행동하면 네 끝은 콜린스와 같을지도 몰라, 쉘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최악’의 결말과 닿아있다 확신하는 네 말로 하여금, 나는 절망이 얼마나 아리고 쓰린지 알게 된다. 냉담한 시선과 짜증이 묻어나는 그 말이 조언이 아닌, 온전히 네 심사가 뒤틀려 나온 ‘악의’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타인의 악의나 적의를 눈치채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이해와 선의는 언제나 부드러운 것이라 눈치채기 힘들지만, 악의와 적의는 그 형태가 언제나 타인을 찌르기에 도저히 모르는 체 할 수 없었다. 네가 뱉은 말을 상자에 주워 담으면 상자 밖으로 가시가 튀어나올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너는 이토록 솔직하고 본심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배알이 꼴리다기 보다는... 배신감이겠지? 끝까지 잘 지내보려 했는데, 끝까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너에 대한 배신감. 그런데 왜 되려 네가 배신 당한 것처럼 구는걸까, 이해를 할 수 없네... 네가 불편한걸 침묵하지 않는다면, 우린 이런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야. 네가 굽힐 생각이 없다면 여기서 끝내는게 서로에게 좋을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

굽히고, 비틀고 잘 구겨서 네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버리면 만족할까. 잘 지내보려 했다는 말이 기만보다는 네 오만에 가까워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강자라 생각하는 자가 자주 하는 짓이었다. 나는 분명 그러려고 했다고. 잘해주려고 했는데 은혜를 모르는 건 너라고. 이 모든 것은 네가 침묵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지 않느냐고. 네가 아니더라도 교내에서 익히 들어왔던 말에 손을 뻗었다. 반지를 낀 왼손으로 네 입가를 쭉 늘렸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널 보고 있자니 가라앉은 기분에 파문이 퍼졌다.

“네프. 한때 아끼던 내 친구. 네가 착각하는 게 있어.”

엄지로 네 입꼬리를 더 당겨보려다 손을 뗐다. 어리석은 친구야, 너는 자신의 입장을 ‘강자’라 여긴다지만 그 강함의 척도를 만들어준 이를 잊은 걸까. 네가 그토록 어리석다고 말한 그 혈통이, 혐오하는 이가 너의 강함을 지탱하고 있는데. 그들 없이 네가 어찌 너의 강함을 증명하고 관철해 낼 수 있는지 너는 진정 모르는 걸까. 아니면 덮어둔 채 외면하는 걸까. 너희 순수혈통이 어리석다 비웃고 혐오하는 머글이 폴렌느의 음악을 감히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 인기가 감히 땅에서 솟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본유하였겠는가.

“나는 네가 생각하는 ‘잘 지낸다’의 정의로 널 대할 생각이 없거든. 나의 방식으로 네게 잘 대해주려고 해. 응?”

오른손으로 왼손을 털어냈다. 더러운 것을 만진 사람처럼 소리를 내 털었다. 주변을 살피면 곧, 저물었던 해가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오늘 네가 자신에게 한 말을 모두 상자에 넣어두었다. 비록 조금 튀어나온 모양새가 날카로웠으나 그마저도 우스웠다. 자신의 이름이 어찌 상자가 되었는지. 네게 감히 알려주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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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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