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빈] 어쩌다 연하가 걸려서
어쩌다 연하가 걸려서
"누나."
뺨에 시원한 캔이 맞닿으면 내 손에 들린 캔보다 더 시원하게 웃는 저 애가 나를 향해 시원하게 웃는게 보였다.
"음료 받아주는거죠? 오늘도 플러스 1점입니다~ 나중에 봐요."
손에 덜렁 캔을 쥐어주고 가버리는 저 놈. 어울리지 않게 코코팜 분홍색을 가져다주는게 내 취향인지 너의 취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만 이렇게 음료를 주느냐. 아니, 어제는 곰돌이 모양의 젤리였고, 엊그제는 스타벅스 딸기프라푸치노였다. 일주일 전에는 따뜻한 히비스커츠차. 누구 취향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싱긋 웃어버리는게 자기 취향도 아닌게 분명하다. 선배로서 후배 삥뜯냐고 물어보면 음.. 할 말이 없긴한데 억울한 면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말리라고.
나를 꼬신다는데.
-
시간은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이제 막 복학을 한 복학생이었고. 저 애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생이었다. 신입생 사이에 자리잡고 같이 입학한척 자리를 잡을까 싶었으나 그러면 정말 아싸가 되어버릴거 같아서 얌전히 고인물 사이에 앉았더니 어제도 얼굴을 본 동기가 내 팔을 잡고 엄청난 소식을 전해주는 것마냥 입을 열었다. '신입생 중에 이름 원빈있음.' 거짓말. 사람이름이 어떻게 원빈이야. 깔깔 웃었는데. 웃은게 민망해질 정도로 뒤에서 '저 이름 진짜 원빈이에요. 박원빈.'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어?
"저 이름 진짜 박원빈이에요."
"어, 어. 안녕."
깔끔하게 자기 이름을 밝힌 저 애는 신입생 사이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윙크했다. 뭔데. 쟤 지금 나한테 윙크한거야? 또라인가. 그래. 그냥 또라이인가.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한두명씩 술에 취하고, 자리가 섞이고. 밀려밀려 자리 잡은게 박원빈 옆자리였다. 아, 별로 안앉고싶었는데. 자리를 뜰까, 아니 앉을까. 고민하는 사이 소주를 들고 눈 반짝이며 바라보는 이 놈때문에 소주잔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저, 아까. 박원빈이요."
"어, 어. 알아. 아깐 그, 미안하다. 웃으려고 한게 아니였어."
"네, 다들 이름 들으면 안믿으시더라구요. 익숙해요."
웃는게 익숙하다는게 더 미안해져버렸다. 선배. 짠. 술잔이 부딪히고. '근데 선배는 이름이 뭐에요?'
"난 김여주."
"아, 기억할게요. 근데 저 선배 전화번호 주시면 안되요?"
이름이 뭐에요. 전화번호 뭐에요. 어느 노래 가사가 순간 스쳐지나갔다. 얘는 이 노래 알까. 노린걸까. 물어봤다가는 진짜 이상한 선배로 찍힐거 같아 그냥 얌전히 내민 폰에 번호를 찍었다. '우와, 저 선배 번호 저장하는거 처음이에요.' 웃는 모습에 아직 애티가 나는게 귀여웠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연하만 만나고 다니는건가. 동기들의 수많은 연하 남자친구들이 스쳐 지나가는게 음. 이제 이해가 되는거 같기도 하고. 이후에 2차로 옮기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너무 취한 애들은 집으로, 카페 가려는 애들은 카페로 회장이 교통정리에 나섰다. 나도 집에 갈까 싶어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데 패딩을 잡아 당기는 손짓에 그대로 다시 앉아버렸다.
"선배 저, 메로나 먹고싶어요. 원래 취하면 메로나 먹는거라면서요."
"누가그래?"
"회장선배가요."
"나는 메로나보다, 탱크보이가 더 맛있던데."
"그럼 탱크보이 먹을래요."
당당하게 탱크보이 사달라는 이 후배놈의 말에 어이없음 반, 귀여움 반의 감정이 섞여 데리고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편의점 앞 드르륵 칵 소리를 내는 의자를 보고 한참을 웃은 뒤 자리에 앉은 우리는 그 추운날 탱크보이를 손에 잡고 먹기 시작했다.
"근데 선배."
"왜?"
"선배는 연애 해봤어요?"
이자식이.
"한 열 번 정도."
뻥이다 사실 한 번 해봤다.
"엥 거짓말. 선배 저 그렇게 안취했어요."
...이 놈이.
"아냐. 나 진짜 열번 해봤어."
"음, 선배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이날 나는 연애 10번은 거짓말이라고 해명은 무슨 그대로 믿은 얘 때문에 얌전히 탱크보이만 먹었더랬지. 그러고는 꼭 자기가 데려다줘야한다며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떠난 박원빈. 그 다음날 부터였나. 박원빈은 그렇게 여주를 찾아다닌다고 주변 제보가 넘치다 못해 흘러 넘쳤다. 학교만 가면 있는데 뭐하러 찾아. 과방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여주는 누가 데리고가도 잘 안가던 과방에 가 원빈을 찾았다.
"내 이름 닳겠다."
"선배!"
정말 기다렸는지 주인 반기는 강아지마냥 뛰어나와서 손에 초콜릿을 쥐어줬다.
"이게 뭐야."
"어제 탱크보이 사주셨잖아요."
"그게 뭐라고. 잘 먹을게."
"내일도 찾을거에요."
"왜?"
"선배랑 친해지고싶어서."
"참나.."
연하의 귀여움에 괜히 쑥쓰러웠던 여주는 '어, 어. 나중에 연락이나 해.' 발걸음을 돌렸다. 정신차려 김여주. 여기서 또 연애하면 넌 미친애다 진짜. 정신 똑바로 차려!!!!!!!!!!!!!!
-
사람이란 모른다. 저 애가 지금은 저렇게 웃으며 다녀도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아. 저 멀리서 웃으면서 뛰어오는 박원빈을 보고 어울리지도 않는 진지한 생각이나 하고있었다.
"누나, 뭐해요."
그 사이 호칭도 변했다. 선배에서 누나로. 언제 바꼈는지도 모른다. 선배는 좀 딱딱한거 같다고 말하길래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바로 호칭을 바꾼게 박원빈 다웠다. 누구에게나 살갑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잘웃고. 한달이 지난 사이 내가 파악한 박원빈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만한 후배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과팅을 안나가는게..
"너 과팅 안들어와?"
"들어와요."
"안나가?"
"음.. 딱히? 전 누나 얼굴 보는게 더 좋아요."
"장난도 심하네."
"진짠데요. 저희 두달 동안 거의 매일 봤는데~"
"음...?"
"그리고 저 지금 누나 꼬시는 중이라 바빠요."
"으억?"
먹던 음료가 바닥으로 다 쏟아졌다. 아 누나!!!!!! 급하게 가방에서 휴지를 꺼낸 원빈이는 입가를 툭툭 닦아주었다.
"아, 미안미안."
"누나 진짜 더럽게..."
"옷에 안묻었지?"
"묻었어도 누나한테 세탁비 달라고 안할게요."
나를 보고 웃는 얼굴에 마음이 조금 동하는게,
"지금 점수 따는 중이니까 방해하기 없기에요 누나."
어떻게든 되겠지.
-
"한 교수님 과제 완전 극혐."
"뭐 드랍하게?"
"김여주 넌 모른다. 한 교수님 A+받은 애가 뭘 알겠어."
"그러니까 도와주려고 나왔잖아."
"이번에 너 버프 받고 나도 도전해본다."
"자료 줄게 잠시만."
"김여주,"
소희가 목소리를 확 죽이고 귓가에 속삭였다. '저, 저 테이블에 신입생 과팅한다.'
"올 이번에 박원빈도 나왔네. 쟤 과팅 절대 안나간다고 유명하던데."
"음, 아닌가보지 뭐."
소희는 자기가 과팅을 보는 거 마냥 난리부르스였다. 나도 저렇게 풋풋할 때가 있었지. 신세한탄을 푹푹 하더니 갑자기 나를 툭 치길래 바라봤더니,
"누나!"
"어, 안녕?"
누가봐도 어색한 말투에 어색한 웃음 그리고 어색한 손 인사네 괜히 민망해졌다. 괜히 훔쳐보고 있었던거 같잖아.
"여기서 뭐해요?"
"동기 과제 도와주려고."
"안녕. 난 여주 동기 소희."
"안녕하세요. 선배."
"여주는 누나고, 나는 선배..?"
"누나 옆에 앉아도 되는거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앉은 박원빈은 내가 먹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쫍 빨아 먹었다. 하나 사줄게 그거 먹어. 싫어요. 뺏어 먹는게 더 맛있어요. 참나.
"너네 둘 사귀니?"
"아니?"
"묘한데"
우리를 향해 사진 찍듯이 손가락을 네모로 만들어 보였다.
"그래 우리 후배 박원빈씨. 지금 과팅 중 아니신가요?"
"맞는데 이제 끝나서요."
"저기는 한창인데..?"
과팅하던 테이블에서는 오매불망 박원빈만 기다리고 있었디.
"지금 다 집에 가려고 했었어요. 아, 그리고 누나 저 원래 과팅 안나가는거 알져. 과대가 너무 부탁해서 나간거에요."
"누기 뭐라했나."
"누나 오해할까봐."
사실 오해했다. 저런 애가 지금 여자친구 없는게 말이 되나. 과팅 안나가는게 이상하지.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구린게. 옆에서 얌전히 자기가 할 과제를 꺼내는게 왜 이렇게 짜증나지. 나도 과팅나가고싶나.
"나도 과팅 나갈까."
"엥?"
"네?"
"안나가본게 아쉬워서."
"싫어요."
"니가 왜 이놈아."
"아아아 싫어! 나 지금 누나 꼬시는 중이라고 했잖아요."
왐마야 소희가 벌어진 입을 가렸다.
"지금 마이너스 50점이야."
"나 지금 한 500점 쌓은걸로 알고 있는데."
"천점 채워와 그때 받아줄지 말지 생각해볼게."
"사랑싸움은 둘이서만 하세요. 저는 갑니다."
짐을 우다다 싸고 나가버린 소희는 나중에 전화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약간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느낀건지 박원빈은 눈을 도륵 굴리며 궁리를 하다 손가락으로 내 팔을 꾹 찔렀다. 왜. 누나. 왜. 혹시 질투? 아니.
"근데 왜 저 과팅 나간거에 그렇게 기분이 안좋아요 저번에는 나가라고 했으면서."
그러게나말이다.
"난 누나만 좋은데."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연애가 하고싶은건가 아니면, 나 좋다는 너랑 사랑이라도 하고싶은걸까.
사람이란 모른다
아니, 사랑이란 모른다.
-
지난날을 돌아보다 정신차리면 여전히 웃고있는 박원빈이 내 앞에 있었다. 백점이고 천점이고 만점이고 이제는 점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인데 여전히 꼬시고있다. 내가 박원빈을 정으로 둘지, 사랑으로 둘지 이제는 정말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은, 이미 과팅 갔을때 마주친 날부터 넘어갔있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잘생긴애가 또 언제 나를 좋아한다고 졸졸 쫓아다니겠어. 동기들이 전부 김여주 최대 업적이라고 놀리고 다니는데. 뒤집어 엎어봤자 나만 손해지 항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쟤는 내.. 최대 업적이지.
도서관에 죽치고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옆자리는 채워져있었고 저녁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같이 나가는 박원빈이
"아직도 나를 좋아해?"
위에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
"네. 아직도요. 내일도 좋아할거에요."
여전히 내가 좋다고 말하는 저 박원빈이
"나도, 나도 좋은거 같아."
사랑이란 여전히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박원빈이 내 옆에 있을 애라는건 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
15년 전 죽은 최애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prologue
다우트
갓생 오타쿠. 그것은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픈 것도 없는 내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해 성적이든 뭐든 원하는 건 다 쟁취해 내는 미친놈. 그 위에 여유 있는 집안에 태어난 우쭈쭈 막둥이 공주라는 설정 한 스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100% 믿어주는 가족들의 신뢰까지도. 그 견고한 신뢰를 품에 안은 나
#웹소설 #소설 #다우트 #창작 #방탄소년단 #방탄 #전정국 #민윤기 #김태형 #김석진 #정호석 #김남준 #박지민 #방탄빙의글 #빙의글 #나페스 #방빙 #방빙추천 #bts #nps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