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4)
사랑하는 나의 ■■.
누나가, 꼭 돌아갈게…….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잤다. 침대에 흐물거리며 누웠다가도, 어느 순간 살피면 색색 잠들어 있고는 하던 것이다. 아이는 깨어서도 자주 눈을 감고 지냈으나, 잠든 것과 그러지 아니한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단순히 느낌만으로 충분했다. 또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그런 것이 묘하게 달랐으므로.
토끼가 눈 감은 트로이메라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 나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그렇게 소리를 죽이고 집중하면, 옅고도 느린 숨소리가 들려온다. 같은 자세, 같은 모습에도 직감할 수 있다. 잠들었구나……. 안았다기보다는 팔에 얹어 인형을 품에 놓은 아이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았다.
다만 동생의 일을 떠올려 보아도 저리도 자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 듯한데.
숙였던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켰다. 역시 소리 내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면서.
곧 식사할 시간이다.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
그러나 토끼는 이것을 사육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제때 제공되는 식사와 청결, 따스한 잠자리가 대접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아이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으나.
미음으로 시작했던 식사는 종류가 꽤 늘었다. 샐러드와 야채, 그리고 어제부터는 고기까지. 다만 향과 색으로만 관찰하여도 강한 향신료가 사용된 요리는 아직 올라온 적이 없는 듯하다. 토끼는 이것이 지나친 배려라 여겼다.
때로 얼마 먹지 않고 내려둔 식기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물으면 아이는 꼭 그것은 아니라 적었다. 아주 가끔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확인하고 ‘입에 맞으셨나요?’ 물었을 때 역시 그렇지 않다 적어 보였고.
언젠가부터 소녀는 아이의 그 뚱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트로이메라이의 표정 가짓수는 분명 적다. 그 때문에 아이를 읽기 쉽다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 토끼는 안다. 그 몇 없는 표정으로 아이는 꽤 많은 수의 감정을 표현하고는 했다. 똑같은 표정에 걸친 감정의 스펙트럼이란 매우 넓었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보였다.
아이가 명확한 호오를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를 그녀는 몰랐으나 궁금했다.
그럼에도 묻지는 않았다.
소녀는 지금의, 운 좋게 얻은 듯한 이 관계가 변하지 않기를 바랐으므로.
토끼는 트로이메라이를 믿지 않는다. 평화 속에서라면 한층 더.
문밖으로부터 식사를 전달받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소음에도 아이는 꿈쩍 않는다.
사용인으로서 무감한 주인이란 반김이 마땅하나 간혹 의문했다. 왜?
여튼 자주 잠드는 아이였음에도 부러 깨웠던 적은 없다.
그가 오래 잠들지 않는 탓이다. 눈을 붙이고 잠드는 것은 어지간히 길어야 두 시간……. 여태 식사가 완전히 식기 전에 아이 스스로 깨어나고는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토끼는 오늘 또한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는 귀찮아하면서도, 음식을 삼키며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찌하였든 ‘먹는’ 행위만은 충실히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목 아래로 삼키는 양이 많든 적든. 적어도 그 행위만은.
이유를 물을까…….
고민은 짧았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 중 그녀 자신이 포함되어 있더라면 불편할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일 테고. 다만 그가 식사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고마움’은 퇴색되지 않으므로, 그것만을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을 뿐이다.
아이의 얼굴을 과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으려 노력하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아이의 옆에 섰다.
예상했듯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아이가 눈을 세게 감았다가 다시 눌러 떴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짧게 웅얼거렸다. 어떤 말을 하려는 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그는 ‘말’을 할 수 없다. 다만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자 했을까. 소녀의 빈약한 상상력 속에서 ‘5분만…….’ 따위의 것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이의 품에 놓인 인형을 자연스레 옆으로 밀어 두고, 간이 책상을 침대 위로 올렸다. 방에 탁자는 있으나 그곳에서 식사한 적은 없다.
아직 가만히 누운 아이가 손으로 제 눈을 덮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치웠지만서도.
평소와 달랐던 것은, 그가 제 스스로 일어나 앉았다는 것.
아이가 반쯤 감긴 눈을 끔벅이며 대충 간이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곧 덜그럭거리는 소음과 함께 식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고.
온 행동과 몸에서 귀찮음이 묻어난다. 그는 단 한 번 음식을 입으로 옮기고서는 바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입에 맞지 않으시나요?”
여전히 덜 뜨인 눈으로 수첩을 더듬어 찾은 그가 무어라 글자를 써 내렸다. 아주 짧게,
「아니.」
손으로 엑스자를 만든다거나, 고개 젓는 시늉이나마 한다거나. 기실 표현 수단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는 굳이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고집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세밀한 소통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아이는 아무것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식기 놓은 아이가 더는 무엇도 먹을 기색이 없자, 토끼가 침대 위 놓였던 불청객들을 치워내기 시작했다. 책상과 식기, 그리고 음식들이 차례차례 침대를 떠나간다. 그리고 소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은 트로이메라이를 향해 몸을 숙이며,
“눕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소녀의 손을 막았다. 늘 그랬듯 뚱한 눈으로. 졸려 게슴츠레 뜨인…….
아이가 토끼를 물리적으로 거부한 것은 처음이다. 저가 잘못한 것이 있나, 되짚던 소녀를 앞에 두고. 아이가 다시 수첩에 무어라 끄적였다.
「이제 그리 아프지는 않다.」
그렇구나. 상처가 거즈에 덮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알 방법이 없었다. 토끼는 괜스레 입 안이 텁텁했다. 아마 이번만큼은 담담하게도 토끼의 의문을 해소해 주는 아이가…….
금방 다시 누워 잠을 청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식사 후에 바로 누우면 안 됩니다.’ 물론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일은 없었다.
그저 웃으며 근처에 올려두었던 상자를 아이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이런 것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한 번 감긴 아이의 눈은 이래도 뜨일 기미가 없다. 익숙한 무시에도 토끼의 말이 이어졌다.
“체스를 즐기신다고 하셔…….”
아이의 눈꺼풀이 살짝 뜨였다. 관심을, 보이는 건가? 소녀가 조심스레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침대 위로 꺼냈다. 적당히 기능은 할 수 있는, 그러나 아주 값비싸지는 않은 체스판과 말이 침대 시트 위로 놓인다. 아이는 그것을 확인도 않고선,
「누가?」
죽죽 대충 그어 쓴 글씨에 토끼의 눈이 데굴 굴러간다. 졸려 날카로운 것인지, 체스판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으므로. 괜한 짓을 했나? 하지만 저번 인형 선물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소녀는 괜한 질문은 하지 않으면서도 괜한 행동은 하고는 했던 것이다…….
토끼가 짧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주인님께서요.”
그 주인이라는 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그것이 트로이메라이라면 그가 체스를 즐긴다던 의미가 될 테다. 주인이 아이가 아니라면, 그녀를 고용한 사람이 ‘그가 체스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애초에 질문이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어느 쪽으로든 해석될 여지가 있는 답.
그러나 아이는 더 캐묻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둘 사람이 없어 이 선물은 의미가 없다는 뜻. 그리 이해한 토끼가 조신한 손가락을 들어 올려 소녀 자신을 가리켰다.
이어지는 트로이메라이의 뚱한 표정으로부터, 소녀는 어떤 감정을 읽어냈다. 토끼의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하나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너 따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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