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먀 딥스나 에유
카디젬 × 베이조먀
베이조 행성을 침략하여 2319년경 합병했고, 2328년부터 2369년까지 40여년간 식민통치를 했으며, 갖은 수탈과 탄압을 일삼았다.
69년 카다시안이 베이조에서 철수하고 테록노르라는 이름의 정거장이 딥스페이스 나인이 됨. 제이미는 이때 40살. 젬먀가 처음 만난 건 45년, 제이미가 26살이고 미아가 17살이던 해.
28년에 태어난 미아(수탈), 19년에 태어난 제이미(합병) ->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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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총사령관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미아의 귀에 낯선 음성이 들려옴. 초록색 비늘을 온몸에 뒤덮은 파충류형 휴머노이드의 목소리는 답지않게 상냥한 구석이 있었음. 상냥함이라는 게 어울릴 여지가 없는 공간에서조차 어떤 선의는 끈질기게 명을 이어나갔음. 명백한 위로의 표시에 미아는 빈정거리지도, 고마움을 표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음.
코르모 수용소는 갈리텝 수용소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음. 총독(갈텝?) 서세이와 걸 제이미, 이 두 젊은 카다시안 쌍둥이 남매는 험지라고 불리던 N급 행성인 베이조 V를 맡아 코르모 수용소를 세웠음. N급 행성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보자는 명목으로 베이조 인들을 강제 이주 시켰고, 성공적으로 그들을 정착 시켰음. 정착은 감금의 다른 이름이었음. 코르모 수용소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세 살 먹은 바조란 아기도 알았음.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고 거의 제 세상입네 행세한다는 쌍둥이에 대한 소문은 기가 막히게도 빨리 퍼졌음. 성공 가도를 빠르게 질주하는 서세이와 제이미 남매는 뭇 카다시아 인들의 질시를 받기 충분했으나, 그들은 질시를 단숨에 종식시킬만큼 무자비하게 일대를 휘어잡았음. 비명이 남매의 행진곡이고 피가 남매의 융단이었음. 그러므로 저항 운동을 하는 베이조인들은 남매를 반드시 처단해야만 했음. 더 이상 쌍둥이가 명성을 떨쳐서는 안 되었음. 카다시아의 괄목할만한 성공, 그 성공의 얼굴이 된 남매를 반드시 죽여 기세를 꺾어야만 했음.
암살 작전에 열일곱의 미아가 자원함. 그런 곳에 제 발로 들어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음. 별다른 이유는 없었음. 제이미와 서세이를 죽이고 싶었기 때문.
그녀는 베이조 V 출신이 아니었음. 그곳엔 연고도 없었음. 그러나 만나지 않아도 어떤 증오는 지나치리만큼 선연할 수밖에 없었음. 그녀는 베이조 사람이니까, 그리고 제이미는 카다시아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압제하고 누군가가 고통받는 그 세계 속에 둘 다 버젓이 살아 숨을 쉬고 있었으니까.
미아가 보급 물품을 담은 수송선에 몰래 몸을 싣고 후덥지근한 날씨의 5번째 행성에 내렸을 때, 그녀는 빠른 속도로 부패해가는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음. 매 순간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먼저 죽어간 동포들의 삶이 그녀의 혈관 속에, 심장에, 폐부에 응고하듯 빠르게 굳어진 채 박혔음. 어떤 분노를, 처절함을 안고 그녀는 도시를 시찰 중이던 걸 제이미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제이미의 눈에서 공포나 경악이 아닌 흥미와 의아함을 읽었음.
그렇게 미아는 코르모 수용소로 끌려 들어갔음. 벌써 이주 째 그녀는 이 감옥에 처박혀 있기만 했음. 마치 걸 제이미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암살범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것만 같았음. 죽음을 감수할 수 있다고, 그럴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인지도 벌써 이주째였지만 치기와 호승심, 그리고 자꾸만 사그러들어가는 분노로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었음.
“시끄러워. 조용히 하지 못해?” 심술궂고 퉁명스러운 카다시아 인 간수가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음. 그는 원시적인 철봉을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그 철봉에서 나는 시취를 마치 카다시아가 그에게 준 훈장인 양 자랑스러워하는 말종이었음. 미아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음. 두려워해서는 안되는데, 굽혀서는 안되는데,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의연하기에 열일곱이라는 나이는 지나치게 어렸음.
“어이, 거기 너. 나와. 걸 제이미가 찾으신다.” 카다시아 인 간수는 역장을 해제하고 미아를 향해 손을 까닥였음. 미아는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꼿꼿하고 곧은 자세로 일어났음. 떨리는 손을 감추려 주먹을 쥐었고, 간수는 그 꼴을 결코 좌시하지 않고 요란하게 비웃음.
심문실은 창문 하나 없이 고요했음. 몸에 딱 맞는 제복을 갖춰 입은 베이조 V의 카다시아 중앙군 소속 소령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음. 그는 한번도 실패한 적 없는 이 특유의 고압적이고 오만한 태도로 심문실에 들어오는 미아를 깔보듯 내려다보았음. 고개를 숙인 채 썩 질이 좋아보이는 가죽 신발을 내려다보던 미아의 머리가 갑자기 뒤로 홱 당겨짐. 미아는 눈이 부셔 눈을 깜박거렸고, 제이미는 천장의 등을 등진 채 미아를 향해 비웃음 어린 시선을 내비춤.
“몇 살이냐, 계집아? 열 넷? 열다섯?”
“그딴 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미아는 반항하듯 제이미를 노려보았음. 머리채를 당기는 악력이 조금 더 강해졌지만 그에 굴하고 싶지 않았음. 그 즉시 응징이 돌아옴.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고 혀 끝에서 비린 맛이 났음.
“물어볼 건 네 나이말고도 많아. 쓸데없는데서 힘빼지 말고 대답이나 하지 그래? 지금 반항해서 힘을 다 빼뒀다가, 정작 중요할 때 하나도 저항하지 못하면 어쩌려고.”
미아는 몇 번 더 반항하다가, “……열일곱이다.” 하고 답함.
제이미가 헛웃음을 침. “그보다 훨씬 어려보이는데, 열일곱이라고? 드디어 베이조 놈들도 고결한 피해자입네 구는 꼴은 집어치우기로 한 모양이구나. 너희 베이조 놈들은 항상 위선에 가득 차있지.”
스물 여섯의 제이미는 미아를 죽일 생각이 없었음. 무자비한 건 맞았지만 미아는 너무 어렸음. 어차피 그는 이 암살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음. 어리고 예쁘장한 소녀가 제이미를 죽이려드는 건 일종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일이었음. 베이조 저항운동가들은 미아가 잔인하게 처형당하고, 이를 전국민적 공분으로 삼아 저항의 불씨를 지피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음. 하지만 제이미는 그렇게 순순히 계획대로 따라줄 생각이 없었음. 서세이는 제이미에게 어서 저 계집을 죽이자고 했지만, 제이미는 느긋하게 웃으면서 저 계집을 카다시안 식으로 길들여보는 건 어떨까? 라는 괴상한 제안을 내놓음. 역프로파간다. 제이미를 죽이려 했던 베이조 인 출신 어린 암살자 계집, 카다시안에게 감화되어 이들을 따르다.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음. 제이미는 자신이 이 계집을 길들여보겠다고 호언장담하곤 미아를 곁에 둠. 미아는 제이미에게 자신을 죽이라며 울부짖었지만, 제이미는 그저 재밌다는 눈으로 미아를 바라볼 뿐이었음.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이 멍청한 계집아. 내가 널 살렸는데.)
미아는 부어오른 뺨을 제외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고,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됨. 제이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런 말의 존재 자체가 업이 되기도 함. 미아는 애써 고개를 저어 그 말을 속에 감춤.
제이미는 미아를 꾸준히 곁에 끼고 살았음. 첩으로 끼고 살지는 않았지만, 카다시아 인의 귀한 옷을 입히고 자신에게 시중드는 모습을 여러 번 대중 앞에 노출시킴. 미아는 모멸감으로, 분노로, 살았음. 그녀가 제일 큰 모멸감을 느꼈을 때는 제이미가 자기에게 단검을 쥐어줄 때였음. 어차피 저 계집은 날 죽이지 못해. 그는 호언장담했고 미아는 제이미를 찔러 죽이고 싶었지만 마치 정말 어떤 역장에 갇힌 것처럼 도저히 제이미를 찌를 수가 없었음. 그건 무력감이었음. 그리고 다른 고통받는 베이조 인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사실임.
둘은 7년을 동거했음. 미아가 스물넷 제이미가 서른셋이던 해에 제이미는 참전을 위해서 우주로 나갔고 미아를 두고 갔는데 줄곧 미아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서세이가 미아를 수도성으로 보내버림. 미아는 그때부터 이리저리 수용소를 전전했고 스물아홉의 나이에 구출되어 다시 저항군 세력에 합류함. 그런데 미아는 사실상 아무 쓸모가 없었음. 이미 그녀의 얼굴은 카다시아 장교의 애첩이라는 이름으로 팔려 있었고, 제이미는 단 한번도 미아와 내밀한 정보를 나누지 않은 데다가 수용소를 5년간 전전했기에 그나마 아는 것도 이미 케케묵은 정보가 되어버렸음. 베이조 저항운동 조직은 미아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고, 그래서 미아를 거뒀지만 사실상 미아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정말 그녀가 카다시아 인을 죽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였음. 왜냐면 정말 미아가 제이미를 암살하고자 했다면 7년의 시간이 있었으니까. 제이미가 미아에게 준 단검을 그녀가 항상 소지하고 있는 게 눈에 띈 것도 큰 마이너스 감이었음. 칼은 충분히 날카로웠고, 미아는 그걸 찌르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2년 뒤 베이조가 독립함. 미아는 자신이 이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음. 본성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얼굴이 팔렸고 베이조 5로 돌아가자니 지긋지긋했음. 거긴 미아의 실패를 상징하는 곳이었음. 애매한 미아를 베이조 저항군에서는 테록 노르를 탐사하라는 미션을 줬는데, 사실 중요하진 않고 실패한 프로파간다의 징표인 그녀를 나라의 기틀을 잡는 동안 치워버리겠다는 속셈이었음. 미아는 순순히 테록 노르로 갔고, 그곳에서 카다시아가 싹 철수한 지역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을 맞이했다가… 걸두캇이 포로로 남겨둔 제이미를 발견하게 됨. 피떡이 지고 산발이 된 머리, 웅크린 몸, 그런 게 처음에는 제이미를 제이미가 아닌 것처럼 만들었지만, “이젠 몇 살이냐, 계집아?” 하는 목소리에 결국 제이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
제이미는 다수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이면서, 연방에 크나큰 손해를 입힌 장군으로 플릿은 절대로 제이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두캇이 제이미를 잡아서 인계할 목적으로 남겨둔 거였음. 미아 역시도 제이미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음. 그러나 7년 만에 해방된 나라의 국민과 식민지배 전범으로 다시 만나는 건… 기분이 묘했음. 항상 제이미가 미아를 내려다보는 상황이었으니까. 제이미는 한결같았음. 여전히 차분하고, 담담하고, 못되었으며 자신이 한 짓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외려 당당했음. 그러나 미아는 이미 그 시절의 제이미를 한번,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고 그 생각이 딱히 바뀌지 못했다는 걸 깨달음.
어떤 지근거리는 사람을 마음 편히 미워할 수조차 없게 만듦. 나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나의 동포들을 죽인 남자가 사실은 거창한 악마입네 할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을 때, 과연 미아는 어떤 얼굴을 지어야 할까?
베이조 본성에서 재판을 받으면 백퍼센트 제이미가 사형 당할 것을 안 미아는 어찌저찌 제이미를 딥스나에서 재판 받게 만듦. 그리고 제이미는 딥스나의 유일한 죄수가 되었고, 미아는 임무를 끝내고 본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달라는 키라의 제안에 못이기는 척 딥스나에 남음.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찾기 위해서.
그래서 둘이 싸우기도 하고, 증오도 해보고, 조롱도 해보고,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를 증명하기 위해서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도 하고 그러는데. 도저히 죽일 수가 없는 거임…. 그렇다면 죽이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시간은 무엇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가?
제이미의 경우에는 약간 결이 다름. 그는 당시 지나친 압제로 베이조 인들의 불만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유화책을 쓸 생각이었음. 물론 미아가 지나치게 어려보이는 것도 한몫함. 그는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고, 미아를 살려준 게 딴에는 꽤 큰 선의라고 생각했으나 미아가 증오하는 반응을 보이자 의아해했었음.
미아를 성적으로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옆에 끼고 자긴 했고,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지만 깔아뭉개긴 했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름대로 제이미는 미아에게 자주 호의를 베풀었고 그녀는 제이미가 원한대로 베이조 출신 부역자가 되어 있었음. 그게 이 여자의 삶을 망쳤다는 걸 진작에 알았지만 미안하진 않았음. 미아가 다른 베이조 인들의 삶을 보면서 이따끔 두려워하는 낯인 걸 알았기 때문에. 편하게 살게 해줬잖아, 좋다매? 같은 거였음.
그러다가 미아를 잃었고, 본인 또한 전쟁에서 수도 없이 많은 플릿 장교와 베이조 인을 죽였음. 미안하진 않음. 내 행성, 내 사람들, 내 나라를 위해서 한 짓이니까. 그렇지만 서세이가 내린 몇 개의 잘못된 선택과 본인의 각종 전쟁범죄는 결국 패전한 장수가 짊어져야 할 업보가 되었고, 제이미는 두캇과의 정치 싸움에서 패해 그 모든 걸 짊어지게 된 거임. 그조차도 운이 없을 뿐이었음. 만약 이겼다면 지금쯤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건 걸두캇이었을 거임. 그는 사랑하는 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그녀를 위로하면서 다시 이 나라를 재건해나가면 된다고 달래고 있었을 테니까.
그랬는데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음. 그가 항상 곁에 끼고 살았던 베이조 인 포로. 미아. 7년이 지났어도 여전한 얼굴로 제이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제이미는 이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몇 살이냐고 물었음. 차라리 제이미는 미아가 자기를 죽게 놔뒀으면 했지만 - 서세이가 죽었으므로 - 미아는 그를 그렇게 놔두지 않았음. 제이미는 묘한 기시감을 느낌. 그가 했던 걸 이젠 미아가 다시 하고 있었음.
넌 왜 날 그렇게 싫어해? 라고 제이미가 물은 적이 있음. 난 네 가족들에게, 너에게 한번도 못되게 군 적이 없어. 너도 알잖아. 그런데 넌 왜 날 이렇게 싫어하지? 베이조 인과 카다시아 인이라는 걸 넘어서서, 그냥 개인 대 개인으로 날 용서할 순 없는 거야?
같은 말을 하는 제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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