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착한 동생 上

오메가버스

나는 오메가다. 그건 인생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는 체질이었다. 극히 일부의 인간들이 가진 특수한 형질은, 좁은 마을에서는 더욱 특수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첫 발정기를 맞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좁고 폐쇄된 마을에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려가 있을 리가 없다.

온몸을 불태우는 것만 같았던 열병은 그 뒤로도 수차례 나를 괴롭혔고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는 약의 도움조차 받지도 못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마을에도 나와 같은 형질의 선례가 있기는 했던 모양인지 민간요법이 전해져오기는 했다. 하지만 민간요법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시기가 되면 부모님은 내게 방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나쁜 아이였지만 그때만큼은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열병으로 달뜬 내겐 방 밖으로 나갈 체력이 없었다.

열에 들뜬 머리는 어지러웠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다리 사이는 몇 번을 닦아내도 금세 젖어들었다. 이유모를 액체는 내부를 가득 채우고도 부족해 몸의 틈을 비집고 기어코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불쾌한 감각에 손가락을 쑤셔넣어 전부 긁어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내가 그렇게 방에 처박힐 때면 아직 어렸던 동생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걱정해 방 근처를 기웃대곤 했다. 차마 숨길 생각을 못했을 보드라운 곱슬머리가 창틀 근처에서 하늘거리는 것을 처음 목격한 순간을 떠올린다. 웃음이 나와 목을 울리니 한숨이 나왔다. 그 시기가 되면 웃을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야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히이로.”

이름을 부르면 곱슬거리는 정수리가 퍼뜩 흔들렸다. 들킬 줄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한숨처럼 웃으며 다시 한 번 히이로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로.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그러면 그제야 창틀 위로 눈썹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가지런한 앞머리 아래에서 시선이 흔들렸다.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들어올래?”

“형, 그건…….”

그 물음에 돌아올 말을 알고 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야.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걸 알기에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나는 방에서 나가지 말라고만 들었어. 누굴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 말에 히이로는 커다란 눈동자를 굴렸다. 멍청한 궤변이었지만 어린 동생은 아마도 그 말에 방으로 들어올 구실을 얻은 것 같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동생이 창문 너머에서 사라졌다. 뭐, 만약 동생이 들어온 게 문제가 된다면……. 그때는 나의 잘못임을 시인하고 내가 벌을 받으면 된다.

바로 들어오나 싶었지만 히이로는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들어왔다. 차가운 물과 수건을 든 것을 보고 의도를 알았다. 내 열병을 식혀줄 셈이었겠지. 나도 히이로도 아는 게 없었으니 별수 없었다. 히이로는 조그만 손으로 수건을 짜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보드라운 손이 물기 탓에 차가웠다. 다정한 냉기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고향에서는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저어되는 편이었다. 그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수준의 애매한 교육은 나의 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본질을 빗겨가는 두루뭉술한 교육의 결론은, 내가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축복받은 체질이라는 것이었다.

축복. 그 말을 듣는 순간 식은땀에 젖은 등줄기를 타고 오한이 기어올랐다. 내가 겪은 것은 열병이었다.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다. 내 마음대로 가눌 수조차 없는 몸에 화가 났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이 축복이란다.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아니, 이 마을에서 그런 다정한 배려에서 비롯되는 무엇을 바란 적은 한 번도 없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는. 아마도 더욱 어린 시절의 내가, 무언가를 바라는 것조차 포기해버리고 만 것이겠지. 나는 그저 이 고통의 원인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열병에 시달리는 이유는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이 열병을 가라앉힐 수 있는지조차도,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어린 동생의 간병은 실제 크게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히이로는 굉장히 애썼지만 그 노력에 부응할 수 없다는 점이 되려 나를 속상하게 했다. 물이 닿은 탓에 차갑게 식은 손 끝이 피부를 스칠 때면 오히려 몸에 열이 올랐다. 해소할 수 없는 열기가 계속해서 쌓이는 것만 같았다.

열을 식히는 방법 따윈 아무도 가르처주지 않았으니 그저 동생의 차가운 손길이 실수처럼 닿기만 기다렸다. 닿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열이 오르리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린 동생의 차가운 손 끝이, 조금 더 깊고 뜨거운 곳까지 파고들어 이 열병의 근원을…… 헤집어주길 바랐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낯선 공기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여며두었던 앞섶이 히이로의 손에 쥐여 펼쳐져 있었다. 조급한 호흡에 달싹거리며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보였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살갗에는 끈적할 정도로 땀이 배어있다. 히이로는 드러난 몸을 잠시 내려다본 뒤 옷자락을 놓아주고 수건을 집어들었다.

“히, 이로…….”

그새 잠긴 목으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내게 도톰한 귓바퀴와 통통한 뺨만 보인 채로 수건을 짜내던 동생이 고개를 들어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하는 순간, 더 이상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이대로라면……. 가장 맛있는 식사를 눈 앞에 둔 것처럼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온몸을 엄습하는 것은 불안이나 공포가 아닌, 황홀한 기대감이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산소를 태운 것마냥 숨이 막혔다. 뒤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뒷골이 찡했고 아랫배는 저릿하게 울렸다. 뱃속을 가득 메웠던 열의 덩어리가 빠르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다리 사이를 적시는 액체의 감각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아도 선명하다. 다리 사이의 묘한 이질감을 견디지 못해 저도 모르게 양 무릎을 오므렸다. 충혈된 눈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고 더운 눈가에는 그새 눈물마저 고인 것 같았다. 돌아버릴 것만 같은 기대감에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핥았다.

“형?”

그리고 다음 순간, 의문의 빛이 서린 투명한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무구한 얼굴이 살며시 기울어졌다. 그 얼굴에 나타난 것은 내가 겪을 고통에 대한 걱정이었다. 내가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던 그 다정한 배려가 어린 동생에게는 있었다.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짐승만도 못한 상상을 했다. 이 다정하고 상냥한 아이를 상대로 대체 무슨 상상을. 나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을 눈동자를 피해 고개를 돌리며 옷깃을 여몄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 끝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까진 안해도 돼. 몸,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양 느리게 몸을 돌려 히이로를 등지고 누웠다. 곧은 시선이 예민해진 등줄기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잖아.”

히이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형.”

이어지는 부름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침묵 사이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차갑고 다정한 손 끝이 젖은 앞머리를 헤치고 이마에 닿았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손길을 따라 고개가 천천히 따라갔다. 희미하게 트인 시야로 어린 동생의 슬픈 얼굴이 보였다.

“지금 무척 힘들어보이는걸. 내가 돕고 싶어.”

어떤 말을 해야 이 고집불통의 동생을 달랠 수 있을까. 아마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닿아오는 손길을 뿌리치듯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거부의 말만 짧게 입에 담았다.

“괜찮다고 했잖아, 히이로.”

작은 동생의 연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다. 이 아이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형제의 부탁이 아니라 군주의 명령으로 인식할 것이다. 나의 동생은, 아마기 히이로는 군주의 명령에 불복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응…….”

시무룩한 대답을 끝으로 히이로는 이제 미지근해진 물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아예 떠날 생각인가 했지만 히이로는 금방 물을 갈아왔고 내가 방에서 나갈 수 있게 될 때까지 나의 곁을 지켰다.

그것도 마지막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오메가였고 그 뒤로도 몇 차례 열병으로 앓아누웠다. 히이로는 내가 방에 틀어박힐 때마다 작은 손으로 수건을 짜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동생에게 품은 추잡한 마음을 직시해야만 했다. 더러움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을 엄습하는 불쾌감만이 내가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도왔다.

그럼에도 나는 동생을 밀어내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건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마기 린네는 동생을 욕망했고 동시에 사랑했다.

그래. 사랑했다. 애정을 갈구했고 다정에 의지했다. 아마기 히이로의 배려와 걱정만이 좁은 어항에 갇힌 나를 숨쉬게 했다. 그래서였다. 드물게 폐에 스며든 산소는 너무나 달콤해서, 나의 어항에 들어와준 그 아이를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행복하다면 행복한 시기였다. 어린 동생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아무리 끔찍한 삶이라도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뭐, 인생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영원한 것은 없었다. 동생의 유년기는 막을 내렸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 애가 본래 가지고 있었을 형질이 두드러졌다. 아마기 히이로는 알파였다.

그 아이가 알파든 뭐든 애초에 우리가 도시 태생이었다면 그건 아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폐쇄적인 공동체일수록 혈통을 중시한다. 피에 귀천이 있다고 믿으며, 고귀한 혈통을 가진 이를 우두머리로 추대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던가. 맞는 말이다. 인과를 역전시키는 순간 그 문장에는 설득력이 생긴다.

한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된 이는, 제가 우두머리에 어울리는 인간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명분을 만든다. 나는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다고. 그렇기에 우두머리로서 너희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뭐, 그런 거다. 실제로는 신탁이니 예언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현상과 전혀 다를 바 없지만, 일단 피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보니 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모양이지 싶다.

이후 근처의 마을로 가출했을 때 들른 도서관에서 알게 된 바로는 피는 유전되는 게 맞다고 한다. 그 유전된 혈통에 귀천이 있고 없고는 차치하더라도. 낮은 수준의 과학과 그 대단하신 명분은 한데 뒤얽혀 이를 데 없이 멍청한 결론을 도출한다. 이를테면 그 고귀하신 혈통을 온존하는 방법 따위를 말이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히이로의 체질을 숨겨야 했다. 둘로 나뉘게 된 혈통을 다시 하나로 묶을 방법이 들통나는 순간, 이 몸은 품종을 유지하고 형질을 강화하기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종마처럼 취급받게 되리란 것을 뻔히 알았다. 이른바 근친교배라는 거다. 군주니 뭐니 우스울 따름이다. 정말로 받들어 모시는 존재라면 그런 식으로 취급할 리가 없지 않은가.

동생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고 그건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알파는 오메가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는다. 오메가가 없으면, 내가 없으면 동생은 알파임을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히이로가 알파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나의 체질에 그 아이의 반응이 돌아온 탓이었으니 말이다.

“몸이 이상한 것 같아, 형.”

히이로가 혼자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일부러 문을 통하지 않고 창문 너머에서 그렇게 말하는 동생의 뺨이 붉었다.

“혹시 형에게 옮은 걸까 생각했는데 지금까진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가까이 있어서 옮는 체질이었다면 동생을 곁에 두었을 리가 없다. 이 끔찍한 저주를 어린 동생에게 물려주고 싶을 리가 없지 않은가. 히이로는 조그만 머리를 살며시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내가 다른 이유로 아픈 거라면 형에게 옮길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형과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열이 심하게 오른 모양이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손을 뻗었다. 보드라운 뺨 위로 흐트러진 곱슬머리를 쓸어 귓등으로 넘겨주면 손 끝에 희미하게 땀이 배었다. 그 행동이 원인이었을까.

“형?”

눈을 동그랗게 뜬 히이로가 이내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히이로?”

내가 되물었지만 히이로는 대답하지 않고 내 손을 살며시 쥐었다. 따뜻하고 습한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 사이로 얽혀들었다. 히이로는 무얼 확인하듯 제 코 끝을 묻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분명한 공기의 흐름이 손바닥을 스쳤다. 어쩐지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손 끝이 움츠러들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서있던 히이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한테서 기분좋은 냄새가 나. 음, 어쩐지 달콤한……? 이건 뭘까?”

어쩐지 달착지근하게 울리는 말에 가슴 언저리가 간지럽게 느껴져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내게 뭐냐고 물어도. 음, 이상하네. 오늘은 아무 것도 못하고 내내…….”

말하는 도중 어떤 결론을 도출한 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문득 도서관에서 본 책이 떠올랐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동종의 개체를 특정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어린 동생의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발간 뺨과 물기어린 눈동자, 호흡을 억누르는 것처럼 다물린 입술, 억지로 삼킨 숨결이 벅차 희미하게 달싹이는 어깨…….

나는, 인간이 언제 그런 표정을 하게 되는지 알고 있다.

창문을 사이에 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순간에 도달해서도 충분히 서로를 놓아줄 수 있었다. 나는 히이로를 돌려보낸 뒤에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동생이 알파로 발현했다는 것은 나를 제외한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애초 이 좁은 마을의 오메가는 나뿐이었다. 나의 끔찍한 냄새와 히이로의 순수한 욕망은 동종이 아니고서는 결코 마주할 일이 없는 종류의 것이다. 특히 히이로의 그, 욕망은. 오메가인 나만 없으면 히이로의 삶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가출의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집을 떠나온 나는 도시에서 시이나 니키를 만났다. 니키는 베타였다. 그는 오메가니 알파니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있어보이지 않았고 실제 잘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면 제가 잘 모르는 것이라도 일단은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좋은 녀석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넘쳐나는 내 쪽이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찾아보거나 약국에서 물어 알아내는 게 빠르기는 했지만.

내가 나의 체질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에는 알파나 오메가를 위한 체계가 어느 정도 잡혀있었다. 내 체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일단 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컸다. 꼬박꼬박 챙기기만 하면 체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호르몬을 조절하는 종류의 약이었다. 결코 값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며칠을 앓아눕는 데에 비하면 그 값을 지불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문명은 나를 짐승에서 인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나는 더 이상 정신을 좀먹는 욕망에 앓아누울 필요가 없었고 젖어든 다리 사이를 씻어내며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약만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누구도 아마기 린네의 체질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삶의 변화가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처럼 살 수 있게 된 거다. 애초에 인간은 지성을 가진 동물이다. 발정기 따위의 야성에 무너지는 쪽이 말이 안 된다.

이런 걸 의존증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애초부터 약이 없으면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살 수조차 없도록 설계된 몸이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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