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5

MDM이 끝났다. 당연하지만 린네 군을 구원한 건 시이나 니키의 몫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 남자와 그렇게까지 끈적하게 얽힌 관계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그냥 그거다. 린네 군이 가고 싶은 곳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기 싫은 곳에 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이나 니키는 린네 군이 가고 싶은 곳에 갈 때 따라가면 된다. 만약 린네 군이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가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웬만하면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가 죽어도 가야겠다면 따라갈 것이다.

아니, 아니다. 역시 린네 군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다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 건 린네 군이다. 그래서 나는 린네 군의 곁에 있기로 했다. 그러니까 린네 군도 더 이상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고 싶은 곳에 있는……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린네 군의 곁에 있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한동안은 아이돌을 하고 싶고 아이돌로 있고 싶은 린네 군의 곁에 있을 셈이다. 이곳이야말로 린네 군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자리니까 말이다. 뭐, 린네 군을 계속 그 자리에 두기 위해서는 나도 계속 아이돌 활동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한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 Crazy:B가 여전히 4인 체제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논란을 일으켜놓은 마당에 당당하게 활동할 수는 없었다. 관심이라는 이름의 불길이 사그라들 때까지 자숙이니 뭐니 하며 간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왜 남의 이야기처럼 됐느냐 하면 그야 당연히, 진짜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Crazy:B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소장과 린네 군 몫이었다. 코하쿠 쨩은 나와 비슷하게 아이돌 초심자였고 HiMERU 군은 그게 불만스러운 모양이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HiMERU 군도 어느 정도는 감정적으로 행동한 부분이 있으니까 아마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냥 잘 몰랐다. 그냥 린네 군의 선택에 따를 뿐이다.

이러니 저러니 했지만 결국은 코즈프로의 아이돌로서 ES에 남게 되었고, 이제 시한부 아이돌에서 벗어났으니 기숙사도 구관에서 본관으로 옮기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살짝 린네 군의 눈치를 봤다. 이 성격 더럽고 협조성 떨어지는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역시 계속 아파트에서 지내는 게 린네 군에게도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뭐, 나와 지내는 것도 일종의 공동 생활이긴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나한테 하듯 폐를 끼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세상물정을 모르는 채로 나와 둘이서만 지낸 시간이 긴 린네 군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영리한 린네 군을 걱정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기는 했다.

아무튼 린네 군은 별 반발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Crazy:B로서 기숙사를 부여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러면 나도 딱히 말을 얹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정든 아파트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봐야 집기를 가져가거나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예 방을 뺄 수는 없었다. 숙소에서 입을 옷가지와 요리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향신료나 좀 챙기고 있으려니 린네 군이 조금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공용 주방 설비가 꽤 괜찮다던데?”

“그래두 혹시 모르니까여~ 이왕이면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고.”

“니키큥 정말 요리 외길이라니까~”

나를 놀리듯 말한 린네 군은 제 가방을 닫았다. 짐 정리가 전부 끝난 모양이었다. 캠핑이라도 가는 것 같은 간단한 백팩이었다. 피차 가져갈 짐이 별로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옷장 속의 내 옷 사이에는 여전히 린네 군의 옷이 섞여있을 것이고 린네 군이 멋대로 뽑아다 던져주었던 게임 센터의 인형도 몇 개인가 구석에 처박혀있다. 아무리 얹혀살았고 짐을 늘리지 않았다고 해도 인간의 흔적이란 그리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신료를 다 넣고 가방의 지퍼를 닫고 있으려니 린네 군이 나를 불렀다.

“니키.”

“넹?”

부름에 반응해 마주한 얼굴이 어쩐지 애교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린네 군이 어리광을 부리듯이 말했다.

“나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그렇게 시답잖은 애교까지 더해 말하는 것치곤 의외로 평범한 주문이라 오히려 당황했는데, 린네 군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덧붙였다.

“아파트에서의 마지막 날이잖아.”

“뭐 평생 안 돌아올 사람 같이 말하네여?”

내가 멀뚱히 묻자 린네 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묘한 반응이었다. 린네 군이 제 뺨을 긁적이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얼굴이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망설이는가 싶었던 린네 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돌아올 장소야?”

하지만 그 질문은 망설일 정도로 부끄러운 질문은 아니었다. 나는 멀뚱하게 대꾸했다.

“엥? 그치만 짐을 전부 가져갈 순 없으니까 팔기도 좀 그렇구…….”

린네 군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으려니 그림이 조금 이상해졌다. 린네 군이 왜 그런 걸 물어본 건지 모르겠다. 린네 군도 내가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헤매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내 말을 끊어내듯 나를 불렀다.

“니키.”

그 부름에 마주한 린네 군의 뺨이 살짝 상기되어있었다. 어라?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린네 군이 말을 고쳐 물었다.

“내가, 여기로 돌아와도 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에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았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저녁! 피자면 되겠져?!”

나는 냅다 선포하고는 성큼성큼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면 린네 군이 얌전히 내 뒤로 따라붙었다. 아, 정말! 이럴 땐 좀 그냥 혼자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눈치도 빠른 인간이……. 아니. 눈치가 빨라서 나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더 이러는 걸까. 확실히 그 쪽이 더 신빙성이 있다.

“그때도.”

하지만 내 등 뒤로부터 들려온 린네 군의 목소리는 나를 놀리는 것이라기엔 너무나 여리고 부드러워서……. 이어지는 말이 린네 군의 진심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녀왔냐고…… 해줘서 조금 기뻤어.”

린네 군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얽혔다. 우리답지 않은 간지러운 접촉이었다. 린네 군의 손 끝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이었다. 그야 무척이나 우리답지 않은 일이었으니 이 어색한 분위기를 감내하는 데에는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긴 했을 테다.

린네 군이 말하는 그때라는 게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든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린네 군과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 항상 린네 군이 내 곁에 있는 미래만 생각했으니까. 그가 돌아오는 게 내게는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린네 군에게는 그게 당연하지 않았던 것일 테다. 그것도 어쩔 수 없다. 린네 군은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자유는 미덕이다. 원칙과 통제로 이루어지는 관리는 소속감을 준다. 사람들은 자유를 노래하면서도 스스로를 규제해주길 원한다.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헬륨 가스로 부풀어오른 풍선처럼 불안한 것이다. 규칙의 틀에서 배제된 부모님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내 발목에 끈을 매어 어딘가에 묶어두려 했었다. 린네 군 또한 자유가 주는 불안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고향의 억압으로부터 도망쳐나와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자유란 마냥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테다. 직접 겪어봤으니만큼, 린네 군은 그 막연한 부유감의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린네 군은 여전히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다. 아니, 아니다. 내가 린네 군의 발목에 끈을 묶었다. 린네 군이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내게 있는 끈이라고는 내 발목에 매어두었던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줄 수 있는 자리라곤 내 곁 뿐이었다. 그러니까 린네 군은 별수 없이 내 곁으로 돌아와서 내게 다녀왔냐는 인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린네 군을 바라보았다. 린네 군은 시선을 떨어트린 채였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발그스름한 귓가가 보였다.

아. 귀엽다. 솔직한 린네 군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인내라는 건 애초부터 내가 가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내 손끝이 린네 군의 귓바퀴를 어루만졌다. 린네 군은 살짝 몸을 움츠렸지만, 그뿐이었다. 나를 허락한 거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키스해도 돼여?”

“……키스, 는.”

결혼하고 나서. 그런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린네 군이 그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허락처럼 보였다. 아마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래서야…….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코 끝이 근지러워서,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하하……. 그렇게 앙다물고 있으면 키스 못하는데.”

“입 다물어. 하기 싫으면, 웁, 으응…….”

그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벌어진 아랫입술을 입술로 물었다. 린네 군의 코 끝에 내 코 끝을 비볐다. 입술을 가볍게 당기고 혀 끝을 밀어넣었다. 입술 안쪽의 여린 살갗을 간지럽히면 린네 군의 몸이 움찔 튀었다. 맞물렸던 이가 벌어지고 움찔거리는 혀 끝이 반발하듯 내 혀에 닿았다. 밀어내는 듯한 움직임은 도리어 자극이다. 내가 집요하게 매달리자 린네 군이 짜증스럽게 신음했다.

“읏, 읍!”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들어 떨어냈다. 나야 뭐, 린네 군이 진심으로 밀어내면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굳이 버티려하지 않고 얌전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니키 이, 자식……!”

린네 군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사랑스럽다. 흥분감이 느껴지는 숨결은 고른 치열을 훑으며 쌕쌕대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린네 군은 절 어떻게 생각해여?”

내가 그렇게 묻자 화를 내려던 린네 군이 불현듯 조용해진다. 지은 죄가 있는 사람의 반응이다. 나는 캐묻다시피 말을 이었다.

“저 두고 가려고 했죠.”

“읏, 그건…….”

“나빴어, 정말. 은혜도 안 갚구. 결혼이니 뭐니 그냥 다 나오는 대로 했던 말이었던 거예여.”

내가 투덜거리자 린네 군이 혼나기라도 한 어린아이마냥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러고도 입을 여는 건 어려웠던 걸까. 조금 더 망설이던 린네 군이 겨우 입을 열었다.

“……협박이라도 해서, 끌고 갈 생각이었어.”

그건 망설일 만 했다. 나는 일부러 입을 쩍 벌려가며 기겁하는 척을 했다.

“식칼을 들고?! 당신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여!”

“그런데 네 얼굴을 보니까…….”

내게 오해를 사는 게 싫었던 건지 조급하게 낸 목소리가 어쩐지 수그러든다. 알고 있다.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곤 했으니까 잘 알고 있다. 결국은 피차일반이라는 거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양 뺨을 감싸고 그의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 린네 군이 간지럽다는 듯이 내 어깨를 잡아 쥐며 웃었다. 그걸로 조금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겨우 내는 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섞였다.

“못 하겠더라고.”

나는 린네 군이 밀어내는 대로 밀려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인간,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훤칠한 신장조차 색이 바랜 것처럼 지금의 린네 군은 여리고 애틋하게만 보인다. ES를 상대로 승부를 건 남자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그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어쩐지 할 말이 없어져서 일단 한숨부터 토했다.

“……하아……. 그냥, 같이 가달라고 했어도…….”

그 즈음에서 말을 멈추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중얼대었다.

“신뢰가 부족한 건가?”

그럴 수 있다. 린네 군은 똑똑하고, 똑똑한 사람은 의심이 많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린네 군에게 못되고 짓궂게 말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린네 군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 신경쓰는 사람이다. 그랬으니 당연히 내 마음은 린네 군에게 들키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 이상으로 린네 군은…… 나의 못된 말들을 내 진심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믿어.”

그럼에도 린네 군은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니키는 멍청할 정도로 착하니까 만약 내가 니키를 원한다고 말했다면 니키는 분명 그렇게 해줬을 거라고.”

그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멍청한 거면 모르겠지만 착하다니. 린네 군도 나를 참 좋은 사람으로 봐준다. 하지만 내가 린네 군을 따라가려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었지만,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난, 니키가 나를…….”

탐색하는 시선이 나를 훑는다. 린네 군은 내 결심의 근원을 겁내는 거다. 내가 왜 린네 군과 가겠다고 했을지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거겠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본능에 민감한 만큼 감정에 대해서는 조금 둔했다. 본능은 논리에 적을 둔다. 하지만 감정은 달랐다. 논리가 없다. 당위가 없다. 엉망진창이다.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래서 이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 것을 유보해왔다. 인간은 그런, 생존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을 고민하는 데에도 열량이 소모되도록 만들어져있는 불합리한 존재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 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는 척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린네 군과의 관계를 하나의 언어로 규정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린네 군은 짓궂은 형인 동시에 내가 돌봐줘야 하는 동생 같기도 했다. 가끔은 아버지만큼 믿음직스러웠지만 어느때는 어린애처럼 나약하고 위태로웠다. 외로운 들짐승처럼 속을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고 순진한 애완동물처럼 내게 치대고 어리광을 부릴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마기 린네라는 인간이 내게서 차지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내가 린네 군을 사랑한다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린네 군이 내게서 차지하고 있는 그 모든 역할들이 그대로 휘발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싫었다. 나는 린네 군이 나의 무엇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린네 군으로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아버렸다. 알게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린네 군에 대해 생각해버렸다. 내가 린네 군을 따라가려 하는 건 착해서나 멍청해서 같은 이유는 아니다. 이런 체질을 갖고 태어났으니 나는 뭐든 포기가 빨랐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대신 내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하지만 죽는 순간만큼은 내가 선택하고 싶다. 죽는 순간엔 이왕이면, 곯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아니라…… 린네 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뿐이다.

“린네 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충동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의 뒷머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겹쳤다. 체중을 실어 린네 군을 천천히 밀어내면 린네 군이 한 걸음 물러나 자연스럽게 몸을 벽에 기댔다. 그제야 머리를 안았던 손을 내려 허리를 더듬었다. 옷자락을 들추고 움푹하게 들어간 등근육을 손톱 끝으로 가볍게 긁어올리자 린네 군의 몸이 흠칫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서둘러 입술을 떼어낸 린네 군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린네 군을 재촉하듯 그의 엉덩이를 움켜쥐자 린네 군이 내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당황한 것 같은 반응이었음에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결코 거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너…….”

잠깐 숨을 삼킨 린네 군이 겨우 말을 이었다.

“……괜찮겠어?”

린네 군의 말에 나는 무심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물음이 허락에 가깝다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린네 군에게 멋대로 키스하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의 허리를 쓸어 엉덩이를 쥐었다. 그런데 괜찮냐니. 그런 건 억지로 키스당한 사람 쪽에서 물어볼 것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이미 나를 받아들인 사람의 반응이다. 나는 조금 어색하게 눈을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나하항……. 그거, 제가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니에여?”

뭐, 당연하지만 내게 조심성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린네 군을 놀리듯 그렇게 물었고, 그제야 린네 군도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깨달은 것 같았다. 린네 군이 나직하게 신음했다.

“읏…….”

“그래서 린네 군은 뭘 걱정하는 건데여?”

걸리는 게 많아도 너무 많다.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이 정도였으니 나와 달리 똑똑한 린네 군은 아마 더 걱정거리가 많을 거다. 아는 게 많다는 건 그런 거다. 배고플 일만 늘어난다.

“……싫어하잖아.”

하지만 린네 군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것이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우잉?”

“쓸데없이 열량 소모 하는 거.”

“아~ 그런 편이죠?”

린네 군이 걱정하는 거니까, 분명 결혼이나 결혼과 비슷한 무엇과 관련된 문제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린네 군은 고작 내 기분과 체질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간지러운 기분이 되어 살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여. 그런 거, 해봤자 쓸데없이 배만 고파질 뿐인데 왜 하는 걸까 하고.”

“……니키답네.”

얼굴을 확인하면 어쩐지 실망한 기색이다. 가슴께가 근지럽다. 당신도, 분명 내가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웃음이 나왔다. 손을 들어 린네 군의 뺨을 어루만지면 린네 군이 애써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지금은 어쩐지.”

스스로를 부정하는 말이 따라붙자 린네 군이 커다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이 순간의 얼굴을 좋아한다. 이 커다란 남자에게는 이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표정을 하고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얼굴 말이다. 그래서였다. 나는 그 순간 가장 질척한 진심을 말한다.

“대체 왜 그런 체력 낭비를 하는 건지…… 알 것 같아.”

“너…….”

린네 군이 숨을 삼키듯 나를 불렀다. 하지만 그의 부름이 그 이상 이어질 기색은 없었다. 나는 린네 군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여. 린네 군의, 린네 군 답지 않은 모습을 잔뜩 보고 싶어여.”

린네 군이 무얼 참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그의 하얀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매끈한 뺨에 혀를 대었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추억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나는 분명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싶었던 것일 테다. 지금 느끼는, 이…… 식욕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욕구는.

“린네 군이 숨기고 싶어하는 거, 전부 다.”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던 린네 군이 고개를 홱 옆으로 돌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귓볼이 발그스름하다.

“보고 싶어.”

나는 린네 군의 귓볼을 천천히 주무르며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게끔 했다. 고작 그 정도의 인력에 린네 군이 굴복할 리 없었는데도 우리의 시선은 결국 온전히 맞닿았다. 가만히 나를 노려보던 린네 군이 툴툴거렸다.

“넌 항상 그런 식이지.”

“나하항, 마음에 안 들어여?”

그렇게 묻고는 린네 군의 뺨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뺨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발그스름한 뺨과 귓볼에 몇 번 키스하다 문득 입술을 떼어내고 린네 군을 마주보았다. 린네 군은 빨개진 얼굴로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새가 모이를 쪼는 듯한 가벼운 입맞춤에도, 이런 얼굴을 한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저 역시, 린네 군을 좋아하는 걸까여~”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린네 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여. 생각하면 닳는걸.”

생각하는 데에도 체력은 필요하고 그래서 시이나 니키는 생각하지 않는 쪽을 택하곤 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린네 군이 생각하는 쪽이 더 정확할 테니까……. 뭐, 그런 건 전부 린네 군에게 떠넘기는 쪽이 효율적이라는 거다.

“체력을 조금이라도 보존해둬야돼여. 지금부터는, 몸을 많이 쓸 거니까.”

흐트러진 호흡을 잠시 가다듬는가 싶던 린네 군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니키, 너…….”

그가 내 목에 제 팔을 조심스럽게 감아왔다. 가벼운 인력에 몸을 내어주면 입술이 맞닿는다.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달착지근한 숨결을 떨어낸 린네 군이 지근거리에서 나와 시선을 맞추며 속삭였다.

“섹시하네.”

“나하항~ 그런 거, 제 캐릭터는 아닌 것 같지만여~“

린네 군의 말에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시이나 니키를 형용하는 데에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문장이었다.

“분명 지금도, 제가 린네 군에게 뭔가 대단한 짓을 한 게 아니라 린네 군이 제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거죠.”

“바보야. 네가 내게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드는 거야.”

린네 군이 그렇게 속삭이며 느린 동작으로 내 머리카락을 손 끝에 감았다. 가벼운 인력이 머리카락 끝에 맺히는 듯 했다 이내는 풀어졌다. 튕기듯 풀어지는 머리카락 끝에 시선을 두었던 린네 군이 눈을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미소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저도 모르게 목을 울렸다.

“린네 군.”

사랑스럽다. 이 남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이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서…….

“너무 솔직해서 기분 나빠여.”

또 그렇게 멍청한 소리를 했다.

“……이 자식.”

린네 군의 어이없어하는 듯한 반응에 내가 코 끝으로 킁킁거리며 웃자 린네 군이 나를 퍽 때렸다. 그렇게 얻어맞고 나서도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안 아팠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얻어맞는 것조차도 웃기기만 했던 언젠가처럼 이 순간이 기쁘고 즐거웠다.

나는 키득거리며 그의 하얗고 서늘한 피부 위로 입을 맞췄다. 뺨에 입을 맞추는데 계속 웃음이 나왔다. 린네 군이 문듯 고개를 돌려 제 입술을 내어주기에 키스했다. 맞닿는 입술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며 웃기는 소리를 내서 더 웃어버렸다.

그 즈음 되니 린네 군도 웃고 있었다. 어이가 없기는 했을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떨어내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멍청하고 한심하게 키스를 했다. 엉망진창이었다. 그게 좋았다. 멋지고 낭만적인 것은…… 린네 군 혼자라면 또 모르겠지만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키득거리며 장난치듯 가볍게 입을 맞췄고…… 나는 어느 순간 내가 린네 군한테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앗, 잠깐! 린네 군 지금 말 돌린 거였어여?!”

“아니아니, 린네 군 비교적 진심이었거든~?”

“비교적이라니 뭐예여! 말 돌릴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는 거잖아!”

“너 정말…….”

린네 군이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키득대며 웃었다.

“모처럼 좋은 분위기였는데 물거품이 됐잖아.”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이 남자가 곤란해하는 것처럼 지어보이는 부드러운 미소가 좋다. 난폭하고 제멋대로에 인간말종 같이 구는 린네 군도 뭐, 싫지는 않지만 나는 역시 이 얼굴을 한 다정한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린네 군에게 어리광을 피우듯 속삭였다.

“빨리 린네 군이 정해줘여. 항상 그랬잖아.”

그렇게 다시 한 번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린네 군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내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린네 군이 린네 군의 목소리로 내게 알려주기를 바랐다.

조금 망설이는가 싶던 린네 군이 느리게 목을 울렸다. 이어지는 건 나를 향한 모욕이었다.

“……니키 이 바보 자식.”

“응응, 니키 군은 바보예여.”

나를 뭐라고 욕하든 그 목소리에 애정 외의 다른 것은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기분 좋아서 나는 아양을 떨듯 대꾸하고는 린네 군을 올려다보았다. 내게 가볍게 키스한 린네 군이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마주하고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웃었다. 그 순간, 돌아올 말을 눈치챘다. 린네 군이 목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나도 그만 웃어버렸다.

“넌 날 좋아하는 거야, 멍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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