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선고

2.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1)

Noli Timere by YU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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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신해어를 괴물이라 불렀다.

혹자는 단순히 크기가 큰 동물을 괴물이라 칭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형체 없는 두려움을 괴물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트로이메라이에게 신해어는 친구였다.

크기가 큰 동물은 유능한 동료였으며, 두려움이란 외면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의 세상에 괴물은 없었다.

때로 관리자들이 괴물처럼 느껴졌던 날도 있었으나, 금방 떨쳐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신일 뿐이라는 것을.

잔혹한 탑이 괴물이라 생각되었던 적도 있지만, 탑은 생명체가 아니었으므로 그것 역시 괴물은 될 수 없었다.

그런 트로이메라이가 가장 처음으로 괴물을 ‘발견’했던 것은 물에 비친 그 자신을 보았을 때였다.

호숫가에 쭈그려 앉아 아래로 손을 뻗자 물이 출렁이며 파문이 일었다. 그와 함께 물에 비친 제 얼굴도 함께 일렁였다.

물결이 퍼져나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굴을 몇 등분해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 조각의 ‘그’가 그곳에 있었다.

무서웠다.

단지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잠시 눈에 담았다는 것만으로 두려웠다. 아마 따지자면 명확한 이유를 붙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체도 무게도 없는 일그러진 허상에 불과한 그것을, 그러나 트로이메라이는 괴물이라 느꼈다.

위를 바라보았다. 가짜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투명한 물과는 달리 불투명한 하늘이 그를 기다렸다.

곧 출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짧은 한숨을 뱉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차. 동료들에게 돌아가야지. 어느 틈에 다리에 달라붙어 있던 것인지. 빨간 문어를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 일을 곧 잊었다.

그가 발견한 두 번째 괴물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이었다.

그들은 그를 치켜세우면서도 두려워했다. 껄끄러워하면서도 그가 그들을 이끌어 주기를 원했다. 그들을 대신해 행동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지기를 바랐다.

일종의 무책임한 숭배였다. 마치 신에게 기도라도 하는 듯한…….

그런데도 그들의 눈에 담긴 그는 괴물이었다. 적어도 트로이메라이는 그렇게 느꼈다.

수많은 눈동자에 무정한 표정의 자신이 비쳤다. 각각의 눈에 다양한 각도의 자신이 담겼다. 그곳의 그는 본래의 색을 잃고 각기 다른 빛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둥근 눈동자에 비추어 볼록렌즈처럼 왜곡된 그가 그곳에 있었다.

불쾌했다.

문득 언젠가 호숫가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큰 연결고리가 없었음에도 그러했다. 그때는 두려웠으며 지금은 그저 거북함에도 어째서인지 그때의 일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기억 속에 묻어 둔 고작 그 일이.

그때와 같이, 정확한 이유를 붙일 수는 없었다. 단지 그들의 나약함에 신경질이 났던 것이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편이 쉬웠다.

신경 쓸 것 없다.

그는 그저 계속해 탑을 올랐다.

트로이메라이를 비추는 눈 또한 계속해 늘어났다.

로 포 비아 트로이메라이는 그들의 바람에 긍정을 표하지는 않았으나, 어떠한 거절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가 드러낸 것은 침묵뿐이었다.


아므즈를 떠올릴 때면 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그 행복했던 시절의 환한 빛이 지금의 그에게 주는 것은 한층 짙은 그림자 외에 없으므로.

사랑하는 그녀를 닮은 소녀가 싫었다. 그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녀가 미웠다. 아므즈를 닮은 그 토끼가 감히 웃고 있다는 것이, 온 노력을 기울여 입가에 자리한 미소가…….

불쾌했다.

습관처럼, 소녀의 눈에 비친 그를 찾았다. 그가 늘 아므즈의 눈에서 찾아내고는 했던 투명한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고작 그런 까닭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단지 그것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인지, 그리하기 싫었던 것인지는 그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그 눈에 담긴 그는 괴물도 신도 그리고 사람조차 아니었다.

그저 초라한 무언가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즈음, 토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소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드디어 눈을 떨궜다.

눈이 부셨다. 밝은 방 덕에 소녀의 그림자 또한 선명했다.

공기가 시렸다. 트로이메라이가 떨구었던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게 한참을, 두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물으셔, 그게, 청소…를 하러 왔습니다.”

 

소녀가 먼저 항복했다. 잔뜩 흔들리는 목소리에도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 트로이메라이가 짧게 답했다.

 

직후 빗자루를 움직이기 시작한 토끼는 트로이메라이의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굴었다. 오로지 바닥과 기구에 눈을 고정한 채 고개조차 거의 들지 않았던 것이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던 소녀의 노력으로 이 방에 들어찬 소리라고는 빗자루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음뿐. 같은 공기를 나누더라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금세 트로이메라이는 소녀에게서 모든 관심을 거두었다. 그러려 했다. 닫힌 창문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토끼가 창문을 청소하러 그의 시야에 다가오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성공했을 테다.

소녀가 먼지떨이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먼지떨이의 얇은 셀로판지들이 조명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그것을 창문의 선을 따라 주욱 그어냈다. 아주 옅은 햇빛을 닮은 선이 창문 위로 잔상처럼 남았다.

짜증 나.

그러고도 토끼를 해칠 마음은 솟지 않아서, 이불을 그러쥐며 고개를 돌렸다.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소녀가 그를 응시했다. 호흡으로 미루어 아마 그녀 자신도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는 것에 놀란 듯했다.

시선에 더해 그 당황이 더욱이 불쾌했으므로, 꾸욱 눌러 감았다 뜬 눈을 옥빛으로 빛냈다.

그리고 소녀의 몸이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나름 야무지게 쥐고 있던 먼지떨이가 손에 더더욱 달라붙고, 어깨가 문을 향하는 방향으로 비틀렸다. 발뒤꿈치는 언제라도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처럼 꿈틀거렸다.

부림술이다. 수인이라면 통할 테지. 작아진 몸인 탓에 완벽하지는 않으나 자신의 의사―이 방에서 나가기를 원한다는―를 토끼에게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소녀는 금방 방 밖으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소녀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문이 닫히기 전,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어둠 속에서 빛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이번에도 고작 먼지떨이였다.

눈을 감았다.

이제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외로웠다.

아므즈를 떠올릴 때면 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그가 세 번째로 발견했던, 마지막 괴물은 직접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 자신이었다.

어느 것에도 비치지 않은 온전한 ‘그’였다.

탑을 오르고 계약을 마친 그는 안다.

괴물을 괴물로서 존재하도록 하는 재료는 오직 공포뿐이다. 복합적인 힘이 아닌 단순한 공포.

다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언제나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먼 과거에는 비틀리고 일그러진 그 자신이 두려웠다. 깨져 비치는 그가, 다른 색이 덧씌워져 일그러진 그가 무서웠다.

그러나 그 길디길었던 시간을 견뎌내며 그는 이미 일그러졌다.

비틀린 어딘가에 비추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손을 들어 제 코와 볼 사이 움푹 파인 곳을 쓸었다.

―그것이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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