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1

종종 일을 도와주던 가게 앞에서 곧잘 서성이던 길고양이가 있었다. 당시 내게 일을 가르쳐주던 사수가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밥을 챙겨주기에 그에 이어 나도 자연스럽게 챙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여느 길고양이들이 으레 그러듯 어느 날부턴가 가게에 오지 않게 되었다. 어렸던 내가 고양이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이라고는 생긴 게 귀엽고 털이 보드랍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니 은혜를 모르는 고양이를 조금은 괘씸하게 여긴 것도 별수 없는 일이었다. 딱히 보은을 바란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그때의 나는 아마, 서운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멍청하고 이기적인 감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의 모습은 도시에서도 으레 볼 수 있다. 엉망으로 뭉개진 다른 길짐승의 사체에서 나는 그 고양이를 보았다. 그 역시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으리라는 것을 막연하게 깨달은 것이다. 죽음의 위협이 도처에 깔린 삶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길고양이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우스울 지경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이해해버린 뒤에는 도리어 음식을 나눠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식사는 나의 목숨이다. 나는 내 목숨을 나눠준 거다. 그런데 목숨을 나눈 존재가 불현듯 사라져버리면 나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해버린다. 생명의 무게는 너무 무겁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에 간단히 밥을 챙겨줬을 뿐인데도 이렇다.

그 결론에 너무 속상하고 슬퍼져서. 그리고 동시에, 어차피 결국엔 그런 결말을 맞게 되었을 고양이에게 먹인 밥이, 나의 목숨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그런 스스로가 기분 나쁘고 무서워서……. 그 뒤로는 어떤 고양이에게도 나의 목숨을 나눠주지 않기로 했다. 사라지는 건 싫다. 죽음을 상정해야만 하니까 싫다. 내가 나눠주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게 싫다.

그렇게 이기적인 내가 린네 군을 주운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골계다. 뭐, 처음에는 린네 군이 주변으로부터 음식을 강탈한 줄 알았으니 그를 내보낸 뒤의 리스크를 걱정했다. 갈 곳을 잃은 그가 내게 해코지한다든지, 경찰에게 붙잡혔을 때 나를 공범으로 몰아간다든지 하는 어린애다운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린네 군을 집 밖으로 내쫓지 못했다.

몇날며칠을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울기도 하고 화도 냈다. 하지만 린네 군이 어디선가 게임 같은 걸 조달해왔기에 그걸 함께 하다 보면 이래저래 시간도 흘러갔고 처음의 날선 감정도 조금씩 무뎌졌다. 

그 즈음 린네 군 쪽에서 이제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름을 부르라고 제안했던 것 같다. 한 배는 무슨!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때 이미 린네 군에게 묘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걸 무슨 병이라고 한댔는데 나도 아마 그 병에 걸린 게 분명했다. 지금껏 그 남자를 돌보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불치병일 테지. 그 길고 지리한 여정을 예감한 것일까. 내가 그를 린네 군이라고 부르는 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히 식료품도 바닥났다. 린네 군이 어디선가 빵이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가져오긴 했지만 그건 식사는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식료품을 조달하러 가기로 했다. 조달이라고 해봤자 변장을 하고 마트로 향한 정도였고 후드를 뒤집어쓰기야 했으나 사실 그건 변장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수준이었다. 마트에 도착한 나는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고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알아봤다. 당연했다. 후드를 쓴 정도로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들키리라곤 차마 예상하지 못한 어린 나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지만 간단히도 붙잡혔다.

그는 호들갑스러운 어른들이 으레 그러듯 그 날 내가 쓰러졌던 일에 대해 걱정어린 안부를 물었다. 덕분에 나는 린네 군에게 갖고 있던 오해를 풀었고 나의 처절한 농성 또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와중에 내가 정말로 화가 났던 점은 제대로 말해줬으면 완두콩 통조림이라도 아껴 먹겠다며 하루에 세 알만 먹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아무튼 오해가 풀린 뒤에도 나는 린네 군을 내보내지 않았다. 린네 군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그러기 위해서 그러잖아도 부족한 식비를 살라야 했다. 고양이에겐 목숨을 나눠주지 않기로 해놓고서는 고양이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인간에게 내 목숨을 나누어주게 된 것이다.

한참 고민한 끝에 가계부를 구석으로 밀어놓은 나는 쭉 기지개를 폈다. 동시에 곯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머리를 굴리느라 칼로리를 소모한 탓이다. 깊은 한숨이 목 아래까지 끓어올랐다. 어떻게 계산해도 부족하다. 이번 달에는 정말로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등골을 스쳤다.

지난 달에는 부모님이 보내준 이상한 버섯으로 어떻게 잘 버텼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그것조차 없다. 친분이 있는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한 잡무를 돕고 저녁을 얻어먹을 수는 있겠지만 린네 군이 문제였다.

린네 군을 음식점에 데리고 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린네 군이 그런 걸 내켜할지는 모르겠다. 그 인간, 나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 같고. 나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구했을 때도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 이상한 변명이나 했을 정도다. 묘한 데서 자존심이 강한 인간이었다. 가계부를 덮었는데도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그 때 배에서 또 소리가 났다. 꼬르륵, 꼬르륵……. 아마 내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듣게 될 소리도 이 소리일 테다. 죽지 않으려면 고민도 적당히 해야 한다.

대신 오늘 저녁을 생각하기로 한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오늘의 식사를 생각하는 게 좀더 건설적이고 영양가가 있다. 이왕이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게 좋겠다. 물을 넣어서 양을 늘릴 수 있는 카레라든지.

그렇게 식사 메뉴를 고민하던 중 문득 오므라이스를 보며 눈을 빛내던 린네 군이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오므라이스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면 오늘은 오므라이스에 카레를 얹는 걸로 하자. 계란 정도라면 아직 조금 여유가 있기도 하고. 카레에는 우유를 넣어 맵지 않은 부드러운 맛으로 만들어야겠다. 린네 군은 뭐든지 잘 먹게 생겨놓고 의외로 맛이 강한 음식에 약하다. 그런 점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 결론에 도달한 순간 문득 몸의 움직임이 멎었다.

“……아. 또 린네 군 생각했다.”

항상 이렇다. 린네 군을 데려온 뒤로 내가 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에 린네 군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고 나니 내가 항상 린네 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린네 군을 생각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열량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나의 에너지를 그와 나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식사를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그와 무엇도 나눌 수가 없다. 허무한 일이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다. 기브조차 못 된다. 전부 의미없이 태워버린다. 아무 성과 없이 열량을 소모해버리는 일이라는 거다.

그게 싫어서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린네 군을 잘라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잘라내기에도 이미 늦었다. 린네 군은 식물처럼 내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나를 양분삼아 쑥쑥 자라났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칼로리를 무자비하게 갈취한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정말로 많은 각오가 필요한 일인데 각오도 하기 전에 생각나버리는 거다. 정말로, 최악이다…….

린네 군에 대한 오해가 풀린 뒤에는 병결을 내고 쉬고 있던 학교에도 다시 등교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수업 도중에 간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하고 당연한 약속은 종종 나를 굶주린 짐승으로 만들곤 했다. 적막한 교실에 꼬르륵 소리가 울리는 순간의 부끄러움이란. 뭐, 사실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엔 그게 내겐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으니까.

나는 그저 눈 앞이 핑핑 돌아 칠판이 보이지 않고 귀가 먹먹해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속상했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무엇 하나 잘 해낼 수가 없었다. 모두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쳐도 나는 결코 모두와 같아질 수 없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나의 체질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도 손을 써주지는 않았다. 아니, 써줄 수 없었겠지.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전체의 단합을 위해서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멍청한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얌전히 주린 배에 힘을 주고 오늘 저녁 식사나 고민하며 가방을 싸는 것이다. 그때 반 친구가 나를 불렀다.

“니키! 공원 앞에 크레이프 트럭 갈 건데, 같이 갈거지?”

그는 이미 내가 갈 거라고 정해놓고 말을 건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가 공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부터 크레이프 이야기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왓! 조아여! 크레이프 좋아! 딸기랑 바나나에 누텔라 잔뜩 얹을래여! 생크림도 얹고! 앗, 망고도 먹고 싶은데…….”

“이 자식 이번에도 세 개 먹는 거 아냐?”

반 친구가 낄낄거리며 내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딱히 나를 욕보이려는 태도는 아니다. 그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니까. 그의 말처럼 나는 지난 번엔 세 개의 크레이프를 먹었다. 무척 행복했다. 하지만 달콤한 기억은 잠깐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먹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을 돌이키고 나면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그럴 순 없어여……. 린네 군 때문에 식비가 부족하거든여…….”

크레이프는 맛있고 칼로리도 높고 배도 부르지만 비싼 것도 사실이다. 예산을 생각하면 절대 먹지 말아야 하겠지만…… 하나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본 가계부를 떠올렸다. 역시 괜찮을 것 같지 않다.

“린네 군?”

다른 친구가 확신이 없는 발음으로 되물었다.

“아.”

나도 모르는 새에 린네 군의 이름을 입에 담은 모양이었다. 그제야 내가 그새 린네 군을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가방을 등에 메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저 집에 가서 린네 군 밥 줘야대여!”

집에 가면 린네 군과 저녁 식사를 할 것이다. 어제 마감 세일에 싸게 사온 생선을 먹는 게 좋겠다. 린네 군도 생선은 꽤 좋아하는지 맛있게 먹는다. 사납게 생긴 얼굴과 달리 가지런한 젓가락질로 가시를 잘 발라내는 것이 신기했다. 역시 있는 집 도련님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니까~ 린네 군이 누군데?”

그때 배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울렸다. 구체적인 식사 메뉴를 생각한 탓에 더욱 배가 고파진 것 같았다. 나는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고럼 전 가볼게영!”

“니키~!”

식사를 한 뒤엔 린네 군에게 숙제를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책에 관심이 많은 린네 군은 내 교과서도 흥미롭게 여겼다. 내가 지레 겁먹고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린네 군은 내 교과서를 읽었다. 공부는 해봤자 배가 고파질 뿐이다. 차라리 요리 레시피를 읽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어떤 책이고 탐독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린네 군은 내 시선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교과서를 읽은 린네 군은 내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즈음에는 내 숙제를 도와주기에 이른 것이다. 언제나 식사가 끝나면 함께 숙제를 했다. 나는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으니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린네 군은 잠자코 나를 이해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그의 설명은 선생님에 비하면 훨씬 더 중구난방에 답은커녕 과정에서 헤매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했다. 린네 군은 제대로 학교 수업을 받은 게 아니었다. 기본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금방 배가 고파지곤 했다. 내가 공복 탓에 숙제에 집중할 수 없게 되면 린네 군은 어디선가 꺼낸 초콜릿을 작게 잘라 내 입에 넣어줬다.

평소에는 가계부와 펜만 대충 굴러다니던 작은 책상 위는 금세 지난 학년의 교과서와 과자 봉지로 난장판이 되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원하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 시간이 좋았다. 린네 군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좋았다. 몰랐던 것을 알아나가는 게 즐거웠다. 이해력이 좋다고 린네 군에게 칭찬받는 건…… 역시 말도 안 되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린네 군이 내가 이해할 때까지 끈질기게 설명하는 건데 말이다. 하여튼 린네 군은 이상할 정도로 나에 대한 평가가 관대하다. 그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린네 군과 함께가 되면 어쩐지 재밌어진다. 저녁 식사도 숙제도, 린네 군과 함께라고 생각하면 즐거워진다. 맛있는 크레이프를 먹지 않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었다. 전부 괜찮을 것 같았다.

아. 나 치고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해버렸다.

“린네 군이 누구야?”

“니키가 전에 뭘 주웠다고 했는데, 고양이 아냐?”

“저 녀석, 자기 얘긴 별로 안 하니까.”

그래서, 친구들의 당연히 품게 될 의문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나, 니키의 친구들을 겁먹게 한 것 같아.”

“엥?”

묘하게 시무룩한 기색의 린네 군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도서관 입구에서 린네 군을 기다리다 혼자 돌아온 참이었다. 린네 군과 함께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갈 셈이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하기보다 조금 더 일찍 도서관에서 출발한 린네 군은 집 앞에서 나를 찾아온 친구들과 마주쳤던 모양이다. 먹겠다던 크레이프는 안 먹고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 싶다.

린네 군 말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돌아와보니 현관문 앞에 꼬맹이 몇 명이 모여있었단다. 나를 부르면서 초인종을 누르기에 자연히 내 친구라고 알았단다. 그리고 린네 군은 거기까지 말하고 조금 망설이다가, 그들이 자길 찾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야 린네 군은 이 동네 꼬맹이들과는 꽤 사이가 좋은 편이긴 하다. 너무 친해져서 가끔 게임기를 빌려오기도 하고. 물론 본인은 헌상받았다는 식으로 말하기는 하는데 그건 좀 중2병 같으니 그만뒀으면 좋겠다. 아무튼 린네 군의 꼬마친구들은 내 친구들과는 아무래도 파이가 달랐다. 그들이 린네 군을 알고 찾아왔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럴 것 같지가 않은데…….

생각해냈다. 고작 몇 시간 전이다. 그것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뇌리를 스쳐지나간 기억에 내가 물었다.

“뭐라고, 찾았는데여……?”

린네 군은 흘끗 내 얼굴을 살폈다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떨어트리고는 제 입가를 가렸다.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린네 군, 보여달라고.”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네 군이 슬그머니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좀 더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린네 군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날 알고 있는 줄 알고, 사람 이름 멋대로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내가 린네 군에 대해 제대로 알려줬다면 냅다 와서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뒤의 이야기야 뻔했다. 아마 진짜 린네 군을 확인한 녀석들은 겁을 먹고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나하항! 그게 머예여~!”

그 녀석들은 내가 하도 린네 군 린네 군 하니 린네 군을 귀여운 고양이 정도로 알았던 것 같다. 그야, 그도 그렇다. 린네 군은 키가 크고 눈매도 날카롭다. 내 또래 아이들이라면 겁먹는 게 당연했다. 처음에는 나도 꽤 무서워했었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으며 중학생 남자애가 만들어주는 밥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인상이 더러운 연상의 남자 같은 건 역시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겠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뭐, 너무 어쩔 줄을 모르기에 린네 군이 강도 짓이라도 저지른 줄 알았다. 린네 군이 그럴 리 없다는 건 이제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긴장이 풀린 나는 가방을 대충 정리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슬슬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린네 군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린네 군이 한 걸음 늦게 나를 따라왔다.

“거기서 따라가면 더 겁먹을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어.”

“우웅? 너무 신경쓰지 말아여.”

나는 손을 씻고 앞치마를 걸치며 말했다. 허리끈을 한 바퀴 둘러 앞쪽으로 매듭을 짓고 꽤 자란 탓에 어깨끈에 눌린 머리카락을 익숙하게 빼냈다. 어제 얼려둔 생선을 꺼낼 요량으로 몸을 돌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린네 군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 인간,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도 신경쓰지 않게 생겨서는 어쩐지 의외였다.

“니키.”

“넹?”

내가 대답하자 린네 군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니키는 괜찮아?”

“웅? 별로 신경 안 쓰는데영?”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되물었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말에 린네 군이 무얼 신경쓰는 건지 알았다. 린네 군이 걱정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나는 평범한 삶을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예전이라면 괜찮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왜 내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냐면서,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뭐, 그야…… 이름을 불렸으니까 말을 걸었겠지.

하여튼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신경쓰지 않는다. 이미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한 행세를 하며 살아가기를 더 이상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게 내 선택이었다. 필사적으로 평범해지려 하다니. 거기서 이미 하나도 평범하지 않다.

린네 군은 어떤 자책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탐탁치 않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고민에 빠진 린네 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살짝 웃었다. 내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그래서 불쌍한 사람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음식점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의 선택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린네 군이라고 해서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줬느냐 하면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귀찮게 굴었다. 제가 나의 뭐라도 된 양…….

애초에 도시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햄스터볼 안에 넣어진 햄스터처럼 서로의 햄스터볼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린네 군은 달랐다. 마치 들짐승처럼 나의 햄스터볼을 가르고 내 공간에 파고든다. 나의 깨져버린 햄스터볼 틈새로 린네 군이 말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이다. 린네 군은 끈질겼고 나는 고집이 셌다. 린네 군은 하루에 최소 두 번,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권했고 나는 매번 무시했다.

린네 군에겐 그런 경향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한 번도 부과된 적 없었던, 평범한 도시 사람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분명했다. 꼭 얼마 전까지의 나처럼 말이다. 그게 좀 우습기는 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할 수 있게 된 건데 싶어서 말이다.

이르게 맞은 나의 마지막 졸업식을 축하하러 와준 린네 군은 그때까지도 나를 설득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 많이 조사하고 공부해서 알아온 것 같았다. 학교를 벗어난 청소년이 어떻게 하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지, 학벌이 현대 도시인의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뭐, 대충 그런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교장선생님의 연설때문에 길어질대로 길어진 졸업식 탓에 아주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린네 군의 연설까지 들어주기는 조금 힘들었다. 부모님을 대동한 친구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학교와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키니쿠 가게로 린네 군을 데리고 갔다.

린네 군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예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인간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를 붙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린네 군을 앞에 둔 채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가장 먼저 노릇하게 익은 고기 한 점을 린네 군의 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린네 군은 제 앞접시는 보지도 않고 계속 내게 뭐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어쩐지, 이유 모를 심통이 나서 다음에는 연달아 두 점을 내 입에 밀어넣었다.

린네 군은 끝끝내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나는 가장 처음 구워졌던 고기를 가장 마지막으로 입에 넣었다. 고기는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질겨서, 기분이 나빴다. 린네 군도 그 즈음 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속상한 것 같기도 했다. 그것들은 딱히 상반된 감정은 아니었으니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고기를 전부 먹어치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카운터로 향했다. 린네 군은 조용히 나를 따라왔다. 계산하는 동안 점원과 야키니쿠에 쓰인 타레의 비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집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린네 군은 여분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화가 났다면 먼저 아파트로 돌아갔어도 되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한 걸음 뒤에서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쩐지 등에 쥐가 날 것 같았지만 금방 해결됐다. 마감 세일 품목에 정신을 빼앗긴 뒤로는 린네 군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오늘의 마감 세일 전리품에 값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돌려 린네 군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연히 시선이 맞닿았다. 내가 화해할 요량으로 먼저 멋쩍게 웃었다. 린네 군은 웃지 않았다. 단단히 속이 상한 것 같았다. 이 사람, 눈매가 날카롭고 키가 커서 웃지 않으면 좀 무섭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드물게 곤혹스러워진 순간에 린네 군이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려있던 장바구니를 빼앗듯 넘겨받았다. 나는 그런 린네 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의 재킷 소매 아래로 뻗어 나온 길고 날렵한 손 끝을 쥐었다. 린네 군은 맞잡아주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연결된 채로 아파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녹차를 우렸다. 밥 위에 명란을 얹고 따뜻한 녹차를 부어 오챠츠케를 내어줬더니 그때는 조금 망설이다 젓가락을 들었다. 가장 식욕이 왕성할 시기에 저녁을 넘겼다. 그것도 불판의 고기 앞에서 벌을 서는 꼴이었으니 분명 배를 주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고집을 부린 것이다. 어쩐지 가슴께가 근지러워서 웃음을 터트렸다.

“린네 군은 정말 고집쟁이예여.”

린네 군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너만 할까.”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나는 기꺼이 웃었다. 린네 군은 말 없이 젓가락을 뻗어 녹차에 적신 쌀알을 집어들었다. 가지런히 쥔 젓가락 끝이 작은 쌀알과 빈틈없이 맞물렸다. 발간 입술과 고른 치열 사이로 하얀 쌀알을 집은 젓가락 끝이 파고드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그새 배가 고파진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내 밥 위에도 녹차를 붓기 위해 포트를 내 쪽으로 가져왔다. 그때 린네 군이 입을 열었다.

“……니키는.”

젓가락이 녹차로 젖은 탓인지 그 입술 위로 물기가 옅게 배어 있었다. 어쩐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린네 군의 말읃 금방 이어졌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약간 정신이 들었다. 린네 군은 아직도 그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숨을 삼킨 나는 망설임 없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진학하지 않고 근처의 음식점에 취직해도 요리사는 될 수 있어여.”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몇 번이나 나왔던 이야기였다.

“진학해서 요리를 배우면 더 대단한 요리사가 되는 거잖아.”

“뭐어, 그렇죠? 요리에는 면허나 자격증도 있으니까여. 그치만 대단한 요리사가 되어서 비싼 요리를 잔뜩 해도 그게 제 입에 들어오지는 않는다구여. 그런 쪽은 물류도 좀 더 깐깐해서 남은 음식을 얻어오기도 어렵구…….”

내가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하자 린네 군이 내 말을 끊고 목을 울렸다.

“요리가 너의 가장 중요한 목표 아니었어?”

“요리는 굳이 말한다면 연명하기 위한 수단이죠. 저, 금방 배고파져버리니까.”

린네 군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운 미간이 선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익숙한 반응에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린네 군이 조금 주저하다 물었다.

“그럼……. 네 목표는 뭐야?”

이번에는 대답을 고민했다. 목표 같은 거창한 걸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아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단 하나의 목적을 이유로 행동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린네 군이 원했던 대답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답지 않게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다가 조금 느리게 입을 열었다.

“살아남는 것, 일까여. 굳이 말한다면요.”

내 대답에 린네 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답잖게 생각을 많이 한 탓에 배가 고팠다. 린네 군은 언제나 이렇게 생각을 강요한다. 조금 조급해진 나는 포트 안의 녹차를 내 그릇에 마저 부었다. 티백으로부터 새어나온 까만 가루 잎까지 그릇 안으로 흘러들어왔지만 그런 것에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냥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나는 본래가 그런 태생이다.

삶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목표가 대단한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작고 소박한 사람도 있다. 린네 군이 전자라면 나는 후자다. 나에겐 먼 미래의 명성이나 지위 같은 것보다 눈 앞의 야키니쿠나 오늘 저녁의 타임세일이 더 중요했던 것 뿐이다. 나의 미래란 고작 그 정도다. 한 치 앞에 있으니 확실하게 보인다.

그리고 테이블 바로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는 린네 군이나 장바구니를 나 대신 들고 곁에서 걷는 린네 군이 그 한 치 앞의 미래에서도 나와 함께 있다.

한 치 앞의 린네 군은 언제나의 린네 군처럼 항상 맛있게 그릇을 비우고 가끔 내 음식을 칭찬한다. 내 옆에서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으면서도 보폭을 맞추고 가끔은 나이 많은 어른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항상…….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는 당신이 있다.

린네 군은 그것만으론 안 되는 걸까? 꼭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뤄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나와의 미래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전부 무의미한 질문이다. 대답은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는 결코 나 같은 것의 곁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린네 군은, 언젠가 날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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