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외반

.txt by 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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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의 귀가가 늦다. 인터뷰라고 했던가. 이반은 문을 나서기 전의 외젠을 떠올린다. 적당히 단정한 차림새. 손에는 양장 공책. 가방은… 검은색 가방. 늘 같은 모습이다. 즉 평소와 같다는 거다.

 

“늦군.”

 

외젠이 나선 건 시곗바늘이 12를 가리켰을 때다. 나서기 전에 문 앞에서 구두 앞코를 바닥에 두어 번 두드린 게 기억난다. 이어지는 말의 정보 값에는 귀가 시간이 담겨있었다. 점심과 저녁. 그리고…….

 

‘늦지 않게 올 것 같네요. 다녀올게요.’

 

여상스런 목소리. 숨기는 것 하나 없는 표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물론 외젠이 작정하고 숨긴다면 알아채기 어려울 테다. 하지만 지금의 이반은 그를 어느 정도 신뢰한다.

 

인터뷰가 늦어진다 여겼을 때는 시곗바늘이 12를 넘어 낮이 되고, 6을 가리키며 저녁이 되었을 때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 이반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추운 공기가 집 안에 들어오지만 환기하고 방을 정돈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책을 읽었고─외젠이 보았다면 분명 편파적인 독서라 했을 게 뻔하다.─ 한 시간 정도 짧게 집을 나섰다. 이후는 기다림이다.

귀가가 늦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시곗바늘이 9에 가까워졌을 때다. 기다림이 길어졌을 시점이다. 이반은 혼자 저녁을 해결한다. 늦지 않게 돌아온다는 외젠의 말에 그는 자연스럽게 함께할 저녁을 생각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반은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어느 한 인물을 떠올린다. 개를 가지고 실험했다던가. 제 꼴이 꼭 그 실험의 내용과 비슷하다.

이반이 외젠과 함께한 시간은 점차 길어진다. 열차에서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두 사람의 삶이 얽힌다. 레닌그라드에서 집을 공유한다. 침대도 공유한다. 생활의 작은 부분마저 공유되고 영향을 받는다. 사소한 영역까지 외젠이 침투한다. 이반 역시 외젠의 영역에 침투한다. 그런 삶이 이어진다.

시곗바늘이 10에 가까워졌을 때는 기억을 되새긴다. 인터뷰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 얼핏 들었던 인터뷰 대상은 전쟁에 참전했던 자다. 이곳에서 만날만한 전쟁에 참전한 자라면, 아무래도 저와 같거나 비슷한 결을 가진 이일 테다. 그러니까 소련군. 그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속에서 작은 소음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반에게 익숙한 소음이다. 익숙하다 못해 모를 리가 없는 소음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 이반의 고개가 문가로 돌아간다. 어깨 위로 눈이 쌓인 외젠이 들어온다.

 

“… 자네.”

“미안합니다. 늦어버렸네요.”

 

이반은 눈을 굴린다. 외젠의 모습은 나설 때와 다름없다. 표정이 조금 지쳐 보이고, 옷들이 눈에 젖어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 모습에 추측이 이어진다. 인터뷰가 조금 늦어졌고, 거기에다가 날씨가 겹쳐버려 늦어진 걸지도 모른다. 표정이 굳는다.

 

“왜 늦어졌나?”

“아… 별일 아닙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약속에 늦게 나왔네요. 도중에 눈이 오기도 했고.”

 

이반은 고개를 끄덕인다. 충분히 늦을 수 있는 사유다. 굳어진 얼굴이 느슨하게 풀린다. 그리고 외젠은 그 변화를 알아챈다. 긴장에 서린 눈가에 힘이 풀리고 굳어버린 입꼬리도 느슨해진다.

 

“걱정했나요?”

 

걱정. 이반은 깨닫는다. 외젠을 걱정했다. 사소한 영역까지 침투한 외젠은 그의 마음 한구석에도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의 사고 과정에도 외젠이 들어와 있다. 정말 단단히도. 이반은 순순히 인정한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아주 작은 목소리. 숨을 닮은 소리가 연기처럼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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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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