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달님
그렇다면, 당신께 소원을 비는가?
─강점이라고 해도, 괜찮은 걸까요? 그냥… 서투른 나머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 정도인데. …그치만, 강점으로 갈고닦을 수 있다면, 그렇다고 해둘까요? 네, 네.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수긍하며 끄덕이는 게 전부 아니던가. 당신이 빤히 저를 관찰하자, 입을 다물고 마냥 마주보기 시작한다. 그래도, 시선을 피하지는 않은 게 어디인가.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 말요? 저는, 제 장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니, 생각해본 적이 없달까… 찾기가 힘들어요… 산체스에게는, 그게 보이나요? 괘, 괜찮으시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는데, 무, 물론 괜찮으시다면요. …머, 머리카락이요? 눈 색이요? 모, 모르겠어요. 원래 이랬는 걸요. 새까맣고, 굳이 따지자면… 저의 우울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죄송해요. 괜한 말을.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렇네. 딱히 끄덕이는 것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저를 부정하는 때 내젓는 것 역시 곧잘 하는 것 중 하나였다. 당신과의 거리감이 가까워지자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그렇다고 물러서는 것보단, 긴장한채 우뚝 서있는 것이 전부. 제 두 손을 꼭 쥐고서 안절부절 당신을 바라보았다.
음, 으음. 그런 셈이죠. 겪지 않은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 사, 사실 저도. 과거에 묶여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은, 하는데, 좀처럼 쉽게 되질 않으니까. 그 부분이… 스스로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다가, 당신의 말에 잠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다. 칠흑의 눈은 더한 어둠에 좀먹힌 것처럼 작게 반짝이던 별조차 잠시 사라진듯 했다.
별로 재밌는 내용도 아니고, 그냥… 특별하지도 않아요. 유별나서, 무시당하고, 친구가 없을 뿐인 그런 이야기. 이상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일상인지라, 칭찬을 들으면 되려 부정하고 마는 그런 사람. 그게 저인걸요.
또 다시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애써 떨쳐내듯, 눈의 별이 돌아온다.
날 때부터 이렇게 소심하고, 말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음, 모두 제 탓인 거라고 생각해요. 좀 더 나아질 수 있었을텐데, 나아지지 못했으니까. 누구든 말을 걸었을 뿐인데, 상대가 소스라치게 놀란다면… 기분이 나쁠테니까. 그러니까, 제 잘못인 거겠죠.
끝내, 다시금 자신을 부정하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알려주시면 좋겠지만… 음, 으음. 잠시만요, 조금 고민을 해볼게요. …네, 기왕이면 알려주시겠어요?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실수해서 산체스가 떠나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저, 그런 건 원하지 않아요. 기왕이면, 그러니까, 이 손에, 꼭 잡고 있었으면, 싶어서. 요, 욕심일까요.
그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으음. 이건 긍정이다, 수긍이고.
직접 알아갈 기회, 귀하디 귀하다고 생각해요. 고려해주셔서, 감사해요. 뭐랄까… 산체스에 대해서라면, 미지를 탐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즐겁다고, 해야할까. 네, 맞아요. 산체스는, 즐거운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첫걸음마를 떼려면… 산체스를 따라 엉금엉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등불이자, 달님인 셈이니까. 넘어지더라도, …아파도, 일어나야겠죠?
손가락을 꼼질거린다. 아직까지도 낯선 친절, 하지만 적응해야 할거야. 제가 느끼기에, 당신은, 항상 그럴 사람이기에.
불안이란, 없애기 쉽지 않은 요소니까. 누구나 불안을 품고 살아가고… 그중에서도, 유독 저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 거겠죠. 없앨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냥, 전부요. 저를 신뢰할 수가 없어요. 저를 신뢰하는 법을, 알기도 전에 망각하고 말았어요. …뒤가 두려우면요? 뒤에서, 무언가 달려온다면, 쫓아온다면, 저를 끌어내리기 위해 위협해온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안 될까요? 저는, 항상 불안한걸요. 누군가, 앞에서 이끌어주면 좋겠어요.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줄곧 불안한듯 안절부절,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조금씩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떨지는 않지만, 속은 떨리는 이 느낌. 아, 이걸 어디서 또 겪었더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때, 이런 식으로 불안에 떨고는 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걸까.
달을, 동경. 네, 달은 동경하기에 좋죠. 뭐랄까, 멀지만… 멀면서도, 그 대상이 확실하잖아요. 그렇기에 더더욱, 동경의 대상에 걸맞은 걸지도 모르고. …그러니 제게는, 당신이… 응, 으응. 감정만큼 복합적이고 어려운 요소는 없다고 생각해요. 단어로서 존재하긴 하지만, 그게… 모든걸 설명해주진 않잖아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자신과 상대를… 객관화 하기에 좋은 걸까요? 그러니까, 필요로 하는 과정… 이라고 한다면… 네, 이름을 붙이고 싶어요.
잠깐 또 눈을 감았다. 고민하기 위해서, 이 감정과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서.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겠지. 생각을 정리하면 눈을 떴다.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부정당하는 경험. 그게 저를, 이런 식으로 이끌었는 걸요. 아니, 끌어내린 걸까.
잠깐 스스로 조소한다. 이 또한 무척 드문 것이다.
그러게요, 그런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닐 터인데. 어째서일까.
당신처럼, 이리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왜 여태 겪어온 것들은 그렇지 않았을까.
네, 네에. 엇, 그럼 어… 바깥에서도, 아는 체… 해주시나요? 그러니까, 제가… 서점 같은 곳에, 함께 가달라고 여쭙는다면, 응해주시나요?
그러다가 이런 자신이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애매하죠, 죄송해요. 항상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어서.
함께 노력해주신다면… 분명 기쁠거에요. 하지만, 으음… 뭐랄까… 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말을, 하는 게 무척 어려우니까… 무리하지 말아달라, 그런 말밖에는… 산체스가 저와 좋은 친구 관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주는 거라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있겠어요…
조금, 얼굴을 붉혔다. 진심으로 기뻐, 하지만 미안해. 어떻게 보답하면 좋지? 감히, 누군가 자신을 위해?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런가요? 그럼, 언젠가… 우주에 가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종착점이 다른 곳이 아닌, 달이라면 그 무엇보다 행복하겠네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상관 없어요. 그냥, 달에 닿을수만 있다면… 저는 그걸로 됐어요. 무,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한 바람인지라…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진, 않아도…! 꿈 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욕심, 욕심, 욕심. 그리 생각하다가, 당신이 훅 다가오자 눈을 크게 뜬다. 어라?
네, 네. 달과 같은 사람. 산체스는 꼭, 달님 같아요. 제가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고…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요.
당신이 기쁘다면, 더할나위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다행이에요. 뭐랄까, 다른 것 없이 정말로… 달과 닮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한 말이었으니까. 제 진심이 산체스에게 기쁨을 가져다줬다면… 저 역시, 기뻐요. 뭐랄까, 달님은… 분명 매정한 면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만큼 애처로워서… 동경이 되어, 그런 거대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네, 비로소 달님이기에.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건. 달님과 마찬가지니까… 네, 그렇네요. 산체스를, 달님이라고 부를까요?
비로소 달 그 자체가 될 수 없다고 한들, 누군가의 달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앗, 너무 좋아요…! 달이라면, 어떤 모양이든 좋으니까…! 헤, 헤헤.
진심으로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쓰다듬으면 쓰다듬을수록 더욱이 풀어진 표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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