𝐽𝑎𝑖𝑚𝑖𝑎𝑐𝑜𝑟𝑒

『반려종 선언』 내의 젬먀니스에 대하여

챕터 1이랑 2밖에 안 읽었음 ~.~

  • 젬먀란 무엇인가?

먼저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 내의 젬먀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전, 젬먀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젬먀란? 21세기를 살아가던 30대 초반의 정신과 의사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왕겜 촬영지)에 갔다가, 얼렁뚱땅 왕좌의 게임 속 세계관으로 트립하고 말았다… 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모두가 중세 시대의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미아는 이곳이 왕좌의 게임 속이라는 말도 안되는 사실을 겨우 받아들이고, 자신이 다치거나 죽지 않기 위해서 제이미 라니스터에게 몸을 의탁합니다. 제이미 라니스터는 권세가의 아들, 미아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을 훌륭한 근친충이고, 킹스랜딩을 벗어나지 않는데다가, 끝까지 살아남으니 한 곳에 머물며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미아에게는 최고의 선택지였죠.

하지만 자고로 인간관계라는 건 언제나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르는 법. 미아는 자신이 ‘미래를 볼 줄 안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제이미에게 자신의 쓸모를 강요합니다. 제이미는 이미 사랑하는 누나가 왕좌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자신의 가족들이 거기에 전부 엮여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이 게임에서 진다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수상쩍은 외국인을 자신의 하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더해서, 제이미는 미아를 만나기 몇 주 전에 손이 잘렸는데, 미아는 제이미가 환상통으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사로서 간단한 처치를 해주거나 상담 엇비슷한 걸 해주면서 제이미와 라포를 쌓습니다. 비윤리적이지만, 어쨌거나 살아남기 위한 이중 장치는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제이미는 마뜩잖게 미아를 곁에 두지만, 두 사람은 삶의 생활 방식부터 가치관, 식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맞는 게 없습니다. 각자의 목표(왕좌의 게임에서 이기는 것 / 살아남는 것)를 가진 채로 젬먀는 불편한 공생을 시작하고, 매일매일 투닥거리면서 지내는데요. 아무튼 두 사람의 끝은 미아가 제이미를 불타는 수도 성에서 끌고 나와 함께 도망치고, 두 사람이 각자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정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요.

  • <반려종 선언> 1. 자연문화의 창발, 2. 진화 이야기 내의 젬먀니스에 대하여

우리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갯과/사람과, 애완동물/교수, 암캐/여성, 동물/인간, 선수/훈련사. 우리 둘 중 하나는 목덜미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했고, 다른 하나는 증명사진이 박힌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지녔다. 우리 중 하나는 20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혈통서가 있고, 다른 하나는 증조부모의 이름조차 모른다. 우리 중 하나는 유전자가 폭넓게 혼합된 결과물인데 “순종”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그 못지 않은 잡종인데도 “백인”이라 부른다. 이런 각각의 이름은 인종 담론을 표시하며 우리 둘 모두는 우리의 육신으로 그 결과물을 물려받았다.

맨 처음 젬먀니스를 느낀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젬먀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제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굉장히 많은 대비가 있다는 점이에요. 중세인/현대인, 남자/여자, 헤테로섹슈얼/무성애자, 자신의 이너서클에서 배척당하는 사람/자신의 원 세계로부터 분리된 사람, 토착민/이방인, 귀족/하녀, 전사/의사, 사람을 죽여서 지키는 사람/사람을 살려서 지키는 사람, 드라마 속 캐릭터/현실 속 사람, 속아 넘어가는 사람/사기꾼, 미래를 모르는 사람/미래를 아는 사람……. 이처럼 젬먀의 층위는 다양한 맥락 속에서 권력의 낙차로 인한 역동을 일으키는데요.

사실 젬먀가 ‘젬먀’라고 묶이지 않고 각각 ‘제이미 라니스터’와 ‘미아’라는 개인으로 설명된다면 각각의 요소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게 될 거예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중요할 수도 있고. 하지만 ‘젬먀’라는 틀 안에서 서술되는 형태와는 다르겠죠. “이런 각각의 이름은 인종 담론을 표시하며 우리 둘 모두는 우리의 육신으로 그 결과물을 물려받았다.”는 부분이 굉장히 젬먀적이라고 느껴졌던 이유입니다. 인종 담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젬먀는 각자의 육신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층위를 물려받았고, 그 층위로 인한 대비감은 두 사람이 어쩌면 ‘전혀 다른 종족’이라고 느끼게까지 하는 요소가 되어요.

좀 논외지만, 특히 제이미는 미래를 볼 줄 아는 미아를 ‘마녀’라고 부르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미아가 인간이 아닐 수 있지 않냐는 제이미의 의심을 내포하는 호칭이니까요. 제이미가 미아를 시종일관 거슬린다고 느끼고, 가끔은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아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건 본인이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와서, 담론이라는 건 내가 어떤 프레임을 씌우느냐에 따라서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요소가 무척이나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좀 하면서 읽었고요.

우리는 금지된 대화를 나눠왔다. 우리는 입으로 정을 통해왔다. 우리는 사실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묶여 있다. 우리는 불통에 가까운 대화로 서로를 훈련하는 중이다. 우리는 구성적으로 본 바탕이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다. (…)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단언컨대 이건 정말 지극히 젬먀적인 문구입니다.

먼저 제이미와 미아는 언제나 미래에 관한 불온하고 금지된 대화를 나눠왔고, 두 사람이 입과 입으로 언어를 통해 쌓은 교류는 불가피하게 ‘정’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이건 진짜 오타쿠적인, 아름다운 문장이니까 그정도만 설명해도 될 거 같고요.

“우리는 사실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묶여 있다.” 이 부분은… 사이보그 선언 속에서도 도나 해러웨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관점과 경험을 갖고 있고, 따라서 현대는 단순히 이분법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층위와 맥락을 삼차원 내의 좌표에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일으킨 불협화음을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심리학, 그 중에서도 상담의 인간관은 ‘각자 개인이 서술하는 이야기는 그 사람에게만큼은 진실이다’는 게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남이 보기에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과 행동, 사고라고 해도 그 사람의 내적 기제 속에는 그것이 타당할만한 이유와 맥락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이는 ‘사실로만 구성된 이야기’를 사람들이 각자의 어항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것이 불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해하는 관점과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저는 도나 해러웨이가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개같은(…) 존재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가?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젬먀적 프레임을 씌웠을 때, 젬먀는 서로에게 있어 반려종일 수밖에 없는 관계거든요. 젬먀는 각자의 관점과 목표, 그리고 삶의 경험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씨피고, 특히 같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회화된 타인들보다도 더욱 극명하게 반응이 갈릴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다른 사분면에 위치한 두 사람을 억지로 같은 좌표 위에 올려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럼에도 인간은 전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응할 수는 있고, 익숙해질 수는 있고, 수용할 수는 있습니다. 해러웨이가 묘사한 것처럼 “서로를 훈련할” 수 있고, 각자의 내러티브에 익숙해질 수 있으며, 불협화음을 내며 어딘가를 향해 요란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행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냥 이 불통에 익숙해지려는 모든 시도가 페미니즘이 가야할 길이라는 얘기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네요…….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소중한” 존재니까요. 이것도 젬먀적으로 보자면, 젬먀는 서로에게 정말 증오스러운 존재입니다. 물론 이는 두 사람이 있는 환경 자체가 워낙에 적대적이고 빡세다보니 그로 인한 굴절 분노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습니다. 왕겜 세계관이 아니라면 그냥 아 진짜 열라 짜증나; 하고 넘길 사이인데, 두 사람이 세계가 전개되는 방식에 대한 불안을 서로에게 투사하면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나 네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언을 남발하며 서로의 관계를 악화일로로 치닫게 만들거든요. 그럼에도 앞서 이야기했듯, 제이미는 미아를 자신의 바운더리 내에 넣고 보호하는 중이고, 미아는 제이미의 외로움이나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제이미는 미아를 죽이지 못하고 미아는 제이미를 떠나지 못해요.

결과적으로 젬먀는 서로가 “소중한” 씨피입니다. 그 수많은 우여곡절을 함께 헤쳐나가며 두 사람에게는 연대라는 게 생겼고, 공유하는 기억이 생겼고, 서로를 향해 각자 어느 정도 삶을 할애하게 되었죠. 불협화음의 끝은 결국 어떠한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젬먀 역시도 자신의 원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상대와 함께 남겠다는 선택 사이에서 결국은 그 사람의 곁에 남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거든요. 상대를 사랑한다기보다… 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매정하게 굴 수 없다는 것에 가깝지만요. 젬먀적으로 보면 그래요. 그 얘기 하는 것 같당… 그 생각을 했어요.

존재자들은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며 “포착”이나 파악을 통해 서로와 자신을 구성한다. 모든 존재자는 관계에 선행해 존재하지 않는다. “포착”에는 결과가 있다. 세계는 운동 속의 매듭이다. (…) 미리 구성된 주체나 객체는 없으며, 단일한 근원이나 단일한 행위자, 최종 목적과 같은 것은 없다. (…) 중요한 육체bodies that matter는 결과다. 행위 주체agencies의 우화집, 관계 맺음의 종류들, 무수히 많은 시간이, 가장 바로크적인 우주론자의 상상을 능가하는 으뜸패에 해당한다. 내게 반려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사실 이후의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문화적 결정론은 잘 모르겠고… 젬먀적으로만 본다면 이건 팬픽 속에서만 실재할 수 있는 젬먀의 메타성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소설과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제이미와, 제 대가리 속에 존재하는 미아는 제가 구성하는 팬픽이라는 세계 속에서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며 포착이나 파악을 통해 서로와 자신을 구성하죠.

사회학에서는 유명한 ‘거울자아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식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너 정말 착하구나~ 하는 말을 반복하면 그 아이는 자기가 정말 착한 아이라는 걸 믿게 된다는 이론이에요. 자아는 자신의 특성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도 크나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포착이나 파악을 통해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앞으로 ‘사자와 마녀의 무도’에서 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미아가 트립 초반에 가지고 있던 목표 중에는 ‘나 자신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치거나 죽지 않는 것을 포함해, 이 등신같은 세계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즉, 미아의 목표는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그만큼 미아가 절박하게 빠져나가고 싶었다… 는 뜻이에요. 미아는 정신과 의사고, 사람이 어떤 경험에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런다는 건! 얼마나 이 세계가 황당하다는 소리겠냐! 뭐 이런 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차치하고,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관계에 선행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성되는 건 오로지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과 환경, 사람과 세계, 사람과 경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 세계, 경험, 존재는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선후를 잃은 채 영원히 순환한다… 뭐 이런 거요. 젬먀의 포착은 ‘관계’일 것이고,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서 ‘팬픽’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미아와 제이미는 원하지 않음에도 서로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저는 미아가 왕좌의 게임 속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완전히 안주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혹은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적확한 법칙이 있지 않다고 설정했습니다. 그냥 주어진 것에 때때로 흔들리고, 거지같아 하면서도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것. 그게 제가 캐릭터로서의 미아에게 부여한 삶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삶이라는 게 이렇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해러웨이가 말하듯 우리가 어떤 결과를 내느냐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제이미와 미아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를 좆같아하면서 함께 산다. 단, 이제는 아무도 미래를 알지 못하는 채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층위를 일부 박탈 당한 채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런 젬먀적 관점을 취했을 때, 불협화음은 그저 불협화음일 뿐이고, 그걸 어떤 식으로 다듬어 전개해나갈 건지는 개개인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네요. 사실 그래서 저는 반려종 선언이 굉장히 다정한 형태의 사이보그 선언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비록 해러웨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이보그와 평범한 개는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요.

(…) 서로 다른 앎의 실천 양식을 배경에 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 창발된 실천이 필요하다. 서로 다르게 물려받은 역사, 그리고 불가능에 가깝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동의 미래 모두를 책임질 수 있는, 부조화스러운 행위 주체들과 삶의 방식을 적당히 꿰맞추는 작업, 취약하지만 기초적인 작업 말이다. 소중한 타자성은 내게 이런 뜻이다.

이거 굉장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 않나요? 사랑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취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아마 소중하다는 표현을 붙여서 타자를 표현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젬먀적…입니다. 네.

캐리스 톰슨Charis Thompson은 “존재론적 안무ontological choreography”*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모든 존재의 몸은 자기 확실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된다.

*보조생식기술에서 기술, 과학, 친족관계, 젠더, 감정, 법, 정치, 재정적 문제가 역동적으로 상호 조정되는 것을 지시하는 말이다.

이거 진짜 그뭔십 얘기고 좀 논외인데… 제가 젬먀 서사를 서술 중인 작심삼월 프로젝트의 이름을 ‘사자와 마녀의 무도’라고 지은 이유 중 하나가 원래 소설 원작이 ‘얼음과 불의 노래’이기 때문이었거든요? 노래는 전승되고 살아남지만 춤은 한번 추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잖아요. 왕좌의 게임을 벗어난 젬먀의 삶은 춤처럼 어느 순간 노래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다… 라는 의미에서 멋대가리는 없지만 그렇게 지었는데, 이거 보니까 좀 파쿠리하고 싶더라고요. ㅋㅋㅋㅋㅋ

모든 존재의 몸은 자기 확실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러니까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재조정되는 과정. 우리가 관계를 수립하고 이어나가는 모든 순간에 대한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캐리스 톰슨 씨도 안무라는 표현을 했다면 저 역시도 이런 의미를 담았다고 우길 수 있지 않을지 뭐 그런 생각을 했네요…….

페미니즘 이론에서는 세계에 있는 것이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는 두 층위의 시간, 즉 화학적으로 세포마다 DNA 속에 새겨진 심층의 시간, 그리고 좀 더 냄새나는 흔적을 남기는 최근의 행위들로 이루어진 시간 속에서 반려종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철학적 미끼다. 구식 용어로 표현하면 <반려종 선언>은 무수한 실제 사건들이 이룬 포착의 합생에 의해 가능해진, 친족관계에 대한 주장이다. 반려종은 우연적 기초 위에 놓여 있다.

(…) 반려종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반려종을 만들려면 적어도 두 개의 종이 있어야 한다. 반려종은 통사론syntax속에, 육신 속에 있다. 개들은 벗어날 수 없는 모순적 관계의 설화 속에 있다. 이러한 공구성적 관계를 이루는 어느 족도 관계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고, 이런 관계는 한 번에 맺어 완성할 수조차 없다.

(…) 그래서 나는 <반려종 선언>에서 소중한 타자의 관계 맺음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짝을 이루는 이들은 이 관계를 통해 육체와 기호 모두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다.

젬먀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반려종과 유사하다는 저의 주장에 비춰보면, 이건 정말 젬먀와 젬먀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mbti가 n이어서, 나중에 젬먀 이야기가 대박을 치고 이걸 영화화하자는 주장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같은 상상을 많이 하곤 하는데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는 다르게 저는 젬먀의 이야기를 ‘팬픽’ 바깥의 세계로 끌어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젬먀의 세계는 ‘왕좌의 게임’에 기반하고 있고, 자신이 현실 세계의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팬픽 속 캐릭터 미아가 최대한 ‘진짜’ 왕좌의 게임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내용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아가 왕좌의 게임을 스포해서 제이미가 다르게 행동한다면 미아의 예언은 결과적으로 틀리는 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예언자로서의 미아의 쓸모는 사라지는 게 되니까요. 젬먀의 세계는 견고한 원작과 메타성에 기생하고 있어요. 즉, 왕좌의 게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젬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반려종 선언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둘 이상의 종과 그 종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담론으로서의 세계, 그리고 관계맺기를 통한 층위와 맥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길들이기는 창발하는 동거 과정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행위 주체 및 이야기들이 개입한다. (…) 동거는 보송보송함과 아늑함을 뜻하지 않는다. (…) 관계는 다형적이며 위태롭고, 마무리되지 않으며, 결과가 따른다.

(…)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기회가 오면 의외의 동반자를 붙잡아 어딘가 새롭고 어딘가 공생발생적인 차원으로 끌어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젬먀의 관계같다고 생각해서 밑줄 쳐둔 문구들인데요. 사실 제가 젬먀를 구성하게 된 건 한창 그때 회빙환 웹소설을 많이 읽고 있어서이기도 했어요. 무조건 나데나데 받는 주인공이 싫었고, 이 세계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안온다정해지는 것도 싫었고, 결국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식으로 마무리 되는 것도 싫었어요. 지금도 싫습니다. 팔려야 하니까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전 어차피 태생이 안 팔려 인간이니까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구성한 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고’, ‘둘이 함께한다고 해도 완벽히 행복해지기는 커녕 찝찝하기만 하며’, ‘설령 둘이 정상가정을 만든다고 해도 노산이나 혼혈 아이에 대한 교육, 노후 대비와 물려줄 수 있는 재산(돈이든 살아가는 방법이든)이 전혀 없음에 대한 막막함 등으로 죽기 전까지 대가리 빠지게 고민만 하게 될’ 젬먀입니다…….

관계는 다형적이며 위태롭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 젬먀스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귀찮아서 한 인용구에 때려박았는데, 제가 안티 초콜릿의 도입부로 생각한 게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도나 해러웨이 같은 거장은 같은 생각을 해도 저보다 훨씬 깔끔하게 잘 쓰는 것 같아요.

우리는 상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이건 그냥 지구라는 생태계 내의 모두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인간종이 세상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부터 유구하게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젬먀 역시도 그렇고요. 미아는 기회가 된다면 제이미를 붙잡아 그의 바운더리 내에서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겨우살이같은 면모가 있지요. 제이미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만, 제이미 역시도 미아를 놓고 싶어하지 않는 건 동일합니다. 제이미는 19살에 자기가 모시던 폭군을 죽였고, 이는 왕좌의 게임 내에서 엄청난 불명예로 낙인 찍혀 가족을 제외한 자기가 속한 사회계층 내에서 거의 왕따를 당합니다. 국왕 시해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빈정이나 조롱을 당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래서 제이미가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이미에게는 믿을만한 측근도, 변변한 친구도 없어요. 오로지 그를 받아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은 가족이자 연인이므로 절대 제이미를 떠나지 않을 - 왜냐하면 아버지인 타이윈 라니스터는 항상 가족이 제일 우선이어야 한다는 기조 아래 무조건적으로 라니스터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거든요 - 사람인 세르세이 뿐입니다. 그러던 제이미에게 나이 사십이 되어 미아가 굴러온 겁니다. 갈 곳이 없어 제이미와 24/7 붙어있는 여자. 오로지 그의 말에 복종하고, 만나는 사람이 없어 제이미하고만 교류하고 제이미만을 걱정하고 신경쓰고 챙겨주는 ‘타인’.

물론 브리엔이 있긴 하지만, 브리엔은 뭐랄까… 제이미와 조금 더 동등한 관계죠. 제이미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동료이자, 제이미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추구해야 할 이상향 같은 사람입니다. 미아는 조금 달라요. 제이미는 기사로서의 브리엔을 동경하고, 그건 다시 말해 이 관계 속에서는 ‘제이미의 일부’만이 수용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미아는 현실 속 사람이고, 자신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제이미가 무슨 짓을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제이미랑 친해져야 하니까요. 간신배같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제이미는 미아와의 관계 속에서는 오롯이 수용될 수 있으며, 브리엔이나 세르세이와의 관계처럼 무언가 행위를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도 제이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관계예요. 처음으로 가져본 ‘제 것’이라고 저는 우기는 중입니다. 그래서 제이미는 미아를 버리지 못하며, 미아가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한 발작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말 부에서는 미아도 그걸 알아서 결국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더 이상 표현하지 않고 제이미의 곁에 남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기회가 오면 의외의 동반자를 붙잡아 어딘가 새롭고 공생발생적인 차원으로 끌어들일 태세를 갖춘다. 이거 정말 젬먀적이지요? 그렇지요?

  • 마치며

이런… 뇌구조 회로를 가진 덕분에 저는 이번 파트를 굉장히 즐겁게 읽었던 것 같아요. 텍스트에 젬먀니스가 가득해!! >< 하는 마음으로요. 거지같고 만족스럽지 않고 불편하고 나와는 완전히 다르더라도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소중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제가 생각하는 젬먀코어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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