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메라이는 방에 가만 누워서도 제법 많은 것들을 손에 넣었다. 볼펜부터 마스크까지. 아주 사소하고도 대단치는 않은 것들이었지만, 아이 자신은 제법 만족스러워했다. 상처는 아주 천천히 나았다. 아직 움직일 수는 없을 만큼. 그러나 익숙해질 수는 있었다. 너무 오랜만이어 예민해진 것이지, 본래부터 아프다 해서 드러누워 우는 성정도 아니었다. 표현하는 것
살아있다. 눈을 떴다. 눈꺼풀을 왜 들어 올렸더라. 어째서 동공에 빛이 맺히도록 했던가. 하여 어찌 산 자처럼 굴었나. 글쎄, 그의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의식을 차렸으니 주위를 살피려는 본능이었겠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편다. 이전과 다른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치료한 건가……. 익숙한 천장이다. 어느새 익숙해졌다. 해도 달도,
구스트앙이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만을 빼내 자신의 심장께를 툭툭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본 트로이메라이가 실소했다. “네가 그럴 리 없어.” “왜 그렇게 생각했지?” “굳이 ‘그런’ 외형의 개체를 골라, 내 옆에 놓아두고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할 리가 없잖아. 정확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도 같은데.”
악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찾아온다더라. 하여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앞에 나타난다지. 그렇다면, 아주 오래전, 나는 나의 동물들에게……. 그 짧은 말에 구스트앙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다시 말해, 무어라 놀릴지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트로이메라이의 눈이 슬슬 굴러갔다. 왜 그렇게 봐. 그리고 아이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질
사랑해요. 품에 끌어안은 작은 문어가 속삭였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언제 잠들었더라. 트로이메라이는 일단 욱신거리는 이마부터 부여잡았다. 잠결에 얻어맞은 예상치 못한 딱밤이 제법 아팠으므로. 뭐야. 왜 이러는 건데. 꿈틀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머리 뒤편의 베개가 부스럭거렸다. 잠이 덜 깼을 때 특유의 희뿌연 시야에 갈
누군가는 신해어를 괴물이라 불렀다. 혹자는 단순히 크기가 큰 동물을 괴물이라 칭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형체 없는 두려움을 괴물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트로이메라이에게 신해어는 친구였다. 크기가 큰 동물은 유능한 동료였으며, 두려움이란 외면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의 세상에 괴물은 없었다. 때로 관리자들이 괴물처럼 느껴졌던 날도 있었으나,
문고리를 잡았다. 회전해 움직여도 물리적으로 걸리는 것이 없다. 문은 열려 있었다. 트로이메라이는 언제나 그 사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문고리를 끝까지 돌렸다. 차가운 금속에 닿았던 손을 떼어냈다.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발끝으로 문턱을 밟았다. 발에 닿는 딱딱한 모서리의 촉감이 선했다. 열린 문 너머의 어둠을 향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나 단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 트로이메라이를 구스트앙이 다시 한 번 불렀다. 야, 이리 오라니까. 곧 트로이메라이 특유의 굵은 눈썹이 또 한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갈 거야.” “이곳을 제하면 갈 곳이나 있고?” “나는, 네 맞은편 의자로 가겠다고 한 건데.” “패배가 충격적이긴 했나 봐. 예상했던 것보다야 순순하네.”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
멍청이. 분명 구스트앙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팔꿈치로 목덜미를 짓누르던 감촉과 시린 약물이 실핏줄 속으로 흘러 들어오던 감각. 그런 것들이 아직 트로이메라이에게 선했다. 빗나간 ‘단절’과 함께 어둠에 휩싸이듯 의식을 잃었던 것이 마지막 기억. 그리고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지나치게 밝은 빛, 그리고 환한 방. 눈이 부셔 몇 번 느리게 끔벅이다가,
신의 탑 3부 233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3부 233화 끝부분으로부터 이어집니다. ‘로 포 비아 트로이메라이’의 IF물입니다. 자살, 자해 등의 키워드 주의. (조아라에서 연재 중입니다. 이쪽은 백업용이에요.) 「외로워.」 억제되었던 감정들이 쏟아지듯 밀려 들어오던 틈, 트로이메라이가 입에 담은 것은 그 짧은 어절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