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1] 오컬트물 붐의 사이에서 퇴마물 오타쿠가 걸어가다

제목을 부제목에 썼어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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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산길이어서인지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했다. 요란스럽게 펄럭거리는 바람소리가 귓가에 시끄럽기는 했지만 들어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은 이리프가 항의했다면 창문을 닫을 의사는 충분했지만 그로부터 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샤는 얼굴 한가득 차가운 바람을 만끽했다.

“밖에 보고 있어도 괜찮아?”

이리프의 목소리에 이샤는 시선을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앞에 똑바로 봐.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샤는 볼멘 소리를 던졌다.

괜찮지 않을 리 없었다. 사람이 빽빽한 곳에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정취였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주 드문드문 나타나는 산짐승들 뿐이라는 것은 이샤에게 있어서 무척 귀중한 경험이었다. 길 한 켠에서 뛰어다니는 고라니는 거진 배가 터져있거나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몰골의 사람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현장에 도착하면 무엇을 보게 될 지 모르니 지금 만끽해두는 것이 좋다.

원해서 이런 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샤는 이런 일에 엮이는 것이 언제건 탐탁지 않았다.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쓸모는 아니지 않은가. 이번에도 이리프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사제직을 관뒀다는 연락만 남기고 이리프가 몇 년 정도 사라졌다가 갑작스럽게 온 연락이 아니었다면.

파문인지 환속인지 했다더니. 경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결과는 똑같았을텐데도 오랜만에 만난 친우는 이전과 같은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됐어. 많은 설명이 필요할 일에 대해 이리프는 그렇게만 짧게 답했고 이샤는 더 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가 선수쳐서 일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이리프와의 만남과 그 사이 쌓인 일들은 일일히 되짚기에 복잡하지만 대부분의 일은 이리프가 가져오는 일들과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리프는 구마 사제였다.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다. 도통 자기 불리할 소리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그가 좇는 악마를 비롯해 영적인 것들은 당연히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 일반론은 오직 이샤의 앞에서만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선사업을 할 맘도 없고 호의로 남을 돕겠다는 생각도 특별히 없는 이샤에게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일은 성가시기만 한 것이었다.

이번만이다. 몇 년 만에 다시 귀찮은 일거리를 맡기는 친구의 말에 이샤는 그의 앞에서 벌써 몇 번째인 지 모르는 ‘이번만’을 이야기했다.

사제복을 자켓마냥 입고 벗을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리프가 한 이야기라고는 그의 성격마냥 종잡을 수 없이 두루뭉술했다. 사제직을 그만뒀던 것은 맞는 것 같고. 말하자면 아르바이트? 뻔뻔한 웃음과 함께 돌아오는 말에 이샤도 더 물을 수 없어 입만 삐죽이고 말았다. 어쨌든 구마와 관련된 일이기도 했고 옷도 멀쩡하게 입고 있으니 교황청 쪽에서 받은 일임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리프라는 남자는 자신과 다르게 자기가 필요한 곳이라면 오만떼만 곳 가리지 않고 머리를 들이밀었으니 차라리 일의 주체라도 확신할 수 있는 쪽이 나았다.

차는 한참동안 산길을 달려 중턱인지 정상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멈췄다. 차로는 더 올라갈 수 없는 흙길의 양쪽으로 음산할 정도로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피부에 달라붙는 서늘한 감각은 단순히 산 속이어서 느껴지는 서늘함만은 아니었다. 트렁크에서 까만 가죽가방을 꺼낸 이리프가 가자는 듯 짧게 눈짓햇다.

성큼성큼 산길을 오르며 이샤는 습관적으로 주변의 풍경을 훑었다. 묘하게 낯선 기분이 들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감각의 이유는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대체로 일이 터진 곳 주변의 풍경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부정한 기운에 이끌린 혼백들이나 휘말려 죽은 것들이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날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슷한 일이 터졌다고 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깨끗했다. 일부러 누군가 싹 정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샤. 의아한 시선으로 주변을 더듬던 그를 멈춰 세운 것은 이리프의 목소리였다. 옆에 멈춰선 그는 앞을 보라는 듯 그를 향해 짧게 턱짓했고,

이윽고 그들은 그들이 향하던 방향에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한 사람과 마주쳤다. 근처에 마실이라도 나온 듯 특출날 것 없는 차림새를 한 남자의 모습이 이리프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올 때마다 박자에 맞춰 무언가 쨍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소리의 근원은 손에 들린 까만 비닐봉지인 것 같았다. 빼꼼 비닐봉지 밖으로 나온 녹색 병목이 보였다. 소주병이었다.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이리프는 옆을 돌아보았다. 이샤를.

옆에 선 이샤의 눈은 그 남자가 아닌 그 남자 뒤의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있지 않은 것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샤가 눈을 돌리기도 전에 그것이 먼저 이샤를 바라보았다. 낯선 복식을 한 커다란 인간의 형상. 그것은 이샤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처럼 마주 보고는 이윽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레 산 것이 아닌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포나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주변의 공기가 평온하게 가라앉는 감각이 느껴졌다. 절로 그것의 정체를 깨닫게 하는 감각이었다. 신이다.

“어이구….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예 전문가 양반들까지 오셨네.”

그럼 맡겨도 되겠구만. 납득했다는 것처럼 혼자 그렇게 중얼중얼 말하며 그는 불러 세울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할까, 물음 섞인 눈빛을 건네는 이샤에게 이리프는 올라가는 길 쪽을 고갯짓했다.

도착한 산 정상에는 온갖 삿된 것들이 묶여 있었다. 말 그대로의 표현이었다. 이 주변에 몰려들었던 것들이 어느 지점을 떠나지 못하고 한 곳에 묶여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낯선 풍경에, 이샤는 이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잠깐 말문이 막히는 표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리프는 몸을 숙여 흙바닥을 손 끝으로 훑었다. 부분부분 젖어있는 땅에서 술냄새가 났다. 술을 뿌려 만들어진 길, 혹은 어떤 형상은 정확하게 특정 방위를 가리키는 특정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젖은 흙을 털며 이리프가 짧게 말했다.

“전문가는 저쪽이었던 것 같은데.”

이샤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술만 뿌려 묶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땅이 마르더라도 그것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처럼 단단히 매여 있었다. 쫓을까? 이샤의 물음에 이리프가 먼저 몸을 돌렸다. 새로 사람을 사귀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적어도 일손이 많으면 편하다는 것만은 사실이었으므로.


로 시작하는 현대퇴마물이 보고싶어요 선생님들

퇴마물 주세요

오컬트물도 붐이잖아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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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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