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시 열전: 6대 호카게와 낙오자 소년

카카시 열전: 서장

번역 by 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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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점프 측에서 무료로 전문 공개한 서장+이북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인물소개는 전체공개입니다만 뒤의 내용은 안내 참고하셔서 비밀번호 입력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혼자 보려고 시작했던 거라 퀄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습니다. 번역기 좀 다듬은 정도…? 그래서 번역체가 좀 많습니다()

의/오역 있습니다!

오탈자 제보는 트위터(@jaesu_0) 또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리텐다드 폰트 오류 때문에 말줄임표 뒤에 띄어쓰기 해놓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ㅠㅠ 오류 고쳐지면 다시 붙일 예정이에요

카카시 1인칭 구분 때문에 オレ=나, 私=저 로 번역해놨습니다.

수구 명칭은 원래 한자 독음 수고, 일본 발음 슈이구인데 제가 그냥 보기 편하려고 수구로 퉁쳐놨습니다… 감안하고 봐주세요!


"읏 아―! 겨우 정상……"

거의 절벽에 가까운 암벽의 꼭대기로 기어올라, 하타케 카카시는 지긋지긋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불의 나라를 떠난 지 20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을 계속해 경치도 기후도 완전히 달라졌다.

시야의 끝까지 이어지는 것은 달을 맨손으로 나눈 듯 투박한 황무지. 황량한 산들의 줄기 너머로, 사람이 만들어낸 거리 같은 것이 작고 작게 보였다.

긴 여정이었지만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산을 서너 개 정도 넘으면, 드디어 목적지인 나라에 도착이다.

온천 있으려나…….

지형을 고려했을 때 가망이 없단 걸 알면서도, 긍정적인 희망을 가슴에 품고 카카시는 발뒤꿈치로 경사면을 으드득 깎아내리며 절벽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신체를 가리는 망토가 펄럭이며 칙칙한 절벽의 겉면에 짙은 녹색의 궤적을 남겨 간다.

향하는 곳은 레다쿠국(烈陀国). 주위에 우뚝 솟은 정상의 눈을 피해 산간의 평지에 고요하게 만들어진 도시 국가다. 외부와 거의 완전히 단절된 이 나라는 반쯤 전설 같은 존재로, 수많은 시로 만들어져 5대국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해 왔다.

바위와 모래뿐인 산맥에 홀연히 나타난 은혜로운 오아시스. 사계절 내내 물과 녹음이 흘러넘치는 이 토지에서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변함없는 자급자족의 삶을 계속해오며 온화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낸다. 옛날에는 그 육도 선인이 이 땅이 마음에 들어 동행하던 짐승과 함께 정양했다──그것이 시에서 노래되는 레다쿠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의 레다쿠국은, 시인이 전하는 평화로운 세계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가……정말로 그 레다쿠국이란 말인가?

수도에 들어선 카카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귀신에 홀린 듯 가라앉아 있었다.

마른 바람이 모래 먼지를 머금고 불어올 때마다 말라붙은 듯한 시취가 코를 찔렀다.

주위는 무서울 정도로 매우 고요해서 사람의 이야기 소리는커녕 새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갓길에 내팽개쳐진 짐수레 위에는 앙상한 염소의 사체가 몇 개나 이리저리 쌓여 있었지만, 시취의 출처는 여기뿐만이 아닌 듯했다.

깎아지른 바위가 깔린 길의 양측에는 이 지방 특유의 햇볕에 말린 벽돌을 진흙으로 쌓아 굳힌 연립주택이 줄지어 있었다. 크기로 봤을 때 아마 대부분이 민가일 텐데, 중요한 주민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기근이라도 있었던 건가──?

싫은 예감을 느끼면서, 중심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마을의 해발고도는 대략 4천 미터. 완전히 산소가 부족한 공기가 가슴에 차오르며 자연스레 호흡이 얕아진다.

바람 소리에 섞인 옷 스치는 소리를 듣고 카카시는 걸음을 멈추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갈색으로 색이 변한 사시나무의 그늘에 작은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달려가 아이를 안아 일으킨 카카시는 먼저 그 가벼움에 놀라고, 뼈를 안은 건가 싶을 정도로 마른 어깨에 놀라고, 움푹 파여 미라처럼 된 뺨에 놀랐다. 탄력을 잃은 피부에는 선명한 주름이 졌고, 여윈 두 뺨의 피부 가죽은 광대뼈에 걸려 가까스로 얼굴에 붙어있기만 한 것처럼 보였다.

영양실조와 탈수증상이다.

"물, 마실 수 있겠어?"

위협이 되지 않도록 조용하게 말을 걸자 아이는 움푹 들어간 눈꺼풀을 무거운 듯이 들어 올렸다. 검은자위가 천천히 카카시의 얼굴을 향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괴로운 듯 곧바로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카카시는 망토를 벗고 가지에 걸어 가림막을 만들고 손바닥 위에 차크라를 모았다. 수둔으로 만든 물을 아이의 입가에 조금씩 흘려준다. 껍질이 벗겨진 입술 사이로 영양 부족으로 하얗게 변한 혀가 보이고, 카카시가 떨어뜨리는 물을 힘 없이 핥아냈다.

카카시의 손바닥을 채울 정도의 얼마 되지 않는 물을 아이는 긴 시간을 들여 다 마셨다.

작은 몸을 안아 올려 민가의 벽에 기대듯이 앉힌다. 아이는 작은 소리로 감사를 표하며 가슴팍에 끼워져 있던 천 뭉치를 카카시를 향해 들어 올렸다.

"……이 아이에게도, 물…… 줘."

삼베로 짠 거친 천에 감싸진 갓난아기의 얼굴이 있었다. 흙빛의 작은 뺨에 가볍게 손을 대 보면 이미 차가워지고 있었다.

카카시는 차크라를 가다듬어 손끝에 올린 둥근 물을 작게 벌어진 채인 아기의 입안에 흘려 넣는 척을 했다. 물의 대부분은 입안에 들어가지 않고 천에 흡수되었지만 아이는 아기가 물을 마시고 있다고 착각했는지, 안심한 듯이 눈을 감았다.

이 아이의 부모는 어디 있는 걸까. 가까운 집의 문을 열자, 실내는 제대로 정리되어 있어 어질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카시는 방의 구석에 쌓여 있는 찻잔을 몇 개 집어 들고는 수둔의 물을 가득 담아 아이의 곁에 늘어놓았다.

"미안해."

그런 말이 목에 들러붙은 소리로 나왔다. 무엇을 어떻게 사과하고 있는지, 그 자신도 잘 모른다.

아이가 굶고, 갓난아기가 죽어 있다.

──도대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을의 중심부는 한층 더 심한 모습이었다.

바싹 마른 시체가 여기저기 모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돗자리로 덮여 있는 것도 있는가 하면, 땅에 내버려 둔 것과 별다를 게 없는 것도 있었다. 오래된 시체는 색이 시커멓게 변하고 아랫배가 가스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것은 피부 곳곳에 안에서부터 터진 듯한 물집이 가득했다.

타살된 듯한 시체가 눈에 띄지 않는 것, 시체가 몸에 걸치고 있던 것 전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어도 폭동이나 학살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립주택단지를 벗어나 탁 트인 길로 나와서 겨우 살아 있는 어른을 발견했다. 등이 굽은 노파가 건초를 짊어지고 옮기고 있었다.

"본 적이 없는 얼굴이구나."

카카시가 말을 걸기 전에 노파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너, 이 지역 사람이 아니구나.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으음……"

카카시가 레다쿠국에 온 것은 7대 호카게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물론 극비이기에 일반 시민에게 신원을 밝힐 수는 없다.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역으로 묻자 노파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네."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옷에 먼지가 꽤 많은 것 같으니 분명 산을 넘어서 왔겠지. 나가레 마을(薙苓村)에서 왔으려나?"

"네,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카카시가 말을 맞춰 수긍하자, 노파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것 봐라, 맞지. 그러니 안색이 좋겠지. 나가레에는 아직 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니까. 부러울 따름이야."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어른은 모두 멀리 물 뜨러 가 있지. 나는 방해되니까 집을 지키는 중이고. 갔다 돌아오는 데에만 한나절은 걸리니까 말이지."

노파는 두 어깨를 들어 건초를 다시 짊어지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겨우 홍수의 물을 다 빼냈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물 부족이야. 선왕이 죽고 나서 나쁜 일의 연속이구먼."

"…… 선왕께서 돌아가셨다고요?"

"몰랐던 거니?"

노파는 이상하다는 듯 카카시의 얼굴을 보았다.

"작년 이맘때 갑작스러웠지. 병 때문이라든가, 음식이 잘못됐다든가,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뭐가 사실인지."

"그렇다면 지금은 누가 왕을?"

"장녀인 마나리님이 뒤를 이었어. 아무리 나가레에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런 것도 몰랐나?"

"오랫동안 병 때문에 앓아누워 있었거든요."

"아아, 그건 힘들었겠구나."

노파가 동정하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카카시를 본다.

"물 부족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카카시가 묻자, 노파는 기미 낀 미간을 찌푸렸다.

"…… 이런 말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나리 여왕의 치세가 되고 나서부터야. 비가 내리지 않게 된 건."

오후가 되어 물을 길으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어깨에 멘 멜대의 끝에 물이 든 나무통이 달려 있었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듯한 아이도 항아리나 물병을 양손에 들고 나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쯤 비가 내릴 건지……"

어깨를 문지르면서 한 남자가 중얼거린다. 긴 거리를 오가느라 모두 완전히 지쳐 버린 것 같다.

사람들을 도와 물을 옮기면서 카카시는 통에 든 물로 시선을 돌렸다. 계곡에 조금 남은 수원으로부터 들고 왔다는 그 물에는 미세한 흙이나 이끼가 섞여 있어 도저히 음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런 물이라도 마실 수밖에 없어. 달리 없으니까."

카카시가 수면에 떠 있는 장구벌레의 사체를 손가락으로 건져 올리는 걸 보고서 햇볕에 피부가 탄 젊은 여자가 쓴웃음을 지은 채로 말을 걸었다.

"당신, 나가레 마을에서 왔다고? 깜짝 놀랐지, 수도가 이런 상태라서. 계곡의 수원도 자꾸 바싹 마르고 있어서 물을 길어올 수 있는 곳은 이제 거의 없어. 딱 한 군데, 질퍽질퍽한 응달의 연못에 아직 물이 솟아오르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만…… 거기도 이제 곧 고갈될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이 마을은 끝이야."

"어딘가 다른 마을로 도망치려고 해도, 말도 없고 말이지. 빨리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어 버리는 거야."

다른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봤다.

바다보다 하늘에 가까운 해발고도 탓인지 하늘은 사막을 걸쳐 놓은 듯 푸르고 깊다. 솜털처럼 사라지기 시작한 구름이 천천히 능선을 스쳐 흘러간다.

카카시는 금이 간 황토의 대지에 시선을 내렸다.

물 부족.

카카시가 사전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건조한 기후의 이 땅에 있어서 나라를 적시는 것은 국왕의 역할일 터이다. 왕은 왕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구(水鈷)'라고 불리는 법구(法具)를 사용해 물을 조종해 비를 내릴 수 있다.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카카시는 수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석조 왕궁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문제는 저기 있는 거겠지.

이윽고 해가 기울고 그늘과 햇빛의 경계가 옅어지기 시작하자 왕궁의 최상층에 가장 먼저 불이 켜졌다. 밖은 아직 충분히 밝고 새도 여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는데 벌써 귀중한 등불을 사용하기 시작할 정도이니 아마 그곳이 왕의 거실이겠지. 호카게실도 그렇고 지도자의 거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장소라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다.

카카시는 하늘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해 질 녘에 섞여 성벽을 올라갔다. 주변을 붙여둔 방을 들여다보니, 예상한 대로였다. 방 중앙에 선 소녀는 왕족의 상징인 귤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여왕 마나리겠지.

나이는 10대 중반 정도일까. 곧은 검은 머리를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잘 모르겠다. 손에는 둥근 고리가 달린 금색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저게 수구인가……"

카카시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여왕 말고도 방에 한 명이 더 있었다. 짙은 붉은 색의 법복을 입고 회색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려 놓은 노인이었다.

"마나리님, 결정을."

노인이 강한 어투로 여왕에게 다가갔다. 가슴에 금실로 놓인 모란 자수를 봤을 때, 아마 그가 재상이겠지. 왕의 한쪽 팔을 짊어지는 처지로, 왕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권력자일 터이다.

"아사자는 나날이 늘어날 뿐. 이대로라면 기근이 근교의 마을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대책을 마련합시다."

"그건…… 물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수구를 움켜쥔 마나리의 손이 떨리자 둥근 고리로부터 늘어진 금속 장식이 챠랑 소리를 냈다.

"제가 수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또 폭주시켜버릴 거라 생각하니 어떻게 해도 용기가 나질 않아요……"

"두려워하시면서"

재상이 거친 목소리로 진언했다.

"쓸 수 없는 걸 무리하게 사용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걱정하시는 것처럼 혹시 또 폭주시켜 홍수를 일으킨다면 이번에는 밭이 쓸려나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수도가 괴멸된다면 이 나라는 기능 부전에 빠질 겁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왕들은 수 세기 동안 수구를 사용해 토지를 적셔왔어요. 그들이 할 수 있었으니 저도 분명……"

"마나리님"

재상은 큰 한숨을 내쉬고는 늘어진 눈꺼풀의 그늘에서 여왕을 빤히 바라봤다.

"역대 왕들은 모두 처음 수구를 손에 넣었을 때부터 훌륭하게 다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닿을 때부터 그 사용방법을 확실히 알았다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마나리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백해진 마나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재상은 고양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마나리님 때문은 아닙니다. 아마도 수구를 다루기에는 타고난 능력이 필요할 겁니다. 마나리님은 어쩌다 그것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상성이 맞지 않는 도구를 무리하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구를 사용해 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입니다."

재상이 창문 쪽으로 걸어왔기에 카카시는 창가에서 조금 거리를 뒀다. 재상의 발소리가 멈췄다. 그가 지금 창문으로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카카시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과 같은 광경이 보이고 있을 터이다.

그을린 밤 그늘에 가라앉은, 모래 먼지투성이의 벽돌 마을. 여기저기 길거리에서 큰 목재가 타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메마른 이 땅에서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이다. 하지만 분명 오래가지는 못하겠지. 만약 이대로 물 부족이 계속된다면.

"…… 나나라는 아직 수구를 시험해보지 않았어요. 그 아이라면 혹시 다룰 수 있을지도."

방 안에서 마나리가 힘없이 말한다.

재상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채로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낙오자에게 뭘 시키려고 한단 말입니까."

"재상, 실례가 아닙니까."

마나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날카로워졌다.

"나나라는 제 동생이며 왕족의 일원입니다. …… 일단은요."

"실례했습니다, 마나리님. 무심코 본심이 입으로 나와버린 모양입니다."

재상은 뒤돌아서 은근히 무례하게 사과하고는 기침을 계속했다.

"나나라님은 지금 나가레 마을에 살고 계십니다. 매일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장난꾸러기시니……. 수구를 잘 다룰 수 있는 그릇은 아니잖습니까. 기대를 걸 수는 없습니다."

여왕의 정면에 서서 재상은 압박했다.

"마나리님. 결단을."

"저는……"

마나리는 입을 다물고 잠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으나 결국 "알겠습니다."라고 말을 억지로 짜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수구를 사용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말한 대로예요.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겠습니다."

"결정됐군요."

재상은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늙은 손바닥을 가슴 앞에서 포개었다.

"국내에 물이 없다면, 타국으로부터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을 합시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남몰래 성벽을 타고 내려온 카카시는 그대로 벽에 기대어 고민했다.

여기에 온 것은 어떠한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으나──아무래도 내버려 둘 만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인재(人災)로 인해 나라는 피폐해지고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도 그 바보 재상은 그걸로 부족해서 타국과의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다.

마나리가 어째서 수구를 다룰 수 없는 건지 현 단계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마 발동에 어떤 조건이 있는 거겠지. 예를 들어 사용할 수 있는 건 남성뿐이라든가, 소환술처럼 계약이 필요하다든가. 선왕이 급사했기 때문에 사용조건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뭐. 조사해보지 않은 건 아무래도……"

혼잣말을 하고 카카시는 왕궁을 돌아보았다. 이 건물의 안쪽은 아마도 재상의 독재에 물들어 있을 것이다. 시녀나 관료로 위장해 잠입한다 해도 여왕에게 접근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

그보다도──

재상의 말에 따르면, 나가레마을에 마나리의 동생이 살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접근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생각된다. 왕궁에서 떨어진 곳이라면 재상의 눈도 닿기 힘들 것이고, 무엇보다도 전 7반 담당 상닌으로서도 피가 끓어올랐다. ‘낙오된 장난꾸러기 꼬마’라고 들어버려서는.

수도에서 나가레마을까지는 말을 타고 3일 정도 걸린다고 낮에 만났던 노파가 말했었다. 카카시의 걸음으로는 몇 시간만에 도달할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느냐다.

■ 

풀 냄새가 나는 바람이 불고, 살구나무가 사락사락 잎을 흔든다.

선왕의 장남・나나라는 놀이 친구인 스무레와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크크크, 6대 호카게 녀석. 지금이야말로 결판을 내주마."

"후후후, 모모치 자부자여. 너야말로 빨리 사과하지 않으면 큰일 나도 모른다고."

"문답 무용! 간다, 수둔・대폭포의 술! 솨아아아!!"

"큭, 그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자전(紫電)을 쓴다! 우오오오오! 콰아앙!"

두 사람은 6대 호카게 놀이가 한창이었다. 발소리에 놀란 메뚜기가 아침이슬을 흩뿌리며 껑충껑충 도망간다.

"각오해라, 자부자놈! 간다! 토둔・토류벼어억!!"

소리를 질렀던 스무레가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휘두른다. 그러자 나나라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이 되어 흥이 깨진 듯 가만히 스무레를 노려봤다.

"어이 스무레, 제대로 해. 토류벽은 커다란 흙으로 된 벽을 만드는 방어기술이라고! 그래서는 쿠나이를 휘두르는 것처럼밖에 안 보이잖아."

"아아, 그렇구나. 어라? 닌견을 불러내는 기술은 뭐였더라?"

"그건 추아의 술! 정말이지 너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구나."

나나라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토류벽도 추아의 술도, 6대 호카게의 전설에 몇 번이고 나오는 초 유명기술. 그런데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니, 정말이지 스무레는 곤란한 녀석이다.

"나나라가 너무 잘 기억하는 거야. 6대 호카게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토라진 듯 멍하니 스무레는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휙 땅에 버렸다.

"좋아, 다음은 내가 6대 호카게 역할 할래! 스무레, 네가 쓰러져라!"

"에—. 나 호카게 좀 더 하고 싶은데에……"

"안 돼! 내 차례야!"

말하기 무섭게 나나라는 주먹을 꾹 쥐고는 "치치치칫!"하고 입으로 말하면서 스무레를 향해 돌진한다.

"뇌둔・뇌절!"

힘차게 외치며 스무레의 가슴을 향해 힘을 적당히 넣은 펀치를 내지른다.

"우왓, 당했다~~앗!"

스무레가 호들갑을 떨며 꽥하고 들판에 쓰러진다. 나나라는 재빠르게 덮쳐서 꾸물꾸물 스무레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푸핫, 후하, 하하, 하하하하핫, 그만 해! 그만 하라니까!"

스무레도 지지 않고 나나라를 간지럽힌다.

두 사람은 몸을 떨릴 정도로 크게 웃으며 풀 위를 데굴데굴 주먹밥처럼 굴렀다.

"저 녀석들, 아침 댓바람부터 또 호카게 놀이 하고 있어. 질리지도 않나."

"어차피 또 나나라가 끌어들인 거겠지. 저 녀석 언제나 6대 호카게의 전설에 푹 빠져 있으니까."

염소를 끌고 방목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나나라가 나가레 마을에 끌려온 지 슬슬 1년.

이전에는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수도에 있는 왕궁에 살고 있었다. 여기에 온 것은 아버지가 급사하고 누나가 왕위에 오른 직후의 일이다.

왕궁은 정치의 장이니까 어린아이가 있는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나라님은 좀 더 시골 쪽에서 느긋하게 자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나가레마을은 어떠신지요?

재상에게 보기 좋게 쫓겨났다는 것은 어린아이인 나나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별로 다행이다. 딱딱한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갑갑한 왕궁에 갇혀 있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여기에는 동갑내기 친구도 있고, 마을의 어른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자신이 왕족이라는 것을 잊고 있을 수 있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6대 호카게 놀이를 하거나, 어른들에게 6대 호카게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거나. 나가레 마을에 온 후의 매일은 즐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나나라는 정말로 6대 호카게를 좋아하는구나."

마을의 어른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그럴 때마다 나나라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에헴, 하며 가슴을 펴 보였다.

6대 호카게는 전설의 닌자다. 닌자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기술을 쓰는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다. 레다쿠국에서 저―――――기 멀리, 엄청나게 많이 동쪽으로 가면 있는 '불의 나라'에는 뛰어난 닌자가 잔뜩 있다는 것 같다. 그리고 6대 호카게는 모든 닌자를 휘어잡는 압도적으로 대단한 슈퍼 미라클 카리스마 리더인 것이다.

"6대 호카게따위, 어차피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마을의 어른은 때때로 이런 식으로 심술궂은 말을 한다.

"흙이나 번개를 다룰 수 있는 인간이 실재할 리가 없지. 6대 호카게는커녕, 불의 나라도 실재하는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그럴 때 나나라는 으레 "그렇지 않아!"하고 힘껏 대꾸하는 것이었다.

"6대 호카게는 절대로 절대로 정말로 있어. 지금도 살아 있어서 불의 나라에서 닌자의 리더를 하고 있을 거야!"

"바보같은 얘기 좀 하지 마. 닌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번개를 만들어낸다는 거야?"

"그건……"

세세한 부분을 파고들면 곤란해진다.

6대 호카게의 이야기는 전승되어오는 것이기에 세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 뇌절에 관해서도 번개를 자를 정도로 대단한 번개 기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외에는 천 마리의 새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 정도만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렇기에 호카게 놀이를 할 때는 세세한 부분을 상상으로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6대 호카게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인간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렇게 생각하는 어른이 대부분이라는 것쯤은 나나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으음, 그래, 닌자는 대단하니까 뭐든 할 수 있어! 번개든 불꽃이든 만들 수 있어! 아버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분명 틀림없어!"

그런 식으로 나나라가 너무 열심히 말하기에 마을의 어른도 마지막엔 웃으며 나나라의 주장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나나라는 6대 호카게의 전설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레다쿠국의 왕이었던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 틈틈이 나나라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6대 호카게의 이야기에 대해 들려주셨던 것이다. 귀신・자부자와의 사투나 악의 집단 ‘아카츠키’와의 싸움. 교묘한 임기응변으로 적을 몰아넣은 6대 호카게가 사용하는 것은 번개를 자를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고 하는 대(大)기술 “뇌절”——외에도 비슷한 위력을 지녔다고 하는 화둔이나 토둔의 기술이 있다.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는 호카게의 전설은 언제나 최고로 두근두근했다.

6대 호카게는 나나라에게 있어서 동경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나나라님, 언제까지 놀고 계실 거예요?"

마고가 치맛자락을 나부끼며 달려왔을 때 나나라는 한창 진검승부를 내던 중이었다. 들판에 자라고 있던 도깨비바늘을 뽑아 검 대신 휘둘러 지금 바로 스무레가 연기하는 자부자를 베려 하고 있었다.

"뭐야, 마고. 지금 막 좋을 때였는데."

"공부 시간입니다. 돌아와 주세요!"

한 소리 들은 스무레는 무심코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나나라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고의 큰 소리에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것이다.

마고는 20대 중반의 키가 큰 여성으로, 나나라와 함께 살며 주변을 돌봐주고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재상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은 시녀라는 입장이지만 마고는 왕궁에 있던 시녀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언제나 나나라를 지켜보고 있어서, 저녁식사의 고비(양치식물의 일종)를 남기거나 청소를 빼먹거나 하면 날아와서 크게 꾸짖는 것이다. 장난이 들켰을 때는 큰 한 방을 먹었다. 시녀라기보다는 무서운 친척 아주머니 같은 존재다.

나나라는 에잇 하고 가슴을 펴고는 마고에게 선언했다.

"오늘은 공부 안 할 거야.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야!"

나나라는 일단 왕족이므로 가정교사가 붙게 되어있다. 재상의 명령으로 수도에서부터 따라온 것은 매우 얌전한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왕자님의 전담 교사가 되다니 영광입니다, 라고 말하며 기뻐하고 있었지만 나나라가 장난으로 등에 도롱뇽을 넣자 크게 울며 다음 날 아침에는 짐을 싸서 나갔었던가. 그 이후 몇 명이고 가정교사가 왔지만 모두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버렸다. 최근에 왔던 중년의 남성 교사가 나나라가 파둔 함정에 떨어지며 안경을 부숴버려 격노하며 나간 것이 바로 일주일 전의 일이다.

"선생이 없으니까 공부는 못 해. 그러니 놀아도 괜찮아."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나나라를 마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오셨어요. 새로운 가정교사 분."

짜증 나는 재상 녀석. 벌써 새로운 가정교사를 보내온 건가!

모처럼 스무레와 놀고 있었는데 찬물을 끼얹어서 나나라는 완전히 분개하고 있었다.

뭐 됐어. 어차피 장난 조금 쳐주면 울면서 도망칠 게 분명해.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렇게 고하고 마고는 차를 준비하러 취사장에 들어간다.

나나라는 진흙 범벅의 구두를 끌면서 거실에 들어갔다.

벽 쪽에 둔 살구나무로 된 둥근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지각이에요, 나나라 왕자님."

차분한 낮은 목소리.

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창을 등지고 있는 탓에 얼굴이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쭉 등골이 뻗어 있는 실루엣으로 봐서 키가 큰 남자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햇빛을 받은 은발의 가장자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눈부셔서 나나라는 화톳불의 그림자를 보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내 새로운 가정교사인가?"

팔짱을 끼고 일부러 거만하게 묻는다. 뭐가 됐든 처음이 중요한 것이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얕보일 수는 없다.

남자가 소리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하타케 카카시라고 합니다."

특이한 이름이다. 특히 성씨 쪽이.

카카시가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드디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게 됐다.

흐리멍덩한 눈빛이 졸린 듯한, 그야말로 멍해 보이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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