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장마철 식중독 예방법

묘하게 눅눅해진 것 같은 책장을 만지작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한창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오는 계절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고향의 산줄기는 본래도 날씨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는 지형이었지만 비는 특히 그 영향이 컸다. 이렇게 한참 비가 오고 난 뒤에는 강물이 불어나고 바위가 미끄러워진다. 빗살에 견디지 못한 나뭇잎이 차오른 물웅덩이를 덮는다. 그렇게 산은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이 된다.

도시 역시 비가 오면 위험해지지만, 산에 비하면 안전하다. 폭우에서도 충분히 보일 만큼의 빛을 뿜어내는 신호등이 있고, 위험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니키는 걱정이 된다. 충분히 하교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비가 오는 탓인지 귀가가 늦다.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타이밍 좋게 열쇠구멍을 긁는 쇳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굳이 책을 다시 펴지는 않았다. 나는 책을 내려두고 몸을 일으켰다. 현관문이 열렸다. 니키가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들어왔다.

“어서 와.”

“다녀왔어영! 휴, 비가 꽤 오네여!”

바지 밑단이 엉망으로 젖어있다. 역시 섬세한 구석이 없다. 음식에는 그렇게나 꼼꼼하면서. 나는 희미하게 웃고 그의 가방을 빼앗듯 받아들었다. 축축했다. 대충 우산을 정리해 현관 구석에 세워둔 니키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튀긴 음식이 먹고 싶네여!”

그 말에는 자연스럽게 고개가 기울었다. 내가 되물었다.

“비가 오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오히려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이 빗소리!”

니키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빗소리를 들으라는 것 같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눅눅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시원한 소음이었다. 니키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인다.

“꼭 기름튀는 소리 같지 않아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애초에 고향에서는 맛본 적 없는 형태의 음식이었으니 그런 연상 자체가 불가능했던 거다. 도시에 와서 니키를 만나 다양한 음식을 알았다. 단순히 도시여서가 아니라 니키를 만났기 때문에 맛볼 수 있었던 음식들이다.

“……오, 듣고 보니.”

내가 동조하자 니키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묘하게 들떠있다. 학교가 끝나고 오는 내내 기름이 끓는 냄비를 상상했을까. 빗소리에 튀김요리를 연상하며 들뜬 걸음으로 하굣길을 걸어오는 니키를 생각하면 조금 재미있다.

“고럼 오늘은 튀김을 먹을까여? 린네 군, 먹고 싶은 거 있나여~?”

“깻잎?”

“깻잎! 좋죠! 그치만 깻잎으로는 배가 안 차니까 아예 텐동을 만들어야겠어영~”

그렇게 말하고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주방으로 향한다. 아마 내가 어떤 튀김을 이야기하든 텐동을 만들 셈이었겠지 싶었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 밑단을 신경쓰는 기색은 없다. 굳이 바짓단을 걷어올리지 않아도 바닥을 더럽힐 것 같지는 않았다. 니키도 제법 키가 큰 것이다.

아무튼 니키답게 식사가 더 급한 것이겠지 싶었다. 젖은 밑단 정도야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오히려 식사가 늦어지는 쪽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비오는 날은 쉽게 체력을 소모하니 말이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니키를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며 내가 목을 울렸다.

“니키는.”

“우잉?”

니키가 흘끔 나를 확인했다. 나는 다음을 재촉받은 것처럼 말을 이었다.

“어쩐지 장마를 싫어할 것 같았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나를 바라보는 눈이 크게 깜박였다.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 녀석과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죽음의 위협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온 인간들만이 느낄 수 있을 음습한 동질감을? 니키의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니키는 잠시 눈을 굴렸다. 아마 호오의 개념이 없었던 모양이지 싶었다. 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웅, 뭐어…….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죠?”

그건 딱히 결론을 낸 게 아니라 생각을 그만둔 것 같은 말이었다.

“음식도 금방 상하잖아.”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뻔한 의도였다. 손을 씻고 앞치마를 걸친 니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그거야 상하기 전에 전부 먹어치우면 그만이니까여.”

“하하, 니키답네.”

하지만 니키의 말에는 어쩐지 포기하게 되어버린다.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모든 걸 깊이 생각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넘기려던 찰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비가 제대로 와주지 않으면 그 뒤에는 흉년이니까여.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장마를 견디는 거예여.”

그새 냉장고에서 재료를 한품 가득 꺼낸 니키가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 있던 재료를 그대로 내게 넘겼다. 내가 받아들면 니키의 짧은 팔로 드는 것에 비해 훨씬 여유가 생긴다. 나는 조리대에 재료를 차곡차곡 올려두었고 니키는 찬장에서 기름과 튀김가루를 꺼냈다.

“린네 군, 불 쓸 거니까 떨어지세여~!”

언제나 그 소리다. 하지만 내가 니키의 말을 잘 들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니키도 내가 근처를 얼쩡대면 얼쩡대는대로 내버려둔다. 니키는 불을 켜고 팬을 달구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니키는 쉴 틈 없이 재료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

“저야 머, 올해 가을이 오기 전에 배고파서 죽을 수도 있지만…….”

밝은 목소리지만 그의 무심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니키는 무심하게 죽음을 말한다. 죽음만큼 삶의 곁에 두고 싶지 않을만한 것을 가장 가까이에 둘 수밖에 없는 체질이었다.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니키가 뜨거워진 기름에 튀김가루를 입힌 깻잎 몇 장을 집어넣었다. 공기방울이 끓는 소리를 내며 깻잎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지금은 튀김을 먹는 거죠. 조금 눅눅하더라도.”

기름 끓는 소리가 창 밖의 빗소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기름 끓는 냄새가 기분 좋다. 그 냄새를 즐기듯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니키가 기름에서 튀김을 건져내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두 아마 바로 먹으면 맛있을 거예여~!”

“니키가 만든 건 뭐든 맛있어.”

내가 곧바로 대꾸하자 니키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후흥, 또 좋은 신붓감이니 뭐니 하려는거죠? 안 넘어갈 거지만 뭐어, 기분은 좋네영.”

니키는 여전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손에 쥐인 젓가락 끝에는 갓 튀겨져 나온 튀김이 있었다. 고개를 기울인 니키가 물었다.

“먹어볼래여? 방금 튀긴 깻잎.”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니키의 제안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얇게 입힌 튀김옷이 가볍게 바스라진다. 기름에 익힌 뒤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특유의 풀내음이 좋다.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시야에 들었다. 이제는 나도, 빗소리를 들을 때면 니키가 만들어준 튀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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