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you

[도윤이안] 용 사냥

제후들은 황제의 명에 따라 용을 사냥해 바쳤다.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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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 AU
*마작.. 대충 압니다..


마작은 용을 사냥하는 게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네 개의 몸통과 하나의 머리로 이루어진 용을 누구보다 먼저 사냥할 것. 가장 먼저 사냥한 이에게만 헌납금이 돌아가고 그 헌납금은 용 사냥에 실패한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게임은 정해진 장에 맞추어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냥꾼 중 헌납금을 낼 수 없는 이가 생긴다면 이르게 마무리 된다. 유능한 작사들이 앉은 판이라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보통 이안이 참가하는 판이 그랬다. 8국짜리 반장전을 해도 그 절반인 동풍전처럼 빠르게 끝나는 일이 꽤 있었다. 이안은 어린애들 장난치듯 심심풀이로 하는 게임이라면 가볍게 놀아주지만, 판돈이 크다면 거대한 용으로 상대를 찍어눌렀다. 이안에게 찍힌 상대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앓았다. 비명 같은 걸로 판돈을 대체할 수 있다면 불법 도박장 뒷켠에 놓인 작두는 쓸모를 잃었으리라.

예전에 이안이 그를 가르치길, 마작은 용을 만드는 게임이라 했던가. 룰 하나 아는 것 없이 이안의 뒤에 서서 게임을 구경하던 슈테펜 로스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둥절히 눈을 껌벅였다. 아무리 봐도 사냥이었는데. 그리 말하자 이안이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기원이 용 사냥인 건 맞지만 게임의 자체는 용을 만들어 날려보내는 형식이라고 덧붙였다. 네가 사냥하는 법만 알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이안은 분명 농담으로 그리 말했겠지만 슈테펜 로스로서는 조금 억울했다. 나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었으면서 그런 농담이라니.

다시 봐도 사냥이 맞는데.

노른자땅에 위치한 사업장 하나를 판돈으로 건 사시우마*승패, 점수봉을 걸고 하는 일대일 내기 마작. 내기 참가자 외의 작사들의 점수와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반장전, 동2국이었다. 게임 시작하고 이제 한 국이 돈 것이라 사실상 극초반부였다. 그러나 다음 국에 잘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해 마땅할 상대 작사의 표정이 창백했다. 표정은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하지만 핏기가 가셔 싸해진 낯색만은 완전히 감출 수 없었다. 고작 2국이었다. 아니, 2국은 진행 중에 있으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국이라 해야 옳겠다. 게임의 흐름을 생각하면 겨우 개전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나 이안은 그것만으로 대가의 낯에 표백제를 뿌렸다. 손목을 자를 작두는 챙기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비릿한 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듣기로는 꽤 능력 좋은 작사라던데. 슈테펜 로스는 눈동자를 굴려 대가의 낯을 훑었다. 하긴 동1국부터 이안에게 삼배만을 쏘였다. 기본 시작 점수가 25000점, 삼배만으로 쏘였으니 24000점을 빼앗긴다. 차라리 쯔모화료였다면 나았겠지만, 론이었으니 지불하는 것은 오롯이 제 몫이다. 이제 대가에게 남은 점봉은 천 점짜리 한 개뿐. 리치는 할 수 있으니 다행인가?

원래라면 시작부터 삼배만을 띄우는 일은 없겠지만, 저쪽이 내건 사업장은 이안에게도 골칫거리였다. 다른 이에게 보스 자리를 떠넘기고 바이올린 켜는 데 몰두하는 이안이 바이올린을 드는 대신 회의에 참여해야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거슬렸겠는가. 이안이 그러하니 실질적으로 조직을 움직여야 하는 간부진은 줄줄이 골머리를 앓았고 표면적인 보스는 화병이 나겠다며 냉수를 들이켰다. 슈테펜 로스의 체감상, 꽤 오래 조직이 시끄러웠다. 문제의 그곳이 이전부터 미묘하게 구역이 겹쳐 아닌 척 긴장감이 있었던 곳이기에 더욱 소란스러웠다. 갈수록 잡음이 극심해지던 차라, 무려 간부진의 입에서 '슈테펜 로스'의 투입이 슬그머니 나왔다던가. 스물다섯살짜리 보스의 말에 죽는 시늉은 물론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이들이 감히 보스의 소유물에 대해 언급할 만한 사안인 것이다.

간부들의 의견도 사분오열 되는 가운데 상대 조직에서 내기를 걸어왔다.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시하고 무력으로 밀어버리는 수도 있었으나 고작 사업장 하나에 피를 흘리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상대 조직도 같은 생각으로 내기 도박을 운 띄웠으니 어울려주는 게 나았다. 패했을 때 오는 리스크가 적진 않았지만 조직원들이 피를 흘리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 이안의 판단이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마작 내기인데 받지 않을 이유가 뭐 있겠냐마는.


"치."


멘젠*타가의 버림패를 받지 않은 상태이 깨졌다. 이안이 상가에게서 중패를 받아왔다. 슈테펜 로스는 이안의 뒤에 서서 그의 오른쪽 하단에 놓인 중패 세 개를 보았다가 이안의 패를 보았다. 고작해야 한 판짜리 역이었다. 누군가는 운이 다했다 하겠지만 그는 달리 생각했다. 쉽게 보내주진 않겠다는 거구나. 슈테펜 로스는 놀이 사냥을 떠올렸다. 넓은 공터에 부러 사냥감이 풀어주고 고상하신 높은 분들이 자유롭게 사냥할 수 있게 만드는 놀이사냥. 이안이 하는 건 그런 거였다. 화살이 하나밖에 남지 않아 벌벌 떠는 불쌍한 사냥꾼을 위해 잡기 쉬운 사냥감을 손수 풀어주는 것.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해, 갖고 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대가의 뒤에 앉아 불안스레 손톱을 틱틱대는 놈들을 향한 경고이자 도발이었다. 이안이 처음 이 방에 들어와 조직의 작사인 척 테이블에 앉았을 때도 뻔뻔스레 굴던 놈들을 겨냥한 것이다. 첫 국부터 점수를 대단히 잃었으니 초조할 텐데 저들의 작사가 이안에게 놀아나는 꼴을 보면 그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겠는가. 이 게임의 흐름을 조직 간 관계라 생각하면 더 자존심 상하고 분할 터였다. 만약 저들이 속에서 치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든다면 그들 조직을 대표해 앉은 저 작사와 다를 바 없이 사냥감이 되어 죽을 것이다. 이안은 그 정도의 조롱과 도발과 경고를 위해 정성스레 역을 짰다. 이 도발성 경고에 의해 멘탈이 깨진 대가는 안타깝게 되었으나 돈에 이끌려 이 판에 앉았으니 면죄부는 없었다.

타패가 빨랐다. 대가의 낯이 미묘해졌다. 슈테펜 로스는 제 경험으로는 읽을 수 없는, 그러나 이안은 읽고 있을 게 분명한 작사의 패를 보았다. 작사가 남은 천봉을 들어 테이블 중앙에 두었다. 리치. 점봉을 내려두는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안이 3통패를 만지작거렸다. 상가의 차례가 지나고 이안이 패산에서 패를 가져왔다. 그것을 오른쪽에 둔 채 이어 타패하는 패는 3통. 이안이 만들던 용의 중추였다. 허리가 끊긴다. 동시에 대가가 움찔했다.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크게 벌어졌다. 홍채가 떨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그는 잠시 이안의 버림패를 보았다가 떨리는 음성을 토해냈다. 굴욕과 수치로 범벅된 목소리가 참담함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론. 슈테펜 로스는 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착실하게 이안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니. 대가가 패를 공개했다. 일발, 리치, 이페코, 도라2. 5판, 만관이다. 8천점짜리 역.

도라가 두 개였을 줄은 몰랐네. 이안이 흥얼거리듯 혼잣말 하며 제 마작패를 덮어 테이블 중앙의 홈으로 밀어넣었다. 이안의 맞은편에 앉은 대가가 무너진 표정으로 이안을 보았다. 이안이 웃으며 배패를 기다렸다. 전동탁자가 희미한 기계음을 흘리더니 네 줄의 마작패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정말 몰랐…."
"글쎄, 어떨까."


각자가 패를 가져간다. 동3국. 이안이 친親이다. 13개의 패를 정리한 후 하나를 추가로 가져왔다. 하얀 패 위에 새겨진 그림을 본 순간 슈테펜 로스의 손끝이 움찔 튀었다. 뒷짐 지고 있어 티가 나지 않았으나 이안만큼은 눈치 챘다. 이안이 가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속삭였다. 슈, 심심해? 남풍전까진 안 갈 거야. 끝나고 나면 한 판 할까? 탁, 첫 버림패는 백. 이안은 그것을 가로로 뉘여 놓았다. 리치. 첫 타패와 동시에 터진 리치 선언에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움찔했다. 대가의 뒤에서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놈이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위협이라도 가할 기세인 놈을 보며 이안이 천 점짜리 점봉을 꺼내 테이블 중앙에 두었다.


"운을 시험해볼까? 네가 남풍전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닐지."


*


남풍전은 없었다. 대가에게 대단한 기개나 패기가 있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그의 정신은 동1국에서부터 무너졌었다. 리치를 내건 이상 오름패가 아니라면 모조리 타패해야 하는 상황을 이용해볼 만하건만 대가는 손쉽게 목을 내주었다. 결과적으로, 이 반장전 사시우마는 동3국으로 그쳤다. 저항할 줄도 모르는 이에게 자비를 배풀듯 이안은 카조에역만으로 깔끔히 화료했다. 삭수패 청일색으로 시작해 줄줄이 붙은 판수는 13판을 가볍게 넘겼다. 삼배만 론에 이어 역만이라니. 쯔모화료였으니 대가 혼자 독박 쓸 일은 없었으나 이안의 자리가 친이었던 탓에 붙은 추가 점수가 그의 점수표에 마이너스를 붙였다. 48000점은 셋이 나누어도 16000점이라, 고작 9000점으로는 부족했다.

그 작사는 손목이 잘릴까? 이안은 분기탱천해 작사를 끌고 가던 놈들을 떠올렸다. 끝까지 기분 나쁘게 구는 놈들이었다. 고작 사업장 하나로 살랑살랑 장난질 쳐오는 것에 짜증이 나 부러 그를 갖고 놀긴 했지만, 패기 넘치게 나를 건든 것치고 인내심이 하잘 것 없지 않은가. 골칫거리 하나 해결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그 외에는 영 불쾌하기만 했다.

탁, 탁, 그의 손가락 사이로 마작패가 굴렀다. 검지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패는 8삭이었다. 동3국 카조에역만을 위한 마지막 오름패. 플라스틱의 마른 광택이 천장의 조명등을 반사했다. 이안은 서늘한 눈으로 그 탁한 빛을 응시했다. 미동 없는 눈동자가 플라스틱의 텅 빈 소리를 좇는다. 깜박, 깜박. 보스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인지한 조직원들이 하나 같이 침묵을 지켰다. 플라스틱 구르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순간 그 건조한 침묵을 부드럽게 깨듯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공명했다.


"이안."


구겨짐 없이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정장 바지가 스스럼없이 바닥에 짓눌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이안의 발치에 내려앉은 슈테펜 로스가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서 새파랗던 은빛 눈동자가 의식적으로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회색빛에 시선을 주었다. 분노를 눌렀다고 하나 평소보다 무심한 시선이다. 평소 어루만져주던 주인의 손길을 생각하면 차갑기까지 한 눈이었다. 그러나 슈테펜 로스는 그저 그의 시야에 제가 담긴다는 것이 기쁘다는 듯 눈꼬리를 길게 휘어 웃었다. 무표정일 때는 한없이 냉막한 얼굴에 삽시간에 불그레한 색이 돌았다. 제가 느끼는 수줍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보스의 사냥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기분을 풀어주려는 의도가 여실히 느껴지는 아양에 이안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나랑 마작 치려면 여기가 아니라 건너편에 앉아야지, 도윤아."


톡톡, 손가락이 뺨을 두드린다. 달콤한 부름에 서도윤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래 전 골목길에서 그러했듯 이안의 손짓에 따라 몸을 일으켰다. 서도윤이 테이블에 앉았다. 즐기기 위한 게임이라지만 두 명이서 마작을 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안이 까딱 손가락을 흔들자 벽에 나란히 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 두 명이 남은 빈 자리를 채웠다.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진친*첫 친을 뽑았다. 탁자 중앙의 주사위가 굴렀다. 타그르르. 진친이 된 조직원에게 붉은 패를 주며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지잉, 전동탁자가 마작패를 토해냈다. 그 네 개의 줄기에 제 몫의 패를 가져가며 서도윤이 짧게 웃었다.


"삭으로 청일색이라니, 배패를 보자마자 놀랐어."


아까 화료한 카조에역만 얘기였다. 직전까지 불쾌해하던 보스의 심기를 생각해 말을 삼갈 수도 있었건만, 그의 강아지는 아까의 대가와 달리 대범했다. 그 점이 귀여운 거지만. 속으로 생각한 이안이 짧게 웃었다.


"우리 슈티프, 그래서 움찔했구나?"
"응, 재미있잖아. 하필 삭수패였으니까."


삭수패에 그려진 대나무는 화살을 뜻했다. 용을 사냥하기 위한 화살. 용 사냥의 구성요소는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공격적인 상징이기도 했다. 짐을 옮기는 수레바퀴(통수패), 용 사냥 후 주어지는 포상금(만수패)도 아닌, 용을 꿰뚫는 화살이었으니. 이안에게서 마작을 배운 슈테펜 로스는 그 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곧장 알아보았다. 이안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그가 피에 젖은 채 이안의 손을 움켜쥐었던 날부터 쉬지 않고 했던 것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슈테펜 로스의 머릿속에 그 거대한 용이 화료 되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상 최종국이 된 그 국은 고작해야 동3국이었다. 남풍전까지는 하나의 국이 더 남아 있었고 이안이라면 충분히 더 놀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 자리에서 그 정도의 패로 리치를 건 것은…….

슈테펜 로스가 패를 버렸다. 조직원에 이어 패를 가져온 이안이 시선을 들어 그와 눈을 맞추었다. 기이한 회색 눈이 아까의 작사는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맹렬하게 반짝였다. 남들은 꺼리는 그 눈을 정확히 응시하며 이안이 나른하게 미소지었다. 부드러운 속삭임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그럼, 대나무 대신 화살이 되어줄 슈를 위해서 바람을 불어다줄까?"


펑. 이안의 오른쪽 아래로 동패가 세 개 놓인다. 풍風패 중 하나인 그것을 보며 슈테펜 로스가 미묘하게 입꼬리를 늘렸다.

당연하게도, 게임은 이안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직전의 게임과 달리 판이 마무리 되는 순간 이안의 기분은 산뜻하기만 했다. 역시 대사희가 재밌어. 산뜻한 이안의 목소리와 대비되게 이안에게 탈탈 털려버린 슈테펜 로스는 엷게 미소 띤 낯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쏘일 것 같았는데, 그것 말고는 없었어. 차라리 포기하지. 그럼 더블 역만엔 안 쏘였을 텐데. 이안이 태워준 바람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지. 어마어마한 점수 차로 졌으면서 능청스럽게 구는 모습이 우스웠다. 이안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슈테펜 로스의 몸에 기댔다. 그 힘의 흐름을 받아 자연스럽게 이안을 안아든 슈테펜 로스가 이안의 뺨에 입 맞추었다.


"나의 황상, 패자에게 명하실 건 없습니까?"


이안이 비음을 흘렸다. 제 패자의 목을 감아 안은 그가 눈을 사르르 접으며 명령했다.


"용의 목을 가져와."
"분부대로."


슈테펜 로스가 맹세하듯 이안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남들보다 뜨거운 그 체온을 한껏 즐기며 이안이 기분 좋게 고개를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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