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의 기쁨
니키의 아파트를 나와 조금 걸어가야하는 거리에 심야에나 문을 여는 식당이 있었다. 보통 식사는 아주 먹고 싶은 경우가 아니면 대충 니키에게 만들어달라고 협박하거나 니키가 만든 걸 빼앗아먹곤 했다. 애초부터 절대 1인분만 만들지는 않는 녀석이니 빼앗아먹어도 큰 문제는 못 되었다. 그 녀석은, 많이 먹기도 했지만 애초에 혼자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니키와 함께 먹는 편이 나로서도 돈도 굳고 좋았으니 니키가 알바하는 곳이 아니라면 어느 가게든 단골이라 부를 정도로 자주 가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여름이 다 지날 무렵이던가, 이제 슬슬 날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겨울날의 오뎅이 생각났고, 갑자기 그 가게의 오뎅이 미친듯이 먹고 싶어졌다. 이상한 연상작용이었다. 간만에 먹을까 싶어서 겉옷만 대충 챙겨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나가려는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니키와 마주쳤다. 마침 잘됐다 싶어 지갑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니키가 이내 으르렁거리며 주겠냐고 되묻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나도 그가 순순히 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힘으로 빼앗았다. 역시 사람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 편이 성취감도 있고. 니키는 현관문을 열고 선 채 물었다. 집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려구여?”
“요 앞에 오뎅 먹으러~”
“앗, 거기! 저두 갈래여!”
음식 이야기가 되니 목소리부터 밝아진다. 뭐, 니키라면 분명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음식도 좋아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니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녀석이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 결과 함께 식사해야 할 상대가 내가 되더라도 말이다. 어쩐지 나도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니키큥이 쏘는 거지?”
“참나! 저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해여?!”
그렇게 가게 앞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드물게 문을 닫았다. 니키에게 네가 따라온 탓에 불운이 옮았다고 괜히 구박하자 니키도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게 그냥 오뎅을 먹지 못한 것이 아쉬운 탓이라는 정도야 뻔히 알았다. 이 녀석은 타인의 시선이나 핍박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니 아마 내 핀잔은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햄버거를 사들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럼 니키는 조금 기쁜 얼굴을 했다. 이 녀석은 그런 녀석이다. 음식의 종류는 신경쓰지 않는다.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음식의 종류는 상관 없다.
햄버거 세트가 든 일회용 가방에서 콜라만 꺼내들었다. 니키에게 내밀자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고 반기며 받아든다. 아마 많이 배가 고팠던 것이겠지. 나도 콜라에 빨대를 꽂아 한 차례 길게 빨아들였다. 그새 일회용 컵의 표면에 둥글게 물방울이 맺혔다. 얼음 탓이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배만 채울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런 건, 누구도 행복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니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예정된 식사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 제가 어떤 표정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테다. 혼자만의 식사를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절대 하지 않는 표정을 한다. 기대하는 표정을 한다. 행복을 상상하는 표정을 한다. 니키는 사실, 저와 함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좋은 거다.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앞서 걷는 니키의 머리카락이 대충 묶은 머리끈 위쪽으로 헝클어진 것이 보였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탓이겠거니 싶었다. 아마 서둘렀겠지. 분명 배가 고팠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 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것이다. 니키는 공복을 품은 채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단순히, 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린 배를 붙든 채로도 쉽게 집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는 나의 행선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의도가 잡힌다. 니키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단순히 공복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영양공급이 아닌, 좀 더 쓸데없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다정한 식사를 하고 싶었겠지. 나를 따라가겠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의 설탕졸임처럼 달콤하게 졸아든 얼굴을 기억한다.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행복을 상상하는 표정이었다. 니키가 나 때문에 그런 표정을 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였다. 시이나 니키가 혹독한 공복에도 결국은 나를 선택해줬다는 증거가 더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나 옷매무새를 정돈해 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성미는 아니다. 우리의 관계도 서로에게 마음을 써줄 정도로 사근사근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손을 뻗어버린 건…… 아마 밤이 깊은 탓이겠지. 별수 없이 몸에 익지 않은 동작이 된다. 어? 그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나의 모든 동작이 멈췄다.
이 녀석, 키가 많이 컸네. 그런 것을 생각했다. 조금 더 간단하게 니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기억이 있다. 키가 꽤 자랐다고 자부하던 꼬맹이는 생쥐처럼 조그맸다. 그야, 벌써 4년이다. 니키가 자라버린 것도 당연했다. 애초에 우리는 그렇게 스킨십이 많은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항상 마주보고 식사를 했으면서도 이제야 겨우 쑥 자라버린 키를 새삼스럽게 깨달아버리는 것이다.
목 뒤로 달랑거리던 짧은 머리카락을 기억한다. 눈 앞에는 길쭉한 목덜미를 타고 단단하고 곧은 어깨 위로 가지런히 놓인 부드러운 머리카락만이 존재한다. 갑자기 시이나 니키의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손바닥에 고였던 물기가 중력을 따라 흘러내렸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목을 타고 팔찌까지 닿는다. 대충 꿴 팔찌와 손목시계 안쪽으로 손목에 스미는 축축한 감각은 더 이상 나의 주의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나의 젖은 손가락이 니키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뭐예여?”
니키가 돌아본다. 씩 웃는 얼굴이 나를 향했다. 이제 더 이상 고개를 치들지 않아도 시선이 맞닿는다. 눈 앞의 시이나 니키는 우스울 정도로 다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저 행복하고 다정한 식사를 기대한다고 생각했던 시이나 니키의 얼굴이.
이건, 내가 알고 있던 꼬맹이가 아니다. 시이나 니키는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니다. 어쩐지 너무나 당연한 그 사실이 무척 얄밉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냐면.
“우왁! 뭐뭐뭐예여?!”
그대로 니키의 머리를 잡아채서 세게 당겨버렸다. 젖은 손바닥 안쪽으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깊이 엉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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