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실험
“너, 괜찮은 거냐?”
“엥? 뭔 소리예여?”
멍청한 대답이었지만 내가 린네 군에게 돌려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정도였다. 린네 군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할 말이 생기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 대답에 린네 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면 말하라고 했잖아.”
주변이 듣게 할 생각은 없는지 일부러 낮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경박함이라곤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도망갈 것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양 내 손목을 꽉 붙든 린네 군이 말했다.
“넌 좀 더 주변에 의지해도 된다고.”
“뭐어…….”
멋진 소리를 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됐으니까 놔줬으면 좋겠다. 나는 눈을 굴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내 태도의 이유를 읽은 건지 린네 군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일단 연습 끝나고 다시 이야기해.”
린네 군 나름대로 나를 신경써 준 것이겠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리라는 것까지 눈치채고 먼저 이야기를 미루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지금 내 상태를 가장 비밀로 하고 싶었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린네 군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린네 군에게 들켜버리고 만 것이다. 린네 군을 영원히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는 멍청하고 린네 군은 똑똑하니까. 분명 나의 상태를 눈치챌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위를 살피고 신경쓰는 것도 군주의 덕목이라고 배우기라도 한 걸까.
린네 군은 연습이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곤란하다. 린네 군과 둘만 있는 건. 정말로 곤란했다. 나는 주머니 안에 넣어뒀던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었다. 초콜릿의 쓴맛이 입안 가득 토기처럼 차올랐다. 눅눅하고 무거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것처럼 피로하다.
당연하지만 연습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연습이 끝난 뒤에도 린네 군은 내게 도망갈 틈을 주지 않았다. 린네 군은 타고난 사냥꾼처럼 나를 주시했고 나는 결국 궁지에 몰린 쥐처럼 린네 군 앞에 섰다. 린네 군은 나를 마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코하쿠 쨩과 HiMERU 군을 배웅까지 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던가. 하지만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 이성을 겨우 그러모아 그를 물어버리는 것만은 참아냈다.
차마 린네 군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나를, 린네 군은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죽음을 예감하고 한껏 민감해진 피부 위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온전히 둘만 남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린네 군은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제대로 먹고 있어?”
눈 앞이 점멸했다. 그게 공복 탓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급하게 목을 울렸다.
“……아까도, 같이 밥 먹었잖아여.”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셈이었는데,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지쳤다. 내 목을 태우는 것은 고작 물 정도로 무마할 수 있는 갈증이 아니다. 이 이상 비밀로 할 필요가 있는 걸까. 린네 군은 이미 나의 이상을 눈치챘는데. 솔직하게 털어놔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나의 이상을 말해버리면 린네 군은 분명.
“아까도 그래. 평소처럼 먹지는 못한 것 같아서 묻는 거야.”
맞다. 린네 군이 꿰뚫어본 그대로다.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린네 군이 답잖게 걱정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거기다 너, 연습 중간중간에도 간식도 안 먹고 물만 먹으니까…….”
간식은, 먹기는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화장실 구석에 처박혀서 먹은 탓에 아마 그런 오해를 사게 된 것이지 싶었다. 하지만 내게 오해를 해결할 여유는 없었다.
“저녁에!”
무심코 높인 언성은 공간을 찢을 것처럼 울렸다. 순간 내가 더 놀랐다. 이어서 목을 울리면 완전히 기세가 꺾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녁에 많이, 먹을 거라서여…….”
“……아, 그래?”
전혀 통하지 않을 변명이었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적게 먹은 적은 없으니까. 오히려 위장을 넓혀놔야 한다며 잔뜩 먹기까지 하곤 했으니 린네 군이 내 변명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리가 없었다. 린네 군의 눈동자가 지긋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막힌다. 맹수의 것처럼 깊고 뚜렷한 눈매와 형형한 눈동자는 나의 심리를 전부 파헤쳐버릴 것만 같다. 그걸 버틸 수가 없어서,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떨어트렸다. 린네 군이 아무렇지 않은 양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요리할 거야? 성주관에서?”
“오늘, 은……. 기숙사 안 들어갈 거예여…….”
“엥? 얼마나 맛있는 걸 먹을 셈이길래?”
그렇게 말한 린네 군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인간, 소리만 경박하게 냈지 얼굴은 전혀 웃는 표정이 아니다. 공복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린네 군은 생각보다 간단히 물러나줬다. 내가 그만큼 진심으로 그를 거부했다는 의미가 되겠지. 린네 군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니까, 어쩌면 나의 날선 태도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마 린네 군을 달래지는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는 기숙사로 가는 대신 곧장 아파트로 향했다.
4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린네 군에게서는 여전히 린네 군의 냄새가 났다. 그건 나와는 완전히 다른 냄새였다. 같은 것을 먹고 같은 비누와 같은 샴푸를 쓰고 같은 물로 씻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냄새는 완전히 같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떠난 이 집에서는 린네 군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아니, 아마 실제로도 린네 군의 냄새가 배어있었을 것이다. 그저 그동안 서로의 냄새에 너무 익숙해져서 몰랐을 뿐일 테다. 그토록 닮아가면서도 무뎌진 냄새 깊숙이 묻혀있었을 본연의 냄새를 맡아버린 것이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는 관계였으니 말이다.
이 집에서 풍기는 린네 군의 냄새는 여전히 내가 잘 알고 있는 린네 군의 냄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 냄새를 인지하는 순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넘칠 만큼 가득 고여서, 그대로 흘려버릴 것만 같다. 배가 고프다. 나를 자극하는 것은 케이크며 과일의 달착지근한 냄새도 잘 익은 고기의 노릇한 기름 냄새도 아니다. 그 냄새들은 더 이상 나의 허기를 촉진시키지 못한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겼다. 냄새의 근원을 찾을 셈이었던 것 같다. 비척대며 멈춰선 자리는 서랍장 앞이었다. 린네 군도 나도 애초에 물건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었으니 기숙사에 들어갈 때도 챙겨야 할 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4년의 시간은 길었고 린네 군이 나간다고 해서 한 번에 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린네 군의 몇 안 되는 짐과 여벌의 옷은 여전히 내 아파트에 남아있었다.
이 서랍을 열면 린네 군의 옷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린네 군의 냄새를……. 나는 천천히 서랍을 열었다. 몇 벌 들지도 않은 서랍이 이상할 정도로 무거웠다. 서랍 안쪽으로 린네 군의 옷이 보였다.
최근 들어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음식을 입에 댈 수가 없게 된 탓이었다. 이상은 어떤 전조도 없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세상의 모든 음식이 역겹게 느껴졌다. 입맛이 바뀌면서 내 체질도 함께 바뀌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테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먹지 않으면 죽는 체질이다.
잘 알고 있는 음식을 입에 댈 수 없게 되었다. 알고 있는 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졌다. 그럼에도 먹어야하니 그나마 특유의 냄새나 맛이 적은 음식 위주로 요리를 했다. 양념은 하지 않는 쪽이 도리어 먹기 수월했다. 당연히 요리의 형태는 단조로워졌다. 그저 편하고 간단하게 먹기 위한 형태로 만든 것이었으니 별수 없었다.
사료의 기능 외에는 하지 못할 음식을 눈 앞에 두고도 나의 이상은 혹독했다. 나의 온몸이, 눈 앞의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내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지? 먹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서…… 결국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코를 막아 음식의 냄새를 차단하고서도 헛구역질을 하며 겨우 삼켰다. 그저 음식을 입 안에 쑤셔넣을 뿐인 기계적인 행위였다. 식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그 행위를 마친 뒤에는 그저 멍하니 억지로 비운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모든 것이 허탈했다.
요리사가 되기로 했던 나의 선택이 무의미해졌다. 어차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서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오차 없이 계량하고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서 요리를 해도 역겹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살겠답시고 이런 것이라도 억지로 집어삼켜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슬퍼졌다.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죽음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그 명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먹었다. 그런 삶이라도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맛을 추구했다. 그게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유일한 즐거움이, 행복이 사라진다면…… 별수 없이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전부 예전의 일이다. 더 이상 나의 행복은 유일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는 식사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굳이 무얼 먹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됐다. Crazy:B의 멤버들과 함께라면 아이돌 활동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HiMERU 군이나 코하쿠 쨩이나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친해진 뒤에는 그들이 되레 나를 놀리기도 했다. 특히 HiMERU 군은 무심한 척 하면서도 의외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니 내 장난도 두세 배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자연히 HiMERU 군 앞에 선 나는, 린네 군 앞에서처럼 괴롭혀지는 포지션이 되어있곤 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아이돌 활동조차 즐겁게 느껴졌다. 배가 고파도 식사는 커녕 간식조차 먹을 수 없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짝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정신이 나가버린 내가 답잖게 아이돌 활동에 몰두해버리면 린네 군이 먼저 간식을 권하기도 했다. 린네 군만이 아니었다. 그가 곁을 비운 사이에는 코하쿠 쨩이 스스로의 화과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예전에는 다른 것에 몰두하면 금세 픽 쓰러져버리곤 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쪽을 택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순간에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곁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덕분에 즐겁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그리고 더 즐거운 일들을 많이 알아가고 싶다고 욕심까지 내게 되었다. 욕심이라니. 정말로, 시이나 니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살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함께 식사하고 싶었고 함께 노래하고 싶었고 함께, 그냥 그들과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냥 전부 다, 욕심이 났다. 그래서 먹었다. 더 이상 음식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역겹고 끔찍할 뿐이라도 삶에 대한 욕심만으로 나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연습실에서 린네 군을 만난 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그 모든 결심이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입 안을 가득가득 메우고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린네 군을 바라보았다. 린네 군의 냄새가, 내가 잘 알고 있는 냄새가…… 분명 나에게도 배어버렸을 그의 냄새가.
린네 군의 몸 어디든 좋으니까 코를 박고 싶다고 생각했다. 린네 군의 냄새를 맡으면 공복이 사라질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 린네 군의 냄새를 맡아버리면…… 그 순간부터 참지 못하게 될 것은 뻔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정신이 든 순간엔 이미 연습실로부터 뛰쳐나온 뒤였다. 린네 군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역겹게 느껴졌다. 냅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을 전부 게웠다. 역류한 위액으로 상한 목이 따끔거렸다. 숨을 쉬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구멍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 같았다.
먹고 싶지 않다니. 그런 생각을 한 건 생애 처음이었다. 나는 원체 참을성이 없었다. 마시멜로 실험따위에 동원되었다간 실험자가 방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마시멜로를 집어먹고 15년 뒤의 사회부적응자라는 낙인이나 받게 될 터였다.
마시멜로를 주기로 한 어른의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능력의 문제였다. 나는 지금 당장 배를 채울 것이 필요했고 눈 앞에는 마시멜로가 있다. 먹어버리면 두 개째의 마시멜로는 받지 못하겠지만 상관 없다. 마시멜로 정도라면 당장 나도 손쉽게 만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최선을 다해 참으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린네 군은…… 내가 새로 만들 수 없으니까. 게다가 만약 린네 군이 자길 먹으라고 허락해줘도 곤란하다. 먹는다고 두 개째의 린네 군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린네 군은 오롯이 한 명이다. 린네 군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 나는 그냥 참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서랍을 밀어넣고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서랍 안에서는 깨끗이 빨아 넣어둔 옷의, 부드러운 세제 냄새만이 풍겼다. 그 냄새에 나는 비로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금방이라도 참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선 나는 느리게 뒷걸음질을 쳤다. 식사를 하자. 빨리 식사를 해서, 억지로라도 배를 채워야 했다.
날것이 익어가는 냄새가 역겨웠다. 요리를 하는 시간이 지겨웠다. 요리를 앞에 둔 시이나 니키가 할 생각이 아니었다. 맛을 신경쓸 수 없으니 양념은 자연스럽게 최소한으로 했다. 재료의 유통기한은 한참 남아있었고 보관도 제대로 해두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역겹다. 잘 익은 야채가 혀에 닿는 순간부터 욕지기가 올라온다. 온몸이 거부하고 있다. 이건,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먹어서는 안 된다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한평생을 먹어 온 인간의 음식이다.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 먹어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린네 군의 곁에 있을 수 있다. 내장부터 창백하게 질린 것처럼 명치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등줄기에 스미는 식은땀의 서늘한 감각이 선명했다. 역겹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몸이 들어온 음식물을 도로 밀어내는 것처럼 달싹였다.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것을 게웠다. 변기를 붙들고 전부 쏟아내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젖은 눈가가 매웠다. 눈을 깜박이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눈꺼풀에 짓눌려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게 인간의 음식이라면,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니키, 괜찮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역한 냄새를 헤치고 들어서는 것처럼, 내가 잘 알고 있는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변기를 짚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장실 밖을 바라보았다.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보였다. 눈 앞이 어지러웠다.
“……린네, 군.”
어째서 이 순간 이 곳에. 린네 군이.
가장 처음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린네 군은 이미 나의 이상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갈 곳이라고는 아파트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지.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린네 군이라면 내가 어디에 숨든 찾아냈을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 오지 않았더라도 분명 찾아왔을 것이다. 린네 군은 불행에 민감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린네 군이 지금의 나를 혼자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린네 군이라면 다시 한 번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건져올리기 위해 어떻게든 내 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마기 린네는 그런 인간이었다. 타인의 모든 불행을 슬프고 사랑스러이 여기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불행했던 나는 그가 내 불행을 사랑해줬던 것처럼 자연히 아마기 린네라는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 린네 군이 없으면 안 되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 시이나 니키에게 있어 아마기 린네는 없으면 안 되는, 인간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으르렁대듯 속삭였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여.”
“……너.”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듣기는 한 걸까. 린네 군이 희미하게 읊조렸다. 린네 군은 긴 다리를 내딛어 간단히 내게 다가섰다. 우리의 거리는 성큼 줄어든다. 린네 군이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 딱히 배신당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허탈할 뿐이었다. 나는 가장 위험한 천적을 앞에 둔 짐승처럼 몸을 움츠리며 내게 다가서는 린네 군을 올려다보았다.
“다가오지 말라니.”
린네 군이 손을 뻗었다. 식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옆머리를 천천히 긁어 넘기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그의 손 끝에 얼굴을 기댔다. 린네 군의 손가락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우리가 깊이 맞닿을수록 잘 알고 있는 냄새가 났다. 린네 군의 냄새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인간의 냄새인 동시에, 내가 유일하게 공복을 해소할 수 있는 음식의 냄새다.
“이렇게 쓸쓸한 얼굴을 하고서?”
하지만 이 남자가 이렇게나 상냥하게 구는 것 또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쩐지, 눈가를 적신 물기를 밀어내고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졌다. 그럼에도 울지 않은 이유는 이제 울 체력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것을 게워낸 내게 더 이상 남은 체력은 없었다.
나는 그저 린네 군이 이끄는 대로 그의 마르고 단단한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냄새를 맡는 순간 전부 망가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전부 망가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내 불안해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린네 군의 다정한 손가락이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나는 지친 짐승처럼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 나는 쓸쓸했던 거구나. 배가 너무 고파서 눈치채지 못했다. 항상 이렇다. 린네 군이 먼저 나의 결핍을 눈치채버린다.
“식사는 어떻게 된 거야?”
린네 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의 린네 군 답지 않았다. 그건 꼭 내가 오래 전에 알았던 다정한 형 같았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니 식탁 위의 음식은 이미 확인한 모양이었다.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는 대신 린네 군에게 되물었다.
“그거 어땠어여?”
내 물음에 린네 군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니키의 요리 같지 않았어.”
그랬겠지. 양념도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탈이 나지 않도록 익혔을 뿐이다. 한 입에 욱여넣을 수 있도록 잘게 잘랐을 뿐이다. 그런 건 요리가 아니다. 단순한 사료다. 나는 투정을 부리듯 그의 널찍한 어깻죽지에 턱을 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응어리를 한숨처럼 토해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저, 더 이상 요리 못할지도 몰라여.”
린네 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고 묻지도 않았다. 덕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단 한 번도 나의 고백을 재촉하지 않았다. 담담한 호흡만이 유일한 반응이었다. 음식의 냄새가 역겹게 느껴진다고. 그래서 음식을 입에 댈 수 없게 되었다고. 하지만 살고 싶어서 억지로 먹었다고. 그런데 린네 군의 냄새를 맡으면…… 유일하게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고.
끔찍한 삶이었다. 괴로운 이야기였다. 나의 기구한 운명을 언어로 정제하면 스스로의 끔찍함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인정해버리면 이 이상으로 괴로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비밀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벽이 허물어지는 것만 같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린네 군이 천천히 나를 떨어냈다. 담담한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린네 군이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니키, 나 먹어볼래?”
그래, 아마기 린네라면 분명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린네 군에게만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어깨를 밀쳐버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고 입 안이 달았다.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상상한 탓이다. 속이 뒤집히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미쳤어여?”
당연하지만 린네 군은 내가 밀치는 정도로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쓰게 웃을 뿐이다. 나는 린네 군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린네 군을 먹을 수 없었다.
린네 군의 삶이 지금까지 어땠는지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린네 군은 언제나 군주였고 형이었고 리더였다. 항상 누군가에게 필요되어지는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가 필요로 해주는 순간 인간은 역할을 얻는다. 그리고 린네 군은 역할 없는 삶 같은 것은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필요로 재단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도 린네 군은…… 이번에라면 시이나 니키도 비로소 저를 필요로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작 배를 채우기 위한 한 끼 식사를 치르기 위해 아마기 린네를 필요로 해줄 거라고 말이다.
“니키는 정말, 나한테서는 아무 것도 받지 않는구나.”
하지만 그건 전제부터 틀렸다.
“지금의 니키에겐 내가 제일 필요할 텐데도…….”
내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린네 군이 필요했다. 언제나 그랬다. 너무나 필요해서, 린네 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아니, 린네 군이 없으면 죽을 걸 아니까. 그래서 먹고 싶지 않은 거다. 린네 군은 필요의 근거가 없으면 내 마음조차 믿어주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린네 군은 괜찮아여?”
“아?”
성분을 갖추지 못한 문장에 린네 군이 되물었다.
“린네 군을…….”
나는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마 린네 군의 얼굴을 볼, 각오가 서지 않았다. 목을 죄는 듯한 감각을 헤치고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먹고 싶어하는 저랑 함께 있어도.”
“엥.”
린네 군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가벼운 반응과 함께 고개를 까닥였다. 그 뺀질한 얼굴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따위는 전부 꿰고 있을 거면서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금방 알았다. 린네 군이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희미한 웃음기가 배어있었다.
“먹고 싶어? 아닌 것 같은데.”
또 다정한 궤변이나 늘어놓을 셈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 대꾸도 없이 린네 군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어쨌건 간에 린네 군의 가볍고 제멋대로인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언제나 내게 위로를 주곤 했으니 말이다.
“니키는 날 먹고 싶지 않잖아. 그래서 참고 있는 거잖아.”
그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흐린 시야가 힘들어 눈에 힘을 주었다. 머리가 어찔했다. 겨우 린네 군의 얼굴이 보였다. 린네 군은 곤란한 듯이 웃고 있었다.
“으응, 열심히 참고 있는 니키한테는 정말로 미안하게 됐지만 말야. 그게 좀……. 기쁜데, 나는.”
그렇게 말하는 린네 군은 정말로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나도 우중충한 기분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농담처럼 투덜거렸다.
“……저, 린네 군이랑 평생 키스하지 못할 거라구여.”
내가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자 린네 군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짜식. 결혼도 안 해줄 생각이면서 키스부터 생각하는 거냐?”
그렇게 농담을 던진 뒤에도 린네 군은 내내 웃는 얼굴을 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녹아내릴 것처럼 다정한 얼굴이었다. 기분이 좋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린네 군이 속삭였다.
“니키가 날 정말로 먹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그러니까……!”
“그렇지만.”
린네 군이 내 말을 자르고 말을 이었다. 담담하지만 상냥하고, 그러면서도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였다.
“니키는 먹는 것보다 나와 함께 있는 쪽을 택해줬으니까.”
그렇게 말한 린네 군이 조심스럽게 내 뒷머리를 쥐고 엄지손가락 끝으로 내 귓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린네 군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만 같은 작고 섬세한 동작들이 어쩐지 가는 깃털처럼 간지럽게 느껴졌다. 그게 어떤 행위를 닮았는지, 에너지가 부족한 탓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겨우 유추했을 즈음 린네 군이 바짝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고 침을 넘겼다. 속이 깊어 뚜렷하고 선명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입술이, 맞닿았다. 그저 닿았을 뿐인 행위에도 어쩐지 호흡이 떨렸다. 우리의 입맞춤에는 첫 키스의 설렘 따위는 없었다. 이 장소가 화장실인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비릿한 위액과 섞여버린 역겨운 사료의 맛을 린네 군이 알게 되는 것은 싫었지만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내 척추를 타고 온몸에 하달된 반응은 온전히 긴장이었다. 린네 군을 삼켜버리지 않기 위해 나의 모든 인내를 동원하는 행위였다.
“나와 함께하는 게 니키의 선택이라면.”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무거운 입맞춤이 끝나고, 내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댄 린네 군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린네 군의 호흡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첫 순간에는 그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나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고 생각이 미쳤다. 아니, 분명 같지만 같지 않다. 린네 군은 내게 먹히게 되는 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린네 군을 먹어버리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을 걱정해줬을까. 분명 린네 군이라면…… 그걸 더 겁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니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됐을 때는, 기절시켜서라도 멈추게 할게.”
아무렇지 않은 양 속삭인 린네 군이 낄낄대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말을 멈춘 뒤에도 그의 웃음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내 부자연스럽게 맺어졌다. 린네 군이 드물게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니, 아니다. 그건 망설인다기보다는.
“그러니까, 니키. 우리…….”
내 어깨를 잡아 살며시 밀어낸 린네 군은 이내 짜내듯이 목을 울렸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아마기 린네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처절하고 애틋한 목소리였다. 마치 어떤 각오를 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나는 느린 눈짓으로 린네 군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 있는 것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얼굴에 마음을 굳혔다. 나는 역시 린네 군의 곁에서 계속 인간으로 있고 싶다. 짐승이 되어 살기보다 인간으로 죽고 싶다. 린네 군이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줬으니까. 나를 인간으로 살게 해주니까.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웅~ 그러면 저희 이제 식사 할까여! 린네 군, 먹고 싶은 거 있어여?”
나는 린네 군의 말을 끊고 아무렇지 않은 양 몸을 일으켰다. 구겨져있던 팔다리가 찌뿌듯해 기지개를 폈다. 여전히 혼미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 마치 친구처럼 오랜 시간을 곁에 두었기에 잘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식사를 해야 한다. 내가 주방으로 향하자 나를 따라 몸을 일으킨 린네 군이 내 뒤로 가깝게 따라붙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엉? 그럼 나 생선 구워줘! 고등어!”
“양념은 뭘로 하는 게 좋아여?”
“깔끔하게 간장으로~!”
린네 군의 신이 난 반응은 나로 하여금 인간을 연기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된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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