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메라이가 눈을 내리깔고, 그러나 뚱한 표정으로 침대 어드메를 시선에 두었다. 나가기 싫다. 명확한 이유조차 실은 없다. 단지 그가 행해왔던 수많은 선택처럼,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아니다, 알고 있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모두 그 시발점이……. 구스트앙의 치료 덕에 이제는 어지럽지 않아야 할 머리가 띵했다. 그저 분명 아직 제 머
하지만 토끼는 읽지 않았나. 토끼가 읽지 못하는 척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구스트앙도 혹시……. ‘어이없음’을 한껏 담아 눈을 굴리다, 자신과 똑같은 표정의 구스트앙을 발견했다. 트로이메라이의 눈썹이 휜다. 진짜, 인가? 이런 때엔 괜찮은 성능의 유사 리트머스 종이가 있다. 망설이지 않고, 적었던 문장 바로 아래 다시 펜을 놀렸다. 「그러니까 네가 차
토끼가 없는 방. 식사는 마친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러나 입 안에 남아 맴도는 미처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그를 괴롭혔다. 질척했던 액체, 그리고 건더기들의 까슬한 감촉. 그런 것들이 불쾌했다. 그리고, 트로이메라이가 손바닥을 이마에 얹었다. 글쎄, 모르겠다. 손이나 이마나 온도가 비슷해 위화감을 느끼기 어렵다. 이마에 얹은 손을 꾹 눌러 그 차이를 음
구스트앙이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만을 빼내 자신의 심장께를 툭툭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본 트로이메라이가 실소했다. “네가 그럴 리 없어.” “왜 그렇게 생각했지?” “굳이 ‘그런’ 외형의 개체를 골라, 내 옆에 놓아두고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할 리가 없잖아. 정확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도 같은데.”
악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찾아온다더라. 하여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앞에 나타난다지. 그렇다면, 아주 오래전, 나는 나의 동물들에게……. 그 짧은 말에 구스트앙은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다시 말해, 무어라 놀릴지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트로이메라이의 눈이 슬슬 굴러갔다. 왜 그렇게 봐. 그리고 아이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질
사랑해요. 품에 끌어안은 작은 문어가 속삭였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언제 잠들었더라. 트로이메라이는 일단 욱신거리는 이마부터 부여잡았다. 잠결에 얻어맞은 예상치 못한 딱밤이 제법 아팠으므로. 뭐야. 왜 이러는 건데. 꿈틀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머리 뒤편의 베개가 부스럭거렸다. 잠이 덜 깼을 때 특유의 희뿌연 시야에 갈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 트로이메라이를 구스트앙이 다시 한 번 불렀다. 야, 이리 오라니까. 그러자 트로이메라이 특유의 굵은 눈썹이 또 한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갈 거야.” “이곳을 제하면 갈 곳이나 있고?” “나는, 네 맞은편 의자로 가겠다고 한 건데.” “패배가 충격적이긴 했나 봐. 예상했던 것보다야 순순하네.”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신의 탑 3부 233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3부 233화 끝부분으로부터 이어집니다. ‘로 포 비아 트로이메라이’의 IF물입니다. 자살, 자해 등의 키워드 주의. (조아라에서 연재 중입니다. 이쪽은 백업용이에요.) 「외로워.」 억제되었던 감정들이 쏟아지듯 밀려 들어오던 틈, 트로이메라이가 입에 담은 것은 그 짧은 어절뿐이었
Andromeda. 구스트앙×블로섬 사랑했던 구스. 오랜만이야. 응, 그래. 난 잘 지내. 우리 사이에 전화가 새삼스러울 일이니? 하긴. 전 남편하고 다정하게 통화할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지. 너도 들었겠지? 내 딸이 봉인됐다고. 마땅한, 이유도 없이 말이지. 자하드 그 자식…. 뭐?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야? 감히 가주의 전화를 도청하는 짓을 할 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