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선고

3. 너는 내 것이라. (1)

Noli Timere by YU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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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눈을 떴다.

눈꺼풀을 왜 들어 올렸더라. 어째서 동공에 빛이 맺히도록 했던가. 하여 어찌 산 자처럼 굴었나.

글쎄, 그의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의식을 차렸으니 주위를 살피려는 본능이었겠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편다. 이전과 다른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치료한 건가…….

익숙한 천장이다.

어느새 익숙해졌다. 해도 달도, 가짜 별조차 없는 그런 천장. 만들어진 하늘을 가리는, 제조된 천장. 기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탑의 하늘과 이 천장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드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찬란하게도 반짝였다. 어쩌면 별처럼.

근처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향해, 누운 채 고개를 돌렸다.

구스트앙이 아닌, 토끼가 그곳에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이런 품격 없는 소리를 내는 치는 아니었으니.

너, 살아있구나…….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기도 전, 트로이메라이가 헉, 빠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팠다. 그것도 더럽게. 살아있는 것을 보면 치료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불 속에서 손을 하나 빼내어 목덜미를 문질렀다. 올 넓은 천의 감촉과 오돌토돌하면서도 매끄러운 무언가가 닿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거즈와 의료용 테이프일.

목을 조금 뒤로 젖혀본다. 그대로 살이 벌어진다고 해도 믿을 법한, 선명한 고통이 목 한켠을 눌렀다. 때문에 잠시 두뇌가 멈췄다.

—이거, 지금, 일부러.

‘너.’

분명 그런 말을 하려 했다. 이을 뒷말을 미리 생각해 둔 것은 아니지만서도. 트로이메라이는 소녀를 ‘부르려 했다’.

그렇건마는 막상 튀어나온 것은 바람 소리뿐이다.

손으로 목을 다시 한번 더듬었다가, 힘을 주어 거즈 위를 꾹 눌렀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못이라도 박혔다 해도 믿을 법한 통증이 그를 덮쳤다.

되찾은 ‘고통’을 이렇게까지 확인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음에도.

목은 아프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일어나 앉기에도 움직일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가슴 위로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고통이 그를 엄습했으므로.

바로 얼마 전까지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미간을 구기고 토끼를 빤히 보았다. 침대 옆 머리맡에 의자를 두고 앉은 소녀. 그리고 그런 토끼가 억세게 쥔 고대종 모양의 인형 하나.

아이의 시선에 눈치를 살피던 토끼가,

“내키면 고쳐주신다고…, 그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만…….”

트로이메라이가 토끼를 더욱 빤히 보았다.

토끼의 인형에 더욱 진한 주름이 그어진다.

“……성대가 함께 다치셨, 대요.”

살릴 것이라면 완벽하게 고쳐 놓기라도 해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고는, 내키면 고쳐 주겠다고. 심지어는 그 말조차 고작 ‘전하라’고 했다.

짜증이 났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속살을 내지르는 고통이, 꼭 네가 잘못했다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내 탓이 아니잖아. 멋대로 숨을 붙여 놓은 건 넌데.

“저, 아…프기만 한 거고요. 먹고 숨 쉬는 것엔 지장 없을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말할 수는 없어도 먹을 수는 있다니. 내가 동물이기라도 한가? 애초에 의술을 왜 그런 방향으로 쓰냐는 말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는 밥, 직접 드셔야 한대요. 그동안은 굶어도 ‘그분’께서 몸을 조정해 주셨던 거라서.”

그건 몰랐다. 여하튼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밥은 또 직접 먹으라고. 트로이메라이는 새삼 구스트앙의 인성에 감탄했다.

신수를 끌어올렸다. 상처의 치료에는 역부족이라는 것만을 확인하고 금방 다시 힘을 풀어냈지만서도.

그 행위에 소녀가 의자를 슬슬 뒤로 옮겼다.

아이가 그런 토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소녀가 갸웃거렸다. 트로이메라이는 다시 한번 소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가 툭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망설였다. 그는 이 토끼가 싫었다. 토끼가 아므즈를 닮아 싫었다가도, 아므즈를 닮지 않아 싫었다. 토끼 또한 그를 싫어하므로 토끼가 억울할 것은 없을 테다.

토끼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가 누운 탓에 자연스레 토끼가 트로이메라이를 내려보는 모양새가 된다. 아이는 그런 점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게다가, 고작 다치고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띌 정도로 편안해진다는 것도. 그러나 여전히, 죽이고 싶을 만큼 싫지는 않았다.

눈을 맞춘 그대로 다시 손을 내밀었다.

토끼의 손이 그의 손 위에 놓인다. 따뜻했다.

이번에는, 부림술이 아니었다.

그리고 곧장 그녀 스스로 당황해 손을 치우려 했다. 그러나 빼내려는 손목을 아이가 잡았다. 작은 손에 소녀의 손목이 쥐어진다. 그리고 잡았던 손을 옮겨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었다.

토끼의 손바닥 위에.

하나, 둘, 셋. 획이 그어질 때마다 소녀가 화들짝 놀란다. 당황으로 범벅이 되어서도 소녀는 문장이 완성되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혹은 사그라져 간다. 문장이 끝맺어질 즈음의 소녀는 그대로 멈추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난 잘못한 게 없어.」

손가락이 손바닥에서 떨어져 나간다. 허공에 덩그러니 놓인 손이 옅게 떨렸다.

이미 숨으로 전부 채운 폐로도, 소녀는 다시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당황도 당혹도 아닌 황망함으로.

트로이메라이는 또 그것을 보아야 했다. 겨우 입꼬리만을 끌어올려 짓는 미소를.

그러고도 그녀는 한참 입을 달싹였다. 아이는 그 모든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토끼의 미소가 짙어지고, 눈이 빛을 잃어간다.

당신은 고작 그 한 문장을 적으려 이 수고를 한 것인가.

“그럼요. 당신이 옳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말했다.

자신의 이름조차 묻지 않는 아이에게 네가 옳다 답했다.

곧 트로이메라이가 네 답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뚱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 행위로 소녀는 말하지 않아도 답을 들은 듯했다.

어떤 답을, 상상했다.

애석하게도 지금 이 방에는 필기구가 없다. 소녀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다시 말하고 싶어질 틈을 주지 말자. 손에 쥔 인형을 트로이메라이의 앞에 놓았다. 입이 유난히 커서 그 속에 아이의 얼굴도 들어갈 법한 그런 봉제 인형.

소녀의 손에 꽉 잡혀 있으며 조금은 구겨진.

“이거는, 음, 선물인데요.”

아이의 시선에 의문이 들어찼다.

소녀는 그가 질문하고 싶어지기 전에 먼저 답하려,

“누가 시켜서 주는 건 아니고요. 그, 안에 뭔가의 장치가 전혀 없을 거라는 장담은 못 합니다만.”

트로이메라이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레 소녀가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소녀가 먼저 그렇게 했다. 그녀 스스로 놀라 튀어 오를 뻔했지만.

그와 마주할 때면 이상할 정도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고는 한다…….

아이의 눈은 무구하고도 무고했다.

“다음에 꼭 필기구를 가져올게요.”

이런 소통 방식은 당신께서도 귀찮으시잖습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도 눈앞의 손은 치워질 기미가 없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긴장이 된다. 어쩔 수 없겠구나. 다시 손바닥 하나를 아이의 앞에 가져다 댄다.

아이는 종이라도 대하듯 담담했다. 다시 글자 몇이 수 놓인다.

「너는 나를 싫어하잖느냐.」

아이는 그런 것을 의문했던 모양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가장 단순한 질문. 왜 자신에게 선물을 주느냐는.

“아닙니다.”

토끼가 즉답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었으나 금방 포기했다. 그러기에는 목이 너무 아팠으므로.

인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인형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더 좋았다. 피가 흐르고 숨을 쉬는 존재들. 신해어라거나, 그런 것들. 살아 있으면서도 그의 말을 아주 잘 듣는 것들.

그러나 그런 생물들과 인형의 차이점 또한 크게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물이라면 받아야겠지.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필 고대종 모양인 것도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침대 위, 바로 옆에 놓인 인형을 손만 뻗어 제 쪽으로 옮겼다. 괜히 목이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레. 인형은 아이에게는 제법 컸다. 그의 상체만 했으니.

하지만 토끼는 그가 받아들 줄은 몰랐다는 듯 굴었다.

물론, 그것은 트로이메라이가 관심 둘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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