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레토르트 카레시

니키 생일이벤트 소재

생일 이벤트가 끝난 뒤에는 유닛 멤버들과 뒷풀이 겸 야끼니쿠를 먹었다. 야끼니쿠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타베호다이로 가자고 했더니 코하쿠 쨩이 이벤트 내내 그렇게 먹어놓고 질리지도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야, 케이크니 화과자니 달콤한 걸 잔뜩 먹었으면 짭짤한 걸 먹어서 밸런스를 맞춰야 했다. 애초에 영역이 다른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영역이 달랐던 탓일까. 화과자라면 종일 입에 달고 있을 수 있는 코하쿠 쨩은 야끼니쿠 앞에서는 금방 젓가락을 놓았다. 게다가 HiMERU 군은 애초에 식단 관리를 하는 타입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는 나와 린네 군만 번갈아가며 새로운 고기를 주문했다.

먼저 떨어져나간 건 당연히 린네 군 쪽이었다. 린네 군은 술을 마셨으면 좀 더 먹을 수 있었다며 이상한 승부욕을 보였다. 뭐, 술을 마실 때의 린네 군이 얼마나 잘 먹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린네 군은 나와 단둘이 식사할 때면 술을 곁들여 마시며 끝내 나와 함께 식사를 마치곤 했으니 말이다. 요즘은 아이돌 활동도 바빠졌으니 술을 마실 만큼의 여유가 없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린네 군은 아마도 아주 예전부터, 그런 충실한 삶을 원해왔을 테다. 그게 이뤄진 지금 굳이 술을 마시면서까지 나와 어울려 줄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배가 터지도록 먹은 것도 사실인지 린네 군은 기숙사로 가는 길에 한 바퀴 돌고 들어가겠다며 HiMERU 군과 코하쿠 쨩을 먼저 보냈다. 나도 은근슬쩍 그들 사이에 끼려고 했지만 린네 군이 내 후드를 붙잡아 멈춰세웠다. 나는 저보다 더 먹지 않았냐는 게 그의 논지였다. 연비가 나쁜 나는 린네 군과는 달리 한 바퀴 돌고 들어가면 야식까지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뭐, 남들 몰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지 싶어 어울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둘만 남은 뒤에도 린네 군의 망설임은 길게 늘어졌다. 덕분에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런 그가 겨우 입을 연 것은 산책로를 지나 기숙사로 향하는 길목에서였다.

“니키.”

“넹?”

기다림이 길었기에 대답은 빨랐다. 그러면 린네 군이 꽤 자연스럽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이미 오래 망설인 시점에서 더 이상 자연스러울 것도 없지만. 린네 군의 서투름은 모른 척 해주기로 한다. 나도 마침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많이 생각하고 되뇌이면 금방 배고파지니까, 지금까지는 최대한 곱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정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감상 뿐이다.

“재밌었어여! 요리 얘기도 많이 했구 맛있는 것도 먹었구~ 음, 또…….”

내가 신나서 떠들자 린네 군이 짓궂은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뱉는 목소리에는 나를 놀리는 기색이 역력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너 처음엔 안즈쨩한테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면서?”

그게 린네 군한테까지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사실이었기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하항! 혼자서 줄창 말하면 금방 배고파질 것 같았거든여. 시선이 전부 저한테 쏠리니까 몰래 뭘 먹을 수도 없구.”

혼자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나는,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잘은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오래 생각하지 않기 위해 직관만으로 성급하게 결정해버리니까. 배를 가득 채운 지금 천천히 생각해보면 기댈 동료들이 없어서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러나 저러나 멤버들이 없으면 안 될 것 같기는 했다.

“그러다 제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절 위해 생일 이벤트를 열어준 사람들은 물론이고 와 준 사람들에게도 실례잖아여.”

“정말 니키는 내가 없으면 안 되겠네.”

내 말에 린네 군이 얼굴을 찡그리듯 웃었다. 그런 린네 군이 어쩐지 속상해보여서, 나는 좀 더 서둘러 덧붙였다.

“지금은 그래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여.”

린네 군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에야 내가 무슨 소릴 한 건지 겨우 깨달았다. 너무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다 없던 일로 만들고 싶다. 불가능하다면 이 상황을 엎어버리고 싶다. 린네 군은 내가 달려든다고 죽일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니까 이제 내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래, 그래도 죽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지. 지금까지 살겠다고 발버둥쳐온 모든 일이 고작 물거품을 일으키겠다고 한 짓은 아니니 말이다. 나는 상황을 무마할 셈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역시 누님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겠죠? 오늘은 넘 늦었으니 내일 연락을…… 와악!”

“니키큥~ 나한테도 감사할 거 있지 않아~?”

나를 놀려먹을 생각으로 잔뜩 들뜬 린네 군이 그렇게 말하며 내 목에 제 팔을 걸어왔다. 일부러 힘을 잔뜩 실은 탓에 묵직하다. 나는 질린 얼굴을 하며 린네 군을 곁눈질했다.

“뭔 소리예여. 그 손에 잡히는 대로 담아서 준 것 같은 그거여?”

“캬학! 음식 쪽에 감사하는 건가! 뭐, 그걸로 좋아! 마음껏 감사하라고!”

그의 의도와 빗나간 대답이었겠지만 그렇게 솔직하고 친절한 니키 군이 되어줄 생각은 없었다. 굳이 린네 군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대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게 눈치 없고 멍청한 시이나 니키다운 화제였고…… 나도 마침 궁금한 게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진짜 산더미만큼 쌓여있어서 놀랐다구여. 뭐어~ 그게 제멋대로인 린네 군답긴 하지만.”

“그치만 니키는 그 정도 먹지 않으면 만족 못하잖아?”

“그렇긴 한데여. 린네 군이 마음에 들어하는 음식을 준 건 맞아여?”

묻고 싶었던 걸 간단하게 물었다. 린네 군의 대답은 생각 외로 곧바로 돌아왔다.

“맞는데?”

그것도 뺀질뺀질한 얼굴로 멀뚱하게 말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레토르트 카레를 좋아했어여? 첨 알았네. 담번에 시나몬 오면 니키 군이 3분 딱 맞춰 데운 궁극의 레토르트 카레를 맛보게 해줄게여.”

이벤트에서야 당장은 웃었지만 내심 조금 서운하기는 했다. 내가 먹여놓은 것만 가짓수가 몇 개인데 마음에 드는 음식이랍시고 레토르트 카레를 내놓는 꼴이 말이다. 내가 그렇게 빈정대놓으니 아무리 린네 군이라도 눈치는 보이는 모양이다. 내 시선을 피하고 뺨을 긁적인 린네 군이 머뭇거리며 목을 울렸다.

“아니, 뭐어~…… 생각해봐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려면 재료를 선물해서 니키큥이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그럼 오늘의 주역으로서의 가오가 안 살잖냐.”

그 말에 살짝 멍해졌다.

“우와…… 이 인간 답잖게 깜찍한 소리를 다 하네여.”

“아앙~? 린네 군은 언제나 깜찍한데요~”

“우왁!”

징그럽게 아양을 떤 린네 군이 냅다 내 목에 건 팔에 힘을 주어 내리며 헤드락을 걸었다. 훅 낮아진 시야에 몸을 버둥댔지만 린네 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머리맡에서 린네 군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근데 농담 아냐.”

그러고도 조금 머뭇거리나 싶던 린네 군이 겨우 말을 이었다.

“뭐든 니키랑 함께 먹으면 맛있었으니까.”

그러더니 팔을 풀고는 좀 더 앞서 걸어나가는 것이다. 그 순간 눈치챘다. 이 인간 아무리 봐도 대충 손에 잡히는 걸 담아서 선물이라고 했던 게 분명하다. 내 추측이 맞았던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 안 들키고 넘어가려고 필사적으로 있는 거다. 표정을 보였다간 전부 들켜버릴 것 같으니까 헤드락까지 걸어가며 얼굴을 숨겼겠지. 언제나 말빨로 어떻게든 때우는 린네 군답다.

하지만, 그게 만약 모두 변명이라고 해도…… 린네 군의 말에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함께 먹는 식사는 맛있다. 가장 값싼 식재료로 간단하게 조리해 배를 채우느라 급급했던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몰랐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별난 아이였으니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자물쇠를 푸는 방법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럼에도 린네 군은 항상 나의 맞은편에 앉아 나와 함께 마주보고 식사를 했다. 시답잖은 하루 일과를 이야기했다.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고 린네 군은 오늘 본 책에 대해 말했다. 린네 군이라고 뭘 알아서 그렇게 해준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린네 군도 나도 무언가 한두 개 결여된 인간이었으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함께 식사를 했다. 단순히 연명을 위한 활동에 연명과는 상관없는…… 아니, 분명하게 상관이 있지만 그때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끼어들었다.

그 무뚝뚝한 남자가 재미있게 본 책의 이야기를 하며 조금 들뜬 기색을 보이는 게 좋았다. 나의 별 것 없는 일상 이야기를 들으며 다정하게 시선을 맞춰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게 좋았다. 요리책을 참고하면서도 예산에 맞지 않아 전혀 다른 조미료를 넣어 어린애 손으로 만든 모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좋았다. 뭐든 가리지 않고 곧잘 먹으면서도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해서 오므라이스며 생선 요리를 내어주면 눈을 빛내며 기뻐하는 게 좋았다.

린네 군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효율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참아낼 수 있었다. 즐거웠으니까. 그래,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처음으로 내게 알려줬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린네 군이었다. 나는 먼저 걸어나가기 시작한 린네 군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린네 군.”

내 침묵으로 묘하게 어색해진 공기 탓일까. 린네 군이 내가 그의 손목을 붙들자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평소라면 이 정도로는 놀라지 않았을 것 같은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린네 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꾸했다.

“어, 엉?”

“저희 아파트 안 갈래여? 가서 린네 군이 글케 좋아하는 레토르트 카레나 같이 데워먹어여.”

그의 당황한 기색도 내가 레토르트 카레를 입에 담았을 즈음에는 사라졌다. 린네 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흐흥, 좋지!”

기숙사로 느리게 향하던 걸음은 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속도를 붙였다. 들뜬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게 그새 자연스럽게 서로 맞잡은 손에서 느껴졌기에 조금 웃어버렸다. 린네 군이 내 손을 꽉 쥐며 끌어당겼다.

“야, 니키. 편의점 들르자. 카레엔 시원한 맥주지!”

“그러든가여~ 나 참, 생일선물로 술 안 준 게 어딘가 싶네영!”

“캬하학! 궁금해도 어른 될 때까진 참아라, 꼬맹아!”

“린네 군 때문에 냄새는 질리게 맡아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거든여~”

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면서 또 이렇게 어른 행세나 한다. 일부러 싫은 티를 있는대로 내며 대꾸하고는 그의 걸음을 따라 걸었다. 빨리 집으로 가서 카레를 먹고 싶다. 여전히 배는 꺼지지 않았지만 아직 한참은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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