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일등 신랑감 아마기 린네

“린네 씨, 결혼한다더만.”

코하쿠 쨩, 간만에 찾아왔다 했더니 냅다 그 이야기부터 꺼낸다. 별로 관심이 있는 화제는 아니었기에 나는 도마 위의 야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볍게 대꾸했다.

“넹넹, 저두 들었어여~”

린네 군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린네 군이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린네 군과 나 사이에 비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린네 군과 결혼하게 될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른다. 아마 평생 모르는 채로 살아가게 되겠지. 나는 나와 상관 없는 일에 열량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성의없는 대답을 끝으로 묵직한 칼날이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만 가게 안을 울렸다. 코하쿠 쨩에게서는 한참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게 돌려줄 말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섬세한 인간은 이런 점이 어렵다. 린네 군 때문에 그나마 익숙해지긴 했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과장되게 내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변변찮은 쓰레기 인간이 결혼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여.”

그러고는 코하쿠 쨩을 향해 몸을 돌리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코하쿠 쨩과 시선이 마주쳤다. 코하쿠 쨩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니키 씨는 괜찮나?”

“엥?”

코하쿠 쨩의 물음에 나는 삐뚜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떻게 말해야 대답이 될까. 조금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린네 군은 결혼적령기?지만 저는 아직 린네 군에 비하면 어린 편이잖아여? 아직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어여.”

“그게 아니라…….”

내 말에 반박하려던 코하쿠 쨩이 조금 망설이다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코하쿠 쨩?”

“그래, 니키 씨는 언제까지 쨩을 붙여서 내 이름을 부를 건가.”

눈치 없는 척을 하기는 했지만 코하쿠 쨩과는 꽤 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코하쿠 쨩도 나도 서로를 잘 알았다. 코하쿠 쨩은 내가 이 화제로 이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고 나 역시 코하쿠 쨩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다.

아마 코하쿠 쨩은, 내가 린네 군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설마 내가 린네 군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나를 위로하러 와 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귀엽다. 귀엽기야 하지만, 코하쿠 쨩으로 하여금 이런 쓸 데 없는 일에 마음을 쓰게 만든 건 린네 군 탓이 크다. 린네 군, 나한테도 결혼이니 뭐니 끊임없이 지껄여댔으니 말이다. 코하쿠 쨩도 결국은 린네 군한테 세뇌당한 거다. 린네 군과 나는 절대로 그런 사이가 아닌데.

“엥~ 좀 더 일찍 오지 그랬어여. 그랬으면 코하쿠 쨩 만났을 텐데!”

코하쿠 쨩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린네 군이 들렀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린네 군은 의뭉스럽게 웃고는 바에 앉았다. 아무튼 뻔뻔한 인간이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니키큥의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온 거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고 가게의 문에 걸린 팻말을 돌려 걸었다. 오늘 장사는 여기서 끝이다. 어쩐지 짜증이 나서, 린네 군에게 싫은 기색을 있는대로 내고는 요리를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내 식사를 준비하면서 양을 조금 더 늘리는 정도야 내게는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다.

린네 군은 말이 없었다. 그는 그저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기에 돌아보는 모든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다. 그것도 익숙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를 구경하는 린네 군의 모습 말이다. 린네 군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요리하고 있는 걸 봐도 별로 재미를 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린네 군은 쓸데없이 참견하고 간섭하며 다가섰다. 그게 어떻게든 나와 맞닿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건 알았다. 이 다정한 남자는 어쨌든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돌 활동이 궤도에 오르고 아파트를 나와 기숙사에 머물면서 우리가 같은 주방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차츰 줄어들었다. 아마 앞으로는 지금보다도 더더욱 줄어들겠지. 린네 군도 결혼하고 나면 나 같은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어질 것이다.

린네 군은 좋은 신랑감이다. 그의 다정한 성품과 무거운 책임감은 아마기 린네를 완벽한 가장으로 만들 것이다. 린네 군은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가족에게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줄 아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코하쿠 쨩에게 말한 대로다. 린네 군과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 우리는 그런 사이조차 될 수 없었다.

내게도 사무치도록 외롭고 쓸쓸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한 멍청이였다. 린네 군을 만나기 전까지 내내 그렇게 살았다. 그런 내게 린네 군은 유일한 존재였다. 내가 배려를 받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사람 대 사람으로 성립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전부 내 착각이었지만.

애초에 그렇게 성립될 수 있는 관계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마주한 존재가 인간인 한,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관계를 성립할 방법 따위는 없다. 베풀기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던 거다. 내가 린네 군을 배려해주고 돌봐주고 받아줬던 것처럼 린네 군도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고 받아줬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내어줬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멍청했던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린네 군은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니 말이다. 내가 한심할 정도로 올곧게 외롭고 쓸쓸했기에, 린네 군도 오랜 시간에 걸쳐 내게 머무른 것이다.

린네 군의 다정함은 마치 물 같다. 가장 무거워서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만 흐른다. 그토록 불이 어울리는 남자면서도 그랬다. 그러니 아마 린네 군이 결혼하려 하는 그 사람도 아주아주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린네 군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의.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린네 군은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 내 곁에 머무르며 나를 책임지기 위해 결혼까지 생각했던 것도 무척이나 다정하고 오만한, 시혜에 불과했다. 린네 군의 동기라고는 그저 내게 기댈 곳을 만들어주려는 책임감 뿐이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린네 군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린네 군의 해묵은 다정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줬다. 나의 세계는 넓어졌고 내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섰다. 분명히 린네 군도 그랬을 터였다. 그건 나의 세계인 동시에 린네 군의 세계였으니 말이다.

나의 아파트는 마치 어항 같았다. 나와 린네 군 둘 뿐이었던, 산소도 제대로 돌지 못하던 좁은 어항 말이다. 나는 린네 군이 나와 함께 있어주기만 한다면 어항 속의 삶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린네 군은 나를 밖으로 이끌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린네 군의 의지라면…… 나는 사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밖으로 나가도 린네 군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항은 엎어졌고 우리는 변기 물과 함께 내려졌다. 그대로 변기 아래로 이어진 좁고 지저분한 하수도를 지나고 또 지나고 한참을 지나서 바다로 나왔다. 우리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넓어졌고 린네 군은…… 놀라울 정도로 여전하다. 넓은 세상을 마주한다고 해서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린네 군은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자였다. 린네 군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는 사실 그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온 그의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불행한 인간이었다. 아주 불행하게도 말이다. 아마기 린네는 언제나 그랬다. 시이나 니키처럼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모르는 척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린네 군과 결혼할 그 사람도 나를 닮았을까. 기어코 그런 것이나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나를 느끼는 것처럼 린네 군 역시 그에게서 나를 느껴줄까. 내게 결혼하자고 말했던 그 순간의 책임감을 돌이키며, 나를 떠올려줄까.

아니다. 역시 린네 군은, 그에게서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린네 군이 불행한 사람들을 보며 그 시절의 외롭고 멍청한 나를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리고 아마 린네 군만큼 똑똑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만큼 멍청하지도 않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충분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렇잖아여. 린네 군은 더 이상 제가 외롭고 멍청한 꼬맹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절 떠나려는 거잖아여. 그러니까……. 그러니까, 린네 군이 계속 나를 강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믿음직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그래서 린네 군이 가장 힘든 순간에는 나를 찾아와주면 좋겠다. 그래서 린네 군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으면 좋겠다.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여. 뭘 해줄 순 없겠지만, 들어줄 수는 있을 거예여.”

나는 린네 군 앞에 소세지와 감자튀김 따위를 가득 담은 플래터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린네 군의 시선은 플래터가 아니라 나를 향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린네 군은 옛날의 린네 군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린네 군은 언제나 나보다 어른이었다.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영리한 남자다. 아마 나 따위가 곁에 없었어도 린네 군은 괜찮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쩐지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건 린네 군이 내게만 허락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외롭고 멍청한 꼬맹이였던 것처럼 린네 군도 여리고 섬세한 소년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는 날카로운 눈매에서 그 소년을 본다. 동그랗게 떴던 눈을 가느다랗게 만든 린네 군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캬학! 니키큥 다 컸네!”

“지금까지도 계속 그랬잖아여. 린네 군, 힘든 일 있을 때마다 나한테 약한 소리 하고 울기도 하고.”

“에엥? 그런 적 없는데?”

“나하항, 뭐, 없는 걸로 쳐여.”

내가 대충 대꾸하자 린네 군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화제를 돌릴 셈이겠지 싶었다. 하여튼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걸로 끝이야? 그럼 안 되지~! 맥주 내놓으라고, 니키큥!”

“하~ 알았으니까 쫌 기다려보라구여.”

그렇게 말하고 디스펜서로부터 맥주를 뽑아내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린네 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키.”

“넹?”

고개를 돌려 린네 군의 얼굴을 확인했다. 린네 군은 가지런히 놓인 포크는 건들지도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데. 처음부터 먹을 생각으로 온 게 아닌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여유를 부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쓸데없이 다정하게 미소짓는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옛날 옛적에 그를 마주하고 앉았던 꼬맹이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얼굴 말이다. 하얀 거품이 예쁘게 올라온 맥주잔을 린네 군 앞에 내려놓으려니 린네 군이 얼굴을 쓱 들이밀며 속삭였다.

“니키는 나한테 해줄 말 없어?”

바짝 가까워진 얼굴에 나는 이유도 없이 린네 군이 내게 키스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은 역시 내가 했어야 했나? 우리는 그저 그 지근거리에서 가만히 서로를 마주보았다. 나도 이제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한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답게 생각한다. 나는 어색하게 몸을 일으켰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게 행동한다. 나는 찬찬히 린네 군의 시선을 읽었다. 린네 군이 내게 바라는 건 무엇일까. 그것만은 아직 잘 모르겠다.

“빨리~ 나 결혼한다잖아.”

그런데도 린네 군은 그렇게 말한다. 린네 군이 무얼 원하는 건지 알고 싶다. 만약 린네 군이 날 필요로 했다면. 만약 그가 나를 사랑했다면. 만약 그가 나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했다면……. 결혼까지는 무리겠지만 영원을 약속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린네 군은 한 번도 그런 걸 원한 적이 없다. 아니, 사실은 모른다.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원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는 거다.

만약 린네 군이 나를 사랑했다면. 그런 가정에는 의미가 없다. 애초에 린네 군은 사랑 같은 걸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옳고 그름으로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린네 군은, 당신은…… 그런 선택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 린네 군의 삶은 그가 기어코 불행한 이들에게 시선을 향한 순간에 이미 그 방향이 결정됐다. 아마기 린네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린네 군은 분명 좋은 남편이 될 거예여.”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린네 군이 좋은 남편이 되었으면 한다. 린네 군이라면 분명 잘 해낼 것이다. 그는 이상적인 남편을 잘 연기할 것이다. 약한 모습 따윈 절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린네 군이 이상적인 남편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면 그 집에 당신이 기댈 곳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가족이 잠들고 나서야 잠들 것이고 가족이 깨어나기 전에 먼저 눈을 뜰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약하고 부끄럽고 한심한 모습들은 나만의 것이 된다.

언제든 찾아오라는 건 진심이다. 나는 누군가의 가장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당신이 초췌한 얼굴을 하고 피로한 걸음으로 이 가게를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당신이 일구어낸 화목한 가정에서 홀로 외롭고 쓸쓸할 당신이 내일도 고독한 삶을 연명할 수 있도록 따뜻하고 다정한 식사를 대접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삶의 형태다.

그러니 부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최선을 다해 꾸려나가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단 하나의 바람을 담아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러면 린네 군은 상쾌할 정도로 밝은 얼굴을 하고 내게 대꾸했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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