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턱까지 내려오는 머리칼. 푸른빛의 밝은 눈동자. 매력을 사람으로 친다면 내 눈앞에 존재하는 존재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온 사람이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그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너무 어려.’
요즘 같은 시대에 나이 차이가 무슨 대수느냐 싶겠지만 저 까마득한 꼬꼬마 시절부터 봐왔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내게 따가운 눈초리를 날릴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그 애가 네 살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이미 열일곱에, 공부와는 영 연이 없어서 자퇴하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당연히 그때부터 좋았다는 건 아니다. 솔직히 그땐 너무 바빠서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고 자각한 것은 그 애가 열일곱이 되던 해였다. 우리는 그 당시 새로운 격변기를 맞이하던 시기라서 변화에 적응하기 벅찼고 뉴페이스들은 수를 불려갔다.
우리 남매는 그런 상황에서 자립을 꿈꿔야 했다. 별로 어른들이나 형들이 자립하라고 등을 떠밀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남매는 그런 게 익숙했고, 익숙한 일을 한 것뿐이었다.
“아 씨.”
“아니 왜 욕을, 아니 미친.”
그런 바쁜 와중에 우리 남매는 같은 날 같은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간대에. 문제라면 완전히 똑같은 색의. 미용실 거울에서 바라보던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찰랑이는 금발머리를 집 위의 조명에서 보니 체감이 남달랐다. 너무 충격이라 미용실에 다시 염색하러 갈 뻔했다. 어쩐지 사장이 요즘 금발이 유행이냐고 하더라. 세상에 미친 일이 너무 많다.
우리 남매는 원래 검은 머리였다. 이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존재와 취향마저 완전히 겹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주변인들에게 굉장히 우애 좋은 형제, 혹은 도플갱어 정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나는 키가 작지 않다. 일반적이다. 열일곱에 174 정도면 적당하잖나. 문제는 누나 키가 172였다는 것. 옷 취향이라도 좀 차이를 두면 어떠나 했는데 그것조차 일치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조금 달랐다는 점이었다. 누나는 특이한 엔지니어였고 나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래, 변변한 직업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 하지만 난 분명히 유능했다. 일을 잘했고,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는 숨 쉬었다 하면 튀어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유망했고, 우리 남매는 자연스레 소문난 천재 남매가 되었다. 형과 만나고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것도 우리 남매한테서 난 소문을 통해서였다.
우리 집,이라기보다는 이 시설은 좀 특이했다. 갈 곳 없는 이들을 불러와서 이것저것 시키는 곳이다. 우리 남매는 의심했다.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우리를 착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먹을 것을 주고, 세상을 알려주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잠을 재워주고. 심지어 이부자리는 따뜻하다 못해 준 잠옷마저 부드러워서 여름날에는 땀을 흘릴 정도였다.
누나와 나는 쌍둥이여서 나이가 같다. 하지만 열일곱이 되던 해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누나는 계속해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 남매는 공부를 잘했다. 일찍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짓을 했다. 새로운 것들은 있는 것들로 닥치는 대로 만들어내 닥치는 대로 팔아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배웠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우호적이지 않다.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같은.
결국 끝내 우리가 ‘도대체 저희로 뭘 하려는 건가요’하며 신경질적으로 물었을 때도 돌아온 대답이 ‘무얼 해야 하는 거였냐’며 역으로 의아하던 걸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도저히 이해가지 않던 내가 ‘그래도 뭔가 하나쯤 목표하는 게 있으시겠죠’ 따지며 들자 나를 데려온 형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예술이 좋아.”
얼이 빠져서.
“지금 그걸 물은 거겠냐고요. 질문에 대답을 하세요.”
“너희는 예술을 사랑하잖아?”
“저는 그림은 모르겠고 로봇이 좋은데요.”
옆에서 부루퉁한 얼굴을 지으며 서있던 누나가 뭔가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이어서 누나는 우리를 데려온 형들 중 하나였던 요리를 장하는 형이 ‘맛있니?’하고 묻자 ‘네.’하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너는 지금 뭐 하는데.
“로봇만큼 디자인이 필요한 건 없지. 너한테는 재능이 있어. 네가 만든 발명품을 처음 보았을 때 회사에서 만들어낸 가공품이라고 생각했거든. 아니면 어느 장인이 만들었거나. 결론적으로는 후자에 얻어걸렸지만.
도저히 어린 학생이 만들어낸 물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완성도가 높고 굉장히 정교했기 때문이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갖 골목에 가 너에 대해 물어보았다. 누구인지, 몇 살인지, 언제부터 이런 곳에서 살았는지.
우리를 의심하는 건 당연해. 오히려 그건 너희의 뛰어난 생존율을 납득하게 만들지. 보통이었으면 이미 죽고 남았어. 그러니까 너희를 고른 거야. 살아남은 이는 살아남아야지. 재능을 빛내고 이를 보이며 재로 변해야지.
너희는 이런 나를 무책임하고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라. 너희가 살아남기 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
나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기분 나쁜데요.”
“이유는?”
“이해가 안 가서요.”
“이유가 안 가니 기분이 나쁘다.”
형은 곰곰이 생각하는듯하더니 입을 벌렸다.
“이유는?”
“…….”
질문은 반복됐다.
무슨 의견을 말하든, 얘기하든, 꺼내든.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뜻이다. 내가.
“다짜고짜 갑자기 데려와서는 하는 말이 그거잖아요. 예술이 어쩌고저쩌고.”
“그렇군. 그래서?”
이쯤 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얘는 대체 뭐 하는 놈이지.
그리고 이런 놈을 상대하고 있는 나는 대체 뭐지.
“흠흠.”
옆에서 잘났다는 듯이 돼지마냥 처 먹고나 있는 이 여자는 또 뭐지.
진지하게 현타가 올 참이었다.
짝.
경쾌한 손뼉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나갈 거야?”
“……!”
대답할 수 없었다.
형은 내 입이 열릴 때까지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빛의 목적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쩐지 희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눈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나가면 뭘 할 거야?”
“평소처럼, 살 건 데요.”
“내가 너희를 신고하면?”
“…!”
“너희는 집이 없어. 그리고 나라에서는 부모 없이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학교도 다니지 않고 돈을 벌고 생계를 챙기는 이들을 ‘어딘가 위험한 불량아’로 규정하지. 아까 말했잖아. 너희에 대해 알아보고 다녔다고. 그 점에서 캐물어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 역시 어리긴 어린가.”
“뭐요?”
“너 어리다.”
“아니, 그러는 형은, 그쪽은 뭘 할 수 있는데요? 뭐 잘난 듯이 말하시네.”
“잘났다만.”
예?
“나는 돈이 많아. 학력이 높고, 남을 가르치는 재주도 있다. 인성마저 출중하지.”
“오.”
“아니….”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나 보통?
다시 입을 열어 반박하려던 참이었다.
“너의 부모가 되어주마.”
“?”
“헐.”
오므라이스를 뜯어먹던 누나가 포크를 떨어트렸다. 누나 옆에 선 형이 나와 대화하다 말고 누나에게 다치지는 않았느냐며 무표정으로 물었다. 누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그랬다.
이상한 곳에서 섬세함을 챙기지 마.
그러더니 괜찮다는 걸 확인했는지 고개를 돌려 다시 내게 질문했다.
“싫을까?”
“아, 아니, 그럼, 좋겠어요? 좋겠냐고요.”
“그럼, 나갈 거야?”
…….
“……아니오.”
짜증난다, 진짜로.
새 오므라이스를 요리하던 형이 옆에서 ‘무서워라’하고 중얼거리던 것이 더욱 내 화를 북돋았다.
그냥 다 꺼져줬으면⋯⋯.
누나고 자시고. 전부.
“……아니, 몇 살인데요? 딱 봐도, 우리랑 별로 차이나 보지도 않으면서…….”
나는 일말에 반발심을 드러내며 마지막까지 따져들었다. 그랬더니 부엌에서 요리하던 형이 소리 내어 웃었다. 눈앞의 형은 변함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 고마워.”
“하하하하!”
형의 엉뚱한 대답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오므라이스 형이 발광했다.
이상한 곳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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