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셉(1차)

코디셉트

프롤로그. 제3자에게 쓰라고 플롯 넘겨줌

보존용 by Bulb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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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에 가득한 고철더미 중에 스타워즈에 나올 것처럼 생긴 로봇이 한 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군데군데 색이 바래긴 했지만 선명한 짙은 녹색이었다. 길쭉한 팔다리 끝에는, 도대체 어떻게 작업을 하는건지 몰라도 마땅히 달려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 무슨무슨 몬스터에 나오는 거미 몬스터처럼 생기기도 한 것 같은 구형 안드로이드는 진작에 가동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다. 아직 움직일 수 있으면 이런 고물상 판매 선반에 앉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이 액정화면으로 되어있었다.

"동병상련 느끼냐?"

액정 가까이까지 갔던 흰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손가락이 뒤로 물러났다. 손가락의 주인은 카운터를 지키고 서 있는 배 나온 금발머리의 백인 남성에게 대꾸했다.

"아뇨? 생소한 공정을 거쳤길래 흥미가 생겼을 뿐입니다만"

마치 안드로이드란 이런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디자인의, 약간 거북목 기미인 로봇이 서 있었다. 제작할 때 발주자가 미니멀리즘과 깔끔함을 몹시 힘주어 강조한 게 틀림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절을 제외한 모든 곳이 불투명한 하얀색 합성수지로 마감되어 있었다. 나머지 가동 부위에는 검은색 방수 도색이 가해진데다 이온 코팅까지 되어있어 절대로 물이 샐 걱정은 없어보였다.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은 탄력있는 수지로 이루어진 입 부분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패션샵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얼굴 없는 마네킹처럼. 이 입이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보통은 단가를 아끼기 위해 그럴싸한 입만 만들어 두고 음성은 목이나 입구멍 언저리에 간단한 음성 출력 단자를 장치하기 마련이다. 이 안드로이드는 입술은 물론이고 고무 혓바닥, 비록 홈도 없는 플라스틱 부품이지만 그럴싸하게 생긴 이빨까지 달려있었다. 그 때문인지 로봇의 발성은 인간의 것, 그 중에서도 점잖은 중년의 목소리와 거의 흡사하게 들렸다.

다만 그 외의 요소, 아마도 정규 공정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취향껏 고른 것으로 보이는 복장은 그런 본체의 모범적인 기성품같은 디자인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누렇게 낡아가는 사냥용 패딩과 털모자, 발목까지 내려오는 더플코트. 등에는 오래 썼음직한 저격소총을 매고 있었다. 마치 폭주족이나 끼고 다닐 것 같은 손가락 없는 가죽 장갑에, 털이 군데군데 빠진 월동용 털바지. 주제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워커는 꽤 튼튼해 보이는 상품이었다. 고물상의 주인인 남자가 재차 그 안드로이드에게 물었다.

"같은 안드로이드잖아, 정지된 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이거지. 뭐, 불쌍하거나 그런 게 느껴지냐?"

로봇의 머리 전면부,입 위에는 먹물처럼 흐릿한 윤곽의 커다란 눈이 떠올라 있었다. 흔히 구글눈Google Eyes이라고 불리는 그런 그림체였다. 가게 주인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그림 눈알 또한 짧은 잔상을 남기며 그 쪽을 바라봤다.

"진지하게 물으시는 겁니까?"

"글쎄다, 그냥 궁금하면 안 되냐? 너도 손님 없이 하루 종일 가게 지키고 있어봐. 심심해서 뒈질 것 같아지지"

"그럼 우선 이걸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사유구조체는 사회적인 유기체와는 달리 유사한 형태를 보고도 동질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회적인...뭐?"

"지금 맥락에서는 인간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대충 말해서 당신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좋아, 앞으로는 그렇게 좀 덜 좆같이 말해봐. 난 가방끈이 짧거든"

로봇의 안면부의 눈알이 잠시 해골 모양으로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알면서 일부러 그런거야, 병신아'와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점주는 알지 못했다.

"비슷하게, 아니면 호감가게 생긴 친구에게 이끌리는 건 당신들의 유전자에 그런 경향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로봇은 유전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좀 무섭구만. 그럼 너네는 자비심이나, 뭐, 동정심이나, 그런 걸 못 느낀다는 말이지 않냐? 영화에 나오는 개새끼들처럼? 인간한테 총구도 거리낌없이 들이대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 일 안 일어납니다. 저는 어차피 인간이 제조한 로봇이니, 인류에 대해서는 애착을 느끼도록 프로그램이 돼 있죠. 제조회사도 그 정도 안전장치는 집어넣어 둡니다"

"뭐야, 그럼 너네는 같은 로봇보다 인간을 더 좋아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냐? 참, 묘하구만"

그러니까 로봇은 같은 회사의 양산형한테도 동족 의식을 품지 않는다고. 안드로이드의 안면부에 빠르게 폭탄 그림이 스쳐지나갔다. 점주는 보지 못한 모양이지만.

"뭐, 그런 셈이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당신의 한가로운 오후 시간에 소소한 즐거움을 드리게 되었는데, 혹시 호의를 보여주실 생각은 있으십니까?"

"엉? 내가 왜. 심심해서 질문한 건데 뭐, 팁이라도 달라는 거냐?"

"구체적으로는 .408을 양심적으로 3%정도 깎아주신다면..."

"없어, 없어! 너넨 자비심은 없으면서 마귀새끼들마냥 금전욕은 기본으로 탑재하고 앉았냐? 나한테서 돈 뜯어내려면 세금 징수원 정도는 데리고 와!"

"...아, 예"

언젠가 정말로 인간의 머리에 납탄을 박은 기계가 생긴다면 그건 틀림없이 이 가게에서 나올 것이다. 탄환 진열대 앞에 서서 쇼핑 바구니에 저격용 탄약 상자를 집어넣으며 안드로이드는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는 점주를 향해 엿을 날렸다. 물론 속으로만.

"에이브, 에이브!"

"가게 안에서 뛰지 마, 자식아!"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는 점주를 아랑곳하지 않고 저 멀리서부터 우다다다 누군가가 뛰어왔다. 안드로이드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쪽이 조금 더 새 것처럼 보였다. 등도 쭉 펴고 있고 때도 타지 않았다. 옷은 입지 않아서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동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잠깐 일로 와 봐요! 빨리!"

에이브라고 불린 로봇한테 달려가서는 팔을 붙잡아 끌며 팔짝팔짝 뛰었다. 흡사 어린아이같은 모습이었다.

"아, 알았어 끌지 마, 끌지 마. 총알 쏟아진다"

어지간히도 세게 끌어당기는지 그대로 게걸음을 걸으면서 기우뚱 기우뚱 끌려갔다.

로봇이 끌고 간 곳은 에이브가 있던 곳의 정반대편이었다. 원래 이케아 샌프란시스코 지점이었던 폐건물을 개조한 가게였다. 한 쪽에서 반대편까지 이동하려면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는 말이다. 무슨 일인가 보려고 따라온 점주가 파김치가 되어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켠에서, 안드로이드는 보란듯이 당당한 포즈로 거기 놓인 물건을 가리켰다.

진열되어 있는 것은 희한하게 생긴 오토바이였다. 대문짝만하게 'SF'라고 써붙인 듯한 미래지향적인 외견. 거기다 색은 또 형광푸른색이었다. 뒷꽁무니 양 옆에는 큼지막한 부스터까지 달려있는데다, 번쩍번쩍하게 광칠까지 해 놓았다.

"...디자인이 좀 많이 낡았네"

"개쩔죠!!"

시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에이브의 말허리를 끊으며 로봇이 기세좋게 소리쳤다. 양 주먹을 꽉 쥐어 들어올리고. 안면부 디스플레이에는 커다란 별모양까지 그려놓고서.

"그런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에이브가 혼잣말처럼 의문을 던졌다. 뒤에서 숨을 몰아쉬던 점주가 손등으로 턱을 쓰윽 닦으면서 대답했다.

"...그야 골동품이니까 당연하지. 가와사키 닌자 시리즈, NM30-RX, 진품이라면 100년은 족히 넘은 화석이야. 이렇게 상태 좋게 남아있는 건 기적에 가까워"

"그건 또 뭔...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또 무고한 채권자의 삥을 뜯으셨나요?"

"아니야 자식아, 내가 무슨 고리대금업자냐! 정당한 사업가라고, 난"

그러시겠죠, 라고 대답하듯이 에이브가 스마일 아이콘을 띄웠다. 닌자 바이크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장에게는 들키지 않았다.

"두 블럭 윗쪽 슬릭 할배가 요전에 뒈졌거든, 노환으로. 엄청난 편집증이라 집을 알카트라즈처럼 꾸며놓은 할배 말이다. 그것때문에 발견이 좀 늦었다더라고. 도시 경비대가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아아, 엽기적인 이야기는 흥미 없으니까 본론만 말씀해주세요"

"진짜냐? 이래서 로봇은! 아무튼 좋아, 할배 유산을 처리하고 있는데, 비밀 지하실에 이거랑 구시대 이륜차가 몇 대 박혀있던 거야. 그 영감이 수집 취미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런 물건을 꽁쳐두고 있는 줄은..."

"상속인 따로 있지 않았습니까? 용케 빼돌리셨네요"

"빚문서 들이대니까 업어가시라고 절을 하더라고. 그래봤자 이거 하나 뜯어내는 게 고작이었지만"

"알뜰하시네요 사장님. 그런데 그 영감님, 어떻게 이런 걸 장만했을까요?"

"뭐냐, 진짠진 몰라도 구시대 달러화는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 그거 아냐?"

"그거 요새 거의 가치 없잖습니까, 중앙본부에 한트럭 가져가면 건빵 한 봉지랑 바꿔준다던데"

"그러니까, 세상이 대충 망하기 전에 산 게 아니겠냐, 이 말이지. 예전엔 여기 꽤 부자 동네였대잖냐"

"오호라...그래서 코언, 이게 뭐?"

"사줘요!"

코언이라 불린 로봇이 두 팔을 번쩍 들며 말했다. 고물상 주인과 에이브가 거의 동시에 그 쪽을 쳐다봤다. 에이브의 디스플레이에 마침표 세 개가 전광판처럼 지나가고 나서, 그는 코헨의 어깨에 양 손을 척 얹었다. 그리고 그의 디스플레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

"...잘 들으렴, 코언. 나는 네가 드디어 진정한 자아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단다. 우리같은 자율사고형 로봇들은 가동되고 나서 얼마간은 일종의 유년기를 거치게 되지. 회사로부터 주어진 자아가 아닌 진정한 자아를 획득해야만 독립된 자율사고형이 되는 거야. 자아란 즉 '나'를 자각하는 것이고, 그 발단 중 하나는 소유욕을 가지는 것이지"

"아무튼 기념으로 사주실거죠?"

"끝까지 들으렴 우리 깡통아. 어쨌든 우리는 한 번 망하긴 했지만 미국에 살고 있고, 이 나라는 자유시장을 수호한단다. 개인과 개인이 재산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음...저희는 한가족이죠?"

"비록 내가 널 조립하고 한지붕에서 재우고는 있지만, 로봇에게는 가족이란 개념이 없단다. 그리고 넌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방금 전에 성인이 된 거고, 다 컸으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란다"

"아잇 씨, 매달 정부지원금 받잖아요! 돈 있으면 사줘요 그냥!"

"자치정부는 우리보고 경비대 노릇하라고 세금 깎아서 돈 주는거지 너 바이크 사라고 주는 게 아니란다 깡통아. 우리 한 달 장비 유지비가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있니?"

"그럼 뭐 어쩌라는 거예요, 전 이 오토바이가 꼭 갖고싶은데"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면 안 되겠니?"

코언은 어깨 너머로 바이크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운차게 대답했다.

"아니오!"

"그렇게 말할 거 같긴 했어"

웃는 눈알을 보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화면에 해골을 띄운 에이브가 넌더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좋아, 그럼 차선책을 골라보자...혹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속담은 아니?"

"로봇이 밥을 어떻게 먹습니까, 대장님?"

"되도 않는 농담 집어치우자꾸나. 공금 횡령할 생각 말고 자비로 사자, 응? 취미용 용돈은 알아서 벌어야 하지 않겠니"

"레이더 떼거지가 이틀에 한 번은 국경 넘어와서 총질하고 가는 세상이잖아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 어디서 일자리를 찾는단 말입니까?"

"돌아서 앞으로 걸어간 다음, 문 밖으로 나서보렴. 세상은 넓고, 그 중에는 의외로 다양한 일거리가 많이 있단다"

"이 시국에요?"

"열심히 찾아보면 나오게 돼 있어, 깡통아"

"지금 나 때는 말이야 화법이 먹힐 시대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혹시 틀딱이세요? 아, 틀니 낄 잇몸도 없지 참!"

"좋다. 나는 내 복제본을 제조한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싯가 5달러짜리 청소로봇을 조립해버린 모양이군. 처음 만들어보는 안드로이드였으니 어쩔 수 없지. 당장 집에 돌아가서 동체 한 번 뜯어보자. 메인보드로 뭘 썼었나 봐야겠다"

"꺄악! 너무해! 로봇살해자! 살려주세요, 인격 있는 안드로이드를 분해한대요!"

"괜찮아. 억지만 안 부리면 아무짓도 하지 않으니까. 아니면 뭐냐, 지금 이 자리에서 뜯어주랴? 네 금전 감각은 어떻게 되어먹은 거냐? 진짜 청소로봇이야? 골동품이라잖아. 틀림없이 눈이 튀어나오게...그게, 얼맙니까?"

한참을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던 로봇들이 갑자기 골동품점 주인을 돌아봤다. 뚱뚱한 남자는 두 로봇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품 속에서 중간 사이즈의 공책을 꺼냈다. 그게 좍 펼쳐지자 로봇들은 눈을 크게 만들었다가, 곧 서로를 마주보았다

"와, 쎄네"

"그거 진심으로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매기신 겁니까?"

"거럼. 100년 묵은 골동품 아니냐. 그리고 내가 그 할배한테 빚진 게 얼만데. 본전에 이자까지 쳐서 뽑아내야지"

도로 공책을 집어넣으며 점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별나시네요, 수필이라니"

"너 모르는거냐? 안드로이드도 모르는 게 다 있네. 하긴, 당연한가? 해킹 막으려고 이렇게 구식 회계장부 만들어 놓는 가게 많아. 알아두는 게 좋을 거다"

"합리적은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네요. 유용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코언, 소감은?"

에이브가 돌아봤다. 코언은 대답 대신 꼿꼿하게 섰다. 화면에는 돌아가는 모래시계. 고민중이로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화면이 다시 눈알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직립 자세를 풀더니,

"사겠습니다!"

모니터에 띄운 별 세 개. 에이브의 모니터에는 해골이 세 개.

"좋아, 용기는 칭찬해 주지..."

"확실히 용기가 있네. 아니, 배짱인가? 이만큼 질러주시겠단 거잖아!"

"...하지만 우린 돈이 없다. 만약 정부지원금을 박박 긁어모은다 해도, 저만큼은 못 내. 어떻게 살 생각이지?"

잃을 게 없는 점주가 껄껄대며 웃는 것을 배경삼아 에이브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로봇에게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인 것 같았다.

"뭐...이렇게 되면 대장의 구시대적인 발언을 수용해야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코언이 얼굴에 학사모를 띄우고 턱을 만지며 말했다.

"스무스하게 시비를 터는 실력 하나는 여느 자율사고형 안드로이드 못지 않구나"

"별말씀을요, 점장님, 이거 킵 가능한가요?"

"골동품 가게에 킵이 어딨냐, 깡통아"

주인은 성가시다는듯이 소리쳤지만, 곧 눈알을 굴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네가 돈을 가져올 때까지 아무도 안 사가면 되는 거 아니겠냐? 어차피 골동품이라 금방 팔리지도 않을텐데"

"그것 참 합리적이네요!"

"합리적인 사고기능은 여느 청소로봇만도 못하구나"

에이브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코언은 기운차게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도 팔짱을 끼고 관망하고 있던 에이브가 뒤늦게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 어디가게?"

"말하셨잖아요, 돈 벌러 가는거죠! 이렇게 된 이상 1분 1초가 아쉬우니까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구요!" 대충 이맇게 조잘대며, 코언은 그대로 걸어서 선반 저 너머로 사라졌다.

에이브와 골동품점 주인은 그대로 서 있었다. 있다가, 주인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냐?"

"글쎄요, 100년 걸려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치? 그런데 왜 안 말렸어"

"한 번 머리가 깨져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요."

"안드로이드도 충격 요법이 먹히냐?"

"됩니다, 저와 동일 기종은 사고구조가 특이해서. 자, 계산하러 가죠"

그러더니 에이브는 태연하게 쇼핑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려 했다. 아무리 뻔뻔한 점장이라도 이건 당황했다. 털레털레 걸어가는 안드로이드를 뒤에서 잡아세우는 목소리가 뒤집어진 걸 보아하니.

"야, 잠깐만. 그 놈 안 기다려?"

걸어가다 말고 안드로이드는 뒤를 느릿느릿 돌아봤다. 탄약상자가 반쯤 들어찬 쇼핑바구니가 팔 부분에서 건들건들 흔들렸다.

"기다려도 안 올 건데요 뭐. 해서 뭣합니까?"

"...진짜 피도 눈물도 없네, 로봇이란 놈은"

"합리적인 거죠. 아, 만약 이리 돌아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파편해안 수비대 아시죠? 티후아나 쪽 길목"

코언이 간 순간부터 에이브의 새하얀 안면에 눈알조차 비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점장을 두고 로봇은 다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아무도 정비하지 않게 되어 너덜너덜한 5번 국도를 낡은 밴 하나가 달리고 있었다. 한 때는 하얀색이었겠지만, 지금은 먼지구름을 뒤집어쓴지 너무 오래되었다. 곳곳에 움푹 패인 흔적, 구질구질한 황토색으로 물든 프레임에 가득한 땜질 자국. 비록 열심히 세차를 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나, 후줄근해보이는 인상은 감출 수 없었다.

원래 한가득 펼쳐져 있어야 할 바다는 쌓아올린 콘크리트 잔해로 이루어진 벽에 막혀 보이지 않았다. 벽이 아니라, 방파제였다. 콘크리트 벽 너머의 바다는 온통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고, 먼 바다에서는 이따금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파도는 커다랗게 굽이쳐 끊임없이, 언젠가 부수어버리겠다는듯이 방파제를 때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5번 도로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콘크리트 더미와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를 배경삼아 밴은 굴러갔다. 삭막한 풍경이었다. 마침내 한 때 주유소와 모텔이 있었던 공터에 도착하고, 에이브는 밴을 세웠다.

탄약이 한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사방에 깔린 모래주머니 바리케이드를 넘어 향한 곳은 이제는 주둔지가 된 모텔 건물이었다. 주둔이래봤자, 세 명밖에 없다. 중앙 정부도 버린 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로봇이 현관문을 열자 허름한 외관과는 다르게 리모델링을 거쳐 만들어진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다. 흰색과 회색 색조의 디자인으로 통일된, 청결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곳곳에 총알자국이 좀 보이는 것만 빼면. 로봇은 상자를 문 옆에 놓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은 대여섯개쯤 있지만 여기 역시 공사를 거친 뒤다. 실제 방으로 쓰는 공간은 세 칸밖에 없다. 로봇은 그 중 제일 안쪽에 있는 방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대답은 없었다.

로봇의 얼굴에는 아무런 문양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로 계단을 걸어내려가서 현관문 반대편의 부엌으로 향했다.

무미건조하지만 생활감이 있는 부엌이었다. 냉장고도 있고, 기초적인 조리도구도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찬장에는 식기 대신 온갖 다양한 약병들이 들어차 있다는 정도였다. 로봇은 벽에 걸려있던 주전자를 내려 수돗물을 받았다. 이 수도는 건물 옥상의 물탱크에 연결되어 있었다. 가끔 내리는 비와 보급차가 아니면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물은 아껴써야 했다. 주전자를 전기 레인지에 올리고, 에이브는 주방의 작은 2인용 테이블로 다가갔다. 의자는 두 개. 정상적인 크기의 의자 하나, 그것보다 1.5배는 커 보이는데다 다리를 두어개 덧댄 것처럼 보이는 의자. 로봇은 평범한 쪽 의자를 빼 앉고, 가슴주머니에서 작게 말린 필름을 꺼냈다. 손으로 잡고 쭉 늘이자 금세 얼굴만한 크기로 변하더니, 신문처럼 보이는 레이아웃을 띄웠다. 로봇이 의자 옆으로 삐딱하게 돌아앉아 한 팔은 등받이에 걸치고, 한 손으로 그걸 잡고 보고 있었을 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봇은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와라, 커피 마실래? 허브차 마실래?"

묵직한, 징 박힌 부츠가 타일에 부딪히며 나는 발소리가 주방으로 다가왔다. 의외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삼, 됐어요. 캐모마일요"

주방으로 들어선 것은 2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덩치 큰 백인 남성이었다. 진한 보라색 눈에 검고 긴 더벅머리. 털. 온통 털이었다. 턱수염은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덥수룩했고, 구렛나루는 길게 내려왔으며, 심지어는 눈썹까지 털이 빽빽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늑대인간의 이미지라 하면 한 번에 설명이 될 것이다. 치수가 아슬아슬한지 꽉 끼는 전투복 사이로 언뜻 보이는 손목과 발목에도 털이 무성했다. 특이하게도, 팔과 척추를 따라 크기가 상당한 기계장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물 덜 끓었으니까 앉아서 기다려. 그리고 아껴먹어라. 허브는 비싸"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기와는 다르게 톤이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코언이 안 보이는데요?"

"일단 앉아. 차 마시면 얘기해줄게"

남자는 순순히 큰 쪽의 의자에 앉았다. 철제 의자의 프레임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에이브는 전자 신문을 넘기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로봇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모양이었다.

주전자가 증기를 뿜었다. 에이브가 일어나 찬장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컵을 꺼내고, 카운터의 수납장에서 꽃이 든 작은 병을 꺼내 주전자에 털어넣었다. 수납장 안에도 몇 가지 기호품을 빼면 약병과 의료기구가 가득했다.

에이브가 컵을 주자, 남자는 바로 후루룩 털어마셨다.

"식혀먹어라, 입 덴다"

"내열 되는데요 뭘"

표정이야 없지만, 어딘가 못마땅하다는듯한 분위기의 로봇이 말했다.

"인간이면 인간다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한다, 티백"

티백이라고 불린 남자는 벌써 반쯤 빈 컵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꼭 그래야 하나요?"

"그게 인간미라는 거야. 사소한 거라도 신경을 쓰는 게 좋아"

"어렵네요. 어쨌든 걱정 고맙습니다 에이브. 그래서 코언은 어디 있죠?"

"그러니까...내가 그 놈 보고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던 건 기억하지?"

"예. 저는 별다른 문제 못 느끼겠던데요"

"깡통이랑 자율사고형은 차이가 있어. 자율사고형은 다 처음 제조됐을 때는 깡통이야. 몇 번 대화 나눠보면 알아"

"그래요?

"그런데 오늘 뭔가 되려는 조짐이 보였지. 볼거리가 많은 만물상에 데려가기를 잘했어"

"그거 잘 됐네요"

그리고 티백은 다시 컵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가출했다"

캐모마일 티가 침과 함께 성대하게 분사되었다.

"가...무슨 소립니까 그거?!"

티백이 입에서 혼합물을 줄줄 흘리면서 콜록거렸다.

"알지? 내가 겁도 많고 나이도 많은 거. 난 그 놈 찾으러 가기 싫어. 그래서 너 오는 걸 기다렸던 거고"

"저보고 찾아오라고? 어...어떻게요?"

머리에서 더러운 물을 뚝뚝 흘리면서, 미동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신문을 보는 에이브가 그렇게 말하자, 헹주를 집어들어 테이블을 닦으며 티백이 대꾸했다.

"있어보자...헤어진 게 첩의 만물상이고, 그 녀석은 맨몸이었으니까. 그 언저리에 있겠지? 물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멀리 이동했을 수도 있고. 나와 동일한 사고회로니"

"듣기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소리네요 그거...붙잡지는 않으신 겁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내 기종은 기능 절차가 독특해. 제대로 기능하려면 강한 자극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다 부서지면 어쩌려고요?"

"뭐...다시 만들어야지. 로봇은 그걸 위해 창조된 거니까"

티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편으로는 에이브의 머리까지 뿜은 차를 반들반들하게 닦아내고, 헹주를 치우고 있었다.

"아무튼 좋습니다. 밴 가져가도 되죠?"

"너말고 쓸 놈 없다"

"허락은 맡아야죠. 아까 당신도 비슷한 소리 했잖아요"

"누구랑은 다르게 학습능력이 좋아. 다녀와라"

"멀쩡하든 부서져있든, 회수는 해 오겠습니다. 저녁밥 부탁드릴게요"

서둘러 나가는 티백의 등 뒤에서, 그제야 고개를 들고 에이브가 크게 외쳤다.

"비프 스트로가노프 어때?"

그 말에 완전히 사라졌던 티백이 문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오늘 귀가하고 나서 제일 반가운 소리네요, 그거"

해가 졌다. 온통 깨진 아스팔트와 붉은 흙먼지 뿐인 파편 해안에 땅거미가 내렸다.

파도소리는 방파제에서 5번 국도를 사이에 끼고 떨어져 있는 주둔지에서도 들릴 만큼 컸다. 밤이 되면서 물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흡사 무언가 거대한 것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왕왕 울려퍼졌다. 파편해안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으려 하는 이유였다. 폐허뿐인 황무지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

약한 화면의 불빛이 부엌에 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이브는 여전히 타블렛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적당히 사고 기사를 훑다가, 바다와 관련된 기사가 있으면 스와이프해서 보관해뒀다. 그 중 유독 많이 보이는 것은 '게'에 관한 것이었다. 핀처 캔서, 에메랄드 시티 근처까지 출몰, 지옥의 청소부가 돌아왔다-한 대당 현상금 500달러 지급, 해안 미화 모듈의 행동범위 확대에 따른 경계 강화 알림...그 중 사진에는 웬만큼 큰 사람보다 더 큰, 끔찍하게 생긴 집게발이 달린 다족보행 로봇이 찍혀있었다.

문득 에이브는 화면 위를 끌어내려 시계를 확인했다. 심플하게 시간만이 표시된 시계는 12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에이브는 타블렛을 도로 말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자, 팟 하고 불이 들어왔다. 에이브는 거실로 나가면서도 천장에 손가락질했다. 팟, 팟 하고 연달아 불이 들어왔다. 거실 테이블로 다가가 거기 놓인 중간 크기의 케이스를 열었다. 칩처럼 생긴, 뒷부분이 길쭉하게 부풀어오른 전지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에이브는 그 중 하나를 꺼내어 뒷통수와 목의 사이 부분에 난 작은 홈에 끼워맞추고, 똑, 하고 부푼 부분을 부러뜨렸다. 90도 각도로 꺾인 전지를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로봇에게는 폐가 없는데도.

현관 옆에 뒀던 탄약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다. 향하는 곳은 모텔 건너편의 작은 별채. 그 앞에서는 커다란 휴대용 발전기가 전깃줄을 달고 달달달달 돌아가고 있었다. 문을 열자, 차라리 밖에서 비치는 달빛이 더 밝게 보일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에이브는 별 일 없이 저벅저벅 걸어들어갔다. 애초에 그에게는 나이트비전 기능이 있었다. 조명을 켤 필요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총과 폭탄, 화약이 가득한 벽 한 켠에 상자를 놓고, 발걸음을 돌려 반대편의 냉장고로 향했다. 업소용처럼 보이는 제법 큰 냉장고였다. 문을 열자 희미한 불빛이 창고 안에 은은히 퍼져나갔다. 밀봉 포장된 고기, 감자, 치즈 등을 한아름 안고 에이브는 창고를 뒤로 했다.

그대로 주방에 가서 카운터에 안고 온 물품들을 우르르 쏟아놓았다. 의자에 더플코트를 벗어두고, 얇은 스웨터 소매를 걷어붙였다. 요리가 시작되었다.

감자를 잘라서 튀기고, 양파를 썰었다. 고기는 살짝 덜 익혀서 플레이팅. 그 위에 얹을 소스도 준비했다. 물론, 에이브의 본래 기능은 가사일 보조다. 미트 스트로가노프를 만드는 법 따위는 굳이 공용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필요 없이 기본으로 내장해두고 있다. 다만 그 움직임은 단순히 머리로 알고 있어서가 아닌, 오랫동안 만들어 본 경험자의 것이었다.

에이브는 요리책에 본보기로 실릴 법한 미트 스트로가노프를 식탁에 놓고 앉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기다렸다.

시간이 지났다.

에이브는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요리는 이미 식어버렸다.

문 밖이 서서히 떠들썩해지더니, 곧이어 기운차게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좀, 손으로 열라고!" 티백의 고함소리가 뒤따랐다.

우당탕탕 하고 쫄딱 젖은 코언이 주방으로 굴러들어왔다. 저번 아침에 비하면 꽤나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다녀왔슴다!!"

디스플레이에는 스포츠 시상식에서나 볼 법한 트로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커다란 의자를 발견하고 털썩 걸터앉았다. 에이브는 딱히 말리지 않았다.

뒤를 따르듯이 티백이 어지간히 지친 표정으로 털레털레 걸어들어왔다. 역시 쫄딱 젖은 몰골로. 전투복은 군데군데 뜯겨나가고, 팔에 달린 강화 그래플 암은 어딘가 어그러진 것처럼 들쭉날쭉하게 접혀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온 티백은 의자에 앉으려다가, 싱글벙글 다리를 파닥거리고 있는 코언을 보았다. 잠자코 강화 기계손을 펴서 코언의 뒷덜미를 잡고, 얌전히 옆에 내려놨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였다.

"다녀왔습니다"

"아니, 거기 내 자린데?!"

"내 자리야. 너 자리는 없어, 아직"

"빨리 새 의자 좀 만들어 줘라. 한 달째잖아"

"아, 그럼 난 어디 앉으라구요!...저 카운터에 앉아도 돼요?"

"안 돼"

"아시잖아요, 보통 바빠야 말이죠..."

시끄럽다. 한 명은 지친 목소리로, 한 대는 차분하게 말하고 있는데 또 한 대가 신이 나서는 눈치도 보지 않고 큰 목소리로 끼어드니 교통정리가 안 되었다. 이제는 모니터가 작동하는 에이브가 디스플레이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띄우며 말했다.

"다 좀 닥쳐봐, 그래서 코언, 어떻게 됐지?"

"닥치라매요?"

"내가 말하라고 할 때만 입을 열라는 뜻이란다, 깡통아"

"깡통 아닌데? 아무튼요! 돈 주겠다는 사람들을 만나서요! 따라갔더니 엄청 어두웠거든요? 근데 거기 엄청난 게 있는거예요!"

"이 놈한테 설명을 시킨 내가 바보였지"

"그래서 전 으악, 끝났다! 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티백이라고 했잖아"

"아, 맞다. 이상한 이름"

"티백이라고. 진짜 팬다"

"아무튼 개쎄서요! 빡! 하니까 쀼잉...하고! 이겼다! 그리고 돌아왔어요"

"얘 들고 오면서 어디 부딪혔니?"

"멀쩡할걸요, 아마도...조립할 때 어휘력이랑 관련된 부품 뭐 하나 빠뜨리신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가봐. 아무튼 코언. 목표는 달성했니?"

"예?"

"전리품, 깡통아. 전리품. 돈 벌겠답시고 나갔잖아"

"아, 맞다"

코언은 자랑스럽게,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왼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폈다.

툭, 하고 돌고래 모형이 달린 키홀더가 떨어졌다.

잠시 셋 다 말이 없었다.

화면에 터지기 일보직전인 폭탄을 띄운 에이브가 천천히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귀여운 우리 깡통아. 이게 뭘까?"

"돈 준다던 사람요! 그 사람들 말한 곳에 있었어요. 비싸다던데요?"

"으음...그래...잘했다. 일단 가서 씻어라. 하수구에 빠진 울버린같은 몰골이로구나"

"옛써!"

신이 나서 뛰어가 사라지는 코언을 무시하고, 에이브는 해골을 띄우고서 이미 고기를 썰어 입에 넣기 시작한 티백을 돌아봤다. 티백이 열심히 우물거려 입 속의 고기를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저 놈, 원래 얌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내 기종은 좀 특이해서, 사고 알고리즘이 바뀌면 행동 패턴도 변하거든. 그런데 저 정도는...아무래도 만들 때 실수한 게 맞나봐"

머리를 싸매는 에이브에게 티백이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다음에 잘 하면 되죠, 뭐"

"부품이 없어서 저 놈한테 내 온도 조절 장치하고 보조 배터리 떼어줬던 거 기억하고 하는 소리냐? 안 돼. 부품 없어서 두 대째는 못 만들어...그거 다 먹으면 정황보고 좀 해 다오"

티백은 옆에 두었던 스테이크 나이프를 다시 집어들며 말했다.

"먹으면서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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