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급료 3개월분의

어제는 린네 군과 키스를 했다. 어쩌다보니, 홧김에, 실수로. 그런 수식이 어울리는 한심한 입맞춤이었다. 린네 군의 숨결에서는 나마저도 어지러워질 정도의 술 냄새가 배어있었고. 나야 뭐, 린네 군과 달리 멀쩡했지만 피하거나 밀어내지는 않았다. 린네 군의 실수는 나의 기회였다. 술김에도 차마 솔직해지지 못한 어색한 입맞춤에 질척한 키스로 대응한 건 내 쪽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입맞춤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입에 들어오는 무엇도 씹어 삼킬 수 없는 행위에 어떤 만족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고 보면 이보다 달콤할 수가 없었다. 부드럽고 질긴 살덩이가 내 입술을 벌리고 침범했다. 지금 당장 저를 베어물고 한 입에 삼켜달라는 듯이 나를 헤집고 파고드는 데에는 눈 앞이 아찔할 정도였다.

그게 문제였다. 이토록 달콤한 것을 입 안 가득 물어봐야 공복은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린네 군과 입을 맞추고 혀를 얽어도 그걸 씹어 삼키지 않는 한엔 충족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냐면……. 그저 계속해서 린네 군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건 린네 군도 마찬가지였다. 먹을 만큼 먹고 마실 만큼 마신 남자는 무엇이 그렇게 아쉬웠는지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렸다.

아직도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내 목을 단단하게 끌어안은 팔, 바싹 달아오른 숨결, 자칫 서로를 삼켜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엉키는 입술……. 린네 군은 그 모든 것을, 아마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었을 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늘의 린네 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찾아와 밥을 얻어먹었고 장난을 쳤다. 시나몬의 폐점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굳이 나와 단둘이 남은 것도 저는 어제 일 따위는 기억에도 없고 안중에도 없다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뭐어, 나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린네 군을 욕하고 얻어맞았으니 어쩌면 린네 군은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고 믿고 더욱 뻗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린네 군의 실수였다. 나는 린네 군이 오지 않는다면 그를 부를 생각이었고 그가 나를 피한다면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 이유야 뭐……. 내 주머니 안에 있다. 각오를 다지듯 주머니 안의 그것을 꽉 움켜쥔 나는 바 카운터 너머에서 찬물이나 마시고 있는 린네 군을 향해 말했다.

“어제 일 말인데여.”

아무 맥락도 없이 그렇게 들이받았다. 아니, 맥락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어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말할 만한 타이밍이 없었을 뿐이다.

“어이어이, 상상도 못한 직구잖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던 린네 군은 겨우 그렇게 말한 뒤에야 들고 있던 물잔을 내려놓았다. 경악을 추스른 뒤에야 비로소 내게 향하는 것은 황당해하는 시선이다.

“먼저 말해두는데 무를 생각은 없으니까여~!”

“우오……. 꽤 남자답잖냐.”

놀리는 투로 감탄한 린네 군이 이내 낄낄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럼? 결혼이라도 해줄 생각이야?”

“아니, 남자끼리는 무리라니까여.”

곧장 부정했는데도 린네 군은 거절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크게 서운해하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가 이어졌다.

“너무해~ 니키는 린네 군의 몸만 목적이었던 거야~?“

“그랬으면 어제 그렇게 기절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겠죠~“

내가 한숨처럼 대꾸하자 린네 군이 희미하게 벌어진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잖게 당황한 기색으로 침묵을 지킬 뿐이다. 뭐, 린네 군이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고.

“린네 군의 기대에는 못 미치겠지만…….”

“어, 어?”

“그래도 뭐……. 남자끼리라도 흉내는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여?“

말을 마친 나는 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린네 군의 손 옆에 조그만 상자를 내려두었다. 린네 군은 멍하니 상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뻔한 모양의 상자를 겨우 집어 든 린네 군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런 걸 물었다. 당연하지만, 그 상자가 무엇인지 정말로 모를 리는 없었다. 그냥 믿을 수 없는 것뿐이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믿을 수가 없다. 내가 린네 군에게 먼저 반지를 건네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지금껏 상상도 못 했다. 아마 린네 군도 그렇겠지. 애초에 어제의 입맞춤 같은 건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던 모양이고.

조금 후회한 것도 사실이다. 키스는 결혼한 뒤라고 그렇게나 못박아뒀던 인간이 술에 진탕 취해 키스를 한 것까지야 뭐,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그걸 모르는 척 하고 아무렇지 않은 행세를 하며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기 린네는 그 열렬한 입맞춤을 충분히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이야기다. 나만이 술 냄새 나는 입맞춤에 쓸데 없는 의미를 부여해 반지까지 사들고 린네 군을 기다렸다는 거다.

린네 군이 없던 일로 만들고 싶어한다면 내가 굳이 어제의 일을 들출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결혼 운운 한 건 린네 군 쪽이었다. 나는 관심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남자끼리는 결혼도 못하고, 프로포즈랍시고 반지를 건네봤자 기분만 내는 데서 그친다. 결혼의 꽃은 피로연의 식사인데 그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차마 없던 일로 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잘 모르겠다. 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얄미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린네 군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도 같다. 린네 군은 나를 전혀 믿지 못한다. 내가 결혼해줄 거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린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는 결혼하자느니 뭐니 하는 말들도 전부 허울뿐인 농담이 되어버렸다.

그랬으면서도 내가 너무 좋아서 차마 포기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입술을 맞대고 나를 허락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실이 너무나 한심하고 멍청하고, 불쌍하고…… 또 사랑스러워서……. 나는 린네 군 앞에 반지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럼에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린네 군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린네 군의 시선을 피하며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냥, 린네 군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잘 어울리긴 뭐가…….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는 안목도 없고 센스도 없고 생각도 없다. 옷도 점원에게 추천받은 걸 그대로 사는 인간이다. 다만 점원에게 반지 추천을 부탁했다간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말 그대로의 프로포즈링을 꺼내줄 것 같아 이번만큼은 내가 골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가 고른 건 린네 군이 편하게 끼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깔끔하고 튀지 않는 스타일의 은반지였다. 맞다. 린네 군과 잘 어울리긴 할 것이다. 평소 끼는 스타일 그대로니까.

린네 군은 내 대답에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저 반지 케이스를 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작은 상자를 한참 만지작거릴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런 한심한 변명을 할 게 아니라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다…….

한참의 탐색 끝에 린네 군은 어떤 각오라도 다진 마냥 느리고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맞물린 틈을 벌렸다. 이 남자의 한없이 평소 같지 않은 반응에 어쩐지 등줄기가 근지럽다. 온몸이 작게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그 꼴을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져서 시선을 떨어트리고 딴청만 피웠다.

지금쯤 린네 군은 무지의 매끈한 반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프로포즈링답지 않은 무난한 스타일에 어쩌면 실망했을까. 린네 군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타입이니까 그러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무난한 반지를 산 건 내 욕심이었다. 린네 군이 언제나 내가 준 반지를 끼고 있길 바랐다. 하지만 화려한 반지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평소에 끼는 스타일의 반지라면, 아무리 왼손 약지라도 어쩌면…… 계속 끼고 있어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생각해보면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세상이고, 린네 군은 팬들의 마음을 신경쓰는 사람이니 아무리 무난한 반지라도 왼손 약지에 껴야 하는 반지를 굳이 끼고 있을 것 같지 않기는 했다. 실수였다. 그냥 냅다 보석이 박힌 화려한 반지를 사서 기선제압이라도 하고 들어갈 걸 그랬다.

“……저기. 니키큥~”

씹어봐야 배도 부르지 않을 후회나 한참 곱씹고 있을 때였다. 그랬으니 린네 군이 평소를 가장해 나를 부르는 순간엔 별수 없이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내가 어리둥절하게 린네 군을 바라보자 린네 군이 왼손을 들어올렸다.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한 곳은 당연히 약지다. 하지만 그의 약지는 비어있었다.

“이거, 여기 끼우는 거 맞아~?”

특색 없는 반지는, 확실히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녹아들어 있었다. 문제는 반지의 위치였다. 반지가 있었어야 할 약지는 비어있었고, 약지에 있었어야 할 반지는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에 걸쳐있었다. 그것도 딱 맞게.

“엥?”

무심코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얼빠진 내 얼굴을 확인한 린네 군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고는 물었다.

“……어이, 설마 여기서 내가 이상한 착각을 한 거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린네 군이 에둘러 내뱉은 말의 의미를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실망을 대비하는 얼굴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헐레벌떡 손을 휘저었다.

“아니아니아니, 이거 확실하게 그거거든여! 급료 3개월분! 알바 급료 기준이라서 그래봤지 싸구려지만!“

“어이어이……. 변명 너무 솔직하잖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미묘하게 안심한 눈치다. 애초에 의심하고 걱정한 게 어이없다. 아무리 내가 바보라지만 어제 키스를 한 남자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유로 반지 선물을 할 정도의 바보로 보이는 건가? 뭐, 호수를 헷갈릴 정도의 바보는 맞고 둘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바보인지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어떻게 생각해도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어트렸다.

“우……. 호수 알려주면 바꿔올게여.”

“됐어. 이대로가 좋아.”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어 린네 군을 바라보았다.

“엥?”

“이걸로 좋다고.”

솔직하지 못한 린네 군치고는 드물게 확실한 대답이었다. 이 정도의 솔직함은 식탁 앞에서만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인 줄로만 알았다. 린네 군이 히죽 웃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니키큥이 멍청한 덕분에 이렇게 당당하게 하고 다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비밀병기가 됐잖아.”

린네 군이 낄낄대며 말하고는 제 새끼손가락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정확히는 새끼손가락에 낀 은색 반지 위에, 말이다. 등줄기를 타고 오싹하게 소름이 기어올랐다. 그런 짓은 나 말고 팬 상대로 무대에서나 했으면 좋겠다. 린네 군은 질색하는 나를 바라보며 놀리듯이 물었다.

“어때? 니키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어울려?”

아니. 놀릴 셈인 건 확실하다. 린네 군이야 원래도 악세서리를 곧잘 달고 다니는 편이다. 무난한 반지는 평소에 끼던 반지와도 큰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잘 어울리라고 고른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나를 놀릴 속셈이 다분한 린네 군의 태도에 반발심부터 든다.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린네 군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속삭였다.

“응? 너무 잘 어울려서 매일 끼고 있어도 될 것 같지?”

이 인간…….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

맞다. 평범하고 무난한 스타일의 반지는 린네 군이 매일 끼고 있어주길 바라서였다. 어차피 남자끼리는 결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린네 군이 나를 좋아해주는 만큼 나 역시 린네 군을 좋아하고 있으며 린네 군이 나에 대해 느끼는 책임만큼 나 역시 린네 군에게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을, 린네 군의 가장 가까이에 두고 그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린네 군은 린네 군에게 어떤 증명도 해주지 못한 나를 기어코 허락해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내가 아무리 평면적이고 깊이가 없는 인간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꿰뚫어보는 건 치사하다!

“우, 우으……. 우아악! 반지 내놔! 바꿔올 거야!“

내가 소리를 지르며 바 테이블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자 린네 군이 재빨리 제 왼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쥐며 몸을 내뺐다.

“에엥~? 줬다 뺐는 게 어딨어! 이건 이제 린네 군 반지거든요~ 멋대로 가져가면 죽여버릴 거니까!“

“또 이렇게 바로 죽이니 뭐니 험악한 소리나 하구!“

내가 우는 소리를 하자 린네 군이 기분 좋게 웃어제낀다. 하여튼 난폭하고 무서운 인간이다. 험악한 거부에 내가 린네 군에게서 반지를 돌려받기를 포기하고 바 안쪽으로 몸을 무르자 린네 군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뭐, 어차피 니키도 왼손 약지에 끼고 있을 건 아니지 않아? 반지 줘 봐.“

린네 군이 그렇게 말하며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린네 군의 목걸이 한 가운데 걸린 펜던트가 가볍게 흔들린다. 제 목걸이를 끄르는 것 같았다.

“헤……?”

나는 린네 군의 말에 멍청하게 왼손을 내밀었다. 당연한 반응이기는 했다. 내 반지는 왼손 약지에 끼워뒀으니까. 내 손을 확인한 린네 군이 피식 웃었다.

“그걸 또 끼고 있었어? 요리사씩이나 되는 놈이.“

“……요리사니까, 이런 때가 아니면 빼둬야 하잖아여…….“

내가 우물쭈물대며 대꾸하자 린네 군이 간지럽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큽, 크흑……. 로맨티스트네, 니키큥~…….”

그래.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래서 말하기 싫었던 거다.

“그래여, 실컷 놀리라구여~”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인데.”

린네 군은 실실 웃으며 내 약지에 걸친 반지를 빼냈다. 그대로 제 목걸이의 펜던트를 빼내고 반지를 꿰려던 린네 군의 손이 문득 멈췄다. 어떤 위화감을 되짚는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찬찬히 구르는 반지에 린네 군의 시선이 닿는다.

“……하!”

그러더니 이내는 헛웃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린네 군은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다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너무 웃어댄 탓에 하얀 뺨이 그새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멍청아! 린네 군이 귀엽고 깜찍한 건 사실이지만 니키가 생각하는 만큼 가냘프지는 않답니다~!”

린네 군 말대로 멍청이인 나는 린네 군이 나의 어떤 멍청함을 꿰뚫어보았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린네 군이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입가를 감추듯 어루만지며 제 손을 펼쳤다.

“손 펼쳐봐.”

“엥? 왜여?”

“얼른.”

린네 군의 재촉에 린네 군과 같은 동작으로 손을 펼치자 린네 군이 그 너머에서 손을 뻗었다. 여전히 린네 군과 살갗이 맞닿는다면 달콤한 스킨십보다는 얻어맞는 쪽이 훨씬 더 익숙한 몸이 순간 긴장했지만, 린네 군의 접촉은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손목의 위치를 맞춘 린네 군이 천천히 손바닥을 맞댄다. 따뜻하고 매끈한 살갗이 기분 좋게 달라붙는다.

그리 익숙하지 않은 얌전한 접촉에 무심코 그의 얼굴을 살피면, 살짝 상기된 뺨과 여전히 웃고 있는 입술이 보인다. 그건 나의 멍청한 실수로 엉망이 되어버린 이 상황과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린네 군은 마치, 이 상황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이, 보라고.”

린네 군의 말에 흠칫 놀라 맞닿은 손을 바라보았다. 린네 군의 길쭉한 손 끝이 짧게 깎은 내 손톱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주 대단한 차이는 아니지만 확실하게, 린네 군 손이 크다.

“……어라? 어째서……?”

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린네 군이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아니아니……. 내가 묻고 싶다. 어떻게 네 반지보다 작은 걸 내 거라고 살 생각을 했어?“

아. 린네 군이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반지 크기의 차이를 가늠했던 거다. 린네 군이 기세 좋게 나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네 놈 머리는 음식을 밀어넣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냐? 니키 이 바보 자식아. 내 손이 큰 게 당연하잖아! 린네 군, 네 녀석보다 키도 크거든요~”

“엥? 그러고 보니 그러네여.“

“그러고 보니?”

시원찮은 대꾸에 린네 군이 내 말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묻는 것이다.

“너 한 번도 나보다 컸던 적 없잖아. 대체 왜 그런 착각을 한 건데?”

“우으…….”

린네 군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내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뭐, 그래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내가 슬쩍 린네 군의 눈치를 보자 린네 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턱을 당기며 나를 올려다본다. 린네 군은 아마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역시 나를 착각하게 만든 수많은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언제나 나를 올려다보던 얼굴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음식을 내어오는 순간, 먼저 테이블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맛있는 냄새는 허기를 기대로 치환한다.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깃들었던 달콤한 기대감은 그와 나의 경계를 점차 허물었고 이내는 이름조차 몰랐던 무서운 형아를 린네 군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한 식사가 늘어나는 동안 나도 꽤 자랐다. 이제 린네 군과 나란히 서봐야 고개를 들지 않아도 시선이 마주치고 앉으면 비슷한 높이에서 시선이 맞닿는다. 린네 군과의 키 차이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맞댄 순간에야 겨우,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이 남자가 내 생각만큼 약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결론에서부터 시작한 역산 끝에 겨우 도달한 것은 징그럽기 이를 데 없는 전제다. 나는, 이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남자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든 내 품에 욱여넣어 한가득 끌어안을 수 있다고 착각해버렸던 거다. 린네 군은, 맞닿은 손조차 내 손아귀에 전부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남자인데도 말이다.

“뭐야, 그 얼굴?”

린네 군이 문득 나를 질책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내 뺨을 더듬으며 린네 군에게 물었다.

“우잉? 저 지금 어떤 얼굴 하고 있는데여?!“

“완전 멍청한 얼굴~”

린네 군은 그렇게 말하고는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닌 걸 보면 아주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지. 다행이다. 속마음이 새어나왔다면 이미 린네 군 손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린네 군은 나를 죽이는 대신 내 손을 맞잡기로 한 것 같았다.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집고 기다란 손가락이 끼어들었다. 손바닥은 여전히 맞닿은 채다. 길고 늘씬한 손가락은 내 손등의 요철을 파고든다. 짓궂고 부드러운 접촉에 문득 린네 군을 확인하면 나를 바라보고 있던 린네 군과 시선이 맞닿았다. 린네 군이 다른 손으로 턱을 괴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키스도 좋지만, 니키는 손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네.”

“……엥? 그런 게 어딨어! 키스도 하게 해줘여!”

내가 소리치자 린네 군이 나를 책망했다.

“너 말야. 반지도 잘못 사온 주제에 너무 뻔뻔한 거 아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다. 어쩔 수 없다. 나로 하여금 이토록 뻔뻔하게 굴 수 있게 허락해준 건 린네 군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린네 군은 나를 허락해버리고 만다. 린네 군이 가볍게 턱을 들어올렸다. 재촉이 분명한 행동에, 나는 린네 군의 손을 맞잡으며 몸을 숙였다. 웃음기 섞인 숨결이 먼저 닿는다. 그게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서, 나도 그만 웃어버렸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니키린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