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소시지 리테이너

구토 소재

현관문을 부술 것처럼 열어젖히고 집 안으로 들어선 린네 군은 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발 끝에 걸려 방 안으로 끌려들어온 린네 군의 운동화는 대충 서로 눌러 벗겨낸 탓에 뒤꿈치가 구겨져 있었다. 한숨을 내쉰 나는 현관을 정리한 뒤 린네 군을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린네 군은 변기를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널찍한 어깨가 구겨지듯 움츠려있다. 작게 구겨진 몸이 크게 들썩였다. 머리카락이 가볍게 흐트러졌다.

“욱…….”

욕지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변기를 붙든 손 끝에 힘이 들어가있다. 하얗고 마른 손등 위로 힘줄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격렬한 몸짓과는 다르게 벌린 입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린네 군의 곁에 쪼그려 앉아 그의 등을 느리게 쓸어주었다.

“괜찮아여?”

그저 달싹이기만 하는 몸뚱아리가 애틋하다. 그런 상태였으니 린네 군에게 대답까지 해낼 여유는 없어보였다. 린네 군은 술을 잘 마신다. 외로움을 타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 남자는 마침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술은 가면을 벗지 않아도 될 정도의 가벼운 친밀감을 선사한다.

언젠가 술자리의 린네 군을 본 기억이 있다. 활달한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고 날카로운 눈매는 긴장감 없이 풀려있었다. 린네 군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숨통은 조금 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탓일까. 그게 제법 즐거워보여서, 나도 너무 마시지 말라는 정도로만 핀잔을 주고 그가 술을 마시고 술자리를 즐기도록 내버려두고 말았다.

그의 외로움은 나 혼자서는 채워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린네 군은 술을 잘 마시니까. 무한정 밀어넣어도 한숨 푹 자고 나면 멀쩡해지니까. 그런 이유로 내버려둔 결과가 내 눈 앞의 가장 구석지고 습한 자리를 찾아와 웅크려있다. 최근의 린네 군은 항상 이렇다. 술을 잘 마시는 인간이었으니 더욱, 이 변화의 의미가 명확했다. 나는 그의 날카롭고 뾰족한 어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린네 군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뺨에 손 끝이 닿으면 린네 군이 흠칫 나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그의 얼굴을 붙들어 린네 군의 벌어진 입술을 벌리고 손 끝을 밀어넣었다. 매끈한 혓바닥이 손가락 주위를 헛돈다. 그의 혀를 더듬어 혀뿌리에 손 끝을 대고 눌렀다. 그러면 목구멍이 조여들었고 혀는 뭍으로 끌려나온 생선처럼 필사적으로 펄떡였다.

그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목구멍을 압박하는 순간의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이 익숙하다. 나는 내 손가락에 버릇처럼 감기려 드는 혓바닥의 감촉을 새겼다. 변기를 쥔 린네 군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 손등이 뼈마디며 힘줄을 피해 움푹해지는 것이 보였다. 린네 군이 버둥거리며 내 손을 뱉어내려 했다. 솟구치는 토기에 린네 군이 들썩였다. 목구멍이 확장되고 모든 것이 역류하는 순간. 그의 체액과 뒤섞여 그의 체온과 같은 온도가 되었을 토사물이 손을 뒤덮었다.

“웁, 으…… 우욱!”

내가 손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린네 군이 거의 변기에 머리를 박다시피 몸을 숙였다. 나는 세면대를 항해 손만 뻗어 질척하게 묻은 토사물을 대충 헹궈내고 린네 군의 등을 바라보았다. 식도가 제대로 열린 모양인지 한참을 게워낸다. 나는 린네 군의 등을 쓸어주며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린네 군이 거의 변기에 처박다시피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느린 배속을 한 것처럼 무딘 움직임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길게 뻗은 목줄기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의 머리채를 정돈해주는 상상을 했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건드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울려서 토기가 올라온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잠깐 거친 숨만 몰아쉬던 린네 군이 변기 안쪽에 침을 뱉었다. 나는 고개를 든 그의 옆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질게 점성을 띈 침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에 가늘게 맺힌 채다. 무심코 그의 시선을 찾았다. 물때가 낀 타일만 멍하니 바라보는 린네 군의 기다란 눈가가 발그스름하게 젖어있었다. 그럴 만하다. 몸의 공정을 거스르는 역류는 분명 고역스러웠을 것이다.

할딱이는 숨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몸의 달싹임에 맞춰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났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나드는 시큼한 호흡에 맞춰 가볍게 오르내리는 어깨가 어쩐지 평소와 달리 가냘프게 보였다. 그의 모든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강인한 린네 군이 아닌 것처럼 가련하다. 희미하게 땀이 밴 피부가 묘하게 반질거렸다. 발갛게 물든 눈가에는 이미 눈물의 흔적이 있다. 지금의 린네 군은…… 지저분하고 못생겼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무심코 뻗은 손이 그의 입술을 더듬어 훔쳤다. 그대로 아랫입술을 눌러 벌리게 하면 린네 군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나를 허락했다기보다는 그저 저항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린네 군은 무너진 몸을 겨우 지탱한 탓에 평소보다 시선이 낮았다. 나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몸을 숙이고 젖은 눈동자에 시선을 맞췄다. 흐릿한 눈매가 당혹감에 선명해지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보았다.

“니키, 너……! 웁, 으응!”

린네 군은 당황한 듯 소리치려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그의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타인이 머금고 있던 위액의 맛이 혀 끝에 감돌았다. 가장 깊은 곳의 온도를 닮은 열기가 그의 입안 가득 맺혀있을 테다. 나는 양 입술로 그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물었다. 키스를 조를 요량이었다.

“윽……!”

린네 군이 힘없이 팔을 휘적여 나를 밀어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취객은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린네 군답지 않은 무력한 저항이었다. 얌전히 밀려나준 나는 입술을 문지르며 고개를 기울였다. 가볍게 맞닿았을 뿐인 입맞춤은 이루말할 수 없이 씁쓸했고, 역겨웠다. 

“웅……. 튀김 먹은 거예여? 가라아게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린네 군이 얼굴을 확 찌푸렸다. 기겁스러운 모양이었다.

“……야, 너…… 진짜 역겨운 짓 좀 하지마…….”

격렬하고 재미있는 반응이 돌아왔다. 덕분에 조금, 기분이 풀리는 듯 했다.

“나하항! 좀 괜찮아졌어여?”

가볍게 대꾸한 나는 무심코 턱 언저리를 손 끝으로 문딜렀다. 풀리다니. 뇌리를 스친 감상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 방금 전까지 내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는 건가? 어째서? 린네 군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온 것에 기분이 상한 걸까? 그야 뭐,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음식에는 예민하니까.

짙은 조미료의 맛과 오래된 기름의 냄새였다. 닭비린내는 소금과 후추로 잡았을 것이다. 몇 번이고 다시 끓은 기름이 든 솥을 또 한 번 달궜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린네 군은 건강했고 비위가 아주 약한 인간은 아니었다. 아마 술을 잔뜩 마신데다 상태가 묘한 안주를 먹은 탓에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내버린 것이겠지. 말이 안 된다. 내가 아파트에 있는데. 만약 린네 군이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런 것을 생각한다.

린네 군이 만약. 그래, 전부 만약의 일이다. 그가 내 곁에 들러붙어서 내게 안주를 만들어달라고 아양을 떨었다면. 언제나처럼 나를 귀찮게 굴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분명 나라면 린네 군이 좋아하는 안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쓰는 식재료의 상태가 나쁘기는 도리어 어려웠다. 나는 마감세일을 잘 활용하는 편이었고 아파트의 냉장고는 보관의 기능을 위해서는 거의 쓰이지 못했으니 식재료의 신선도가 마감세일의 마지노선 아래로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나라면…… 절대로 린네 군이 속을 버릴 만한 안주를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렇게 전부 게워낼 것이 아니라 그의 뱃속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나는 그래서 화가 났던 거다.

평소라면 결코 결론을 얻지 못했을 법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제법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아마 요리와 관련된 문제였던 탓일 테다. 조금 산뜻한 기분이 되었다. 내가 린네 군을 향해 물었다.

“괜찮아졌으면 할래여?”

린네 군이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뭘.”

“섹스.”

짧은 물음에 나도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 순간 린네 군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너 이상한 성벽 같은 거 있냐?”

“엥? 그럴 리가여.”

내가 해맑게 대답하자 린네 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한 탓에 자극당한 목이 긁히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런 건 이상한 성벽 같은 게 아니다. 더러운 것을 전부 게워낸 덕분에 깨끗하게 비었을 내장에 나를 채워넣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게 이상한 일이라면 세상의 모든 내장 요리는 괴식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이 꼴을 보고 그딴…….”

욕을 하려는 것처럼 말을 이어가던 린네 군이 엄지 손가락 끝으로 입가를 훔치고는 변기에 침을 뱉었다.

“하……. 됐으니까 물이나 줘.”

“엥, 뭐……. 물이야 갖다 줄 수 있지만.”

린네 군의 말에 몸을 일으킨 나는 그의 칫솔을 집어들어 치약을 한껏 짜내고 린네 군에게 내밀었다.

“일단 양치부터 해여.”

나를 따라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린네 군이 변기 위로 기어오르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칫솔을 받아드는 손에는 아무래도 힘이 실리지 않는 듯 했다. 내가 물었다.

“맛있었어여?”

칫솔을 입에 넣으려던 린네 군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질투하냐? 너 빼고 맛있는 거 먹었을까봐?”

“뭐어. 그런 것도 있고…….”

그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이렇게 토해버리는 건 아무리 상태가 괴상한 요리라도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라면 전부 삼키고 소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린네 군의 뱃속에는 그런 걸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린네 군의 배를 채우는 모든 것이 내 것이길 바랄 만큼 욕심이 많은 건 아니다. 아니었는데.

“니키가 해주는 피자가 먹고 싶었어.”

린네 군이 툭 던지듯 말하는 순간엔 이상한 충족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고민을 가장해 그 기묘한 충족감을 한껏 만끽한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목을 울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들뜬 목소리가 나왔다.

“나 참! 어쩔 수 없네영! 오챠즈케라도 해줄까여?”

“……엉.”

칫솔을 문 린네 군이 어눌한 발음으로 대꾸했다.

“그리구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여. 린네 군 아이돌이잖아여. 위액 때문에 목 다 상하겠어여.”

의미 없는 잔소리였다. 린네 군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양치에 집중했다. 뭐, 집중했다기엔 손짓에 맥이 없긴 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칫솔의 머리가 그의 입안을 파고들 때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위로 하얀 거품만 스미듯 밀려나왔다. 나는 희미하게 웃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먼저 녹차를 우릴 물을 끓일 것이다. 물이 끓는 동안에 쌀밥을 뭉치고 우메보시를 올리기만 하면 끝이다. 우메보시는 드물게 나로하여금 냉장고의 용도를 제대로 활용하게 해주는 음식이었다. 린네 군은 장어나 명란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지금 상태에는 아마 우메보시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종류는 조금 비리기도 하고. 녹차의 온기는 상한 목을 달래주고 역류한 위액을 씻어낼 것이다. 풀어진 쌀알은 곱게 다져져 모든 것을 긁어내 깨끗해진 위장을 채울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모든 것은 아마기 린네를 재구성하는 행위다. 그의 내장을 채웠던 더러운 것들을 모두 긁어내고 부드럽고 맛있는 것들을 새로이 밀어넣어 린네 군을 채우는 것이다. 요리사로서,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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