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간단하게 만드는 계란말이 레시피 下

린네는 몸을 뒤척여 똑바로 누웠다. 곁에 나란히 누운 니키의 존재감이 분명했다. 곁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 들숨과 날숨이 만드는 공기의 흐름, 호흡을 따라 얕게 달싹이는 이불, 그 안쪽에 자연히 서린 두 사람분의 온기가 전부.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도록 한다. 린네는 고개만 옆으로 돌려 니키를 바라보았다. 돌아누운 등은 더 이상 열네 살 어린애의 것이 아니었다. 움푹 들어간 베개와 제법 자란 어깨 위로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니키.”

망설임 끝에 이름을 불렀지만 니키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린네는 베개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만히 손 끝으로 쓸었다. 둔한 꼬맹이는 미동조차 않았다. 그 등을 조용히 바라보던 린네가 한 번 더 목을 울렸다

“니키.”

“우웅……. 머예여.”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니키는 몸을 뒤척이기만 했을 뿐 돌아눕지는 않았다. 졸음이 섞인 물음에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어 입을 다물어버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아니, 그냥 니키를 부르고 싶었다. 린네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옆으로 웅크려 그의 등에 머리를 꾹 눌렀다. 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하아.”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니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린네는 눈만 굴려 니키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다 깼더니 배고프네여. 뭐라도 먹어야겠어여.”

침대맡을 더듬어 머리끈을 집어 들고 일어난 니키는 손가락으로 대충 머리카락을 빗어 긴 머리를 한데 묶었다. 그의 자취를 따라 주방의 형광등이 켜졌다. 어두웠던 침실까지 빛이 스며들었다. 어쩐지 눈 안쪽이 시큰거려서, 린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린네 군~!”

니키의 밝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린네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리대 앞에 자리를 잡았나 싶었던 니키가 문 너머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뭐 먹고 싶은거 있어여? 간단한 거라면 만들어줄게여.”

그 말에 린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니키를 온전히 무시해버린 것도 아니었다. 느릿느릿 방을 나선 린네는 식탁에 앉았다. 등을 펴고 앉는 것만으로도 조리대에서 요리를 하는 니키의 뒷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린네는 니키가 요리를 할 때면 꼭 근처를 서성대며 지켜보곤 했다. 식자재가 음식의 형태를 갖춰나가는 과정에 흥미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니키가 저를 살펴주길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불 근처로 다가서는 탓에 뒤로 끌어내는 것은 번거로웠지만 그 정도는 니키도 참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치댈 기력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식사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니키는 그의 말을 믿어줄 셈이었다. 거짓말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어도 린네가 아무렇지 않은 행세를 한다면 그에 놀아나 줄 생각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 꼴이다. 하여튼 전부 허세뿐이다. 허세를 부릴 셈이라면 티나지 않게,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능숙하게 부려줬다면 좋았을 테다. 그러면 니키는 칼로리를 절약할 수 있고 린네 또한 그 대단하신 자존심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은가.

차한이나 따뜻한 우동이면 금방 준비할 수도 있고 공복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의 허세를 들추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식사다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포기했다는 뜻이다.

“웅, 그럼 계란말이를 해볼까여!”

고민은 금방 끝났다. 니키는 요리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하는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외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딱딱거리는 소음에 심장박동이 따라가는 듯 했다.

“……계란말이?”

“계란말이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여~“

니키는 센불 위에 올려진 사각형의 팬이 달아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계란물을 풀었다. 물을 부어 약간 묽어진 계란물에 소금과 설탕을 섞었다. 팬이 달아오르며 풍기는 냄새는 음식의 냄새조차 아닌데도 가슴께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기름을 바른 팬에 잘 섞인 계란물을 얇게 부으면 바로 끓어올랐다. 노란 빛의 계란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뽀얗게 익어가는 모습에는 저녁을 제대로 챙겨먹은 니키조차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린네는 어떨까. 그의 떨어트린 시선을 떠올린 니키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얇게 익은 계란을 몇 번 포개어 접고 다시 계란물을 채우는 것을 반복했다. 계란말이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얇고 부드러운 옷을 덧입고 점점 도톰해진다. 보기에 만족스러운 두께가 되면 도마에 옮겨 가지런히 썰었다. 단면은 병아리를 연상케 하는 고운 노란색이다. 그 잔혹한 연상에도 니키는 어김없이 군침을 삼켰다.

완성된 계란말이를 담은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내밀었다. 린네는 두 쌍의 젓가락을 든 니키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금 느리게 한 쌍을 받아들었다. 니키도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여~!”

그럴 기분은 아닌 모양이지만. 니키는 이어서 드는 상념을 떨치고 애써 눈치없는 시늉을 했다. 린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먹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음식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차려진 음식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젓가락을 꾹 쥔 채 앉아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으려는 의지 자체가 없어보이는 모습에 니키도 젓가락을 까닥대기만 했다. 젓가락을 꼭 쥔 린네의 양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니키, 나…….”

먼저 입을 연 것은 린네였다. 그야, 니키는 애초에 타인에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었고 배려심이 깊은 편도 아니었다. 아마 린네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면……. 뭐, 그랬더라도 니키는 굳이 그가 입을 열도록 강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니키는 그 정도로 관계에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관계는 깊어질수록 신경쓸 것이 많아진다. 그리고 신경쓸 것이 많아진다는 건 열량 소모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시이나 니키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무서웠어.”

그건 뒤늦은 대답이었다. 너무 늦어서, 막상 질문했던 니키는 그 대답이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는 것조차 바로 알지 못했다. 그때 니키가 물었다. 괜찮냐고, 물었었다. 아마기 린네는 괜찮지 않았다. 분명 불안했을테다. 당연히 무서웠겠지.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허세는 달착지근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계란말이를 눈 앞에 둔 다음에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의 가장자리만 한참 바라보던 린네가 느리게 심호흡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남자는 린네가 이미 제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으리라고 여겼다. 아마기 린네의 성공은 수많은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전부 아마기 린네 혼자서 멍청하게 선해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면.

“그 순간, 지금까지 내가 받은 호의들이 두려워졌고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잘 나가는 아이돌들을 의심하게 됐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습게도.”

린네는 제 뱃속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말들을 떠올렸다. 눈 딱 감고 참는 건데. 자존심 정도는 꺾어도 그만인데. 말 잘듣는 착한 아이 행세를 그만 두지 않는 건데. 영리하게 행동했어야 했던 건데.

“후회했어. 전부.”

니키는 이번에도 생각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니키에게는 린네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고 린네도 니키에게 이해를 바라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린네 군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여.”

날카로운 코끝 아래로 린네가 매끈한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뱉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아마 어느 쪽이든 아주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동시에 하고 싶지 않은 말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만약 틀린 게 내 쪽이었다면?”

마음을 다잡은 듯 린네는 겨우 목을 울렸다. 그리고 천천히 목을 올렸다. 시선이 맞닿는다. 분명 제대로 얼굴을 마주했는데도 무언가가 잘 맞지 않아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돌 업계라는 게 그런 짓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였다면?”

그건 질문의 형태를 빌렸지만 대답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린네는 니키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는 건가? 다들 그런 그림자가 있어서 더 빛날 수 있었던 걸까? 내가 사랑한 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거야? 나 역시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했던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걸지도 모르잖아?”

린네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질문의 꼬리를 물듯 따라붙는 새로운 질문에 니키는 린네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건 대화할 생각으로 꺼낸 말조차 아니었다. 마주한 시선은 확실히 어긋나있었다.

“응? 니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린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도 아마기 린네는 제가 도출해낸 답을 부정하고 타인의 답을 애원하듯 구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틀린 건 내 쪽인 거 아냐……?”

그새 목이 살짝 쉬어있었다. 니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린네를 흘겼다. 그러고도 린네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그건 성급한 니키 나름의 인내였다. 아마기 린네는 종종 그런 식으로 말하곤 했다. 니키는 린네가 어떤 틀린 행동을 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애초에 별로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아마기 린네는 아무나 붙들고 약한 소리를 할 위인은 아니었다. 아마기 린네는 오히려 말을 삼키고 속으로 삭히는 부류의 인간이다. 경박한 행세를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이 니키에게만은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이나 니키는 그의 투정을 받아줄 수밖에 없다. 제가 아마기 린네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데에서 오는 우월감 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시이나 니키는 아마기 린네가 모든 우중충한 감정을 삼키고 삭혀서 끝내 상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뿐이었다.

“그치만 린네 군, 지금까지 그런 거 안 하고도 빛나고 있었잖아여.”

니키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문 린네가 느리게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게 어쩐지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니키는 무얼 계산할 여지도 없이 손을 뻗었다.

그러면 손 끝이 겨우 닿을 거리보다 좀 더 멀리까지 젓가락이 뻗었다. 그의 창백한 뺨을 쓸어쥐거나 머리를 쓰다듬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가느다란 손가락 위에 가지런히 걸쳐진 젓가락은 침착하게 계란말이를 집었다. 덜 자란 작은 손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기다란 젓가락이었다.

큼직하게 썰어놓은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문 니키는 입을 천천히 우물거렸다. 달착지근한 물기가 혀 끝에 스민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 순간에야 제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고 비로소 역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건 비단 니키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니었다. 먹는다는 것은 그런 거다. 분노와 슬픔은 대부분 허기에서 온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시이나 니키였을 뿐이다. 허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게 만든다. 제 내면의 공백을 마주한 인간은 그 안에 갇혀 어두운 감정이나 쌓아올리게 되는 거다.

하지만 예쁜 접시 위에 소담하게 담아놓은  따뜻한 색감은 어디에도 향하지 않았던 시선을 끌어당기고 달착지근하고 온화한 냄새는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 안에 침을 돌게 한다. 사람을 더 이상 슬픔에 골몰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음식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분노도 슬픔도 별것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시이나 니키는 이런 늦은 시간에 계란을 풀고 작은 팬을 달궜던 거다.

오늘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마기 린네는 곧잘 침울해졌다. 최근에는 특히 그 횟수가 늘어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 린네의 마음을 짓눌렀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산산조각날 것 같은 마음을 꼭 그러쥔 채 겨우 버티고 있었을까.

그럼에도 시이나 니키는 그에게 손을 뻗어, 침울하게 숙인 정수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것은 아마기 린네의 선택이었다. 그건 시이나 니키가 무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먹어여. 식으면……. 뭐, 그래도 맛있기는 하겠지만 아깝잖아여.”

말은 했지만 그 정도의 재촉으로 린네가 니키의 말을 들어준 적은 없었다. 니키는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 린네의 입가로 가져갔다. 맞은편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으니 식탁을 짚고 팔을 뻗어야 겨우 먹으라는 듯이 들이밀 수 있었다. 린네는 입가 가까이 들이밀어진 계란말이를 흘끗 내려다보고는 작게 한 입 베어물었다.

타인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행위인데도 묘하게 정갈한 구석이 있다. 린네의 귓볼에 뚫린 구멍의 개수는 니키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하나가 더 늘었다. 그의 행동은 나날이 난폭해졌고 말투도 그때 이상으로 거칠어졌다. 그런 주제에 갸름한 턱을 움직여 저작하는 모습은 여전히 단정하다. 지금의 아마기 린네와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곧고 길죽한 목을 가로지르는 울대뼈가 움직이는 순간, 니키는 무심코 그를 따라 침을 삼킬 뻔했다. 흠칫 놀란 니키는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이 남은 계란말이를 냉큼 제 입에 밀어넣어 그새 잔뜩 고인 군침과 함께 우물우물 씹어넘겼다.

우스운 꼴이었다. 식사를 권한 주제에 먹는 모습을 보면서 군침을 삼키다니. 린네를 신경쓰느라 제 배를 채우는 걸 깜박한 거다. 답잖게 생각을 다 하느라 열량도 소비하는데 뭐라도 집어넣지 않으면 쓰러질 수도 있다.

“어때여?”

린네가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입가를 훔치는 것을 보며 니키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행세를 하며 물었다. 린네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니키를 마주보았다. 니키의 식사는 언제나 맛있었다. 간혹 이렇게 물어오는 것을 굳이 무시할 만큼 붙임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린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맛있어.”

이왕 먹는 거니 맛있는 걸 즐겁게 먹자는 생각으로 요리하는 니키였으니 타인의 평가에 아주 집착하는 편은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요리에 대한 칭찬이라면 언제든 기분이 좋은 법이었다. 니키는 방긋 웃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기분도 좀 나아지지 않아여?”

“그건 잘 모르겠지만……. 니키가 그렇게 말하면 어쩐지 그런 것처럼 느껴져.”

“후흥. 빨리 음식에게 감사하라구여.”

린네의 대답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 니키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했다. 린네의 감사는 예상 외로 순순히 돌아왔다.

“고마워, 니키.”

“나하항~ 이렇게 순순한 린네 군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여~”

제가 음식에게 감사하라고 말했던 걸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린네 쪽으로 접시를 밀어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실제 크게 의미가 있는 제스처는 아니었지만 의도는 확실했다.

“더 먹어여. 저,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 요리를 먹는 사람을 보는 것두 좋아하니까.”

“응.”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린네는 무릎 위에 두었던 손을 그제야 식탁 위로 올렸다.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 위에 젓가락 한 쌍이 나란히 놓였다. 긴 젓가락의 가느다란 말단이 계란말이를 조심스럽게 지탱해 들어올린 다음에야 니키도 다시 계란말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를 계속 보고 있다간 또 군침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계란말이를 느리게 먹는 동안 니키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깊은 눈은 계란말이를 향한 탓에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다. 하여튼 평소에는 폭군처럼 구는 주제에 우스울 정도로 여린 구석이 있는 남자다. 니키는 계란말이를 입에 한 가득 문 채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꿀꺽 삼키고 젓가락을 까닥여 린네의 주의를 끄는 것이다.

“저기여, 린네 군. 만약 린네 군이 그, 평범한 사람이라고 쳐요.”

아마기 린네는 스스로 빛날 줄 아는 인간이다. 니키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가정에는 살짝 애를 먹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가정할 상상력따위는 니키에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평범한 린네 군은 그런 짓을 해서라도, 계속 아이돌을 하고 싶을까여?”

잠깐 니키의 얼굴을 확인한 린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짧은 침묵은 고민의 시간이었을 테다. 린네가 얼마나 아이돌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니키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러니 그의 긴 망설임과 그러고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열망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그런 짓을 해서 아이돌이 되느니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이번에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니키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린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린네의 확답을 기다리는 것이 분명한 제스처에는 린네도 별 수 없이 대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답을 언어로 정제해 입 밖으로 내어놓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각오가 필요했다. 린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납득하지 못할 방법에 몸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양자택일을 요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남자는 린네의 성공이 린네 자신의 성과는 아니라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무일푼 촌뜨기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말끔한 얼굴과 훤칠하고 날렵한 몸뚱아리 뿐이다. 그는 린네가 가진 유일한 상품을, 영리하게 이용하라고 속삭였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을 것이다. 마치 양자택일의 질문처럼, 누군가는 도움을 받았을 것고 또 누군가는 아이돌을 그만뒀을 것이다. 아마기 린네는,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기 린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선택이 몇 번이고 중첩된 결과가 아마기 린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옳은 선택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마기 린네는 제가 납득하지 않으면 끝맺을 수 없는 귀찮은 성미를 타고났다.

린네는 니키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맞닿은 시선은 더 이상 어긋나지 않는다. 린네가 천천히, 목을 울렸다.

“그만두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아마기 린네는, 이번에도 제가 틀렸다고 온전히 납득할 때까지 해볼 셈이었다. 무너져서 더 이상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될 그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계속 해보고 싶었다.

아직은 그럴 힘이 있었다. 아니, 방금 전까지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젓가락을 쥘 힘조차 없어진 순간에 니키는 제 몫의 음식을 건네 린네를 연명하게 했다.

맛있는 음식이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꾸라진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줬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린네는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좀 더, 해보고 싶어.”

“헤에.”

힘주어 내뱉은 대답이 무색하게도 니키는 되레 관심없다는 투로 호응했다. 연기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흥미가 떨어진 것 같았다. 

“우웅~ 그럼 그냥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지 않아여?”

니키의 마무리는 단순했다. 그게 무척이나 니키다워서, 린네는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니키는 린네가 웃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그만둬버렸다간 린네 군, 이번에야말로 진짜 후회할 거라구여.”

“그것도 그렇네.”

그 말에 린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속할게.”

“그러든가여.”

니키는 대충 대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린네의 시선이 니키의 움직임에 따라붙었다. 니키는 오히려 그의 시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내일도 힘내서 계속하려면 많이 먹어야죠. 먹고 싶은 거 있어여?”

“오므라이스. 케첩으로 내일도 힘내라고 써줘.”

린네의 리퀘스트에 니키가 질린 표정을 했다.

“어린애두 아니구……. 저한테 응원받아서 기분이 나아져여?”

“응.”

“아, 그래여. 이상한 취미네.”

조리대 앞에 선 니키가 앞치마의 끈을 둘러 익숙하게 묶으며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글구 너무 얌전하게 굴면 린네 군 답지 않아서 기분 나쁘니까 그것도 그만둬여.”

“응.”

니키의 짓궂은 지적에도 반복되는 대답은 여전히 순순했다. 니키는 그게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바로 얼굴을 콱 찌푸렸다. 그 얼굴이 제법 우스워서, 린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맛있는 음식이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시이나 니키에게는 확실히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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