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엘
지독한 악몽 속에서 가까스로 눈을 뜬다. 아직 어둡다. 발작하듯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자 차게 식은 손끝으로 반대 팔을 감싼다. 숨을 몰아쉰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쉰다. 진창 속에서 벗어나고자 알코올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누군가가 옆에 있는 삶은 익숙하지 않다. 멜리시아의 인생은 그렇다. 부모를 모르고 혈육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시작점은 보육
난데없이 하늘에서 동거인이 뚝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K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K는 타인과 함께 살아본 경험은 J가 유일하다. 비록……. 아무튼 그렇다. 물론 제 몸에 끔찍한 게 깃들었다지만 그건 동거인이 아니다. 침입자다. 허락도 없이 남의 몸에 제 몸을 비집어 넣은 무례하고 끔찍한 것. 그러니 K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걸 생각해 본 적
레닌그라드의 겨울이다. 창문을 가린 커튼을 들추니, 유리창 넘어 길가에 쌓인 눈더미가 보인다. 지금까지 머문 곳의 겨울은 어떻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시시한 감상만이 떠오르자 외젠 로베르는 들춘 커튼을 놓고 주전자를 든다. 때마침 물이 끓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으니 적절한 순간이다. 준비해 둔 두 머그잔에 물을 붓고 한 손에 하나씩
프랑스의 땅이다. 요한 크란츠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익숙한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내리니 수선화 꽃잎을 닮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소피아 로드리고. 열차에서 함께 내려, 독일 다하우 수용소를 밟고, 프랑스까지 같이 온 이. 소피아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소피아, 도착했어요.” 프랑스의 하늘은 독일의 하늘과도 미국의 하늘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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