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웃는다. 나는 네 억지 웃음을 구분할 수 있다.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할 때 너는 입꼬리를 위로 끌어 올리기만 하고 눈은 접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나는 네 진짜 웃음을 구분할 수 있다. 네가 진짜로 즐거워서 웃을 때 너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게 눈을 찡그린다. 무지개처럼 휘어지는 눈꼬리. 그 아래 구겨지는 주름살. 주름이 아니고 보조
너 원래 거짓말할 때 귀 만지작거리잖아. 웃는 낯으로 제 책을 돌려주며 형은 덧붙였다. 누군가를 따라하기 위해서는 들키지 않고 그 사람을 관찰하는 게 먼저야. 그러니까, 넌 첫 단계서부터 실패한 거지. 책을 돌려받았다는 안도감보다 형한테 들켰다는 사실이 민망해 난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 자리에 가만 서 있었어도 몰랐다, 고맙다
1984년, 그가 서른여섯 살 때의 일이다. 네불라는 스페인 비야보나의 교도소에 입소하고 나서 한 번도 같은 방을 쓰는 재소자들과 말을 트고 지낸 적이 없었다. 일종의 ‘신입방’ 시절, 그는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신문만 읽었다. 신문을 쳐다봤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여기는 스페인 교도소였고 네불라는 스페인어를 읽을 줄 몰랐으니. 하지만 16페이지
네불라를 만난 이후 원치 않게 한국에 관해 숙고하게 됐다. 순전히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 아주 대단한 나라, 불고기 김밥과 김치. 그가 일했다는 세탁소의 사장이 한국계 미국인임을 감안하면 잘 아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한류니 BTS니, 마트에 드나드는 중등 학생이 떠드는 걸 들어보면 한국이 요사이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는 잘
네불라는 이제 홀로 그 빈방, 상자의 모양을 모방한 공간 안에서 주어진 것들 사이에 남게 되었다. 모든 주어짐이 부유를 상징하지 못하는 듯, 주어진 의자, 주어진 테이블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새것에 가까웠지만 빈곤이었다. 광원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사방이 막힌 이 상자 안에서 날개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움찔거리며 네불라는 혹시라도 다시 시도해 보자면 광
“굿 걸이시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혹은 중동아시아계로도 보이는 한 여성이 스타벅스의 동그란 원목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거리의 익숙한 가게. 의자도 탁자도 그대로였으며 바뀐 건 입구의 깔개 색깔 뿐이었다. 용과 리프레셔를 받아 온 여성은 드디어 숨을 쉬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음료를 빨아들였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