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조각글

작별을 고할 시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그녀는 누구나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진작에 만나러 가지 않았을까?

이제는 더 이상 풀 수 없는 시험지를 들고 있는 학생처럼 제 치맛자락을 구겨 꽉 쥔 그녀의 마음에 허무하고도 낙담적인 감정이 요동쳤다. 소식을 전해준 이가 저를 부르는 말소리는 그녀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바보같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조금 더 내게 좋은 기회를 노려보자, 조금만 더 그를 애태워보자, 조금만, 조금만 더, ... 하염없이 제 자신에게 되뇌이던 말들이 스스로가 파낸 무덤같이 다가와 싸늘하고 어두운 흙바닥으로 끌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장례식에 도착한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녀의 얼굴에서 어떠한 낙담의 빛도 보지 못했다. 그의 장례식에 의례적으로 참석한, 친분이 깊지 못 한 어느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딱 그 정도의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였다.

아무도 그녀가 얼마나 그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인지 알지 못 했다.

내가 원하던 것 아니였던가?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이것으로 되었다.

당신과는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부디, 영원히 내 비밀도 당신의 곁에 묻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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