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미나천

.txt by 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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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을 스치는 겨울바람이 차갑다. 코끝까지 얼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실제로도 류천과 미나를 제외하면 사람이라고는 없다. 오로지 두 사람만 존재한다. 어쩌면 삭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옆에는 제 연인이 함께다. 파도가 발치까지 몰려왔다 물러난다.

 

“안 춥나요?”

 

발걸음을 맞춰 걸어가던 연인이 묻는다. 류천은 고개를 돌려 미나를 바라본다. 둥그런 안경 너머의 적갈색 눈동자가 유달리 서늘해 보인다. 날씨 탓? 아니면 장소 탓? 류천의 머릿속이 팽팽 빠르게 돌아간다. 내가 잘 못 본 걸까? 불안함이 불쑥 몰아친다. 답을 기다리던 미나는 답이 돌아오지 않자, 어린 연인을 유심히 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천아.”

 

가죽 장갑의 미끄러운 촉감이 뺨에 툭 닿는다. 바닷바람에 한껏 차가워진 장갑 표면이 뺨에 닿자. 류천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넘어질 양 싶어지자 미나는 팔을 잡아당긴다.

 

“내가 옆에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하는 건가요?”

“미… 미나 씨…! 그, 그게 아니라…….”

 

미나 씨의 눈동자가…. 류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허둥지둥 말을 잇는 모양새가 깜찍하다. 자신을 옆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 그 생각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니 성에 찬다. 미나는 웃음을 흘린다.

 

“하필이면 장소도 그때랑 비슷하네요.”

 

순진한 애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입술도 파르르 떨린다. 붉어진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이으니 미나는 류천의 불안을 읽어낸다. 류천 씨. 미나는 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른다. 동시에 양손에 낀 가죽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류천의 한 손에 깍지를 끼고, 반대 손으로는 뺨을 문지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던 류천이, 떨림을 멈추고 미나를 본다. 류천의 눈에 오롯하게 미나가 담긴다.

 

“이제 나를 제대로 보네요.”

“미나 씨….”

“다 알아들었으니까 괜찮아요. 조금 장난을 쳐본 건데, 곤란하게 만들어버렸네요.”

 

류천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안도한다. 그런 류천을 미나는 가볍게 안아준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그의 행동에 류천은 얼굴을 파묻는다. 미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어린 연인의 등을 토닥인다. 불안함이 떠내려 보낼 수 있도록. 마침, 옆은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이니 괜찮은 장소다.

 

“저, 미나 씨 정말 좋아해요.”

“네, 알고 있어요.”

“그때는 두려웠는데, 이제는 두렵지 않아요.”

“어머나.”

“그, 그러니까….”

 

가슴을 가득 채우는 만족감이 몰려온다. 미나는 말을 잇는 류천의 입술 위로 손가락을 올린다.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저를 바라보는 모습에, 미나는 이마를 맞댄다. 불안이 가신 눈동자가 보인다. 자신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보인다. 귀여워라. 입술이 맞닿는다. 바람이 뺨을 스치지만 그뿐이다. 추위마저 잊어버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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