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는 레몬 맛
곯아떨어진 린네 군을 업고 돌아오는 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린네 군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는 연락을 받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별수 없었다. 내 어깻죽지에 머리를 처박은 남자가 알콜 섞인 숨을 뱉어낼 때마다 씁쓸한 위액의 냄새가 난다. 한 차례 게워낸 뒤에도 계속 마셨던 걸까. 술도 못 마시는 게 아닌 인간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될 때까지 마셨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내쉰 나는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린네 군을 현관 안쪽에 던져두었다. 신발을 벗길 셈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린네 군이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목덜미로부터 덮쳐오는 무게감은 곧 린네 군을 향하는 인력이 된다.
“우, 우왓!”
당연히 저항했다. 그리고 내 저항은 린네 군 앞에서 언제든 무의미했다. 나는 그대로, 린네 군 위로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입술이 맞닿았다.
찰나였다. 잠깐의 접촉을 끝으로 가냘픈 온기가 떨어져 나갔다. 목덜미를 붙들었던 손아귀도 헐겁게 맨 매듭처럼 부드럽게 풀린다. 더 이상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로 굳은 채 바닥에 널부러진 린네 군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그의 얼굴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눈 앞이 어지러웠고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감촉만이 선명하게 입술에 남아있다. 가장 얇고 연약한 피부가 기억하는 것은 미적지근하고 부드러운 형태의 압력이다. 그 흔적을 더듬듯 입술 위를 혀로 훑었다. 그러면 린네 군에게 옮은 것이 분명한 씁쓸하고 역한 냄새가 혀 끝에 감돈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뭐라고 한 소리라도 할 셈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아서, 너무 많아서 한 번에 내뱉으려니 오히려 나오지 못하고 목을 틀어막아 버려서……. 체해버린 것마냥 숨이 막혔다. 그래서일까. 눈 앞이 어지럽다. 이 감각을 잘 알고 있다. 이건, 공복에 가까운 감각이다. 그렇게 깨닫고 난 순간에는 어쩐지 참을 수 없어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뺨을 더듬어 쥐고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어 뒷머리를 지탱한다.
그의 머리를 끌어안는 듯한 동작에 훌쩍 가까워진 눈동자가 설풋 떨린다. 아마 린네 군도,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눈치 챈 것일 테다. 입술이 맞닿았다. 얕게 토해낸 숨결이 불쾌하다. 그럼에도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오히려? 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언제나 그러듯이 결국은 욕망에 순응하기로 한다.
아랫입술을 입술로 물고 당기듯 벌려도 저항은 없다. 이번에는 입술만 맞닿는 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린네 군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린다. 기다란 속눈썹의 흔들림이 그의 긴장을 증명한다. 가느다랗게 뜬 눈이 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그의 시선이 속눈썹의 그림자에 잠긴 채 비밀스럽게 나를 향해있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된다. 시선이 맞닿은 순간 린네 군이 나직하게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너무 보지 마.”
린네 군의 핀잔에 나도 비로소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린네 군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이렇게 되도록 상황을 이끈 건 린네 군 쪽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한 걸까. 내가 이런 행동을 하도록 나를 부추긴 걸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그만 둘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는다. 도리어 반발처럼 속행한다.
입술은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자리잡는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위였음에도 입술을 포개는 건 자연스러웠다. 입을 쓰는 방법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입은 먹기 위한 것이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먹어버리려는 것처럼……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 린네 군은 내게 먹히는 것을 걱정하기라도 하는 양 어깨를 움찔 떤다. 린네 군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로운 반응이 나를 더욱 촉진한다.
꿈은 아닐까. 린네 군을 만난 뒤로 밤이면 으레 꾸었던 어떤 꿈이 질척한 욕망을 타고 끈적하게 이어져 지금에 이르러버린 것만 같다. 부드러운 입술과 달착지근하게 달아오른 숨결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연약하고 따뜻한 입 안의 살갗을 꿈꿨다. 까슬한 혀 끝은 붉고 무른 과일을 닮았다.
물론 현실의 린네 군은 음식도 아니고 그리 맛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부드럽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다. 게다가 술을 그렇게나 마셔대니 한 입 베어물었다간 술에 잔뜩 절여진 과일마냥 농축된 술이 배어나올 것만 같다.
그렇게, 몇 번이고 환상을 부정한 뒤에도 나의 무의식은 기어코 린네 군을 가장 맛있는 존재에 빗댔다. 그래서였다. 린네 군을 보면 입 안에 침이 고였고 눈 앞이 어지러웠다. 그 감각의 이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공복이었다. 식욕은 내게 있어 가장 강렬한 욕망이다. 나는, 분명하게 린네 군을 원하고 있었다.
“응…….“
입술을 벌리고 입 안을 집요하게 비집는 행위였다. 혀가 닿으면 삼켜버릴 것처럼 빨아올렸다. 문득, 숨이 가빴는지 흠칫 내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이내 사냥감을 눈 앞에 둔 짐승처럼 추격한다. 린네 군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력하게, 나에게 붙들린다. 이어지는 것은 게걸스럽다는 말 외엔 어떻게도 형용할 수 없는 입맞춤이다.
“흐, 웁…….”
린네 군이 앓는 듯이 신음했지만 그것도 내가 전부 삼켜버렸다. 연약하고 축축한 살갗은 내장의 질감에 가깝다. 내장이 으레 그러듯이 입이란 것도 결국 취약한 동시에 지저분하다. 게다가 입이라는 건 이물질을 받아들이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음식의 찌꺼기와 습하고 따뜻한 환경은 이 이상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배양 조건이다.
결국 입을 맞춘다는 것은 숨을 교환하고 침을 교환하고…… 균을 교환한다는 것이다. 가장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감수하는 행위다. 우리는 스스로의 약점을 내어주고 서로의 약점을 범한다. 그것만이 내가 알고 있는 입맞춤의 공식이다.
그렇게, 좋을 것도 없는 행위를 한참 이어갔다. 더럽고 위험하고,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 행위였는데도 어쩐지 멈출 수가 없었다. 반면 멈출 이유는 충분했다. 텁텁하고 시큼한 위액의 냄새가 혀를 적시고 이내는 목구멍까지도 침범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삼킬 수 없는 살덩이와 식욕마저 억눌러버리는 역겨운 냄새만이 입 안에 감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냄새만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실감을 부여한다. 나와 입술을 맞대고 혀를 얽는 건 상상 속의 린네 군이 아니라 현실의 린네 군이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아니다. 오히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혀를 얽었다. 내가 원한 것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상상 속의 린네 군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원해왔던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린네 군이었다. 아무리 한심하고 지저분하더라도. 전혀 달콤하고 부드럽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눈 앞의 린네 군을 실제라고 증명할 근거가 된다면.
충족감은 더욱 강렬한 자극이 되어 나를 촉진시킨다. 나는 린네 군의 입 안으로 머리까지 밀어넣을 기세로 그의 안에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린네 군의 몸이 내게 반발하듯 크게 튀어올랐다.
“흣……!“
그 반응에 놀라 린네 군의 입술로부터 흠칫 입술을 떼어내면 지금 막 눈을 뜬 것 같은 린네 군의 멍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술 탓일까, 아니면 숨이 가빠서일까. 그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어 투명한 비늘처럼 반질거린다. 나는 무심코 앓는 듯 신음했다.
“아…….”
혀를 얽고 난 뒤에도 린네 군의 붉게 달아오른 입술은 벌어진 채다. 호흡이 달린 탓일까. 내게 이끌려 나온 듯 내뻗은 혀 끝이 가볍게 경련한다. 발갛고 습한 살덩이 안쪽에 어두컴컴한 동굴처럼 깊숙이 자리한 목구멍을 멍하니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혀 끝으로 입술을 축였다.
“……읏, 하아…….”
린네 군은 뭍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처럼 몇 차례 크게 헐떡인 뒤에야 겨우 몸을 추스렸다. 그러면 그제야 깊고 질척한 늪으로부터 발을 빼낸 것처럼 비로소 정신이 든다.
입 안에는 여전히 타인이 게워낸 위액의 시큼한 냄새가 감돈다. 눈 앞에는 취한 게 분명한 린네 군의 멍청한 얼굴이 보인다. 겉옷은 흐트러져 어깨가 드러났다. 도톰한 티셔츠 아래의 가슴팍은 여전히 잦게 달싹인다.
린네 군은 내게 입을 맞췄고 나는 린네 군에게 입을 맞추었다. 겉옷을 벗기는커녕 신발조차 벗지 않은 채 현관에 널부러져서는, 잠꼬대처럼 입을 맞대고 혀를 얽었다. 완전히…… 엉망진창이다.
“……니키.”
린네 군이 나를 불렀다. 그는 몸을 뒤척이며 내 목덜미 뒤로 감은 팔에 애써 힘을 주었다. 하지만, 린네 군의 팔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내게 매달리듯이 안겼을 뿐이다. 린네 군이 다시 목을 울렸다.
“키스, 그만 두지 마…….“
귓가에 린네 군의 호흡이 닿는다. 알콜과 위액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짙다. 그럼에도 귓불은 그 숨결에 녹아내리기도 하는 양 축축하고 뜨겁다. 린네 군이 안달하듯 속삭였다.
“……더 하고 싶어.”
나도 그랬다. 린네 군에게 입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린네 군의 입술을 보면서 몇 번이나,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입을 맞추지 않은 건, 린네 군이 그걸 원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왔던 탓이다. 린네 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왔다. 결혼하기 전에는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결혼을 약속하지 않을 거라면 넘봐서는 안 되는 거라고. 린네 군에게 있어서 키스는, 그렇게 소중한 거라고. 그러니까 린네 군과 결혼해줄 수 없는 나는…… 언젠가 린네 군이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내 진심을 믿고 허락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린네 군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니까 나도 애써 참아 왔다. 나도 이왕이면 좀 더 소중하고 정중하게 다루고 싶었다. 아주 멋지고 대단한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어쩌면 린네 군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술김에 키스해버릴 생각은 없었다.
린네 군이라고 그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나보다 더 심했다면 심할 것이다. 그 아마기 린네다. 자존심 강하고 강한 척에 멋진 척, 고작 두 해 더 살았다고 어른인 척, 누굴 이끌어주는 척은 다 하는 인간이란 말이다.
그런 인간이 술을 마시고 현관에 드러누워 키스를 갈구한다. 어쩌면 린네 군도 원해왔던 걸까. 그럼에도 차마 솔직해질 수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나를 불러냈던 걸까. 그렇다면 린네 군도 이렇게까지 마실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술은, 부끄러움을 잊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그러고도 차마 나를 불러낼 각오가 서지 않아 한 번 더 잔을 기울여야 했을까.
“빨리, 니키…….”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목소리에 문득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날카롭고 예민한 얼굴이 흐리멍텅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다. 기다란 눈매에는 눈물이 고인 채 순하게 풀어져있고 늘 힘이 들어가있던 입술은 호흡만으로도 달려 벌어진 채다. 상처처럼 발그스름한 눈가가 아무는 것처럼 감긴다.
술에 취해 수마가 몰려온 것일지도 몰랐고 온갖 것을 게워내느라 지쳐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내 선택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르고. 발그스름한 뺨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짙은 속눈썹이 희미하게 떨렸다.
“……에휴.”
린네 군의 팔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를 끌어당기는 인력 같은 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변명거리는 없다. 모든 건 내 선택이다. 패배감으로 서러워지는 밤이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숙이며 끝끝내 투덜거렸다.
“이런 식으로 첫 키스를 해버리면 이제껏 참은 전 뭐가 되냔 말이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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