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소여비
앤캐가 나오는 모든 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천재는 질투받지 않는다. 차이안은 황도로 돌아와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하며 그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가 황도에 놓고 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백작령의 일도, 황실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의 자리도, 황제의 총애와 다른 음악가들의 선망도. 그의 자리는 언제든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자들의 마음으로 비워져 있었다. 다른 이로 채웠다가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해. 그 말을 못한 것은 대화해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굉장한 의지를 품고 있었건만 고작 하루만에 차이안은 많은 것들을 잃었다. 서도윤과의 신뢰, 팔이 나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의 일부, 나아가야 할 방향. 순탄히 풀리고 있다 믿었던 것이 사실 살얼음판 위에 지어지는 오두막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텅, 공명음과 함께 등이 켜졌다. 차이안은 이곳이 이단심문관들이 이 순간을 위해 마련해둔 곳이라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 챘다. 창문이 나 있지 않은 밀폐된 방, 빛이라고는 천장에 매달린 등불 하나뿐이고 그 바로 아래 자리한 테이블은 무엇이 튀더라도 지워낼 수 있는 철제였다. 테이블은 하나, 의자는 둘. 차이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문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잡
차이안은 최근 기분이 좋았다. 팔이 급작스럽게 더 호전되었다거나 어마어마한 음악적 영감이 떠올랐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 다른 방면의 진전이 있었고 그게 서도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변화의 시점은 분명했다. 서도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었던 비 오는 날. 그날을 기점으로 차이안은 서도윤을 꿰뚫은 빛을 만질
그 밤의 수확에 대해 말해보자면, 서도윤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구속을 풀지도 못했고 빌어먹을 예언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수 년 만에 성당의 문을 연 이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신기루 같은 희망을 좇아 온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심지어 신에게 기도하는 짓거리도 하지 않는단다. 꿈에서나 그리던 상황에 간신히 도달했는데 무엇 하나 서
그는 오래 기다렸다.빛에 꿰여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곱씹었다. 오늘은 올까. 내일은 올까. 모레는, 그 다음은. 처음엔 오지 않기를 바랐고 몇 년이 지났을 쯤엔 차라리 빨리 와 예언을 이루어내길 기다렸다. 그렇게 한 달, 반 년, 3년…. 모든 바람이 다 썩어 문드러져 그 사람에 대한 증오와 생존 욕구만 남은 것은, 겨울을 헤아리길
신이여, 기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이 한 몸 아량으로 포용해주시어, 사랑해주시어, 또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시어,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존재하게 하소서. 눈을 가리는 악마의 세욕을 떨치게 해주시옵고 또한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주시옵고 나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제가 우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잘못을 꾸짖어 우자가 당신의
우스운 말이지만 예쁨 받는 삶은 익숙하다. 그것은 그가 한태서로 남아 있는 한 평생 이어질 것이기도 했다. 민증도 나오지 않을 나이엔 아버지로부터 예쁨 받았고 아버지께 반항하기 시작할 무렵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예쁨 받았다. 비싼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탔다. 차고 넘칠 만큼 용돈을 받아 사치를 부렸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만끽했다.
함께 하는 삶 내도록 봄이리라, 축복하는 꽃비 아래서 입 맞추던 순간 예언처럼 깨달았다. 앞으로 있을 저의 계절에 차가운 겨울은 없을 것이라. 당신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나는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한 잎 벚꽃을 찾을 수 있다고. 꽉 부여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에 이것이 개화하는 봄의 온도라 생각했다. 내 삶이 당신과 닿아 드디어 봄과 같이
*느와르 AU*마작.. 대충 압니다.. 마작은 용을 사냥하는 게임이다.규칙은 간단하다. 네 개의 몸통과 하나의 머리로 이루어진 용을 누구보다 먼저 사냥할 것. 가장 먼저 사냥한 이에게만 헌납금이 돌아가고 그 헌납금은 용 사냥에 실패한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게임은 정해진 장에 맞추어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냥꾼 중 헌납금을 낼 수 없는 이가 생
*사망요소 有 *앤오님 트윗의 서술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일부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도윤, 봤지?"어느 날 이안이 그렇게 물었다. 특별한 어조는 아니었다. 그는 재촉하지도, 답을 기대하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새파랗게 빛이 서린 듯한 은빛 눈동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어느 공예가에의 확신, 그리고 담담한 선고였다. 화려하고 섬세하면서도 단
서도윤은 생각했다, 이름은 곧 개체 고유의 것이며 개체와 다른 것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이자 그 개체를 뜻하는 것이라고. 그의 누적된 경험 상 분명 옳은 정의였다. 실제로 인간이 태어났을 때, 반려동물을 들였을 때, 새로운 종을 발견했을 때 그에 적절한 명칭을 붙이는 것은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서도윤'을 받았던 때가
*요한펠 녹트의 강화신체는 축복이 아닌 저주다. 그들은 강화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판도라를 벗어나 재앙이 들끓는 폐허에 내던져진다. 강화 시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인간종을 멸종 직전까지 몰아붙인 크리처와 정면에서 맞붙어야 하며, 강화신체로 인해 인간 같잖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받는다. 강화 신체를 한 번 이식 받은 이상 녹트의 마지막
*서로 주고 받은 일곱 개의 편지 아래로 보너스 글이 이어집니다. *가독성 문제로 서도윤의 편지가 조금 수정되었습니다.(내용은 동일) 서도윤은 문자의 가벼움을 익히 알고 있는 부류였다. 문자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잉크의 나열에 불과하며 순간의 어떤 격동조차 전달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문자는 소리가 없지 않은가. 소리가 없고
*고영 집사 지구와 고영 제마 *지구 캐붕 주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제 애정이? 캐붕으로 티가 나버렸습니다.. *그치만 고양이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고양이 집사에게 있어 고양이털쯤은 사시사철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비슷한 수준의 친근함이 있었고, 솜방망이로 툭 쳐 깨뜨리는 유리잔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고 나서부터
*현대 AU. 환생...? 서예경은 운명을 믿는다. 그를 아는 이들이 들었다면 입을 쩍 벌린 채 오렌지 주스를 줄줄 흘릴 말이지만, 놀랍게도 거짓 한 톨 없는 진실이었다. 그는 운명을 믿었고 개체 간의 이끌림 따위를 제법 심도 있게 신뢰했다. 비과학적이잖아. 아무개가 말했다. 네가 그런 걸 믿어? 진짜 의외다. 또 아무개가 말했다. 여러 문장이 날
*도윤이안...인데 이안이 안 나옴. *전부터 보고 싶었던 장면만 짧게 썼습니다. 그는 정각에 맞춰 방문한다. 일찍 오지 않고, 지각하지도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시각을 정확히 지키는 태도는 그의 강박적이고 책임감 있는, 그러나 상대를 완벽히 배려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런 그를 대하기 쉬운가 하면 결코 아니었다. 특히 초반에
*청게 도윤이안 *장마 전, 장마에서 이어집니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 비도 그쳤으니까요. 비는 사물을 가리지 않고 흠뻑 적셨다. 흐린 하늘이 오래 지속되었지만 서도윤은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창 밖을 자주 보던 그는 그날을 기점으로 교실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빽빽한 학생들의 검은 머리통 사이에서 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까맣고,
*청게 도윤이안. *장마 전에서 이어지고, 이후 장마 후로 이어집니다. *썰 풀었던 트윗 타래를 구체화 했습니다.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흐리지 않던 하늘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우려섞인 목소리로 수근거렸다. 삼삼오오 모여 잿빛 하늘에 시선을 꽂은 모양새가 설핏 무리 지은 미어캣 같았다. 엥, 벌써? 밤부터 비 온다고 하지 않았
*청게 도윤이안. *전에 풀었던 장마 도윤이안을 베이스로 합니다. *장마, 장마 후로 이어집니다 "야야, 들었냐? 오늘 미친놈 전학 온다던데." "미친놈? 어디서 왔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암튼 사고 쳐서 강전 왔다던데? 뭔 사고인지는 나도 모름." "몇 반이야? 우리반이면 나 상종 안 함." "지랄하네, 담임이 냅두겠냐? 엄마가 유명한 사
*실속없음. 부제 확인 요망. *진짜로 아무것도 없음..(완존 짧음) *음알못.. 서도윤은 독보적이라는 말을 언제 사용하는지 알고 있다. 당장 본인만 해도 수많은 찬탄과 함께 들어온 말이었으니 모르기란 어려웠다. 그는 체감으로 그 표현을 익혔다. 남들과 눈에 띄게 다른 실력을 가진 사람, 천재, 군계일학. 사람들은 경외를 담아 혀 위에 단어를 올렸다.
서도윤은 사랑에 이안의 이름을 붙였다. 만약 언어학자들이 서도윤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면, 더없이 포괄적이고 보편화된 감정에 일개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웬 말이냐며 노발대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도윤으로서는 다행히도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의 소유였으며, 그의 좁은 세계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언어학자들은 평생을 가도 모
서도윤은 확신했다. 내가 사랑이란 걸 할 리가 없지. * 서도윤이 회고하기에, 무생물을 향한 사랑마저 사랑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다면, 그의 첫사랑은 분명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짚어보자면 스테인드글라스보다도 색유리를 투과해 바닥으로 쏟아지는 빛 그 자체다. 새까맣게 덮이는 어둠을 끔찍하게 여겼던 어린 서도윤에게 그
*말랑 해운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해운은 5년보다도 전에 정의했던 단어를 다시금 끄집어올렸다. 사랑, 사랑이라. 사랑에 대해서는 반지를 주고 받을 적에 모든 정리를 끝냈었다. 자기확신 없이 남의 인생을 제 남은 생에 엮어 매듭 지어버리는 일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 당연했다. 우현이 제게 스며들며 제 삶을 지지하는 많은 가치가 변했다지만 결국 그
*직젬 패밀리 어떤 존재가 세상에 탄생하여 첫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어머니 태내에 있던 세포에서 벗어나 독립된 하나의 존재로서 그들을 배척하는 세계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첫 숨을 들이마시고, 울음을 터뜨리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 낯선 세상의 유이한 보호자를 인식한다. 탄생은 곧 한 생명체의 개화를 의
*인어 AU. *직젬 6주년! 사랑한다 이 부부야! 그들을 칭하는 말은 아주 다양하다. 살아있는 바다의 보석, 바다와 땅의 매개자, 바다에 똬리 튼 현자, 그리고 행운을 물어주는 심해. 그들은 아름답고, 유능하며, 현명하기까지 해 모든 인간의 간원을 샀다. 그들의 흐드러지는 머리카락은 한올 한올 빛을 머금은 듯 찬란했고, 영리한 손짓은 천 리 밖을 보
*히어로 지구 빌런 제마. 공기를 가르는 언월도가 건물벽을 죄 베었다. 구그긍, 무너지는 건물이 한산한 도로를 엉망으로 막고 상황을 알리던 기자가 황급히 도망쳤다. 순식간에 엉망이 된 제한 구역의 중앙에서 제마가 여유로이 무기를 흔들며 사뿐사뿐 거리를 가로질렀다. 머리 위에서는 경찰 헬기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를 돌리고 저 멀리 특수부대며 히어로
청회색 하늘 아래로 그림자가 양지의 영역을 밟았다. 성큼 들어오는 어둠을 막아내기엔 태양이 일찍이 저버렸으므로, 몇 시간 전만 해도 푸릇했던 잔디들은 제 몸을 짙게 물들이는 밤에 속절없이 잠겼다. 한결같이 푸르른 상록수와 여름을 맞이해 활짝 잎새를 틔워낸 낙엽수는 사위를 그림자로 덮어버리는 밤에 의해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 그곳엔 오직 푸르른 어둠과
*사망 소재 뱀용은 멍한 눈으로 눈 쌓인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봉오리가 채 열리지 않은 꽃송이가 차가운 눈 사이에서도 용케 싹을 틔워내었다. 그 연한 분홍의 색이 참으로 고와보였다. 그녀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뱀용은 흘러가는 의식대로 생각하며 조심조심 꽃송이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톡, 동그란 꽃송이가 제 위에 쌓인 눈을 조금 털어내고 뱀용의
*당신의 썰에 나온 대사를 그대로 발췌해 사용한 대목이 있습니다. *사랑해요. 늘 감사합니다. *나랑 같이 평생 도윤이안 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언제든, 어디든 존재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자, 상상해보라,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을 어떤 사랑을.*일기예보가 장마를 예고한다. 기상캐스터의 또박또박 정제된 발음이 습
사람의 생이라는 것이 이토록 가벼운 것이었던가? 서도윤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생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어렵지 않게 손아귀에서 놓을 수 있었다. 그건 너무나 쉽고 가벼워서 그동안 왜 이것을 포기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숨이 의식되는 것 이상으로 느리게 폐를 부풀렸다. 깜박, 깜박, 바람에 깎여나가는 조각상처럼 눈꺼풀을 깜박였다. 어슴푸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