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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젬] 집사는 즐거워

사랑스러운 검은 고양이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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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 집사 지구와 고영 제마

*지구 캐붕 주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제 애정이? 캐붕으로 티가 나버렸습니다..

*그치만 고양이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고양이 집사에게 있어 고양이털쯤은 사시사철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비슷한 수준의 친근함이 있었고, 솜방망이로 툭 쳐 깨뜨리는 유리잔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고 나서부터 세지 않았다. 새벽의 우다다나, 소파의 팔걸이를 뜯어놓는 발톱이나, 목욕이 싫어 침대 밑으로 도망치는 것도 이젠 태연해졌다. 요 몇 년 간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에게 즐겁고도 괴롭게 헌신한 지구는 고양이가 털썩 누워버린 노트북 자판을 두고 태연스레 키보드를 가져와 두드릴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겠는가? 고양이로 인한 사소하기 짝이 없는 불편감이 완전히 일상이 되었는데.

"……제마."

하지만, 모든 고양이 집사가 그러하듯 지구가 겪는 가장 큰 위기라면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애교섞인 몸짓을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제마가 평소에도 애교 많은 고양이인 건 사실이지만 외출 직전에는 더더욱, 세상에 다시 없을 애교냥이가 되곤 했다. 발라당 드러누워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애앵 우는데 그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지구를 무릎 꿇렸다. 제마아…. 거의 습관처럼 핸드폰 잠금을 해제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손이 멎었다. 지구가 슬픈 얼굴로 제마를 바라봤다. 제마의 반질한 눈동자가 지구에게 꽂혀 반짝반짝거렸다. 하아, 진짜 회사를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습관적인 퇴사욕구를 마음속 앞마당에 심은―여태 수 차례의 시도가 더 있었으나 어떤 씨앗도 발아하지 못했다― 지구가 제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닿기도 전에 냉큼 접히는 귀나 손길을 즐기듯 눈을 감고 고릉거리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묘였다.

하지만, 제마의 말도 안 되는 미모도 사회적 무자비한 금전적 흐름을 틀어낼 수는 없었다. 지구가 울적한 얼굴로 쓰다듬는 제마의 아래에, 그가 어제 미리 다려놓은 셔츠가 구겨져 있었다.

우리 제마는 영특하기도 하지, 어떻게 이렇게 내가 입으려고 준비한 옷들만 골라서 뒹굴까. 신나서 몸을 뒹구르르 굴리는 제마의 검은 털이 새하얀 셔츠에 콕콕 박혔다. 끝장나게 대비되는 색깔에 아련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제마가 하고 싶다는데 얼마든지 해야지. 손으로 좀 더 제마를 놀아준 지구가 슬쩍 시계를 봤다. 지금 당장 돌돌이를 돌려 셔츠를 구출해 허둥지둥 몸에 꿰어입으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집사의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다. 새 셔츠를 꺼낸다? 제마가 구슬프게 울며 그 셔츠에 달려들 것이다. 가차없는 발톱 아래에 셔츠엔 구멍이 나겠지. 그렇다고 제마의 아래에서 셔츠를 강제로 빼낸다? 제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제마가 삐져서 오늘 점심을 금식할지도 몰랐다. 결국 지구는 양자택일의 순간 제 3의 선택지를 골랐다. 제마에게 빌기.

"제마, 나 그 셔츠 입어야 해."

"애앵~."

"…새 셔츠 줄까?"

"우애아앙."

"제마 님……."

지구가 납작 엎드렸다. 자비를……. 고릉거리던 제마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새까만 고양이는 잠시 재어보듯 지구의 정수리를 보다 앞발로 꾹 눌렀다. 익숙한 딸기젤리의 감촉에 지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제마가 몸을 일으켜 다른 곳으로 총총 걸어갔다. 꼬리 끝까지 하얀색 하나 없는 완벽한 검은 몸체가 유유히 거실을 가로지르더니 유연한 몸짓으로 캣타워를 올랐다.

갈 거면 가든가. 그리 말하는 눈빛이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지구는 구겨지고 고양이 털로 엉망이 된 셔츠를 주워다가 제마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제마. 저녁에 간식해줄게. 제마가 팩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나 꼬리가 지구 쪽으로 빠져 살랑거리는 걸 보아하니 아주 싫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살랑거리는 꼬리를 검지로 가볍게 얽어 간식 약속을 한 지구가 셔츠를 펼쳤다. 펼치자마자 나풀나풀 떨어지는 검은 털이 강렬했다. 지구가 다시 시계를 쳐다봤다. 좋아, 달려야겠어.

돌돌이를 아무리 굴려도 떨어지지 않는 고양이털은 지구가 퇴근했을 때도 그대로였다. 진이 다 빠진 얼굴로 현관을 밟은 지구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을 반기는 까망 고양이를 향해 활짝 미소지었다. 다녀왔어, 제마. 구두도 벗지 않은 채 쭈그려앉아 양팔을 벌리자 제마가 기다렸다는 듯 매달렸다. 우앙앙아, 애우앙. 인간의 귀로는 해석할 수 없는 울림이 고막을 두드렸다. 으응, 응, 하고 모르는 의사소통에 긍정을 표한 지구가 제마를 안은 채 발뒤꿈치를 꾹 눌러 대충 구두를 벗었다. 한손으로 제마의 등을 살살 쓸어주자 제마가 꼬리를 파닥였다.

만들어준 저녁 간식은 제마의 호평을 받았다. 제마는 그릇을 깔끔히 비우고선 한가롭게 그루밍했다. 우아한 검은털이 삭삭 빗기는 걸 보며 지구 역시 자기 위한 그루밍 준비에 들어갔다. 수십 분 후 수증기를 뿜으며 욕실 밖으로 나온 지구는 제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제마를 보며 방실 집사 다운 미소를 지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문질러 최대한 물기를 빼고 제마에게 다가가 뽀뽀를 쏟았다. 축축한 머리가 닿자 제마가 지구의 머리카락을 팍팍 때렸지만 지구는 뭉글뭉글 웃으며 제마의 미간에도 뽀뽀를 해주었다.

드라이기 소리를 싫어하는 제마를 위해 머리를 말리는 건 거실이었다. 완전히 뽀송해진 지구가 다시 침실로 돌아왔을 때 제마는 이불 속에 알아서 폭 파묻혔다. 이제 잘까? 제마의 동그란 머리를 간지럽히듯 긁어준 지구가 불을 껐다. 까만 어둠이 나 앉은 방에 마찬가지로 까만색인 고양이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지구는 요령껏 자리를 잡았다. 곧장 제게 붙어오는 작은 체온이 사랑스럽고, 찰딱 붙어오는 몸에서 조그맣게 들리는 빠른 심장소리가 편안했다.

지구는 빠르게 잠들었다. 밤을 닮은 그의 고양이가 옆을 지키고 있으니,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악몽 없는 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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