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
“형제싸움이여?”
눈을 동그랗게 뜬 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고가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와중에도 테이블 위에 음식을 내려놓는 손짓에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능숙하다. 히이로의 앞에 오므라이스가 놓인다. 제 앞에 곱게 놓인 오므라이스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히이로 대신 린네가 대답했다.
“엉.”
“아니, 그럼 이렇게 사이좋게 오므라이스를 먹구 있을 때가 아니자나여~!”
린네의 대답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손은 여전히 착실하게 린네 몫의 오므라이스를 내려놓고 있다. 아무튼 니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사이좋게 오므라이스를 먹는 건 싸움이라는 키워드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웬 오므라이스냐 하면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논리라는 게 존재하는가는 차치하더라도.
“빨리 싸워여! 물론 여기서 나가서!”
이제 니키는 아예 싸우라고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눈을 가늘게 한 린네가 그런 니키를 향해 젓가락 끝을 흔들며 대꾸했다.
“대련 같은 걸 하려는 게 아니라서 문제라고. 의견이 충돌해서 일어나는 싸움이어야 의미가 있는 거라나?”
그렇게 말한 린네는 젓가락을 뻗어 예쁘게 솟아오른 오므라이스를 갈랐다. 노란 빛의 촉촉한 계란이 그릇 위로 쏟아져내렸다. 눈 앞의 오므라이스도 당초엔 히이로가 싸우겠답시고 내놓은 의견 중 하나였다.
형제싸움의 이유와 목적은 어처구니없을 정도까지 먼 과거로 내려간다. 어린 히이로는, 이른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어른들이나 형이 하는 말이라면 전부 군말않고 따랐다. 형인 린네가 종종 어른들의 옳음과 상충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면 아주 잠자코 있는 것도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쫑알대면서도 결국은 형을 따르곤 했다.
그건 아마 그의 형이 차기군주였던 탓이리라. 그들은 형제인 동시에 군신의 관계였다. 때문에 히이로가 제 형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형에게라면 몰라도 제 군주에게 당당히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신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아마기 린네는 그걸 무척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는 동생이 무슨 말을 하든 전부 다 들어주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아마기 히이로는, 도시에 와서 비로소 사랑을 배웠다. 둔기처럼 묵직하게 파고든 사랑의 말은 아마기 히이로의 가장 지저까지 휘저어놓았다. 그가 지금껏 사랑을 모르는 인조인간이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그 순간 제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쁨과 슬픔과 걱정과 헌신과 공포 따위가…… 전부 사랑의 발로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감정을 사랑이라는 테두리 안에 갈무리한 뒤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사랑은 표현되는 순간부터 언어로 정제된다. 정제는 깎고 다듬는 것이다. 그렇게 정제되는 순간부터 사랑은 천천히 마모된다. 깎여나간 부분은 오해와 착각의 여지를 만든다. 그리고 오해와 착각은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싸움은 사실,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닐 터였다. 오히려 언어로 정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모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리하여 아마기 히이로는.
“형! 나와 형제싸움을 하자!”
“하?”
아마기 린네와 싸우기로 했다.
“각자의 생각이 있고 의견이 있으니까 싸우게 되는 거야. 그에 비해 우린 어릴 적부터 별로 싸우지 않았잖아? 우리는 서로가 가진 생각에 대해 그리 자주 이야기해보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난 형과 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
이상한 내용을 나름대로 조리있게 말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덜 이상해지는 것도 아니어서 이야기가 길어지니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눈을 가늘게 뜬 린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대충 대답했다.
“아~ 동생 군의 상식이 늘었다는 건 알겠어.”
“음! 고마워, 형!”
비꼬는 말에도 순수한 감사인사가 돌아온다. 어쩐지 기운이 빠진 린네는 코 끝으로만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굳이 싸워야 할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칫하면 동생 군이 그렇게 좋아하는 형아랑 완전히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고?”
그 말에 고개를 살며시 기울인 히이로가 맑은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형제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잖아?”
“하겠냐. 그보다 멍멍이한테 아무거나 먹이지 말라고.”
“음, 그렇네. 개에게는 불쾌한 이야기였을지도.”
진지하게 불특정 개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는 순진한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한숨이 목에 얹힌다. 하지만 아마기 린네는 언제든 작고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약했다. 아무리 멍청한 소리라도 아끼는 동생이 스스로 생각해 내놓은 결론이다. 그걸 처음부터 부정해버리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린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내키지 않는 양 말했다.
“하아~ 그럼 어디 동생 군 마음대로 해보라고.”
“음! 고맙게 생각할게!”
“그래서? 뭘로 싸울 건데?”
린네가 묻자 히이로는 턱을 괸 채 잠시 고민하다 제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할 시간까지 가져놓고도 히이로의 모습은 어쩐지 미리 정해둔 것을 확인받는 것처럼 보였다.
“으음……. 의견 차이가 생길만한 게 좋겠지?”
“그래그래.”
그건 딱히 동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동의로 받아들인 것인지 히이로가 명쾌한 얼굴을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럼 역시 형이랑 하고 싶은 일이 좋겠어!”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린네가 조급하게 손을 저었다.
“어이어이어이. 그건 아니지. 대체 어떻게 된 룰인 건데.”
“내가 형과 하고 싶은 일을 말하면 형이 퇴짜를 놓으면 될 것 같아!”
그게 뭐하자는 건데……. 이해할 수 없는 논리에 린네가 입을 떡 벌렸다.
“너……. 못 본 새에 이상한 성벽이라도 만든 거냐?”
린네가 그렇게 핀잔을 주자 히이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순수한 의문만이 담겨있다.
“성벽? 확실히, 적의 침입에 대처하려면 견고한 성벽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야? 알려줘, 형.”
이 자식,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단어를 순진한 동생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줄 만큼 파렴치한인 것도 아니어서, 린네는 한숨을 내쉬고 화제를 되돌렸다.
“하아. 하던 말이나 계속 해보라고.”
“내가 형이랑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일은, 음…….”
그러더니 고이 접어두었던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다. 히이로가 묘하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린네의 앞에 활짝 편 종이를 들이밀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린네는 그걸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적어왔냐……. 방학 숙제냐고.”
아마 히이로는 여기까지의 내용을 전부 상정해놓고 있었을 것이다. 나름의 논리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보니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린네는 종이를 들여다보며 소리내어 읽어내려갔다.
“고향 돌아가기. 불곰 사냥하기. 곤충 채집하기. 산딸기 따러가기. 강에서 생선 잡기……. 하아.”
린네가 도중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히이로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떨까나!”
히이로가 쓴 「형이랑 만나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은 아직 절반 이상 남아있다. 린네는 그 아래로 빠르게 눈으로 읽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고 자시고…… 음?”
그렇게 읽어내리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시이나 씨의 오므라이스 먹기.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린네는 막 도시에 왔을 때의 저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린네는 종이를 곱게 접어 뒷주머니에 밀어넣고는 기지개를 쭉 폈다.
“응~ 그럼 가볼까?”
“으음? 알겠어, 형!”
히이로는 린네의 결정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아무튼 잘 따르기는 했다. 이런 녀석을 두고 형제싸움이니 뭐니 가능할 리가 없다고, 린네는 쓰게 웃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형제싸움의 일환으로 ES의 구내식당에 마주앉아 시이나 니키의 오므라이스를 먹게 된 것이다.
“웅……. 뭔 소린지 이해 하나두 안 가고 재미없어여!”
조금 고민하는가 싶던 니키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투로 대꾸했다. 애초에 이해하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린네는 신경쓰지 않고 맞장구를 쳤다.
“그치~? 이 녀석 앞뒤가 꽉 막혀서 재미가 없다니까.”
물론 니키에게 무얼 이해시킬 생각 따위는 린네에게도 없었다. 그저 히이로의 이상한 발상을 트집잡을 좋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달려들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새 오므라이스를 다 먹은 히이로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방긋 웃었다.
“음? 나는 대련도 좋아! 형이 나의 성장을 지켜봐줬으면 좋겠어!”
커다란 눈동자가 티 없이 맑다. 아마 린네와 니키의 대화에 한 점의 불쾌함도 느끼지 못한 것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형제싸움이란 걸 해보고 싶어!”
목소리는 우렁차지만 포크를 꽉 쥔 손에서는 결의보다는 오므라이스에 대한 열망이 더 크게 느껴진다. 린네가 한 그릇 더 내어주라고 할 셈으로 니키를 바라보면 그는 묘한 얼굴로 히이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린네 군도 큰일이네여.”
“어? 뭐…….”
확실히 큰일이기는 했다. 이 멍청이는 분명 열심히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니키가 린네를 흘끔 바라보며 말했다.
“순진한 동생 씨가 린네 군을 쏙 빼닮아서.”
“아?”
니키의 말에 린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바보동생이랑 내가? 니키큥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빨리 가서 오므라이스나 한 접시 더 만들어 와.”
“그러고보니 이건 린네 군이 사는 거예여? 머, 아무리 린네 군이라도 동생 씨한테 얻어먹을 만큼 썩어문드러지진 않았겠죠?”
니키가 의심을 담은 눈초리로 린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린네는 경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내가 사는거지. 지갑은 니키큥 지갑이지만!”
“아니, 내 지갑! 언제 가져간 거예여! 이 나쁜 인간아~!!”
“캬하학! 돌려받고 싶다면 오므라이스나 가져오라고!”
린네는 주방으로 향하는 니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니키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린네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4년 전의 아마기 린네를 알고 있는 시이나 니키라면 모를 수가 없다.
가출에 성공해 도시에 도착한 뒤로 세상과 접하는 면적이 늘어났다.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사고한다. 지금껏 옳다고 믿었던 낡은 것들을 버리는 과정에서 후회는 비로소 형태를 갖추고 침전한다.
아마기 린네조차 그랬다. 수많은 것을 후회했다.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아마기 린네는 많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를테면.
“형?”
눈 앞의 동생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맞닿았다.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린네는 픽 웃고는 냅킨을 집어들었다.
“입가에 묻었잖아.”
“음? 고마워, 형!”
바로 감사를 표현한 히이로가 린네가 내민 냅킨을 냉큼 받아들었다. 들고 있던 냅킨을 빼앗긴 린네는 질린 얼굴을 하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아무튼 귀여운 구석이 없다.
“응~ 아무리 그래도 사냥하는 건 평범하게 무리지. 도시에서는.”
그렇게 말한 린네가 히이로를 이끈 곳은 오락실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던 히이로가 린네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이었지만 아마기 린네라는 사람이 으레 그러듯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 히이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형의 뒤를 급하게 쫓는 것 뿐이었다.
린네가 멈춰 선 곳은 건 슈팅 게임의 아케이드 앞이었다. 2인 자리가 마련된 게임기의 널찍한 화면 너머에서는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좀비 사냥이라면 도시에서만 할 수 있지만!”
“좀비?”
“엉.”
이번에도 역시 설명이 부족하지만 히이로는 도시에 온 뒤로 이와 같은 설명 부족을 여러 번 겪었다. 덕택에 이런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었다. 눈치가 빨라졌다고 해야 할까. 좀비라는 것도 아마 도시의 고등학생에게라면 설명도 필요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존재라는 것일 테지.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표적을 좀비라고 칭하고 있다는 건 맥락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히이로가 추리를 하고 있는 사이, 아케이드 앞으로 다가간 린네가 화면 앞에 꽂혀있는 건 컨트롤러를 빼내 히이로에게 건넸다.
“이걸로 잡는 거야.”
히이로는 자연스럽게 건 컨트롤러를 쥐었다. 그 손짓을 보아하니 용도를 아주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다른 게임을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된 것이리라 싶었다. 컨트롤러를 꼼꼼하게 살피던 히이로가 말했다.
“비슷한 게임은 몇 번 해본 적 있어.”
역시 그랬다. 린네가 가볍게 웃었다.
“하항~? 조금 다를 걸? 일단 기분이 말이지.”
“흐음?”
“단순히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화면의 사냥감을 향해서 조준하고 쏘는 거야.”
린네는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화면에 향했다. 달칵 눌리는 버튼에 화면의 움직임이 멎고 Insert Coin 문구가 뜬다. 린네는 냉큼 기계에 동전을 밀어넣었다. 설명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으로 이야기를 마친 것이다.
“일단 한 번 해보자고. 건 슈팅을 원 코인 클리어하는 건 어차피 무리니까.”
“음. 시야는 조금 좁지만 이 화면 안에서만 나오는 거라면 충분하겠지.”
히이로는 린네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 태도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미 건 컨트롤러를 드는 자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잖아도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꼴이, 아주 사냥꾼의 그것이다. 지나치게 본격적인 모습에 린네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어이, 너무 진심이잖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기 히이로는 게임에 소질이 있었다. 그야, 게임실력 또한 반사신경에 좌우되는 것이다.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활시위를 놓는 것처럼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버튼을 누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처음에야 게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동전을 넣어 이어가야 했지만 그 횟수는 도리어 진행척도와 반비례하여 줄어들었다. 덕분에 일부러 교환해둔 동전이 잔뜩 남았다. 기계 위에 쌓아두었던 동전 하나를 집어 가볍게 던졌다 받아 쥔 린네가 물었다.
“한 판 더 할까? 목표는 원 코인 클리어!”
“음? 형이 원한다면 좋아!”
사냥을 하고 싶다고 한 건 저면서 묘한 소리를 한다. 그 태도가 어쩐지 신경쓰여 린네는 동전을 넣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 건지 히이로가 건 컨트롤러를 고쳐 잡고 가만히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사냥을 했는데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건 어쩐지 아쉽네.”
그건 그렇다. 애초에 사냥이란 그 부산물을 얻기 위한 행위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사냥을 하는 경우는 도리어 드물다. 린네가 보기엔 히이로도 그런 취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적어 온 꼴을 보니 그렇게 사냥을 좋아했나 싶었던 것이다. 지금껏 알아주지 못한 게 조금 미안한 기분까지 들었는데……. 말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지. 린네는 검지와 중지 끝으로 잡고 있던 동전을 말아쥐고는 남은 동전도 손바닥에 마저 쓸어담았다.
“그런 동생 군을 위한 UFO 캐쳐도 있지.”
“음? 유우, 에프오……?”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눈을 굴리며 다시 한 번 되뇌이는 것이 귀엽다. 린네는 이번에도 설명을 생략하고 앞서 발걸음을 옮겼다. 인형뽑기 기계 앞에 멈춰 선 린네가 다시 한 번 성의 없는 설명을 시작했다.
“위에 달려있는 저 허접한 집게 보이지? 저걸 움직여서 아래에 있는 인형을 건지면 되는 거야.”
집게를 가만히 바라보던 히이로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중얼거렸다.
“저건…… 확실히 약해보이네. 수제라면 훨씬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도시의 기술은 이런 부분에선 부족한 건가?”
“음~ 오히려 이해타산이 정교하게 얽혀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린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히이로가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린네는 동생의 의문에 그 이상 대답하는 대신 기계의 유리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조금만 더 세게 쳐도 인형이며 집게가 흔들릴 것만 같다.
“뭐어~ 보다시피 약한 게 맞아. 그래서 약간의 꼼수가 필요한 거지. 이 형아가 본보기를 보여줄 테니 잘 보고 있으라고.”
아마기 린네는 승부사다. 승부사라면 몇 수 앞을 생각해야 한다. 그건 인형뽑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인형을 뽑은 다음에 어떤 인형을 뽑을 것인가. 다음 목표를 잡아올리기 좋은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그렇게 잔뜩 뽑을 생각은 없다. 적당히 시범이나 보이며 동생이 쉽게 뽑을 수 있도록 판이나 깔아 둘 셈이었다. 몇 차례의 도전 끝에 아래의 출구로 솜인형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린네는 인형을 꺼내 동생에게 내밀었다. 군말 없이 인형을 받아 든 히이로가 맑고 반들반들한 단추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린네가 웃으며 말했다.
“불곰은 아니지만 이 사냥도 꽤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음, 그러네. 하지만 형.”
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 린네가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엉?”
“일부러 몇 차례에 걸쳐서 뽑은 거지?”
그 말에 린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야, 그의 동생은 순진하지만 멍청하지는 않다. 그에게는 짐승처럼 날카로운 직감이 있다. 아마기 린네는 이번에도 그 다음을 예상한다. 그는 둘러댈 생각도 않고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히이로는 인형에 붙은 태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다음 인형을 쉽게 뽑을 수 있도록 미리 포석을 깔아둔 것처럼 보이는데. 맞을까?”
“짜식, 하여튼 영리하다니까~!”
“음, 고마워. 나는 형에 비하면 바보지만.”
또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얼굴을 찌푸린 린네가 넌더리를 내며 냅다 동전을 밀어넣었다.
“아~아~! 됐으니까 직접 해봐! 다 뽑아서 게임센터 기둥 뽑아버리자!”
“형이 말하는 기둥은 저쪽에 있는 걸 말하는 걸까? 그게 인형을 뽑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냥 처음부터 기둥을 뽑는 게 좀 더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해.”
“……내가 널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겠냐. 자자! 시간 없어! 버튼 눌러, 버튼!”
아마기 히이로는 기본적으로 센스가 좋다. 린네 역시 저의 센스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만큼 당연히 동생인 히이로에 대해 예상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조금 무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겠지.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그냥, 얕잡아봤다는 거다. 동생의 빠른 적응력을 보고 있으면 아마기 린네도 무서울 정도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아마기 린네에겐 인형을 들 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떨어지기 직전인 인형조차 추스를 수 없는 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히이로는 기계로부터 꺼낸 새로운 인형을 자연스럽게 린네가 안고 있는 인형 무더기 위에 올려두었다.
“……동생 군, 너무 많이 뽑았다고~”
멈추지 않고 쌓여가는 인형에 린네가 투정을 부리자 기계의 출구 근처에서 몸을 낮추고 있던 히이로가 물끄러미 린네를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횟수가 남아있었으니까……. 나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한 걸까?”
작고 귀여운 동생이 시무룩한 얼굴로 올려다 보는 데에는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린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잘했어. 잘했다고.”
그나저나 이렇게 많아서야 처치곤란이다. 린네는 동생의 주변 인물들을 생각하며 대충 나눠 줄 인원들의 얼굴을 셌다. 아주 깊은 인연을 쌓은 건 아니지만 좋은 녀석들 뿐이란 건 린네도 안다. 그들이라면 히이로의 별 것 아닌 전리품도 분명 기쁘게 받아줄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아마기 린네의 사랑스러운 동생은 이제 린네 뿐만이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애초에 사랑받을 이유가 있는 녀석이었다. 마을에서 바보 취급을 받던 때와는 다르다. 히이로의 동료들을 떠올리던 린네가 히이로를 향해 말했다.
“아이쨩, 주면 좋아할걸? 그 녀석 귀여운 거 잘 어울릴 것 같고.”
“음. 확실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히이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말했다.
“그건 형에게 줄 거야.”
“엥.”
멍청한 소리를 낸 린네는 무심코 품 안의 인형을 내려다 보았다. 대충 얹어놓은 인형의 짧은 꼬리가 보였다. 뽑는 것 자체는 즐기는 편이지만 그 부산물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잔뜩 뽑아도 동네 공원에서 만난 어린애에게 넘겨주거나 니키의 침대에 대충 던져놓곤 했다. 니키는 애초에 먹을 수 없는 것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인형이 잘 어울리는 나이대라는 건 분명히 있는 모양이라 괜찮았다. 최근에는 코하쿠에게 억지로 떠넘기기 시작했다. 별로 좋아해주진 않았지만 잘 어울렸으니 상관 없었다. 이렇게, 무엇이든 적재적소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아마기 린네는 이 인형이 스스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쩐지 민망해진 린네가 어색하게 눈만 굴렸다.
“……아니, 거……. 이런 건 내 캐릭터는 아니잖냐.”
“캐릭터?”
“이 형님께는 아주 안 어울린다는 뜻이지.”
린네의 설명에 히이로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형의 위용에는 이런 솜뭉치보다는 불곰 가죽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알겠으니까 일단 불곰에서 벗어나는 게 어때?”
금방이라도 불곰 사냥에 나설 것 같은 동생을 겨우 진정시킨 린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에게 무얼 받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잔뜩 받아버렸다. 본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어쩐지 진이 빠졌다. 하지만. 린네는 제 품에 가득 안긴 인형들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보았다.
아마도 이걸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아마기 린네에게 동생이 생긴 순간부터 쭉 아마기 린네가 동생을 사랑해 온 것처럼 그의 동생도 그랬다. 아마기 히이로 역시 그의 형을 사랑했다. 그랬는데도 아마기 린네는 이제야 겨우 동생에게 사랑받고 있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사랑처럼, 결코 물질로 변환할 수 없는 것을 원하면서도 이렇게 매번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형제는 별수 없이 닮는 법이다. 아마기 히이로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인형은 아마기 히이로가 제 형에게 스스로의 사랑을 확실히 인지시키기 위한 장치다. 팔을 한껏 벌려도 결코 품에 끌어안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아마기 히이로는 형에게 주고 싶었던 거다. 어쩐지 우스워져서, 린네는 희미하게 웃었다.
“동생 군.”
“음?”
린네의 부름에 히이로가 돌아보았다. 동생과 얼굴을 마주한 린네가 씩 웃으며 제 품의 인형들을 히이로에게 떠밀었다. 히이로는 자연스럽게 인형들을 받아 품에 한가득 안고는 린네를 올려다 보았다.
“햐학! 아직 꼬맹이라 그런지 인형이 잘 어울리네!”
“형, 이건…….”
린네의 말에 히이로가 서둘러 목을 울렸다. 그새 울상이 되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뻔히 보인다. 제 선물을 거부할 셈으로 안 모양일 테지. 린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선물은 거절하지 않으니까!”
린네의 말에 조금 안심한 히이로가 인형을 안은 팔에 힘을 줬다.
“음! 그러면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잘 들고 있을게!”
“그래그래, 그런 건 귀여운 녀석이 들고 있어야 잘 어울리는 거야.”
그런 입에 발린 소리로 제 짐을 전부 동생에게 떠넘긴 린네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고는 한껏 가뿐해진 걸음으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히이로가 인형들을 조심스럽게 보듬어 안고 린네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면 린네가 제 곁을 확인하고는 웃는 낯으로 물었다.
“즐거웠냐?”
“무척 즐거웠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은 어릴 적과 변함없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내 의문이 피어오르고 부자연스럽게 걸음이 멎는다.
“……음?”
따라오던 동생이 걸음을 멈추자 린네도 자연스럽게 동생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는데.”
“우리, 싸우지 않았어!”
“결국 그거냐.”
린네가 질린 듯 대꾸했다. 하지만 히이로는 린네의 반응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의견이 부딪치지 않는다는 건 한 쪽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형이 형의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형제싸움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하아? 너는 니네 형이 스물 한 살이나 먹어선 다섯 살이나 차이나는 동생이랑 싸워야만 성이 풀리겠냐?”
“하지만 나는, 형이…….”
린네의 대답에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 애틋하다. 본인의 의견이 혹여라도 형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싶어 겁먹은 거다. 그렇게 염원하던 형제싸움을 할 수 있는 판이 깔렸는데도 몸에 밴 태도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면서 무슨 형제싸움을 운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린네는 가만히 히이로의 이름을 불렀다.
“히이로.”
“으, 음! 형!”
히이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우렁차게 대꾸했다. 그건 마치 제 불안을 애써 떨쳐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린네는 그의 불안을 잠식하려는 듯 일부러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오늘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서 무척 즐거웠는데, 너는 별로였어?”
그 말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던 히이로가 이내 뿌루퉁하게 대꾸했다.
“그런 건 치사해, 형.”
“시끄러. 형은 좀 치사해도 돼. 형이니까.”
린네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자 히이로가 조금 분했는지 턱을 당기고 제 형을 올려다 보았다. 그 얼굴이 마냥 귀여워서, 린네는 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무조건적으로 형을 받아들이고 따르던 녀석이 조금씩이지만 착실하게 변해가고 있다. 린네로서는 히이로의 변화를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음 번엔 형이 원하는 걸 하자! 형은 뭘 하고 싶어?”
생각에 골몰하나 싶던 히이로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는 확신에 찬 미소가 가득하다.
“엉?”
린네는 가볍게 대꾸하고는 동생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고민했다. 물론 대답은 이미 오래 전에 정해두었다. 린네는 커다란 손을 뻗어 히이로의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흐트러트렸다. 부드러운 곱슬머리가 손 끝에서 흩어졌다. 시야를 방해하는 머리카락에도 히이로는 그의 형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그 얌전한 모습을 마주한 순간, 린네는 어쩐지 참을 수가 없게 됐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듯 웃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이미 한 것 같은데?”
“음! 형도 사냥이 하고 싶었던 건가?”
“캬핫, 그럴 리가 있냐. 이 형아는 말이지.”
아마기 린네는 속임수에 능하다. 당연히 연기에도 능하다. ES를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는 충분히 능숙하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제 망설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기 린네는 입술 안쪽의 여린 살갗을 짓씹고 숨을 삼켰다. 그러고도 망설임은 남아서, 동생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에는 조금 목소리가 갈라졌다.
“히이로가 원하는 거라면 전부 해주고 싶었으니까.”
“……내가?”
히이로가 희미한 목소리로 린네의 말을 되뇌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잖냐. 별로 바라는 것도 없었고.”
린네가 과장된 투로 어깨를 으쓱였다. 히이로의 머리를 꽉 잡아누른 손아귀에 더욱 힘이 실린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히이로가 무심코 목줄기에 힘을 주었다. 이래서야 형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린네도 그에 반발하듯 손 마디 하나하나에 힘을 주는 것이다. 마치 제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는 양.
아마기 린네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내 폐를 짜내는 듯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제가 우스운 듯, 미약한 헛웃음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내게 알려준다면, 그걸 꼭…… 함께 해주고 싶었어.”
“그런 건…….”
그런 건, 대답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형의 억센 손아귀 아래에서 힘주어 기어코 고개를 든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히이로가 기억하는 가장 다정한 시선으로 그의 형은 제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어쩐지 숨이 턱 막혔다. 형과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혼자 남은 뒤로 매일매일 형을 생각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사냥을 하고 기르는 곤충을 돌보고 산딸기를 따러가고……. 형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야 했다. 그래서 언제나 형의 빈자리를 느꼈다. 다시 한 번 형과 그런 것들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을 꼭 정해놓고 해야 했던 건 아니었다. 어떤 전제만 있다면 무엇을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전제를 만족시킨 오늘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니다. 무슨 일이든 괜찮았다는 것조차 지나칠 정도의 과장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즐거웠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아마기 히이로는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히이로는 입을 열었지만 그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매번 이렇다. 아마기 히이로는 형 앞에 서면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움직인다. 모든 언어 체계가 무너진다. 행동의 우선순위를 따지지 못하게 된다. 그저 감정만 앞선 어린애로 돌아간다.
하지만 도시에 와서 많은 걸 배우고 다시 한 번 형을 마주하게 된 지금은, 알고 있다. 어린애 같은 생각이라도 제대로 말해야만 한다. 형에게 전해야 한다.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형.”
애써 말하려 했지만 어쩐지 목이 메어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린네는 그런 히이로를 잠자코 내려다 보다가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졌다. 기다란 손가락은 잘 알고 있는 형제의 것임에도 어쩐지 익숙하지가 않다. 제가 모르는 4년의 차이를 새삼스레 실감한다. 형제는 서로가 없는 4년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자랐다. 그리고 다시 만난 고작 몇 개월의 시간 동안에도 그들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했다.
이제 아마기 히이로는 사랑을 안다.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표현이 가끔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거기서 오는 마찰을 싸움이라 부른다면 그들에게는 분명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기 히이로는, 후회마저 알아버리고 말았다. 아마기 린네가 그러했던 것처럼.
동생의 갸름한 뺨을 감싼 린네의 손이 문득 히이로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그리고 그 손 끝에 밴 축축한 물기에 히이로는 당황을 깨우친다.
“미안, 형……! 나, 형의 손을…….”
손을 들어 얼굴을 닦아낼 셈이었지만 품에 가득 안은 인형 탓에 그럴 수도 없다. 히이로는 그저 그의 형의 손이 다정하게 제 얼굴을 닦아내는 것을 견뎌내야만 했다. 린네가 나직하게 말했다.
“신경 안 써. 말해 봐, 히이로.”
그건 결코 재촉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무척이나 따뜻한 위로였고 사랑스러운 동생을 기다리겠다는 다정한 시그널이었다. 히이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껏 무엇도 시작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그 때. 그의 형이 마을을 떠나겠다고 연설한 날에. 형이 가출을 시도하다 잡혀들어온 날에. 감옥에 갇혀있는 형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던 날에. 아니면 그보다 더 이른 어느 날에…….
“그냥……. 형과 함께 있고 싶었어.”
아마기 히이로는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어쩌면 그의 고집스러운 형은 동생의 진심을 어리고 멍청한 이기심으로 치부해 화를 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은 제 형이 잘못되었다고 옳지 못하다고 상처만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진심이 어긋나 골이 깊어진 뒤에도 형제는 여전히 형제다. 쉬이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거다. 그러니 결국엔 아주 사소한 계기로 화해했을 것이다. 린네는 동생을 사랑했고 히이로는 형을 사랑했으니까. 싸운 적도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싸우기 전보다도 더욱 사이가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형제는 그 때 싸웠어야만 했다고. 아마기 히이로는 오래 후회했고 잠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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