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완벽한 인어 요리

“꼭 인어공주 같네여.”

“에엥~? 린네 군, 공주님처럼 귀여운 이미지?”

“우웩! 그런 게 아니라여~!”

내 반응에 린네 군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읽어봐야 요리의 레시피 정도라는 거다. 제대로 책을 읽은 것도 중학교 때가 마지막이니 무슨 비유를 하려 해도 범위가 좁은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부루퉁하게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린네 군은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로 발을 디디기 위해 제가 지금껏 살아온 세계를 버렸다. 그저, 사랑하는 대상에 닿고 싶어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목소리와 지느러미를 내어주고 얻은 익숙하지 않은 다리를 끌고 뭍으로 나온 그녀처럼. 부족한 상식과 익숙하지 않은 체계에서 린네 군은 노력했고, 기반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노력이 으레 그러듯 보상받지 못했다.

“그치만 나라면 말이지.”

린네 군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스스로를 인정했다. 사랑받기를 포기한 뒤엔 금방이라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소원을 이루지 못한 린네 군에게도 사랑하는 것을 무너트릴 수 있는 단검이 주어졌다. 그런 용도는 아니었겠지만 린네 군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느니, 그 전에…….”

린네 군은 말을 잇지 않은 채 제 턱을 매만졌다. 제 진심을 말해도 괜찮을지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이제와서 체면을 따지려 하는 것도 우스워서 핀잔을 주려던 찰나에 린네 군이 겨우 입을 열었다.

“잡아먹히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야.”

툭 내뱉듯 말한 린네 군이 싱겁게 웃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주제에 막상 입을 연 뒤에는 이렇게 별 일 아닌 척을 한다. 아마기 린네는 부소장이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위해 빌딩된 캐릭터다. 아마기 린네의 과거는 좋은 가십이다. 오늘의 아마기 린네가 존재하는 데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덕분에 모두들, 아마기 린네의 본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기 린네는 실제 이런 인간이다. 아마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것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 따위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기억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훼손은 가장 강력한 암기법이다. 깊이 새겨넣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하는 것을 망치고 무너트릴 수 있을 만큼 모질지는 못했다. 그래서 가장 자기희생적인 방법을 택한 거겠지. 사랑하는 존재의 양분이 되어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망가트리지 않는 한에서 온전히 기억되기 위해서.

속이 답답하다. 이 사람은 어쩌다 그런 존재를 사랑하게 된 걸까. 그리고 나는 어쩌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걸까. 만약 린네 군이 원하는 걸 내가 줄 수 있었다면……. 린네 군은 그런 사랑을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까? 그저 함께 식사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며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아쉽네여.”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린네 군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굳이 따진다면 왕자님의 결혼식에 쓸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역할일 테니까.”

린네 군은 내가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하찮은 걸 원할 사람이 아니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무얼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고작 그 정도의 인간이다. 요리사가 아무리 대단해져봐야 왕실 요리사다. 이 이야기에 나의 역할은 없다. 린네 군을 구해주는 건 내 역할이 아니고 린네 군도 내게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인어 린네 군이 잡아먹혀도 전 비늘 다듬느라 맛도 못 보고 끝날 거예여.”

내 말에 린네 군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금 낮아진 시선이 올려다보듯 나를 향한다. 잠자코 나를 탐색하던 린네 군이 가만히 물었다.

“왜? 먹고 싶어?”

몇 번이나 들어온 제안이다. 매번 아무렇지 않게 쳐냈었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그런데도 이 순간 내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이유는,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린네 군은 언제고 내가 그를 원한다면 마치 내게 제 몸을 내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묻곤 했다. 그렇게 내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간단히 내어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공복은 배를 채운 뒤에도 금세 돌아온다. 다시 주리게 될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자라지 않을 린네 군의 팔이나 다리를 집어삼키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나를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알았다. 아마기 린네는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실패를 예감해버린 걸까? 모든 걸 포기해버린 걸까? 물거품이 되어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지는 것보다는 아마기 린네를 원하는 인간의 몸에 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묘한 감상 역시 든다. 이를테면, 린네 군이 원하는 대로…….

문득 린네 군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쩐지 린네 군의 표정이 어쩐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를 구성하는 외곽이 곧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처럼 뿌옇게 보인다. 린네 군을 둘러싼 중력은 더 이상 그를 린네 군의 형태로 잡아두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비틀린 것처럼 삐죽하게 웃고 있는 입가만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 삼켜버리지 않으면, 린네 군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캬하학! 남에게 뺏긴다고 생각하니 이제와서 아쉬워진 거냐? 정신 차리라고, 니키큥~!”

린네 군이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우갹!”

그제야 정신이 든다. 린네 군이 평소처럼 웃으며 내 눈 앞에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과일맛 사탕이 놓여있다. 그걸 받아 입에 밀어넣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새콤한 향기에 온 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눈 앞이 흐리멍텅했던 것 역시 끼니를 챙기지 못해 체력이 다한 탓이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린네 군이 몸을 일으키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식사 준비할 거지? 그럼 난 술 사러 다녀온다!”

나는 사탕을 밀어넣어 볼록해진 뺨을 괴고는 현관으로 향하는 린네 군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뺏긴다는 말 따위를 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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