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도둑고양이의 생존법

“어서 와.”

열쇠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열리는 문은 니키에게도 이제 낯설지 않다. 익숙한 높이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방긋 웃어 보이며 니키가 대답했다.

“다녀왔어여~”

린네에게 니키의 장바구니가 넘겨졌다. 장바구니보다는 상자째로, 그러니까 대량으로 사 오는 것을 선호하는 니키가 웬일로 장바구니인가 싶다. 린네는 순순히 받아든 장바구니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이것저것 겹쳐진 탓에 세워서 끼워둔 대파와 망가지지 않도록 위에 올려둔 야채만 보였다.

발꿈치로 밑창을 대충 눌러가며 신발을 벗은 니키는 방으로 향하며 겉옷을 벗었다. 서두르는 것이 분명한 태도였다. 린네가 현관에 우두커니 선 채 시선으로 니키를 쫓으면 니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린네 군, 그거 식탁 위에 놔주세여! 바로 먹을 거니까!”

그 들뜬 목소리에는 린네도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마는 것이다. 식탁 앞에 선 린네는 장바구니로부터 오늘의 저녁 식사 재료들을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파에 양파, 버섯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야채를 꺼내고 나면 아래에 자리한 묵직한 무게의 정체도 알게 되는 것이다.

“아~…….”

양육이다. 그것도 등심이니 갈비니 아주 종류별로 사 왔다. 랩으로 패킹된 고기에는 바코드가 겹쳐진 채 붙어있다. 할인된 가격의 바코드일 테다. 이건 이를테면 마감 시간의 마트라는 이름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머쥔 요리인의 전리품이라는 거다.

“오늘은 징기스칸을 먹을 거예여~!”

니키는 요리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행동에는 막힘이 없다. 냉큼 손부터 씻은 니키는 찬장 구석에서 징기스칸나베와 버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시이나 니키의 요리는 언제든 본격적이지만 징기스칸나베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니키가 앞치마의 허리끈을 한 바퀴 둘러 제 손이 닿는 곳에 대충 매듭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어쩐지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라서요~”

앞치마의 어깨끈 아래에 끼인 긴 머리카락을 빼내는 손짓이 익숙하다. 대충 정비가 끝난 건지 니키가 양고기를 찾았다. 양고기는 린네의 손에 들려있었으니 그의 시선은 자연히 린네를 향했다. 니키의 시선을 눈치챈 것처럼 고개를 든 린네가 양고기를 내밀었다. 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양고기를 받아들었다. 약간 낮은 시선이 의문의 빛을 띄고 린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잉, 양고기 별루예여?”

니키의 질문에 린네가 가벼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완전 좋은데? 왜?”

“어쩐지 내키지 않는 것 같아서……. 제 착각이면 됐구여.”

니키가 제 뺨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린네를 신경 쓰는 것이 분명한 태도다. 린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니키를 흘겨보았다.

“그야 당연하지. 맥주가 없잖아. 니키는 정말 학력만 없는 게 아니라 센스도 없다니까.”

“하아?! 중졸이라 미안하게 됐네여!!”

열렬한 반응이 돌아온다. 린네는 낄낄대며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 올 테니까 맛있게 굽고 있으라고.”

제 겉옷을 걸치며 니키가 벗어놓은 점퍼를 빤히 바라보던 린네는 아무렇지 않게 점퍼의 주머니를 뒤졌다. 역시, 급하게 들어온다 했더니 지갑이 아직 남아있다. 린네는 냉큼 제 주머니로 얇은 지갑을 옮겨담았다.

“잠깐만여! 린네 군, 지금 내 지갑 꺼냈져!”

좁은 아파트에는 사각도 없다. 바로 들켜버린 절도에도 린네는 아랑곳하기는커녕 뻔뻔하게 지갑을 꺼내 흔들었다.

“캬하핫! 걱정말라구. 니키큥 몫도 확실하게 사 올 테니까!”

“저는 아직 술 못 먹거든여!”

“으응, 그랬지. 그럼 우롱차로~”

“그거라면 오케……가 아니라 결국 내 지갑으로 사는 거자나여~!”

린네는 니키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현관을 나섰다. 니키도 아주 뜯어말릴 요량은 아니었는지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요리에 몰두한다. 달궈진 나베의 표면에 양의 비계가 닿았다. 기름덩어리가 타들어가며 내는 소음은 상쾌할 정도다.

린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문을 닫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난방설비가 좋지 못한 오래된 아파트인 탓에 안쪽도 그다지 따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깥 공기는 새삼스러울 정도로 서늘하다.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었다. 린네의 고향에서는 특히 그랬다. 추운 계절은 문명에서 벗어날수록 냉혹해진다. 아무리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에 적을 두어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겨울을 버틸 두터운 털가죽도 지방층도 생기지 않았다. 거기다 농사를 통해 얻은 식재 역시 결코 넉넉하다고 할 정도는 못 되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냥에 나서곤 했다. 화살촉에 독을 바르고 하얀 설산을 뒤지며 잠들지 않은 짐승을 찾는 것이다. 굶주린 인간은 모든 굶주린 것들이 그러하듯이 필사적이다.

사냥이란 하나의 생명을 음식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숨통을 끊어내도 생명은 쉬이 고기가 되지는 않는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바르고 핏물을 빼는 공정을 거친 다음에야 생명은 비로소 고기가 된다. 인간은 사냥을 통해 하나의 생명을 다른 생명의 찰나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냥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냥은 살생이고 살생은 야만이다. 그의 고향에서조차 필요 이상의 사냥은 저어되었다. 이러나저러나 살생을 두려워했던 거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살생에는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그 각오를 완전히 무의미한 일로 치부할 셈은 없었다.

마을에서 배웠던 사냥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아마기 린네의 지저에 자리 잡고 있다. 사냥감은 신이 짐승의 모습으로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냥을 통해 그들의 영혼을 신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일용할 양식으로서의 고기를 얻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양식을 내어주는 만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정도의 뻔한 이야기다.

도시에서는 누구도 사냥하지 않는다. 그건 빌딩의 정글에서 살아가는 짐승들 또한 마찬가지다. 도시의 고양이는 도둑 따위의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을 단 채로 버려진 쓰레기통을 뒤질 뿐이다.

문득 어두운 골목길로부터 희미한 소음이 들렸다. 가벼운 쓰레기가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모양이었다. 바람 탓일까. 그렇게 생각한 찰나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고양이는 다 자란 뒤에는 쉽게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잃어버린 제 어미를 찾는 것일까. 빛이 들지 않는 길모퉁이 너머는 인간의 눈으로는 식별이 아무래도 어렵다. 밤 그림자가 짙은 골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린네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편의점에 도착한 린네는 맥주 몇 캔과 우롱차 한 병을 집어 들어 카운터에 차곡차곡 내려두었다. 점원의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상품의 바코드를 찍는 점원의 동작이 느렸다. 자연스럽게 카운터 주변을 둘러보던 린네는 근처의 고양이용 캔사료를 집어 올려두었다.

계산이 끝나면 음료만 한 짐이 된다. 린네는 비닐봉지에 손목을 꿰고 캔사료는 손에 쥔 채 편의점을 나섰다. 그제야 아무렇게나 집어 들었던 캔사료의 성분표며 설명을 대충 살폈다. 사슴고기로 만들어진 사료란다. 캔사료의 라벨 어디에도 이것이 한때는 사슴이었다는 심볼이 없었다. 가볍게 던졌다 받았다. 손바닥에 떨어지는 무게가 묵직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었다. 신도 귀천을 따져가며 깃드는 모양인지 너무 많았던 사슴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신이 아닌 식량으로 취급받았더랬다. 그야 그럴 만 하다. 처음부터 식량으로 주어진 존재에게 감사하는 이는 없다. 감사는 언제든 신을 향한다. 눈밭을 뜨거운 피로 적시며 천천히 식어가는 사슴에게 인간은 감사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신이 보내준 식량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인간은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에는 결코 감사하지 않는다. 랩으로 패킹된 붉은 살덩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매대에 진열되어있었다. 가죽을 가르고 벗겨내는 감각을, 아마기 린네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얇은 비닐 랩은 가죽과는 다르다. 날 선 칼 따위가 아니라 손톱만으로도 충분히 가르고 찢을 수 있다.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도록 잘 정돈된 고깃덩어리를 내려다보며 무슨 고기냐고 물었었다. 니키는 요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특히 들떴다. 오늘의 메뉴와 함께 고기의 이름과 부위의 명칭을 알려주었다. 그건 언젠가 린네가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기도 했다. 짐승의 뼈와 가죽만 발라내고 내장과 살코기를 한데 모아 으깨서 만드는 마을의 음식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그저 생명이 어떤 형태로 구성된 건지, 어린 아마기 린네는 그걸 알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흥미를 가졌다. 니키는 고기를 감싼 비닐 랩을 벗기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어떤 부위는 기름이 많댔고 어떤 부위는 근육질이라 질기다고 했다. 같은 부위라면 비싼 등급의 고기는 살코기 사이에 지방이 틈틈이 배어 퍽퍽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리고 어느 부위는 동물을 잡아도 적은 양만 나오기 때문에 비싸다고 했다. 양지며 사태 따위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이름들은 동물의 몸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동물은 형태를 잃고 작은 덩어리로 쪼개져 얇은 비닐 아래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가로등조차 망가져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밤 그림자에도 천천히 눈이 익었다. 문명이 닿지 않는 오지의 밤은 어두운 법이라, 린네도 밤눈은 제법 밝은 편이었다. 그것도 이제는 무뎌진 모양이지만. 걸음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다가섰지만 고양이의 동그란 눈동자는 애초부터 린네를 향해있었다. 이건 사냥도 아니었고, 굳이 기척을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가는 순간 캔사료를 산 의미가 없어졌을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차피 니키의 돈이니 린네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린네가 걸음을 멈추자 고양이는 오히려 살금살금 다가오기까지 했다. 호의의 냄새를 눈치챈 것일까. 아니면 경계할 여유조차 잃은 것일까. 어찌 되었건 이미 인간의 손을 탄 모양이지 싶었다.

린네는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잘 밀봉된 캔사료에서는 이렇다 할 냄새도 나지 않을 텐데 이미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무릎에 매달려온다. 린네는 고양이의 작은 앞발을 떨어내는 대신 캔을 따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의 주의가 캔 쪽으로 향했다. 먹는 데에 집중한 뒤에는 린네를 살피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한숨을 내쉰 린네는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렸다.

먹이수급이 일정치 못한 짐승들이 으레 그렇듯 이 고양이도 사료를 전부 작은 몸에 밀어 넣었다. 아주 굶주렸거나 이후의 굶주림을 대비했거나, 아니면 둘 다 맞을지도 몰랐다. 린네가 비어버린 캔을 들기 위해 손을 뻗자, 고양이가 린네의 손등에 제 머리를 부딪쳐왔다. 어미를 놓치고 쓰레기통 근처나 전전하는 어린 생물치고는 깨끗하게 정돈된 머리였다.

어찌나 매달려오는지 린네는 캔을 드는 것을 포기하고 손을 뒤집었다. 그러면 작은 고양이는 겁도 없이 인간의 손을 탔다. 밤송이처럼 삐죽삐죽하게 난 솜털이 손바닥을 가득 채운 뒤에는 그 아래의 작은 뼈대가 그대로 느껴지는 따뜻한 가죽이 닿았다. 고양이가 작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놀란 린네가 흠칫 손을 뺐다. 모든 생물은 먹이를 주는 순간 아양을 떤다. 린네는 고양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변명이나 주워섬기며 캔을 집어 들었다.

“아~ 나도 거둬진 입장이라 말이지.”

린네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한 쌍의 눈동자를 피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작은 고양이와 희미한 울음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는 린네가 그러했듯 동정심을 가지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러면 이 조그만 고양이는 그 손에도 제 머리를 기대고 아양을 떨겠지.

그렇게 겨우 배를 채우며 살아가다 보면 운 좋게 그를 거둬들일 사람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고 필사적인 고양이의 측은한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제 몫의 식사를 살라 줄 사람을 말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도시에서는 누구도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고양이 또한 유전자에 기록되어 전해진 사냥법조차 잊어갈 것이다.

인간이 주는 가공된 음식을 입에 댄 순간부터 모든 짐승은 그렇게 변해간다. 마을 사람들이 생명을 내어준 사슴이 아니라 식량을 내어준 신에게 감사했던 것처럼, 이 고양이는 사슴고기로 만들어진 캔사료를 내어준 아마기 린네의 손을 기억할 것이다. 인간의 걸음소리를 기억하고 먼저 인간을 향해 다가설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가축이 된다.

“다녀왔어.”

집이 좁은 까닭에 니키가 앉은 자리는 현관에서도 바로 보였다. 돌아볼 생각이 없는 등을 향해 린네가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섰지만 니키는 여전히 고기에 집중한 채로 대꾸했다.

“왤케 늦었어여? 파칭코에 한탕 하러 간 줄.”

투정을 부리는 것이 분명한 태도다. 뚱한 목소리에 린네는 별수 없이 웃어버렸다. 참을 생각도 없는 폭소에 니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린네는 니키의 뺨에 맥주캔을 들이대었다. 밖이 추웠던 덕분에 알루미늄 캔의 표면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웅갸악! 머하는 거예여!”

“오는 길에 새끼고양이를 만나서 말야.”

“또 그런 컨셉 같은 변명이나 하구! 됐으니까 빨리 앉기나 해여!”

장난을 그만두고 우롱차를 내밀자 바로 병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마신다. 술도 아닌 것을 시원하게도 마신다. 겉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대충 걸어둔 린네가 캔맥주를 땄다. 탄산이 솟아오르는 소리가 기분 좋다. 냉큼 목을 축인 린네가 물었다.

“뭐야, 많이 기다렸어?”

“별루여. 글치만 머, 린네 군이 좀만 더 늦었음 제가 다 먹고 없었을 거예여.”

니키가 못마땅하게 말했다. 그러잖아도 잘 익은 고기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린네가 낄낄대며 말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온 거네.”

“하! 그러게여! 마침 잘 익은 것 같으니 린네 군이 먹어봐여. 아~하세여.”

물 흐르듯 그런 소리를 하는 데에는 괜스레 대꾸를 하고 싶어진다. 린네는 식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니키를 올려다보는 행세를 했다.

“뭐야. 나 실험대야?”

“헉, 들켰어여……? 그치만 린네 군은 살짝 맛이 간 걸 먹여도 문제없을 것 같구? 먼저 맛보는 거라고 좋게 생각해여.”

린네야 몸 하나는 튼튼하니 실제로 이상한 걸 먹어도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이 농담은 전제부터 틀렸다. 니키쯤 되는 요리인이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그 정도야 린네도 뻔히 알고 있었으니 멍청한 대화는 그쯤하고 얌전히 니키의 말을 듣기로 한다.

니키의 젓가락 끝이 코 앞까지 왔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훅 끼쳤다.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탓에 도톰하게 썬 고기조각의 단면에 붉은 육즙이 밴다. 입술이 어쩐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알콜과 탄산은 도리어 갈증을 부추기곤 하니 아마 그 탓이겠거니 싶었다. 2인분의 식사가 풍기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냄새는 1인분의 집을 가득 메우고도 남는다.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냄새에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공복이 촉진된다. 자연스럽게 군침이 돈다.

길들여진 짐승은 먹이 앞에 신뢰와 복종을 표한다. 음식을 내미는 손 앞에 입을 벌리고 이 몸뚱아리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내보인다. 니키의 젓가락 끝이 입술을 건드렸다. 더운 고깃덩어리의 온기가 옮은 나무젓가락 끝은 단단하고 미지근했다.

받아 문 살코기는 따뜻하다. 꺼내 들었던 비닐 팩 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고깃조각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건 한 번도 유기체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무기질적이었다. 처음부터 공장에서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만 같았다. 불을 붙이고 가장 안쪽까지 익히지 않으면 결코 따뜻할 일이 없을 것처럼 창백하고 가지런히.

소금과 후추가 혀 끝을 자극하고 코 안쪽까지 스미는 듯했다. 살코기는 결을 따라 자른 덕분에 녹을 듯이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두께가 있는 덕분에 씹는 맛이 있다. 느리게 저작할 때마다 이 사이에 짓이겨지며 육즙이 흐른다. 동네 마트의 할인상품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다. 시이나 니키의 요리는 으레 그랬다. 식재가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이상할 정도로 맛있어지는 것이다.

그 순간, 어쩐지 삼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겨우 목구멍으로 밀어 넣은 뒤에는 숨통이 죄는 것 같은 감각을 견딜 수 없어 맥주를 들이켰다. 나베에 가까이 둔 탓일까, 그 시원했던 맥주가 그새 조금 미적지근해진 것 같았다.

“햐~ 나도 가축 다 됐구만!”

노릇하게 익은 토마토에서 비어져 나온 과즙이 지글거리며 끓는 소리에 린네의 중얼거림은 묻혔다. 잘 익은 야채를 골라 접시에 담던 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린네를 바라보았다.

“우잉? 린네 군 뭔가 말했어요?”

“니키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니키~ 한 입 더 줘~!”

니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야, 대충 무마하는 투였으니 니키가 오해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으나 피차 같은 뜻이기는 했다. 분위기를 환기하듯 니키를 부른 린네는 아양이라도 떠는 양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니키가 질색하는 얼굴을 한다. 니키는 야채가 담긴 그릇을 린네 앞에 거칠게 내려놓고는 말했다.

“정말! 린네 군이 직접 집어먹으라구여!”

그렇게 넌더리를 내면서도 제일 잘 익은 고기를 집어 내미는 것이다. 린네는 냉큼 받아물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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