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물과 대리만족과 성장
계보를 다루면서 언급했던 전통적인 모험물과 대리만족형 모험물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볼까 한다. 작가라면 어떻게 더 재밌게 쓸 수 있을지 독자라면 자신의 취향에 대해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목적으로 써본다.
판타지가 됐든 로판이 됐든 무협이 됐든 현판이 됐든 판드가 됐든 BL이 됐든 장르 소설 안에서 소설이 목적하는 바와 그 서사의 특성을 기반으로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모험물과 대리만족형 모험물과 포르노 픽션이다. 하지만 그간 히트쳐온 작품들을 생각하면 이걸 딱 쉽게 가르는 게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 텐데... 일전에 쓴 <장르엔 본디 근본이 없다> 포스트를 읽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장르소설이 서로 다른 장르와도 영향을 주고 받는 게 당연한데 같은 장르 안에서 그 영향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분석하다보면 골조가 뚜렷하기에 오히려 생각보다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대중이 제일 사랑하는 건 바로 전통 모험물이다.
어마어마하게 히트 쳤던 작품들을 생각해보자. 전지적 독자 시점,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내가 키운 S급,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같은 작품들 말이다. 이 소설들은 언뜻 대리만족형 모험물 같지만 모두 전통 모험물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포르노 픽션이 메가 히트치는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 같고,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히트를 치더라도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럼 왜 이렇게 분류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천천히 풀어보자.
전통적인 모험물부터 시작하겠다. 집에서 떠나 즐겁고도 괴로운 모험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끝나는 게 바로 이 전통적 모험물들의 시놉시스다. 톨킨의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전민희의 세월의 돌 등을 생각하면 바로 아~ 싶어질 텐데 이 스타일이 요즘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변형되었지만 그 골조는 여전하다. 해리 포터도 그렇고 위에 나열한 국내의 히트작들도 그렇다.
여기까지만 설명을 들으면 '이런 낡은 스타일이 그대로 먹힌다고? 장난해?' 싶겠지만... 먹힌다. 모험물에서 집의 의미가 이제는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피로 이어진 가족과 함께 살던 기존의 사회'가 그동안 전통 모험물에 있어 집이었다면 요즘엔 그 의미가 '자신이 꾸린 가족과 주변인들과의 정서적 교류가 안정적이며 타인과의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은 사회' 정도로 바뀌었다. 시대가 변하니 당연히 대중이 꿈꾸는 이상 또한 그 의미가 변하기 마련 아니겠는가.
요즘 독자들에게 주인공에게 집을 떠나게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건 짧은 인내심을 불태워버리는 일이니 이 도입부를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한 설정도 이미 나온지 한참이고 이미 대부분의 웹소설 독자들은 거기에 익숙해져있다. 그냥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세상이 망한다든지, 분명 죽었는데 다른 세상이나 몸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든지, 과거로 회귀해버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 바로 회빙환이다.
회빙환의 편리함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의 히트작이 이 설정을 고른 정도며 소설을 시작하기에 편한 건 사실이다. 사실인데 활용을 잘 못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달까... 아무튼 작가들도 이걸 알고 있고, 그래서 사용하고 있는 아무 플랫폼이나 골라서 베스트 랭킹 1~100위까지 중 이 설정을 안 채택한 소설을 찾아본다면 바로 감이 올 거다.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연재의 장이 인터넷으로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대리만족을 시켜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져버렸다. 대리만족을 안 시켜주면 아예 빛도 못 보고 묻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가 전통 모험물을 쓰고 싶다 한들 아예 이런 대중의 요구를 안 들어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책으로 1~3권 정도의 분량을 들여(연재화 수로는 25~80화 정도) 작가는 대리만족형 모험물의 공식을 차용한다. 특히나 근서 작가의 '내가 키운 S급'이 지독할 정도로 대리만족형 모험물의 탈을 잘 썼는데 앞부분과 뒷부분을 비교해 같은 사람이 쓴 거라고 하면 믿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작가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독자의 신뢰가 갖춰졌다 싶으면 그때부터 본색을 드러내고 마구 내질러버리는 게 요즘 스타일이다.
저 작품들이 연재를 시작했던 시기의 판타지 소설들의 경향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일이긴 했다. 정말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대리만족형 모험물들이 흥하던 시기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도 흥하고 있긴 하지만 전통 모험물 스타일이 강세를 띄기 때문에 더는 꼭 이정도까지 지독하게 독자층과의 무언의 신뢰관계를 잡지는 않아도 된다... 고 본다. 물론 이 부분은 기실 작가의 실력에 달린 문제기도 하다. 어쨌든 25화 안에 독자들의 시선을 고정시켜놓을 훅을 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럼 이쯤에서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가지는 특징을 나열해보자. 대리만족형 모험물의 기본 골조는 3세대에서 설명했던 '나만 잘 나가서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20대 남성'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게 여성향으로 넘어와 변형되어봤자 '나만 잘나가서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며 주변인들이 마냥 좋아해주는 20대 여성' 정도라서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 고스란히 이어진 건 똑같으니 말이다.
먼저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나만 잘 나가서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파워 에스컬레이션이 장난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주인공이 강해지고, 주인공만큼 강한 적이 나오고, 다시 주인공이 강해지고를 반복하다보니 결국 주인공만이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진다. 조연 캐릭터들이 주인공과 같이 사투를 겪었더라도 도드라지게 강해지는 건 주인공만의 특권이다. 비교적 양심을 챙기기 위해 작가가 조연캐릭터도 같이 강해지는 방향을 고르더라도 어쨌든 대리만족을 시켜줘야하니 주인공은 조연캐릭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강해진다.
할리우드에서 옛날부터 신나게 써먹던 일인부대도 이런 대리만족형 모험물 속 주인공에 비하면 양심적일 정도다. 하도 파워 에스컬레이션이 심해지다 보니 소설의 끝에 가서는 주인공이 행성도 부숴먹을 수 있는 레벨까지 가니 말이다. 그렇게 파워 에스컬레이션이 주인공에게만 부여되는 일종의 속성이 되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세상이 멸망해가는데 막으려면 주인공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만 빨다가 구해주면 '와아 주인공 멋져~' 하고 박수치는 게 조연 캐릭터들에게 줄 수 있는 역할의 전부다. 그래서 안 그래도 납작한 내용이 더 납작해진다.
조연 캐릭터에게도 역할을 주고 나름의 서사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내용이 빈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때문에 전통 모험물에서는 조연 캐릭터들에게도 나름의 역할과 서사 부여하는데 대리만족형 모험물에서는 독자가 자신을 이입하고 현실도피를 돕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장르 안에서도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니 이런 대리만족형 모험물에서도 확장되어있는 집의 메타포가 공존하고 있긴 하지만 '나만 잘 나가서 남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상에 있어서는 조선시대보다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에 경도되다 못해 배금주의에 대한 맹신적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나 천박할 정도가 아닌가 싶지만... 대중이라고 이런 걸 아예 감지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그런 태도가 흐린 전통 모험물의 메가히트와 함께 요즘 들어선 조금씩 약화하고 있긴 하다.
냉정하게 말하라면 이런 노골적인 나 혼자만 잘 살고 싶단 태도 때문에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기본적으로 메가 히트 치기가 어렵다. 대중이 원하는 길티플래져를 잘 긁어준다면 히트는 칠 수 있지만 길티 플래져를 충족시켜주는 컨텐츠 자체는 지겨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새로운 종류의 대리만족이 나왔으니 대중이 열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열광은 빠르게 사그라든다. 내용이 나만 잘 나간다~ 말곤 없으니 처음엔 기발했어도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금방 양산되기 마련이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야하는데 새로운 걸 생각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이 코드에 익숙해지고 나면 잘 모르는 어린이의 재롱잔치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마련 아니겠는가.
애석하게도 헌터물(판타지를 기준으로 따지면 레이드물이 옳은 표기가 맞다. 이게 여성향에 적용하기엔 미묘하게 다른 맥락이 있기 때문에 여성향 쪽을 헌터물로 부르고 있다.)에서도 요즘 이런 경향이 보이는데 이 부분을 잘 파악하고 다음 레벨로 뛰어넘어가는 작가가 나오느냐 마느냐로 헌터물의 흥망성쇠가 정해질 것 같다.
당연하지만 지적한다고 해서 하루이틀만에 나올 리도 없긴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대안을 말하라면...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가지는 가장 큰 함정은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다. 시스템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설정하지 않으면 이 세계관을 통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대충 묻어둔 채로 시작하는 셈이다. 시스템을 절대적인 무언가로 설정하는 거야 물론 작가의 자유이나 작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비춰지니 어느 정도의 고찰은 필수적이다. 이 부분이 엉성하면 나올 수 있는 패턴이 이미 뻔하다. 그리고 이미 모험물을 좋아하는 여성독자층은 판타지에서 배를 채워두기 마련이기에 앞으로 나올 전개에 대한 예상도가 어느 정도 있다. 이 예상을 좋은 의미로 깨트려야하는 법이다.
두번째로 캐릭터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그 한계에 확실히 선을 그어둬라. 예를 들어 위에서 배금주의에 대한 맹신을 언급했는데, '돈이면 다 돼~'라는 태도를 주인공이 고수하는 건 그렇다 쳐도 '돈이면 다 돼?'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야 필요최소한의 대비가 만들어진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일관된 태도를 고수하는 것도 이상한 거다.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건 모험을 하며 주인공이 성장을 한단 소리인데 시작과 끝까지 일관되다는 건 주인공이 성장을 안 했다는 말과 동일하지 않은가. 무엇에 대한 어떤 태도든 캐릭터가 보일 한계를 설정해두지 않으면 캐릭터는 단면적이 된다. 요즘엔 이기적인 설정이 유행하고 있고 맥락 자체는 이해하나 그렇게까지 단순하게 봐야만 하냐는 의문을 지어내는 장면이 남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세번째로... 주인공이 여자라도 뭐 좀 때려부숴도 된다. 아무리 여성독자층이 선량한 주인공을 좋아한다고 해서 파괴하면서 오는 희열을 못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함부로 못 건드린 길티플래져에 가깝지. 때려부숴야할 이유를 주면 되는 거니까 너무 착한 주인공이라고 행동을 제약해둘 필요는 없다. 태선 작가의 치트라도 잘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때려부수는데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액션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액션 씬에서 반응이 늘어지는 건 그냥 실력이 딸려서다. 여기서 실력이 딸린다고 말하는 부분은 다중적인데 액션 자체를 못 쓰는 걸 수도 있고 주인공이 때려부숴야할 이유의 부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주인공의 행동이 그냥 이해하기 어렵도록 묘사가 부족한 탓일수도 있다.
여성향 남성향 상관 없이 모험물을 읽다보면 늘 하는 생각인데... 주인공이 뭐 좀 그르치고 고치느라 동분서주해도 되는 법이고 실수를 해도 되고 속아도 된다. 주인공을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거나 너무 평범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라. 모험물의 주인공은 적당히 모자라야하고 그 모자른만큼 나름의 성장을 해야 한다. 성장하지 않는 주인공만큼 지루한 건 없다. 그래서 오히려 모험물에서는 주인공이 실패하는 모습 또한 중요하다. 매번 시련에 맞서 매번 이겨내는 모습만이 성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이 실패하는 부분을 요즘은 살짝 비틀어서 대리만족과 실패를 통한 성장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전독시, 내스급, 백망되, 데못죽 모두 각각 다른 패턴으로 보여준다. 단순 미션으로 생각하면 주인공들이 한 선택들은 성공이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죄 다 대실패의 연속들이다. 그리고 그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실패들을 조연 캐릭터들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성장시킨다. 가상의 인물들이라 인내심이 존재해서 망정이지 현실에서 저렇게 굴면 미친놈들이 한 다발 꼬이거나 아니면 대인관계라는 게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어쨌든 극도로 과장하긴 하나 현실에서 겪기 마련인 실패를 비춰서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동시에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실패 자체를 부정한다.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독자가 자신을 과격할 정도로 이입해야만 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무조건 잘 나가야 한다며 어떠한 종류의 실패도 겪도록 두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다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지는 거고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으니 빠르게 흥미가 식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메가히트 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메가히트 치더라도 세월이 지나도 오래오래 읽힐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 지도 회의적이다. 사적 가치가 있다는 게 그게 꼭 어느 시대에 봐도 재밌거나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영화와 그림과 연극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 아니던가.
그러니 작가든 독자든 이제는 주인공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 건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내 현실이 팍팍해서 말랑한 거 보면서 현실도피 하겠다는데 뭐 어쩌라고!' 싶을지도 모르겠으나... 내 박살난 인류애를 득득 긁어모아 진심에서 하는 조언이다. 현실도피 자체는 나쁜 건 아닌데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하는 게 좋다.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인셀의 부흥과 함께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런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살면 인생이 다 잘 풀린다는 시놉시스는 딱히 정신건강에 도움되는 종류가 아니다. 피해망상을 부추기면 몰라도.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꼭 전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대리만족형 모험물은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다.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자기연민에 너무 매몰되면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내성이 떨어지고, 그렇게 스트레스 상황이 지났는데도 심리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 유지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렇게 시야가 한껏 좁아져 자기객관화를 못하게 되면 피해망상이 생기기 좋아지는데... 기왕이면 좋은 방식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해야한다는 이유가 이런 거다. 대리만족형 모험물이 좋아! 까지는 그럴 수 있는데 대리만족형 모험물 아니면 스트레스 받아서 아예 못 읽겠다면 진지하게 자신의 상황을 한번 되짚어보길 권한다. 그건 심리적으로 많이 내몰려있다는 위험 신호다.
근래 메가 히트친 작품들은 하나 같이 여러 종류의 사랑과 호의와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두가 병들어있는 현대인이건만 여성이 실패하는 모습에 유난히 혹독한 세상이기에 더 여성 주인공의 모험물을 보고 싶다. 나름의 실패와 성장을 거치는 모습이.
사족 1. 남유현 작가의 '순백의 엘리사벳'이 놀라울 정도로 그 구조가 헌터물의 골조를 가지고 있는데 헌터물은 아니다. 오히려 방향을 비틀어서 판타지로 만들어낸 좋은 예이고 조아라 연재때부터 달린 작품이다. 정말로 재밌단 소리다. 여성주인공의 전통 모험물이 재밌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 작품을 한 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자체적인 설정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이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성장하는 주인공이 여자라도 재밌을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사족 2. 근서 작가의 '내가 키운 S급'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그중에서도 제일은 기독교적 사랑이긴 하지만 여러 종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조연 캐릭터의 사용에 있어 매우 뛰어나다. 아마추어라면 한 번 공부해보자. 초반은... 버텨라. 아니면 웹툰 각색 버전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데못죽과 함께 제일 재밌게 보고 있다.
사족 3. 일전에 킹메이커 작가의 '다른 세계에서 주워왔습니다'를 추천한 적 있는데 그 이유는 1) 시스템을 쓰는 방식이 독특해서 시스템이 가지는 게임적 요소를 피하는 방법을 배우기 좋기 때문이고 2) 클래식과 올드 사이의 SF 시놉시스를 웹소설로 변환시키는 방식을 배우기 좋은 샘플이라서다. 물론 캐릭터 조형이 납작하긴 한데 그런 단점을 알고 공부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사족 4. 수능 친 모든 분들, 고생하셨다. 이제 잘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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