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캘셔
오…… 이런. 맙소사.
작은 탄성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간다. 전화기를 쥐고 있는 손이 미끄러워진다. 뒤를 잇는 말들은 바깥으로 꺼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문다. 전화기를 들지 않는 손은 스피커를 턱하고 막는다. 전화가 끊긴 걸 알았지만 ─심지어 전화를 끊은 사람은 그였다!─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왜? 뻔하다. 그가 방금 전까지 통화를 한 상대는 살인자니까!
애프리콧 피셔.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30대 후반. 직업은 보이스피셔.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사기꾼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는 정말로 운이 좋았고, 운이 나빴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저 한탕 하기 위해서 고른 상대, 정확히는 겁만 좀 주려고 한 상대가 살인자일 확률은 얼마일까. 더 좁혀서 제가 말한 낚기 위해 꾸며낸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살인자일 확률은 정말로 얼마가 될까. 그는 당장이라도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계산을 요구하고 싶었다. 물론 그는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생각만 한다. 실제로 물어본다면…… 말을 아낀다.
애프리콧은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운이 좋기보다는 차라리 로또라도 당첨될 수는 없는지. 전자도 후자도 돈이 꽂힌다는 건 같지만 전자는 합법적이지만 후자는 불법적이다. 전자는 목숨이 안전하지만, 후자는… 후자는 목숨이 위험하다. 제 거짓말이 밝혀지면 역시 얻어맞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테다. 매장 당하려나? 아니면 똑같이 차에 치이려나? 내가 받은 돈을 다 받아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에 고개를 내젓는다. 불길한 생각은 멈춰야 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살인자’는 자신이 말한 영상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다. 아직은 목숨이 안전하다. 아직은.
애프리콧은 고민한다. 이대로 잠적할까? 돈은 아직이다. 통화를 끝낸 건 방금 전이니까. 돈을 받지 않고 잠적한다면 좋게 끝날지도 모른다. 그 ‘살인자’가 장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저 불행하게도 얻어걸려버렸다고. 하지만 기각이다. 분명 자신을 찾으러 들 게 뻔하다. 들켰으니까!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건 쉬울 거다. 한번 해봤으니 두 번은 안 쉬울까. 잠적한 애프리콧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영상을 받으려고 할까? 없다는 걸 알면 죽이겠지. 그렇게 되면 꿈에 그리던 부에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땅에 묻히게 될 거다. 장례를 치러줄 사람은 없을 것이고. 암매장당할 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사기를 친다. 이미 친 사기, 절대 들키지 않게 자연사할 때까지 사기를 치는 거다. 애프리콧은 결심한다.
쿠션이 내려앉은 소파에 기댄다. 눈을 감고 있으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선명하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맞춰서 상상해 본다. 부와 풍족함이 가득한 미래를! 지폐가 바닥에 깔려있다. 낡아빠진 쇼파는 자신이 누워도 자리가 남는 소파로 바뀐다. 침대는 자신이 한 바퀴 굴러도 떨어지지 않는 거대한 침대가 된다. 그 전에 으리으리한 집도 구한다. 상상만 해도 부와 풍족함이 가득한 삶이다. 정말로, 끝내주는 삶이다.
애프리콧은 약속한 날짜를 상기하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긴장으로 잔뜩 굳어버린 몸이 노곤하게 풀린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손이 아주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것을. 신발 속의 발도 아주 축축하다는 것을.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