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물,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기에

이번 글에선 성인인 주인공이 육아를 하는 경우, 전통 육아물의 유행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이 유행에 대해서 개인적인 소감은 좀 복잡다난하다. 로판 내에서만 유행했다면 확실히 짜증스러웠겠지만 이 유행이 살금살금 남성향으로도 퍼진 걸 생각하면 이 코드 자체가 하나의 사회상에 대한 반영이 되어버린 이상 약간은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에 조금 가벼운 어조로 다뤄보겠다.

전통적인 육아물의 시놉시스는 이미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 안에서도 제일 메이저한 걸 꼽으라면... 여성향에서 주로 나타나는 주인공이 어쩌다 임신했는데 정자제공자한테서 도망쳐서 혼자 낳고 키우다가 둘이 다시 만나 지지고 볶으며 결혼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는 시놉시스와 남성향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어느 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애가 나타나서 얼떨결에 키우는 시놉시스로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요즘에는 훨씬 더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클래식한 걸 말하라면 그렇단 얘기다.

이번 유행에 있어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제법 메이저한 두 전통적인 육아물의 유형에서 공통되었던 '어쨌든 내 피를 이은 자식'이라는 공식이 조금씩 깨지고 있단 점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더 짚자면 로맨스 장르에선 이런 새로운 육아물 코드가 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괜히 로맨스 독자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걸 이런 방식으로 실감할 수 있다. 폭력적인 헤테로 섹스를 못 보는 점 때문에 내가 못 찾은 걸 수도 있으니 이 새로운 코드를 가지고 있음에도 흥한 로맨스 장르의 작품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린다. 장르간 영향이 당연하니 로맨스판타지의 코드가 로맨스로 유입 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하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요즘 들어 로판에서도 그렇고 판타지에서도 그렇고 자신이 낳지 않은 자식을 사랑으로 품어서 키우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 전부인과 사별한 남자가 키우던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키우는 이야기나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나 어쨌든 학대 혹은 방치되고 있는 아이를 무시하진 못하겠어서 눈 질끈 감고 냅다 사랑으로 키우는 이야기도 제법 흔해졌고 입양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직접적으로 혈연을 맺진 못하더라도 학대 당하고 있는 아이를 방치하는데 동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드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판타지나 현대 판타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달리 자신의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아이가 아빠라고 인식해 매달리면 '내 자식'이 된다. 

이 부분은 정말 긍정적인 면이고 나 또한 기쁘게 받아들인다. 과거 육아물을 다뤘던 글에서도 썼지만 혈연으로만 이어진 게 아닌 방식의 가족에게 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특히나 한 해 홀로 남겨지는 보호대상아동이 매년 약 4천명이고, 그 중 반올림해야 간신히 채워지는 10%만이 간신히 국내 입양되는 걸 생각하면 창작물 내에서부터라도 입양을 한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현실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실질적으로 이미 우리 옆에는 고작 10%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있고 이 숫자가 오르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으나 어쨌든 그 아이들이 앞으로 사는 내내 맞닥트려야할 편견들을 없애는데 동참하는 작품들을 어찌 기꺼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쯤에서 왜 국외 입양은 안 쳐주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테니 잠깐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국이라고 입양 후 관리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 입양아를 학대하는 범죄자 놈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미흡한 부분이 많긴 하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 협소하고 관련 예산이 적다보니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게 너무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국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해외에 입양된 아이들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건 타국 정부의 사법권을 무시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일이고... 바로 이런 점을 노린 브로커들이 존재한다. 

이건 어느 정도 선진국에 속한 나라라면 다 비슷하다. 자국 내에서 입양하면 입양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부 감시도 꾸준히 받아야하는데다 방임 혹은 학대를 하면 바로 들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밟아야만 하는 절차를 무시하겠다고 어떤 의미에선 입양재단이나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해외에서 아이를 사오는 거나 다름 없다. 

무울로온...... 선량한 마음으로 해외입양을 선택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허점을 노리는 종자들이 있기 때문에 인신매매 요소가 있다. 이 인신매매 성격을 가진 최악의 케이스를 바로 나이지리아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평범하게 살고 있던 여자아이를 납치해서 가둬놓고 성폭행해서 임신 시키고, 그렇게 출산한 아이를 브로커에게 넘겨 플랜테이션 농장, 공장, 광산에 일꾼으로 팔아넘기거나 서구권으로 입양보낸다고 두 당 얼마씩 돈을 받는다. 그러다 나이지리아 당국이 잡아낸 케이스가 국내 보도가 된 게 2010년쯤일 거다. 

사실 이런 범죄유형에 대한 증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니까... 대충 2000년도쯤 있었던 콩고 내전에서 자신과 다른 부족의 남자는 다리를 잘라 다이아몬드 광산에 처박고 여자는 인신매매하고 아이는 마약을 먹여 소년병으로 써먹던 시절부터 증언이 일부 있긴 했는데 확인된 국가가 서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과 캄보디아 정도지 제대로 된 행정력이 작동하지 않아 감지하지 못하는 지역까지 포함시킨다면 훨씬 더 늘 거다. 

국외입양이라고 하면 질색팔색하며 국내에서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기인했다. 물론 국내입양 기관이라 해서 문제가 아예 없진 않다. 특히 개신교 계열 재단들이 같은 개신교인이랍시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으면 입양 부적격 딱지 맞았을 사람들에게 입양 보내버리는 꼬라지를 앞으로 안 봤으면 좋겠다.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도 홀트아동복지재단에서 입양허가를 결정하지 않았던가. 아예 학대를 감지 못 한 것도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다른 종교들은 어쨌든 중앙이 관리하는 체계가 있는데 기독교는 이게 없어서 호의에 기반한 돈을 훔쳐먹기 좋다는 허점이 있으니 방지할 시스템을 반드시 도입시켜야 한다고 본다. 알아두면 좋은 얘기라 좀 길지만 해봤다.

어쨌든 이렇게 보수적이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기존의 '정상가족'을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은 매우 반갑지만 이러한 육아물의 유행이 가능하게 된 건... 다르게 말하면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대중이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이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해두지 않으면 출산과 양육이 불가능해지고 있는 일종의 계급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 양육이 얼마나 고된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아이를 키우는데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그것도 억 단위로 든다. 아이를 낳아 양육해 대학 졸업때까지 드는 돈이 평균 4억 정도라고 하니 일반대중의 입장에서는 슬슬 판타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만도 하단 소리기도 하다. 계급적 성격을 떼고 말하더라도 양육이라는 게 그냥,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힘든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건 분명하다.

게다가 아동학대 사건들이 조명되며 대중이 양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이 점점 개선되면서 가족계획에 신중해지는 건 좋은데... 그럼에도 기존의 육아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 또한 여전하다. 특히 아동의 대상화가 말이다. 여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편이라 기쁜 마음도 있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제발 이제는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게 귀엽다고 보거나 아이를 무슨 무해하고 작고 귀여운 동물처럼 다루는 걸 그만 보고 싶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할 얘기지만 보호자의 사랑은 체력 때문에라도 한정되어있는 자원이라서 형이고 동생이고 나발이고 나이차가 얼마 안 난다면 첫째와 둘째는 반드시 싸우게 되어있다. 주양육자가 한 명이면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걸 두고 어린애인데 누가 더 못됐다고 판단하는 건 어른의 잣대니까 이런 장면이 나올 때 독자들이 누가 착하고 나쁘다고 불평하는 걸 좀 그만했으면 싶다. 보통 설정상 나이차가 나름 있다곤 하지만 그래봤자 10살도 애고 6살도 애고 2살도 애다. 아이가 다른 아이의 양육에 참가하게 하는 건 솔직히 학대의 여지가 있다. 특히 나이가 더 있는 아이가 여자아이면 더 그렇다. 

여성향의 경우엔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보호자의 양육 참여 장면을 넣는 걸 보고 싶다. 아이를 상대로 보호자가 반려를 뺏겼다고 질투하는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건 개중에서도 진심으로 떨떠름한데 성애적 사랑이랑 가족간의 유대에서 오는 사랑이 무슨...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인양 구는 꼴은 솔직히 유치하기 짝이 없다. 피가 섞였든 아니든 한참 어린 아이를 경쟁상대로 본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 맞다. 얼마나 자신감과 여유가 없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몰라도 낭만... 적인가 이게?

덤으로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여성 주인공이 원치 않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계기가 어찌 되든 모성애가 폭발해서 애를 금이야 옥이야 다루는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는 좀 그만 하자...... 로맨스판타지나 판타지에서 묘사되는 세상이 아무래도 주로 근대 이하다 보니까 현대의 도덕기준을 대기 어렵다는 주장 자체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일부 동의하는 면은 있지만 그렇다고 현대인인 독자가 거기에 아무 문제 제기를 안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이 그 세상 안에선 외부인이라 문제제기를 쉽게 하기 힘들다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독자가 그 시대 기준으론 그랬으니 전부 다 괜찮다고 보는 건 이상하다. 특히나 강간으로 생긴 아이마저 주인공이 엄마란 이유로 모두 용서하고 잘 양육해야하는 것처럼 말하는 코멘트들을 보면 머리를 부여잡게 되는데... 현실에서는 강간으로 임신하게 된 당사자가 임신 중단하기 위해서 밟아야하는 지난하며 때로는 모욕적이기까지 한 절차들 때문에 임신 중단을 못하고 부득이하게 낳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여성이 마법처럼 아이에게 모성이 생겨날 거 같나?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이 생기는 이들도 있지만 아닌 이들의 의사가 더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엄마가 아이를 사랑해야지' 식의 단순한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이런 식의 모성신화는 불쾌하기만 하며, 당사자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보육시설에 맡김으로써 아이와 자신을 분리하는 걸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심리적으로 극단에 내몰려 아이를 죽이거나 유기해서 죽이게도 되는 거다. 쉽게 엄마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지 말자. 

육아물에서 대중이 느끼는 대리만족에는 엄연히 유년 시절의 자신에 대한 대리만족도 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냉정히 얘기해서, 지금 성인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가 뭔지 어렴풋하게 관념이 만들어지기 전에 태어났지 않은가. 그러니 성장하고 나서야 '아 내가 당했던 그게 아동학대였네?' 싶은 순간이 와버린다. 

하지만 이걸 안다고 해서 세상이 또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성인이 된 후에 보호자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잘못했음을 알아차렸다고 그걸 보호자에게 말해서 올 반응이라는 게... 대부분 암담하지 않은가. '왜 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말하냐? /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 / 그시절엔 다 그랬는데 너만 왜 나한테 그러냐?' 중에서 대충 하나 고르는 수준이니 말이다. 

자신이 겪은 그 일이 아동학대 아니냐고 가족에게 확인을 받으려는 행동 자체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어야했던 고통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확인받기가 어려울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맞부딪힐 게 뻔해서 묻어두려고 하는 심리도 있다보니 아이에게 마냥 상냥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는 걸 안다. 소설도 어느 정도는 사이코 드라마로 기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술의 긍정적인 면이 이런 부분이긴 하다. 대리만족이 전부 나쁜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성행해 나쁠 건 없다고 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는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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